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여러 지인들에게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계엄령 관련 메시지였고 짧은 메시지 안에 당혹스러움과 조소가 들어 있었다.
그 중에는 지난 몇년간 이어진 군부 독재로 인해 가족이 고통 받고 있는 미얀마 출신의 지인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국내 포털에 접속해 몇 몇 뉴스를 접하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비현실적인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오늘의 이벤트는 현실 정치를 모르는 대통령이 만들어낸 해프닝으로 보기 보다는 오랜기간 누적되고 점층되어 그 무게가 작용되어 만들어낸 지층이 외부로 부터의 압력에 의해 단층이 생기면서 그 세속적이고 천박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사실을 금새 알아차릴 것이다. 단지 대통령 한 명의 문제인걸까? 나는 이번 헤프닝을 단지 국군통수권자 한 명이 만들어낸 세계적 웃음거리로 볼 게 아니라 이번 일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계기로 삼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강 하구의 끈적끈적한 퇴적층은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며 가까이는 일제 강점기, 더 나아가 그 이전에 만들어진 뿌리깊은 신분제와 기득권의 위선이 국내외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랜세월 동안 더 넓고 깊에 침전되어 우리나라 정신의 기초가 되는 세속적 토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교육계, 종교계 또한 전혀 자유롭지 못하며 탈자본주의를 외쳤던 자칭 진보적 지식인들 또한 그 세속적 토대로 부터 자유롭지 못해왔다.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여러 진지한 담론들, 그리고 외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우리 정신에 체화시키고자 노력했던 함석헌 선생과 같은 종교계의 깨어있는 지식인들도 결국 그 세속적 토대 속에서 부정되고 억압되고 또는 타협되어 21세기의 한국은 지적 가벼움만이 남은 세계 최대의 세속 사회가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의 민낮을 타인들이 모르게 Vanity Table에서 급하게 숨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티는 끝났고 즐겁게 퍼마신 술은 숙취의 고통과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 될지 모르는 엉망진창의 파티장만을 남겨두었다. 지난 수십년간 단 한번도 제대로 치우지 않았던 그 엉망진창의 파티장을 지금 갑자기 누가 치울 수 있겠는가? 미국은 유럽은 중국은 괜찮은가? 어쩌면 그냥 부숴버리는 편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전문 용어로는 Reset이라고 한다.
작금의 세계 정세는 과거처럼 부채로 부채를 덮고, 화려함으로 내부의 가벼움을 숨기며 뻔뻔하게 젠체하기에는 너무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흐르고있다. 경제적 문제는 항상 정치, 사회 문제를 발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Triger가 극심한 경제 위기를 일으킨다. 특히 지난 40년간 달러를 중심으로 한 일극체제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부채해소의 선순환의 기능을 스스로 퇴화시켜 버렸다. 무엇보다 중국의 등장으로 성장과정에서 불가피한 인플레이션이라는 작은 불꽃은 완전히 통제될 수 있었고 그 와중에 일어나는 부채로 인한 작은 경제적 사이클의 진폭을 의도적으로 좁히고 그 과정에서 상승의 모멘텀을 경험한 금융세력들은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지지않는 달러의 세계를 만들었고 전세계 경제가 하강을 해도 오직 미국은 상승한다는 일종의 경제적 신화를 만들어 내었다.
사실 미국은 자국의 부채를 갚을 길이 없으며, 연준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미채권을 매입할 거대 세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버블을 언급하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고 MMT신화가 버블을 정당화하는 시대에 17세기 튤립 버블을 비웃으면서 정작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21세기 AI, 가상화폐 거품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거품에 대한 정의를 바꾸었다는 편이 더 쉬운 접근일지도 모르겠다. 케네스 로고프가 ‘이번엔 다르다’ 를 통해 지적한 것처럼 이번에는 정말 다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욕망이 ‘이번에는 다르다’는 믿음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경제적 욕망 이면에 숨어있는 사고의 단일화, 욕망의 통일이 돈에 대한 종교적 갈망을 광적인 믿음으로 승화시켜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에 대한 광적 믿음이 가장 지배적인 국가를 뽑으라면 아마 우리나라가 아닐까?
문제는 이러한 천박한 욕망이 성공이라는 허울로 숨겨왔던 시기가 점차 저물고 있다는 점이다. 풍요의 시대에는 나무에도 돈이 달리고 길거리 개도 달러를 물고 다닐 수 있었지만 청산의 시대에는 누구나 냉혹한 성적표를 받기 마련이다. 아마 많은 해외 투자자들의 눈은 이미 일본과 대한민국을 향해 있었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BOJ의 금리인상, 엔캐리 청산이 최근 중요이슈였지만 천문학적 가계부채를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성장 동력을 빠르게 잃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우려도 결코 적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게엄령을 통해 꼭꼭 숨겨야 될 자신의 상황을 국내외에 대놓고 ‘우리나라 망하기 직전입니다!’란 진실 고백을 해버린 대통령을 과연 누가 옹호할 수 있을까?
옛말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달러 패권을 통해 세계화를 독주하며 패권국가로서의 경제적 과실을 독점해 온 미국이 이제 자국 우선주의와 관세 정책을 들이밀며 세계화를 비난하고 이민자들을 비난하고 있는 자기 부정의 시대, 탈달러에 대한 반발을하며 다극화를 이끌고 있는 반미 국가들의 정당성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고 지난 4년간 경제적, 외교적 실기를 차곡차곡 쌓아온 현정부가 들이밀 수 있었던 카드가 게엄령이였다는 것은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실 누구나 외통수에 몰리기 전에 많은 기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은 나의 실수도 선의로 보아주고 나의 궁색한 변명도 진실로 받아들여준다. 하지만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릴 때까지도 스스로의 문제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외통수에 몰리게 되고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나서지 않게된다.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라 하더라도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자신의 속이고 타인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나르시스트적 성향에 인격적 비성숙함까지 합치면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계속 외통수로 몰려가는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가족 중에 있거나 혹은 한 조직의 리더라면 절연과 탈퇴이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런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면 혹은 그런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조정당하고 있다면 그 나라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얼마전에 만난 한 지식인은 한국 기득권이 이재명을 두려워 한다는 말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자세한 설명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 분의 말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득권이라는 것은 내가 받을 수 있는, 아니 받아야 마땅한 것 이상의 권력이고 그러한 권력은 나르시스트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의하는 방법이고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간단히 말해 내면이 비어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권력은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그럼 사람에게는 정당한 비판이나 진심어린 조언도 자신에 대한 비난이며 자신을 공격하는 적대 세력이 되어 버린다. 결국에 자기 주위에 남는 건 그 권력의 떡고물을 원하는 자신과 비슷한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의 사람들 뿐이다. 자고로 나르시시스트들은 주위의 다른 나르시시스트들의 응원을 통해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본래 음흉하기 짝이없어 자신의 주인이 피를 흘리면 가장 먼저 잔인하게 물어뜯는 족속들이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은 가만히 두면 결국 지들끼리 물어뜯다 망하고만다. 지금 용화대의 모습이다.
철학은 변치 않는 본질적 담론을 추구하고 역사는 거대한 정치, 경제적 쓰나미 속에서 일어나는 다이나믹한 변화를 포착,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거대한 프로젝트는 20세기 후반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적 접근법과 무엇보다 차이와 반복을 중심으로 고정된 의미나 본질을 넘어서, 변화와 창조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들뢰즈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적 변화를 단기적인 사건보다는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이해한 페르낭 브로델의 시각은 과거 거대한 우주적 담론을 제시한 화이트 헤드나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지향성을 갖고 있는 역사적 힘을 강조한 헤겔의 거대한 담론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거기에 걸출한 지리학자들의 시간과 그에 따른 물리적 힘이 점층되어 만들어지는 지리적 조건 속에서 물적 제한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의 한계에 대한 설명은 거대 담론에 새로운 시각을 더해주는 동시에 우리를 속시원히 설명할 수 없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으며 또한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공허함의 자리에 세우곤 한다.
사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이 항상성이 유지되는 세상은 아주 짧은 시간, 우리가 아는 우주라는 형태도 감깐 존재하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일반인들은 뉴턴의 물리학과 양자역학간의 타협 불가능한 그리고 설명 불가능한 현실에 당황하곤 하지만 우주적 시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물리학자들의 관점에서 지금의 세상은 거대한 물질 우주 속의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생명존재의 신비처럼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 일시적 정지상태라는 극히 예외적이고 특별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믿음과 학문은 사실 이 극히 예외적이고 특별한 상태를 일반적인 상태로 오해하는데서 시작하였는데 특히 그 오해가 극한에 달했던 17세기 유럽이 스콜라 철학에서 발원된 중세적 절망감의 반발로 근대과학을 잉태하며 귀납법적 접근을 통한 실증의 시대, 그리고 플라톤의 이상주의라는 근대의 씨앗을 구조주의라는 열매로 실현시켰으나 멈춤을 몰랐던 그리고 종교적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이성의 기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근대의 끝자락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특성을 가늠하고 어렴풋이나마 이해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지적 혁명을 가져오게 되었다. 하지만안타깝게도 인간의 수명은 불안정한 거시적 우주와 우주적 시간을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길지 못하다. 사실 겨우 수만년간 지속되어 온 일시적 정지 상태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압력에 의한 은밀한 변화조차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류의 역사는 짧았으며 감각의 범주에 의해 제약되는 이성의 기능을 맹신한 나머지 세상을 자신의 감각에 기반해 범주화하는 우를 범해왔다. 오직 소수의 천재적 철학자들과 물리학자들만이 상상력을 통해 그 사실을 감지해내고 이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대중에게 그런 철학적 엄밀함과 과학적 냉철함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인류는 문화와 돈에 있어서 의미 있는 변화를 전혀 이끌어내지 못하고 정신이 부패하고 병들어 가는 것을 오히려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촉진시켜 왔던 것이다.
내가 뜬금없이 계엄령을 시작으로 이런 개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겨우 지난 100년간 사회 전체를 변혁시킬만한 큰 변화가 없었다는 관점에서 작금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면 인간중심적인 생각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되고 계엄령까지 이 모든 일이 우연의 일치일까?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될 것이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좀 더 나아가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 누가 조만간 세계화의 기조가 무너지고 다극화의 혼란 속으로 전세계가 돌입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좀 미시적인 얘기지만 나는 트럼프가 옐런 할망구가 싸지른 똥을 치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의 임기내에 일론이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낸다면 내 생각을 바꿀 용의가 충분히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전 세계는 미증유의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고 그 미증유의 세계에서 우리가 겪게될 내홍은 우리의 상상의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어쩌면 앞으로 20-30년간은 우리가 그간 찰떡같이 믿고 있었던 모든 사회, 정치, 경제 더 나아가 국가에 대한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모든 관계가 재정의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야되는 이유를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 같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닏ㄱㆍ^^
무척 심도있는글. 아침부터 (이른새벽) 한없이 머리가 복잡합니다
외국에서 한국이 엄청나게 조롱받고 있다고 하네요
한나라의 대통령이 대화없이 무대포로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탈출구를 게엄으로 해결하겠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야당도 잘한건 없지만 남 탓하기전에 치매 운운하는 바이던과 뭐가 다를까요
다 자업자득 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 글입니다. 윤석열이 계엄 선포한 거에 대해서는 유감이지만 야당도 정말 잘한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대 야당이란 명목으로 모든 걸 자기네 뜻대로 하겠다는 야심이 오늘의 결과를
보게 된 것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정치란 게 국민의 삶을 개선 시킬 명목이 앞서야 하는데
자기네 당을 위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약점을 헐 뜯고 ...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ㅠ
힘들게 사는 서민들만 복장 터지는 그런 나날들이 화나게 하네요...
야당이 못한게 뭔가요.? 여당은 뭘 잘 했구요.?
@madosa(천안) 님은 야당이 다 잘했다고 보시나요? 전 여당도 야당도 다 싫습니다.
밥그릇 싸움 하는 거 정말 보기 안 좋거든요.. 그래서 뉴스 보는 것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일괄처리 하는 모습이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좋다고 하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일방
적인 모습이 좀 보기가 안타까웠습니다. 서로 합심을 해도 모자랄
지금의 모든 상황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권력 다툼만 앞세우는 야당,
여당~~ 국가라는 게 사라진 거 같은 느낌... 저만의 생각입니다.
정말 이제 각자도생의 길밖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깬 분이시군요.
좋은 말씀이십니다. 생각해보면 대통령으로 윤석열을 선택한 것도 국민의 뜻이고, 거대야당을 만들어 놓은 것도 국민의 뜻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견재하고 균형을 맞추라는 국민의 뜻이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권한을 부여받은 두 세력이 서로를 두려워하고 존중하면서 정치라는 대업을 이끌어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어느 한 쪽의 다른 쪽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들면, 다른 쪽도 살려고 목덜미를 물어 뜯게 되니 서로 할퀴고 물다가 오늘날 이 비참한 사태가 벌어진 거죠.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은 다 똑같은 모습이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너무도 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게엄령 선포는 유감 수준이 아니라 경악의 수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는분이 참 고맙습니다.전 한숨도 못자고 비상상황을 준비했는데 참으로 다행입니다.
장고도 안한 악수! 자충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쓰셔도 될 필력이십니다.^^
윤대통령은 무력을 사용할 생각은 에초에 없었던거 같습니다.
저들이 얼마나 무자비 해 질 수 있는 자들인지 간과한거 같습니다.
멋도 모르는 국민들은 또 불나방 처럼 달려들겠지요.
지 살을 갉아 먹는지도 모르고 함께 미쳐 날뛸거 같네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질지 걱정이 앞습니다.
윤통을 옹호하는듯한 댓글들을 보니 한심하네요
정치란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윤석열이 국회를 존중하기라도 했나요???
준비안된 자들이 정치를 하니 이따위 짓거리 하지요
검사들이 피의자들 조지는 버릇만 남아서 국민들을 피의자로 보고 조지는행동만 했으니 그따위 짓 했다고 생각합니다
윤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재벌이거나 서울대 동문인가 봅니다.
아니면 강남구 건물주들이신가?
보통 찌질한 정신적 좀비들입니다. 기득권에게서 피해받은
무지한 백성들이죠
야당이 뭘잘한거 떠나서..위헌을 얘기하는겁니다..
본질을 흐리지마세요...여..야당 대표입법부수장 까지 체포하려고 군 을 동원 하려는게 내란충족입니다
여야를 떠나 내란죄에 대한 한부분만 얘기하는겁니다
지금도 윤통을 옹호하는 당신들은 무엇을 방향성을 가지고 지지하는건가요? 단지 이데올로기적 사고인가요? 그럼 당신들도 노예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