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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 도너(1900년생).
한국명은 이부란.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으로 사업가의 딸.
자동차 경주 선수와 결혼했으나 3년만에 이혼함 (이승만도 재혼)
레스토랑에서 이승만과 우연히 합석한 것을 계기로 연애를 시작했고,
무려 25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
외국인이라 개방적일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승만은 왕처럼 군림하고 도너는 그에게 순종했다고 함.
한국어를 잘 못해 한국에서도 영어로만 소통했으며,
때문에 이기붕의 배우자 박마리아와 유착관계를 형성,
이기붕이 이승만의 최측근이 되는데 일조함.
당시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착각한 국민들은 '호주댁'이라 불렀음.
전쟁 중 헌신적인 내조를 보였으나 과잉내조로 이승만의 식견을 좁혔다는 평도 있음.
말년에는 이승만이 너무 늙어서 대통령 업무를 제대로 못했기에 도너가 대행함.
이승만 정부가 종반부에 박살낸 책임이 그녀에게도 막중하다는 학견이 존재함.
4대 : 공덕귀 (윤보선의 배우자
공덕귀(1911년생).
경상도 출신이며 하급 군인의 딸.
동래일신여학교와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졸업.
신학자를 꿈꾸던 매우 진보적인 여성이었음.
창씨 개명을 거부해 투옥 및 고문을 당하기도 했음.
이는 항일 운동가였던 배우자 윤보선 역시 마찬가지였음.
미국 유학을 꿈꾸며 해평 윤씨 가문 매파를 물리쳤으나,
후원자였던 목사가 윤보선과 결혼하라며 유학 자금을 들고 잠적해 결국 윤보선과 결혼.
여담으로 공덕귀는 초혼, 윤보선은 전부인과 사별해 재혼이었음 (나이차는 15살)
남편과의 사이는 괜찮았으나 당시 윤씨 가문이 명문가이자 재력가 가문인 탓에 자유분방한 성격에 안 맞는 답답한 생활을 했다고 함.
윤보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함.
전 영부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가장 위험한 시위만 골라다녔다고 함.
그러나 윤보선이 말년에 변절했기 때문인지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탄식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함.
5대 ~ 9대 : 육영수 (박정희의 배우자)
육영수(1925년생).
충청도 출신이며 갑부집 여식이었음.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했고,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 진학은 실패함.
옥천여자전수학교에서 교사로 약 1년간 재직함 (과목은 가사)
이종사촌의 소개로 26살 당시 소령이었던 박정희와 만나게 됨.
박정희는 당시 정략혼으로 결혼했으나 성격차로 이혼한 상태였음.
육영수는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정희와 결혼에 성공.
군인 월급이 박봉인 탓에 구멍가게를 열어 생계를 꾸렸음.
박정희는 집권기에 여자관계가 문란하기로 유명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육영수에게 많이 의지했다는 게 중론인듯.
영부인으로서 모범적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아마 이중 가장 유명한 영부인.
극단적인 남편을 잘 다독여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별명도 있었음.
당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에 앞장섰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은 박근혜는 싫어도 육영수 때문에 투표했다고 함.
당시 친정에서 군인인 박정희를 사위로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함.
이는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나서도 마찬가지인데,
박정희와 결혼하면 육영수가 죽는다는 예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를 노린 총에 맞아 요절.
10대 : 홍기 (최규하의 배우자)
홍기 (1916년생).
충청북도 출신.
할아버지가 한학자셨음.
정규교육과정은 받지 않은채 한문을 배우며 교양을 쌓음.
할아버지의 중매로 성균관 박사의 손자인 최규하와 결혼
그 시절 평범한 부부였으나 특이사항이 있다면 최규하가 연하였음.
비록 학교는 다니지 못했으나 머리가 상당히 비상했던 걸로 추정됨.
최규하가 대사로 근무할 때 영어와 일본어를 익혀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함.
최규하의 재임 기간이 워낙 짧은데다 홍기의 소박한 성격 탓에 존재감이 적음.
실제로 양로원과 보육원 지원에만 앞장섰고 대외활동이 거의 없었음.
선비 같은 최규하에 걸맞는 소탈한 성품으로 국민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남김.
최규하 당선 후 기자들이 홍기에게 영부인 활동 구상 계획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못했고, 결국 관계자가
"최근 김장을 담궈 청와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라고 화제를 돌리니,
홍기 여사가 아주 자랑스럽게
"김장을 30포기나 직접 담궜다"
라고 대답.
여가시간에 뭐하냐는 질문에는 "TV나 보지요"라고 대답함.
11대 ~ 12대 : 이순자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1939년생).
만주 출신으로 아버지가 전두환의 전속 부관.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대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나 전두환과 결혼 후 중퇴함.
결혼 후 "연희동 빨간바지"라는 이름으로 땅투기꾼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림.
역대 가장 활발히 활동한 영부인이자 가장 인기 없는 영부인.
남편 못지 않은 비자금과 비리로 악명을 떨침.
당시 미디어에서 "순자"라는 이름의 배역은 비천한 역할을 맡지 못했고,
모 코미디언은 이순자처럼 주걱턱이라는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함.
이 덕분인지 뭔지 이순자 여사의 별명은 "주걱턱 여사"였다.
13대 : 김옥숙 (노태우의 아내)
김옥숙(1935년생).
경상북도 출신.
교사 집안의 딸, 정치인 김복동의 여동생.
경북여고 졸업 - 경북대학교 가정교육과 중퇴.
배우자인 노태우 자체가 워낙 존재감이 흐릿한 인물인데다
전임자인 이순자와 달리 '그림자 내조'를 수행해 정보가 별로 없음.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복지기관 방문 등의 일정도 비공개였음.
이순자보다 4살 위였으나 전두환 집권기에는 형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모셨음.
그러나 노태우 당선 후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돌변,
"우리는 국민들이 직접투표로 뽑아준 거라 체육관 대통령과는 달라요."
라고 이순자 눈앞에서 말하며 그녀를 분노하게 함.
14대 : 손명순 (김영삼의 아내)
손명순(1929년생).
경상남도 김해 출신.
아버지는 마산의 지주.
노무현-귄양숙 부부와 같은 동네, 같은 국민학교 출신임.
마산여중-마산여고-이대 약학과를 졸업함
김영삼과는 동갑내기 부부로 이대 재학 당시 맞선을 통해 만남.
김영삼은 당시 때가 아니라며 결혼을 반대했으나 집안의 독촉으로 계속 맞선을 봤는데,
손명순 여사를 만난 후 남은 맞선 일정을 취소하고 한달 만에 결혼에 골인.
당시 이대는 기혼자를 퇴학 조치 시켰는데, 주위의 묵인과 배려로 무사히 졸업함.
졸업식 때 김영삼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자 후배들이 와서 말렸다고.
불 같은 성격의 김영삼과 달리 나긋하고 상냥한 성격이었다고 함.
사석에서도 김영삼을 "총재님", "대통령님"이라고 존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반면 김영삼은 김명순 여사를 "맹순이"라고 애칭으로 불렀고 기자들 앞에서 뽀뽀도 함.
김영삼의 민주화 운동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며 외신기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
역대 가장 조용했던 영부인 중 하나로 장관 부인들과 가지는 의례적 모임도 안 했음.
15대 : 이희호 (김대중의 아내)
이희호(1922년생).
서울 출신이며 의사의 딸로 태어남.
이화고등보통학교-이화전문학교-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출신.
스칼렛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
당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초엘리트 여성운동가였음.
김대중과 결혼할 당시 여성계 선배들이 아깝다며 통탄했다고.
김대중과 연애하기 전 계훈제라는 사회운동가와 결혼할 생각이었는데,
그의 잦은 옥살이를 뒷바라지하는 것에 지쳐 미국 유학을 떠났고,
계훈제 투옥 도중 김대중과 결혼해 죄책감이 심했다고 함.
김대중은 부인과 사별해 재혼이며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보다 2살 연상임.
당시 김대중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잘생겼잖아요"라고 대답.
당시 김대중에게 먼저 프로포즈한 일화가 유명한데,
이희호 曰 : "내가 좋아요, 싫어요?"
김대중 曰 : "난 홀애비에 애도 있는데..."
이희호 曰 :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고 내가 좋은지 싫은지만 말해요."
김대중 曰 : "좋아요."
이희호 曰 : "그럼 결혼합시다."
김대중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며 이희호 여사도 여성운동도 접어야 했음.
대신 김대중의 투옥 생활을 뒷바라지하며 민주화투쟁의 동지로 일생을 보냄.
좋은 아내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이자 비판자였다고 전해짐.
이희호 덕분에 시대상 소외되기 쉬운 여성문제가 정책상 공약에 들어갔고,
김대중이 정권을 잡은 후엔 여성부가 출범하게 됨.
17대 : 권양숙 (노무현의 아내)
권양숙(1948년생).
경상남도 출신.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 체포됨.
노무현의 국민학교 동창이며 계성여상을 다니다가 중퇴.
노무현과는 국민학교 동창으로 소꿉친구 부부.
노무현이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함.
노무현은 장인의 좌익 활동 경력 때문에 정치적 공격을 받았는데,
후보 연설 도중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라고 역설했고,
그 모습을 보며 권양숙 여사가 눈물을 흘렸던 일화가 유명함.
17대 : 김윤옥 (이명박의 아내)
김윤옥 (1947년생).
경상남도 출생이나 대구에서 성장.
대구 여고-이화여대 보건학과를 졸업함.
이대 졸업 후 오빠의 소개로 이명박을 만나 결혼.
이명박과 결혼할 때 친구들이 "왜 저렇게 못생긴 남자랑 결혼하냐'고 했다고.
결혼기념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이명박 본인 생일에 결혼함.
영부인 시절 '한식 세계화'를 추진했으나 대실패.
이명박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해 수사 받으며
역대 영부인 중 최초로 수사 대상이 되는 오명을 안음.
또한 이명박이 광우병 파동으로 크게 비판 받던 시절,
발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우고 입국한 사실이 알려져 한때 "발가락 다이아'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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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일화 잘
보았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재미 있어요,ㅎㅎ
"흥미를 돋는 역대 한국 영부인들의 삶과 러브스토리"
처음 으로 이런 글 접해 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