8월 6일(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하늘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
예수님은 어느 날 높은 산에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거처럼 그분의 얼굴이 빛나고 옷이 하얗게 변했다. 이 거룩한 변모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서 사십 일 앞서 이 축일을 지낸다. 교회의 전승에 따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사십 일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은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뜻이겠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만 영광스러운 부활을 미리 살짝 보여주신 건데, 얼마 후에 당신이 겪게 될 십자가 사건을 보고 너무 놀라지 말라는 일종의 예고 같은 사건이겠다. 예수님은 이를 알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아니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십자가의 길이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고통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불의한 세상에서 주님 계명에 따라 의롭게 생활하려니 도전, 유혹 등이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고, 자연환경을 보호하자고 나서면 그 즉시 반대 받으며 사람들에게, 같은 교우들에게서조차 미움받을 것이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느님이 그 자리에 함께 계신다는 상징이다. 베드로 사도가 횡설수설하는 사이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이 서로 붕어빵이어서 소개하지 않아도 알 때가 있다. 하느님이 사랑하고 당신 마음에 드는 아들이란 하느님이 예수님을 낳았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느님 안에, 하느님 앞에 있게 되자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하느님과 마주한다는 건 죽음처럼 두려운 건가 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하느님과 만남,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게 아니게 됐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사는 하느님처럼 되는 거다.
죽음은 죄의 결과다. 하느님을 거스른 일종의 죗값이다. 사람은 본래 죽지 않았고,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따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은 이후로 하느님을 무서워하게 됐다. 그 두려움이 내 유전자 안에 있다. 그 하느님이,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렇게 엎드려 떨고 있지 말라 하시며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셨다. 우리가 열심히 선행하고 보속으로 죗값을 치러서가 아니라 이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 분을 믿어서 자기 죄를 씻고 그분과 함께, 그분을 따라, 그분 덕에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그 길이 계명을 지키며 매일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바보가 되고, 자꾸 귀찮게 해서 미움받는 사람이 되겠지만 예수님께는 친구가 되고 하느님께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과 딸이 된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변할 거다.
예수님, 편리와 쾌락 속에 숨어 있는 죽음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십자고상에서 빛나는 주님의 몸을 볼 수 있게 세상 사는 마음을 바꾸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을 매일 그리고 자주 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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