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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오늘 영화 '동주'를 보고 왔습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이 새벽 결국 일어나 글을 남깁니다.
글이 꽤 길어질 것 같아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윤동주 평전'을 강추!!합니다.
1. 김현성 형과 함께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런 노래들 잘 아시죠? 김현성 형님의 곡들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하기 전에 형님이랑 포크모임을 했더랬고, 우리나라 활동이후에도 이런저런 작업을 함께 했더랬습니다. 형은 참 부지런하신데 특히 독서를 많이 하시고, 최근에는 시노래 작업에 여념이 없습니다. 백석 시노래 음반작업도 하셨는데 거기엔 저도 '국수'를 불렀더랬습니다. (가끔 요리프로그램에 나온다는 제보를 듣곤 합니다. ㅎㅎ) 제가 시노래 작업하는 것엔 형의 자극이 큽니다. 사실 어떤면에선 제 음악 전반에서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면 괜시리 형한테 감사전화를 드립니다. 2순위로요.ㅎㅎ 1순위는 고교시절 전교조 해직되신 선생님들이시랍니다.
2년전 쯤 형이 윤동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공연을 여셨는데 저희 우리나라도 함께 했습니다. 별헤는 밤. 슬픈 족속. 자화상. 등등... 정말 시도 좋고 노래도 좋은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그 때 형이 '별을 스치는 바람' 소설을 얘기하시며 윤동주 시인의 '생체실험' 얘기를 꺼냈습니다. 솔직히 좀 거북하더군요. 아무리 일본놈들이 밉기로 윤동주 시인에게 생체실험이라니. 좀 과하다 싶었습니다.
2. 문익환, 윤동주
제 세대는 통일운동 세대라 문.익.환. 이 세글자에 가슴이 울컥!하는 그런 세대입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열사들을 호명하던 목사님의 살짝 쉰듯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94년 목사님 하늘로 가시고 목사님의 시를 바탕으로 '꽃씨'라는 노래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넋으로 넋이라도' 통일로 가고자 하셨던 그 마음이 애절하여 썼던 곡입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목사님이 윤동주 시인이랑 친구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윤동주 시인은 제 마음속엔 백년 전 사람이고, 목사님은 지금 사람인데 친구라니. 그러고 나니 왠지 윤동주 시인이 가깝게 느껴지고, 문익환 목사님도 친근해지고 그렇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그러다가 우리나라에서 문익환 목사님을 주제로 공연을 만들어보자! 이러면서 목사님 평전을 읽었습니다. 김형수 형님이 쓰신 평전인데, 솔직히 너무 두껍고 살짝 재미가 없어서 읽는 내내 힘겨웠습니다. ㅎㅎ (형수형님 지송요. ㅋ) 암튼, 그 평전을 읽고 문익환, 윤동주, 장준하 이런 분들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 와중에 '서시'를 곡으로 썼더랬습니다. 최근에 제가 공연 때 부른 그 노래입니다. 그러니 벌써 5~6년 된 노래네요.
(덧붙이자면 제게 잊혀지지 않는 사진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경대 열사 노제 사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문익환 목사님이 여러 이름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거리에 앉아 너털웃음을 지어보이시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군대 다녀와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이 많던 때인데, 그 사진 한장이 저를 다시 민중가요로 이끌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한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목사님 평전을 읽으며 제가 가장 사랑한 인물은 목사님의 어머니 '김신묵'님입니다. 북간도에서 자라나 민족의식이 뚜렷했던 어머니는 당신의 큰아들이 구약성서 대가로 이름을 떨치는데도 통일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살아야한다고 끝없이 말씀을 하십니다. 심지어 그 아들이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이 60이되어 소위 운동의 길에 떨쳐나선 문익환 목사님의 뒤에는 김신묵 어머니가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마치 안중근 의사의 뒤에는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보내며 당당히 가라고 말씀하신 어머니가 계셨듯이... 정말이지 조선의 어머니들은 위대하십니다.)
3. 정지용 시인 덕분에
정지용 시인의 고향 옥천. 그 곳에서 해마다 '정지용 문학제'를 합니다. 몇년 전 그 곳에서 노래를 하게 됐습니다. 매해 '정지용 문학상'이 한편 씩 발표되는데 그 시에 곡을 붙여서 불러달라는 출연 요청이었습니다. 그 때 붙였던 곡이 '그리운 나무'입니다. 제 2집에 실렸지요. (급 음반 홍보 ㅎㅎ)
그런데 그 '정지용 문학제'가 옥천만이 아니라 연변에서도 열리고 있더군요. 작년에 그 행사에 초대되어 공연을 갔습니다. 나름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에 '향수'를 열심히 연습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연변가무단 성악가가 이 노래를 원키로 부르더군요. 너무도 멋지게. 저는 마이너스 두키를 낮췄거든요. 쿨럭. (향수. 정말 멋진 시이죠. 특히 제가 잊지 못하는 대목은. 태백산맥을 읽을 때. 김범준이 아버지의 장례에 차마 가보지는 못하고 산 속에 숨어 절을 올릴 때. 그 장면입니다. 지금도 뭔가 울컥.)
암튼. 작년에 그런 인연으로 연변에 갔습니다. 보이스 피싱하시는 분들은 못찾겠더군요. 007영화에 아랍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아랍사람들만 보면 괜히 무섭고 그렇듯이 개콘 연변코너를 하도 봐서 그런지 좀 '당황'스럽긴 했습니다만.ㅎ
연변. 이 말은 '북간도'의 새로운 말이더군요.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에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할 때 그 북간도지요. 만주 지역으로 봤을 땐 동만주입니다. '동만주를 내달리던' 독립군들의 바로 그 땅이지요. 홍범도. 김좌진. 이런 분들 말입니다. 그리고 이름없는 항일독립투사들도...
그 공연길에 용정에도 들르고, 명동촌에도 들러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도 가보았습니다. 시인의 집을 가는 길엔 옥수수 밭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밭들 중간중간엔 돌 비석이 많았습니다. 독립투사들을 기리는 비석이라더군요. 오늘의 우리를 있게한 비석들이었습니다.
4. 윤동주를 다시 만나다
솔직히 제게 윤동주는 '서시'를 쓴 시인. 이 정도 였습니다. 부끄럽게도 그 이상은 잘 몰랐습니다. 명동촌에 들렀더니 이장님이 나오셨습니다. 그 곳 교회에 들어서니 그곳은 역사 박물관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장님은 윤동주 시인이 생체실험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굳게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기본 사실로 이야기 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깐. 김현성 형이 봤다는 그 소설이야기가 맞단 말인가...
솔직히 제가 배운 윤동주는,
유약한 시인. 여성적 시인.
이육사 시인은 남성적, 윤동주 시인은 여성적.
뭐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장님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윤동주 시인은 독립투사였습니다. 뒷통수를 망치로 후려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일제시대에 일본놈들의 감옥에서 죽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독립투사가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니 나는. 그런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시인의 생가 앞에서 한잔에 2천원 짜리 종이컵 커피를 마시며 가슴이 후들거렸습니다.
5. 윤동주 읽기
이번 여행은 연변에서 출발해 백두산을 거쳐 여순감옥을 다녀오는 일정이었습니다. 여순감옥은 또 얼마나 가슴을 울리던지요. 거기에 안중근, 신채호 이런 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 인생에, 혹은 제 음악인생에 큰 자국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이 분들의 생애를 노래로 꼭 남겨보려고 작정중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신채호 선생관련해서 10여곡을 쓰고 바로 윤동주 읽기로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죠. 영화 '동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2012년에도 있었습니다. 제가 명작읽기에 좀 목마름이 있어서 '레 미제라블' 완역!인가 뭔가 해서 두꺼운 다섯권짜리 소설을 읽던 참에 영화 '레 미제라블'이 딱! 개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런 행운이.
구입해서 읽은 책은 세 종류였습니다.
이정명 '별을 스치는 바람'
안소영 '시인, 동주'
송우혜 '윤동주 평전'
이정명 님의 소설은 두권짜리 입니다. 아주아주 재미납니다. 소설적 재미가 대단합니다. 언젠가 드라마로 만들어지길 소망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이런 소설을 쓰신 분 답게 참말 이야기 얼개나 진행이 기가막힙니다. 다만 너무 허구입니다.
안소영님의 소설은 거의 짧은 전기에 가깝습니다. 시인의 생애를 주욱~ 그렸습니다. 소설 중간에 '모대기다'는 표현이 나와서 깜짝놀라 소설가를 검색했더랬습니다. 찾고보니 제가 존경하는 안재구 선생님의 따님이시더군요. ^^
그리고. 송우혜님의 평전을 읽었습니다.
아! 정말 뭐라 표현해얄지. 참 좋은 책이고, 참 재미난 책이고, 참 훌륭한 책입니다. 결론적으로 참 고마운 책입니다.
송우혜님은 소설가입니다. 소설가가 쓰는 평전. 참 좋습니다. 최근에 본 '이현상 평전'도 소설가가 쓴 평전입니다. 확실히 글 쓰는 게 다릅니다.
송우혜님은 역사학자입니다. 역사적인 추적이 남다릅니다. 예를 들어 윤동주 시인의 2년 형량에 대해 그것이 당시 사상범에게 내린 일본 사법부의 최고형량에 가깝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입니다.
송우혜님은 송몽규의 조카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윤동주의 쌍둥이랄 수 있는 인물. 그 송몽규의 조카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할아버지 형제분 중의 한분은(송몽규의 숙부나 백부 되겠습니다.) 홍범도 장군 휘하에서 독립전쟁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북간도 독립운동의 피가 그녀에게 흐른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최근에 여러 평전을 읽으며 제가 생각해보니 평전은 우선 주인공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있어야하고, 역사에 대한 관점이 있어야하며, 단순한 연대기 서술이 아닌 생동감과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윤동주 평전'은 그런 점에서 너무 좋았습니다. 윤동주라는 젊은 시인이 생생하게 제 옆에 살아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송우혜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책들을 읽던 중에 '처럼'이라는 책을 알게 됐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중심으로 펼친 평전이었습니다. 이것까지 읽고 영화를 봐야지 싶어서 서점을 들렀습니다. 한참 책장을 넘겨보는데 '윤동주 평전'의 감흥을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아서 과감히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6. 영화 '동주'를 보고
두가지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윤동주 붐을 일으킨 것. 그리고 윤동주 생체실험을 부각시킨 것.
아쉬운 것은 '암살'들에 비추어 봤을 때 영화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평전식의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중간중간 픽션도 많이 가미되어 있던데 이왕이면 더 재미나게 만들지 그랬을까 싶더군요. 게다가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라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7. 윤동주 시인을 노래하기
최근 신채호 선생 노래를 몇 곡 쓰고, 또 여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 노래를 한 곡 쓰고,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여러곡을 구상하고 쓰는 참입니다.
윤동주 시인과 관련해선 김현성 형님의 시노래 음반이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강추합니다.
형은 시인의 시를 중심으로 곡을 붙였습니다. 저도 최근에 시노래 작업을 많이 하면서 시 원문 그대로 곡을 붙이는 작업을 최선으로 알고 작업해 왔습니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 노래작업을 하면서는 좀 생각을 달리 하려고 합니다. 우선 시인의 정신이 드러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곡을 쓰고 시인의 시에서도 굳이 전문이 아니라 일부분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도 곡을 써보려고 합니다.
현재 '새로운 길' '별헤는 밤' '무얼 먹고 사나' '쉽게 씌여진 시'등에 곡을 붙여봤습니다.
앞으로도 시인의 시. 혹은 시인의 삶을 가져와 곡을 붙여볼 작정입니다.
그 와중이라도 여러분께 소개드릴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8. 서시
최근에 이런저런 윤동주 관련 글들을 찾아보며 이 땅에선 윤동주에 대해 '의도적 무시' 혹은 '전략전 인내' 뭐 이런 것을 해온 건 아닌가 싶더군요. 한마디로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겠지요. 그들은 윤동주 시인이 독립투사라는 걸 알았겠지만 무시하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그런 말도안되는 '식민지시대 나약한 지식인' '여성적 서정시인' 이런 타이틀을 붙였겠지요. 그럼에도 윤동주는 살아남았습니다. 그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의 시 '서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술가와 예술작품. 많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서시는 정식 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시인들의 시집에 서시. 라는 제목이 많듯이 윤동주 시인의 서시 또한 시집을 묶고 그 맨 앞에 시집을 소개하는 기분을 쓴 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붙인 많은 시보다 그 '서시'가 더 유명해 진 것입니다. 이 것도 예술을 하는 제겐 많은 생각을 던져 줍니다.
9. 여전한 시대
우리에게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팔복'은 아닐지라도 '큰 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늘 밤은 2016년 봄 밤입니다.
이 밤. 이 곳 한반도는 전쟁중입니다.
윤동주 시인을 죽였던 그 제국주의는 다시 살아나 기승을 부리고 그 뒤를 봐주는 제국주의는 이 땅에서 여전히 전쟁의 피맛을 쩝쩝거리고 있습니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쉽게 씌여진 시. 중에서.
* 서시 (윤동주 시. 백자 곡)
http://youtu.be/HF04JVJL0fY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존 곡 기다릴게요.
아이코. 이 긴 글을. ㅎㅎ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게요..우찌 이런 긴 글을..쿨럭!
오늘 저녁 인터넷교보에서 주문했네요.
제가 읽은 평전과 다르고 주변 제 친우님도 권하던데 백자님까지 권하시니 덥석!
..😅동주에서 그만 헤어나와야할 때인데 더 깊이 깊이 파고드네요.
저도 읽어보고 담에 기회닿음 얘기 나누어봐요.
담에 윤동주 시인 관련 노래 들려드릴께용. ㅎㅎ
살과 피가되는 글ᆢ꾸벅ᆢ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