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12~19
◈ 새번역 ◈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5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6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는,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 저녁때가 되면, 예수와 제자들은 으레 성 밖으로 나갔다.
◈ 묵상 Point ◈
(출처 : 묵상과 설교 / 성서유니온)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때가 이르지 않아서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메시아의 때는 인간이 정할 수 없다. 그분이 방문하신 때가 열매를 요구하시는 때다. 이스라엘은 열매는 없고 무성한 잎만 가득하다. 호산나 찬양하며 그분을 맞이한 순례자들과 달리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상징적인 행동, 선지자적 행동을 통해 자신의 예루살렘 방문이 심판을 위한 방문임을 보여 주신다.
2)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이 장사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성전권력자들의 이권 놀음에 순례자들이 이용당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곳이 장사하는 곳으로 변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쫓아내는 행동을 통해서 이제 이 성전의 유효기간은 만료되었고, 자신을 통해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임을 예고하신다. 주님이 오늘 당신의 몸인 교회에 오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 같은가? 교회는 타락한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회개로 반응할 수 있을까?
◈ 설교 / 본질의 회복 ◈ 마가복음 11:11~19
(출처 : 생명의 삶 플러스 / 두란노)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납니다. 생각이 다르므로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의견 충돌이 생기는 이유가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양보하면서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에 관한 문제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에 파괴를 선언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이르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이 성전에서 하신 일은 둘러보시는 것이었습니다(11절). 막연히 구경한 것이 아니라 세세히 살펴보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을 둘러보시며 무엇을 느끼셨을까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것에 대해 분노하셨을 것입니다. 성전을 둘러보신 주님은 동일하게 우리의 삶을 살펴보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다움의 모습이 보일 때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 근처 베다니에서 하룻밤 머물고 나오셨을 때 시장하셨습니다.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보여서 예수님은 열매를 기대하고 나무에 다가가셨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했지 정작 열매는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잎사귀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성해 보이는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중심에 전도의 열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에서 아무 열매도 얻지 못하신 예수님은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아무도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14절). 나무를 향한 주님의 저주는 나무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오래 믿어도 열매를 맺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책망입니다. 주님은 믿은 지 오래일 때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오래 믿어도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책망의 대상이 됩니다. 성도는 주님께 드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자와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도 둘러 엎으셨습니다(15절). 제물을 사고팔고, 돈을 바꾸는 행위가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었습니다. 시장 바닥 같은 성전의 배후에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성전을 이용하는 종교 기득권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욕심으로 더럽힌 성전에 멸망을 선언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편의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끊임없이 묻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본래 용도가 무엇인지를 이사야서 56:7 말씀을 인용해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므로(17절) 강도의 소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성전의 본질을 잊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여전히 욕심에 눈이 멀어서 바르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18절). 이처럼 탐욕은 사람의 눈을 가려 어둡게 합니다.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탐욕을 조심하십시오.
성전의 본질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특정한 사람의 욕심에 의해 사유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질의 회복은 담대한 마음으로 감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할 수 없지만,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