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니발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오네요. 개인적으로도 정말 관심있는 인물이라... 특히 밑에서 가이사 님이 한니발에 대한 글을 올리신 것에 필을 받아서, 저도 한니발에 대한 글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바로 "한니발, 알프스에서 거대한 바위를 녹이다!" 입니다.
한니발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명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전술은 너무나 뛰어나서 로마인들에게 역사상 유래가 없는 피해를 주었습니다.(로마 멸망의 계기가 된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이 입은 손실도, 칸나에 회전에서 로마군 주력이 모조리 몰살당한 것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피해였죠. 말 그대로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은 사용가능한 병력을 모조리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한니발과 그의 군대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바로 험난한 알프스를 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시는 길이 전혀 없어서 그 험난한 산맥을 그냥 넘어가야 했습니다. 거기다 곳곳에 원주민들이 숨어서 습격을 해오고...
그로부터 거의 2000년 후에 나폴레옹이 마찬가지로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습니다. 이때는 한니발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조건이 좋았습니다. 그럭저럭 길도 있고 야만족의 습격도 없고... 그래도 역시 나폴레옹의 군대는 한니발 때와 마찬가지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갑니다.
기원전 221년, 한니발은 카르타고령 스페인의 지배자가 됩니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로마를 공격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후 기원전 218년, 한니발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출발합니다. 그리하여 알프스 산맥에 당도했을 때, 한니발은 약 5만 정도의 기병과 보병, 37마리의 코끼리를 데리고 험난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북아프리카 출신자들이었기에, 눈덮힌 높은 산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니발은 그의 군대에게 산으로 올라갈 것을 명령합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알프스의 원주민 부족들은 걸핏하면 군대를 기습했고, 행렬에서 낙오된 병사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눈보라와 추위가 이들을 괴롭혔습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동안 이들이 쉴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어서, 눈이 쌓인 땅에서 몸을 망토에 둘둘 싸서, 추위에 떨면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한니발의 군대는 9일동안 온갖 고생을 한 끝에 겨우 겨우 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완전히 지쳐 있고,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이런 병사들을 본 한니발은,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는 병사들을 집합시킵니다. 산 정상에서는 아래쪽의 기름진 평원, 곡식이 잘 익어가는 토지가 잘 보였습니다. 한니발은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이탈리아의 평원을 손으로 가리키며 연설합니다.
"지금까지 산을 올라오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내려가는 일은 쉽다. 저기에 바로 이탈리아가 있다. 그 너머에는 적 로마가 있다. 한두번만 싸워 이기면 모두 너희들의 것이 된다!" 그 연설을 듣고 다시 부하들은 기운을 냈습니다.
하지만, 알프스 산을 내려가는 일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걸핏하면 눈과 얼음으로 막혀 있었고, 아예 길이 없는 곳도 많았습니다. 병사들이 조심 조심 아래로 내려가다가 바닥에 있는 미끄러운 얼음을 밟고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일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아래로 떨어지는 병사의 비참한 외마디 비명을 들을 때마다 다른 병사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니발의 군대는 위기에 부딧치게 됩니다. 계속 내려가보니, 사방이 절벽으로 막힌 좁은 길목에 아주 거대한 바위가 떨어져서 막힌 곳에 도달하게 됩니다. 위 아래를 둘러보아도 지나갈 곳이라곤 없었고, 주위는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돌아서 가려고 해도 불가능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바위를 처리해야만 그곳을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병사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저물어서, 한니발은 군대에게 야영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다음날, 한니발은 주위에서 나무를 구해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많이 나무를 구해서 바위 밑에 깔아두었습니다. 그 후 바람이 세게 불 때를 기다려 나무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은 금새 크게 타오르더니 바위를 감쌌습니다. 바위는 아주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그 순간 한니발은 "식초"를 바위에 뿌립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위는 "녹아서 부서져 버렸고", 이를 본 병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함성을 지르며 철제 도구로 바위를 완전히 부수고 길을 여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리하여 간신히 통로를 확보했지만, 그들은 계속 험난한 여정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식량도 부족하고, 말에게 먹일 사료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니발은 더욱 엄하게 이들을 지휘해서 결국 15일째 되는 날, 간신히 알프스 산맥을 빠져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한니발 군대가 입은 손실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병사의 절반 가까이가 산맥 속에서 죽어갔으며, 식량과 군수품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병사들도 모두 완전히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그들 앞에 있는 것은 강력한 군대를 가진 로마.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니발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안전한 갈리아 족의 지역으로 군대를 이동시킨 후 병사들에게 얼마동안 휴식시간을 주었고, 그 후 로마를 향한 진격을 계속합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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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의 바위 녹이기는 한니발 전쟁으로부터 수백년 후에 리비우스가 자신의 책 "로마사"에 최초로 기록했고, 그 이후 계속 전래되어 내려온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한니발이 정말 식초를 사용해서 거대한 바위를 녹였느냐 하는 점입니다. 정말 식초로 바위를 녹일 수 있을까요? 어떤 과학자는 1.한니발이 많은 식초를 가지고 있을 것 2.그 바위가 석회암 덩어리거나 대리석 덩어리였을 경우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지친 병사들의 기운을 나게 하기 위해 식초를 탄 물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식초는 아주 신 맛이 나기에, 식초를 탄 물을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 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카이사르의 경우에도 갈리아 전쟁 당시, 항상 많은 식초를 가지고 다니면서, 병사들이 지쳤을 때 식초를 탄 물을 주었다는 내용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한니발은 알프스 산맥을 넘으려 했기에, 당연히 산을 오르내리느라 지친 병사들의 기운을 나게 하기 위해 식초를 많이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왜 술은 안되냐구요? 술먹고 헤롱거리다 산 아래로 떨어지면 어쩝니까)
그리고 식초같은 초산이 석회암이나 대리석에 떨어지면, 초산칼슘이라는 염을 만들게 되어 돌을 녹이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 그 바위가 석회암 덩어리였다면, 바위를 녹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니발이 만난 바위가 석회암 덩어리였다는 증거는 전혀 없고, 더욱이 바위를 녹일려면 엄청난 양의 식초나 초산이 필요한데 한니발이 정말 그렇게 많은 양의 식초를 가졌을지는 의문입니다.
더더욱 의심스러운 점은, 한니발의 알프스 원정을 최초로 기록한 역사가가 폴리비우스인데, 이 사람은 자신의 저서에서 여기에 대해 단 한줄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폴리비우스는 한니발 전쟁이 끝난 뒤 몇십년 후에 태어난 인물로서, 당시 아직 생존해 있던 한니발 전쟁의 생존자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만약 폴리비우스가 이를 알고 있다면 분명히 기록했을 텐데.......
그 후 200년 후에 리비우스의 책에서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정작 한니발 전쟁의 생존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폴리비우스의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혀 안나오고, 200년 후에 쓰여진 리비우스의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죠.
그리고, 바위를 쪼개는 법은 식초 뿌리기 이외에도 존재합니다. 바로 바위를 뜨겁게 달군 후에 그 위에 차가운 물을 뿌리는 거죠. 그러면 바위는 금이 가게 되고, 거기에 연장을 집어넣어서 부수면 되는 것이죠. 당시 한니발 군대 주위에는 눈이나 얼음이 많았기에 물을 구하는 건 쉬웠습니다. 그렇다면 뭣하러 물로 하면 될 것을 식초로 했을까요?
더더욱 이해가 안가는 점은 그 이후 200년 동안 여기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한니발의 병사들이, 한니발 사령관이 자신들이 마시던 식초를 사용해서 바위를 녹이는 충격적인 장면을 봤다면, 알프스를 내려온 후에 여기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을 겁니다. 그럼 그들이 주둔해 있는 지역의 사람들도 자연히 여기에 대해 듣게 되어, 결국 그 소문이 쫙 퍼질 겁니다. 그후에 그 이야기는 계속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후세에까지 전해졌을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폴리비우스가 그걸 못들을 리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도 폴리비우스의 책에 전혀 그런 기록이 없는 건....... 그 후 몇백년 후에 리비우스가 느닷없이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그래서 시클리프라는 과학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립니다.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쇠로 만든 쐐기"를 "아쿠토(acuto)"라고 불렀답니다. 이건 이탈리아 어의 "식초" 라는 뜻의 아케토(aceto)와 아주 비슷합니다. 그래서......
한니발의 병사들은, 바위를 쇠로 만든 쐐기를 박아서 부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몇백년동안 이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쇠로 만든 쐐기(acuto) 라는 말이 어느 사이에 식초(aceto)로 변해 버려서 "한니발은 쇠로 만든 쐐기로 바위를 부수었다"라는 말이 "한니발은 식초로 바위를 부수었다"로 와전되어 버렸다는 거죠. 그 후 리비우스가 당시에 역사서를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던 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이거, 재밋겠다" 싶어서 진위 여부도 확인해 보지 않고 그냥 "식초로 바위를 녹였다"고 쓴게 아니냐는.........
이 글을 올린 건, 당시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느냐 하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말 그대로 한니발과 그의 군대는 온갖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길을 막아선 바위를 (식초를 사용하던, 뜨겁게 달구고 물을 끼얹어서 부수건, 철제 연장으로 부수건 간에) 부수어야 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고생 끝에 겨우 겨우 알프스를 빠져나왔지만, 군대는 완전히 지쳐있고, 병력손실도 말 그대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 있는 건 쌩쌩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강대국 로마......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한니발의 심정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싸워나간 걸 보면.......
P.S. 보면 볼수록 한니발은 카리스마 덩어리 같습니다. 특히 그가 부하들에게 하는 연설을 보면....... 알프스 정상에서 부하들에게 하는 연설도,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첫번째 전투를 하기 전에 부하들을 삥 둘러놓고 야만인 둘을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한 후에 "너희들이 지금 처한 상황이 바로 저거다! 이기지 못하면 죽음 뿐이다!" 라고 하는 거나..... 분명히 잔혹한 면도 있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명장이었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첫댓글 그런데 한니발 바위녹이기는 살수대첩의 수공설이나 명량대첩의 철쇄설같이 후세의 창작으로 알고있습니다. 물론 한니발이 알프스 넘으면서 엄청나게 고생한건 맞지요. 에스파냐를 떠나올 때 5만명이 3만명으로 감소;;;
재미있네요. "비슷한 말"로 인한 와전과 이로 인한 역사의 왜곡은 의외로 경우의 수가 많습니다. 이 경우도 거기 들어가네요.
으음 [에피소드 과학사]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과 똑같군요. 총 4권짜리 책인데= 상당히 볼만하죠. 물론 그랬더라~ 하는식의 전승들이 많지만 =ㅅ=
위에서 밝혔듯이, 이 글은 "과학사의 뒷얘기"라는 책 내용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 겁니다. 아마 무장공비님이 본 책과 같은 책이었을 겁니다. 번역 과정에서 제목이 바뀐 것 같네요.
그거 제가 푸는 언어 영역 문제집에서 나오는 건데...거기서도 여러 점을 지적하더군요. 이태리어 아세토가 쐐기를 뜻하는 데 식초라는 단어도 아세토와 비슷한 단어라고 합니다. 때문에 누군가가 쐐기를 식초로 잘못 알아 듣고 말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