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3 / 자기 땅에 오신 예수님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세상에는 빛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도 빛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증언하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빛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회개하자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 빛이 아니라 달빛이나 등불이었습니다.
주의 종은 참 빛이 아닙니다. 주의 종이 참 빛이라고 하면 그는 이단입니다.
마호멧도 부처도 공자도 등불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인생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습니다.. 마호멧은 중동의 질서를 주었고, 부처는 집착에서 자유하게 하였고, 공자는 인간관계를 정립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같이 죽었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아무도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돈도 빛일 수 있습니다. 돈이 주는 힘과 기쁨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돈이 편리를 주지 평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과 의학도 빛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편리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과 같은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정서의 순화를 주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만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합니다.
오직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만이 생명의 참 빛입니다. 예수님만이 죄 사함을 주시고 영원한 참 생명을 주십니다.
세상의 빛은 태양이 오면 촛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참 빛이 오시면 이런 빛은 별것이 아닙니다. 돈도, 성인들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참 빛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어둠을 몰아내고 영원한 기쁨을 주시고 장차 완전한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11~13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고 유대 땅에 계셨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온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멀리 페르시아에서 동방박사만이 별을 보고 예수님이 온 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나 로마 백부장과 같은 몇몇 이방인만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근교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갈릴리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여러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체로 예수님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먼저, 무리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바라는 그리스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배타적이고 자기들만의 그리스도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고 이스라엘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위하는 그리스도를 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 잘 사는 나라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세계 모든 사람을 잘 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지 않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다음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사람들의 영광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인기를 얻자,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기하여 예수님을 로마인에게 넘겨주어 십자가 형벌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시대 군중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2제자도 영접하였습니다.
형제들도 영접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도 영접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주인 된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세상의 꿈을 다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고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는 다시 이스라엘의 독립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은 세상의 소망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비로소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인간적인 방법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첫째,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자녀가 자연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하게 모태신앙은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영향을 주지만 자녀는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둘째, 육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뻐도, 판검사가 되어도, 돈을 벌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남편의 뜻으로 아내가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자의 명령으로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라고 해서 그 나라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회사의 시장이나 군대의 사단장이나 가정의 부모의 권위로 믿으라고 해서 그 구성원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죄 사함의 확신을 주시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도우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립니다.
그때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손님을 영접하려면 방을 정리하고 청소합니다. 방 하나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빈방을 예수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중심에 있는 가장 좋은 방을 비우고 예수님이 그곳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개가 사람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입니다.
개가 사람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사람의 생명을 갖게 됩니다. 사람처럼 직립보행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말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는 과거 죄의 종이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죄의 소원을 따라서 행하는 자였습니다. 음란과 교만과 거짓의 종이었습니다.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인과 응보적인 생각에 주님을 섬기면서도 항상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을 따라서 살게 됩니다. 이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 이제는 주님을 섬기고 땀흘려 일하고 직장 일을 해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