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수) 요나의 편협함과 하나님의 긍휼
요나 4:1-11
오늘의 찬송(새 290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 성내는 요나 4:1~4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 박 넝쿨 교훈 4:5~11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오늘의 말씀 요약
니느웨에 재앙이 내리지 않자, 요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며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요나가 성 밖 동쪽에 초막을 짓고 돌아가는 형편을 지켜보자, 하나님은 박 넝쿨을 통해 깨달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심판하시지 않고 아끼신 것은 그 안에 수많은 사람과 가축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성내는 요나 4:1~4
요나는 이방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니느웨 백성의 회개에 대한 요나의 반응은 미움과 분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을 잘 알고 있습니다(2절; 출 34:6~7). 그러나 하나님의 인애가 이방인에게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편협함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신앙적 지식과 인격적 수용의 괴리를 보여 줍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 이유가 없다는 자기중심적 모습을 드러냅니다(3절). 하나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정당하냐?”라고 반문하시며, 자기 성찰로 이끄십니다(4절). 우리의 분노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닌, 자신의 편협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 요나가 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나님 뜻에 어긋남에도 옳다고 여기는 나의 생각이나 편협함은 무엇인가요?
* 박 넝쿨 교훈 4:5~11
요나는 니느웨가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성읍 밖 동쪽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보다 심판하심을 바라며, 이를 구경하는 관찰자가 되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편협함을 깨우치시고자 세 가지 피조물을 사용하십니다. ‘박 넝쿨’은 요나에게 잠시 육체적 안락을 제공했으나(6절), ‘벌레’와 ‘뜨거운 동풍’은 그의 기쁨을 거두어 갔습니다(7~8절). 이 일은 하나님이 생사화복의 주관자시며, 위로도 고통도 하나님의 손길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박 넝쿨을 아낀 요나의 마음보다 영혼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훨씬 크다는 것을 깨우칩니다. 영혼 구원은 모든 일에 우선합니다. 성도는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긍휼과 사랑의 경계를 더욱 넓혀야 합니다.
* 요나서가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하나님의 긍휼을 따르기 위해 내가 더 마음을 넓혀서 대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자기중심적 편협함으로 하나님 뜻에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지치지 않는 긍휼로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저도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의 구원을 열망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하소서.
첫댓글 아멘. 요나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니느웨 성이 뒤집어지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의 생각과 편견에 갇혀 하나님의 일하심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향해 베푸는 자비하심마저, 자신의 복수심에 갇혀 불편해합니다. 하나님은 박넝쿨과 벌레,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습니다' 요나의 관심은 오직 자기 자신에 맞춰져 있습니다. 자신의 편안함에만 고정되어 있습니다. 12만 명이나 넘는 영혼이 죄악까지 빠져들어가는 영혼의 위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편하게 해주던 넝쿨 하나가 말라 죽는 것에 아쉬하고 분노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서의 마지막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요나는 박넝쿨이 죽은 것에 대해 연민의 눈물을 흘렸지만, 하나님은 피와 폭력으로 물들인 니느웨 백성일지라도, 멸망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그대로 볼수 없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연민의 눈물을 흘리십니다.
오늘 내 좁은 생각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 자신만의 편안함에만 버둥거리를 인생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해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아멘!
니느웨에 재앙이 내리지 않자 요나는 사는것 보다 죽는게 낫다며 하나님께 화늘 냅니다
하나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정당하냐 라고 반문하시며 자기 성찰로 이끄십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어떻게 되는지 보러고 성읍 밬 동쪽에 자리 잡고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편협함을 깨우치고자 세가지 피조물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박넝쿨을 에비하시고 요나를 가리게 하시고 그늘이 지게 하여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십니다
그이틀날 벌레를 예비하사 새벽에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니 시듭니다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은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시고 해가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합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네가 박넝쿨로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자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되 네가 수고도 하지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는데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방넝쿨을 아겼거든 이큰 성읍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긍휼 하심으로 니느웨의 영혼들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려고 요나를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한영혼을 통해 일하십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한사람 예수그리도만이 이땅을 구원하실수 있음을 우리는 믿어 예수님으로 부터 구원받은 성도로서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알아가는 삶이 내안에 더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요나서 4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신 것에 대하여 요나가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통해 교훈하시는 내용입니다. 이방인들 즉,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 회개하여 멸망당하지 않는 것을 보고 요나가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비유로 요나를 교훈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범죄 한 사람이거나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회개시켜 구원하시고 자 하는 하나님의 무한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님께서는 박넝클로 인해 불평하는 요나에게 요나가 직접 심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지만 자기에게 그늘을 제공하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넝쿨을 아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수많은 사람과 가축이 있는 니느웨에 대한 그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인간들이 박넝쿨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과 동시에 일반인들도 멸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 요나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뜻이 논리적으로 합당하지만 나의 감정이 앞서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하나님, 나의 기대나 한계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계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그 궁휼하신 그 마음을 나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