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날이 가까와 오는데 제자들은 오히려 ‘교만’이라는 기승을 부립니다—심지어는 그들 사이에 ‘누가 더 큰자인가’하는 믿기 어려운 다툼까지 발생 합니다 (눅 22:24). 게다가, 제자들의 어머니까지 나서서 예수님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좌편에 앉게 명(령)” 해 달라고까지 요청 합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0 – 21)
놀랍게도, 그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다름아닌 예수님의 수제자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되신 분이십니다 (마20:20 – 21; cf. 막 10:37)—어머니까지도 ‘교만’이라는 기승을 부리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고 한술 더 뜹니다: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 10:37)
예수님께서 도전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막 10:38; cf. 마 20: 22)—‘죽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는 도전으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전에 대한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은 당돌합니다: “할 수 있나이다” (마 20:22; 막 10:39)— 죽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돌한 제자들(과 어머니)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 (막 10:39; cf. 마 20:23)—죽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뜻 입니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이하, ‘세베대 부인’)와 그 부인의 아들들이 가장 당돌한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찬물을 끼엊는’ 그래서듣기에 민망한 말씀을 두번이나 하셨습니다—두말할 것 없이 그 말씀이 세베대 부인에게 각인되었을것입니다.
세베대 부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부인의 눈에 비췬 예수님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세베대 부인이 예수님께 당돌한 요청을 한 후 오래지 않아 예수님께서 갑자기 잡혀가시더니 채찍에 맞아 갈갈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 가십니다. 세베대부인이 그 모습을 보면서 머리로만 이해 했던 ‘죽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말씀의 의미를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 합니다—천국에서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기 위해 죽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과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두 아들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기는 바라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겪고계신 그 비참한 과정을 보니 차마 그 아들들로 하여금 그러한 과정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그래서 희생 없이 명예만 추구했던 자신의 교만이 훤하게 보이기 시작 합니다—전에 예수님께 자기의두 아들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당돌한 말이었는지를 새삼 깨닭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 합니다—겸손해 집니다.
그리고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혼자 달리지 않으십니다—다른사람들 두명과 같이 달리십니다: 한사람은 예수님의 우편에 달리고 다른 한사람은 예수님의 좌편에 달립니다. 세베대 부인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달린 사람들을 보며 전에 당돌하게 자기의 두 아들을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했던 말이 다시 한번 생각 납니다. 그 말에 대한 반응으로 예수님께서 그 부인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고 도전 하셨고, 그 두 아들들이 그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당돌하게 “할 수 있나이다”고 대답 했습니다. 그러면 그 두 아들들이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달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자기도 그 두 아들들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도록 그 두 아들들을 내어 주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정말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의 두 아들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기는 바라지만 막상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과정을 보니 차마 그 아들들로 하여금 그러한 과정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그래서 희생 없이 명예만 추구했던 자신의 교만이 훤하게 보이기 시작 합니다—전에 예수님께 자기의두 아들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당돌한 말이었는지를 다시한번 깨닭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부끄러워 집니다—겸손해 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 가십니다—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달린 사람들도 다 죽습니다. 세베대 부인이 그 모습을 보면서 머리로만 이해 했던 ‘죽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가슴으로 이해 합니다. 그래서 전에 예수님께 자기의 두 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당돌한 말이었는지는 마음 깊이 깨닭습니다—이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전에 당돌한 말을 했던 것도 회개 합니다: 욥이 환란 후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 42:3)라고 했던 고백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 앞에 겸손해 집니다.
그렇게 겸손해 진 세베대 부인에게 희소식이 들립니다: 아들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 야고보가 곧 순교 합니다.
세베대 부인이 아들 야고보를 순교로 잃으면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 납니다—그 말씀이 한 아들에게 이루어 진것입니다.
세베대 부인이 순교라는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아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형언할 수없이 아프고 슬픕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라고 하셨던말씀이 이제는 세베대 부인에게 도전으로 닥아 옵니다—요한 마져도 그렇게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베대 부인이 그 도전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남은 아들 요한도 전에 자기가 바랬던 대로 천국에서 예수님의 우편이나 좌편에 앉기 위해서는 순교를 당해야 할 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떻게기도 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남은 아들 요한 마저 야고보처럼 순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해야할지 아니면 야고보로 족하니 요한마져 죽게 하지는 말아 달라고 기도를 할 지 고민입니다. 전에 예수님 앞에 당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래서 전에 예수님께 자기의 두 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당돌한 말이었는지는 다시한번 마음 깊이 그리고뼈져리게 깨닭습니다—이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전에 당돌한 말을 했던 것 다시 회개 합니다:욥이 환란 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 42:3)라고 했던 고백이나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야고보의 순교 앞에 겸손해 집니다.
세베대 부인이 아들을 잃은 아픔 가운데 아들을 죽는 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 합니다.
아들까지 과감히 내어주신 그 크신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으로 이해되기 시작 합니다—자기는 결코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세베대 부인이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 하며 하나님 앞에 한없이 겸손해 집니다.
겸손, 겸손, 겸손 ……
그렇게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서—신앙이 깊어지면서—겸손해 집니다.
그래서
깊은 신앙은 겸손 합니다—겸손이 없는 신앙은 절대로 깊은 신앙이 아닙니다.
깊은 신앙은 겸손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의 연륜이 오래라도 겸손하지 않으면 허송세월한 것입니다.
겸손은 깊은 신앙을 분별하는 기준 입니다.
겸손하면 신앙이 빨리 자랍니다.
겸손은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는 지름길 입니다.
겸손, 겸손, 겸손 ……
그렇게 신앙이 깊어지면 겸손해 집니다.
Dean
☞ 출처: Daum Café, “Dean’s Study (딘스 스터디):” http://cafe.daum.net/deanjestory/CTuB/4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