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송아지가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어요 엄마~아 엄마~아 엉덩이가 뜨거워 <외국곡/작사 미상> ※판본에 따라 '큰 솥 위에 앉아'로 된 경우도 많음. ※부뚜막: 아궁이 위에 솥이 걸리는 언저리.
Ⅰ.서론 어린 송아지와 부뚜막(혹은 큰 솥. 이하 부뚜막으로 통일한다.)의 연관성에 관하여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왜 어린 송아지는 부뚜막 위에 앉아 있는 것일까.
Ⅱ.본론 어린 송아지가 부뚜막에 앉아 있게 된 요인은 크게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1.외적요인
①주인필요성변화설(主人必要性變化說) 부뚜막은 무엇보다도 요리에 관련된 곳으로서, 송아지의 이러한 행동은 주인의 의지가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종전에 송아지를 사육 등의 용도로 사용하던 중 어떠한 외부환경의 변화로 인해 송아지를 식용으로 쓰게 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각에서는 송아지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과도하게 배제된 이론이라고 반박하기도 하나, 이에 대한 재반론으로 이는 오히려 송아지의 자유의지가 박탈된 상황, 즉 포박 등을 의미한다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송아지의 부모를 향한 마지막 외침은 거의 단말마의 비명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되어 작품의 비장미(悲壯美)를 높여준다. 또한 엉덩이가 뜨겁다는 표현은 구체적인 물리적 자극의 의미보다는 송아지의 내적 공포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게 부뚜막이다. (사실 나는 몰랐다.) 출처 http://kr.image.yahoo.com/hawond▲)
②모우애도설(母牛哀悼說) 역시 부뚜막과 요리와의 근본적 연관성에 기인하여 도출된 가설로서, 잡아먹힌 어미소를 그리워하며 송아지가 부뚜막에 올라앉았다는 가설이다. 이는 둔부에서 감지되는 자극보다도 송아지의 오열을 먼저 묘사했다는 것은 송아지의 울음이 단순 물리적 고통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는 주장을 통해 뒷받침된다. 이 경우 둔부의 고통에 관한 언급은 죽은 어미소가 삶기며 느꼈을 고통에 대한 어린 송아지의 심적 공유(心的共有)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왜 부우(父牛)애도설이 없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③피위난설(避危難說) 송아지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위난(危難)을 피해 부뚜막까지 왔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는 결점이 많은데, 우선 평범해서 별다른 흥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로, 둔부에 상당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위에 버티고 앉아있으려면 대체 어떤 종류의 위난이 송아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인지 상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내적 요인
①자살기도설(自殺企圖說) 송아지의 연령대에 근거한 가설로서,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의 예민한 송아지가 어떠한 심적 상처를 입고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가설이다. 이에 따르면 부뚜막에 앉은 송아지의 모습은 내적 갈등 중에 있는 심리상황을 잘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송아지의 연령대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나, 내적 요인에 대한 가설 중에서는 상당히 유력한 가설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동물도 자살기도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묻는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사진출처를 잊어버렸다!)
②고독반추설(孤獨反芻說) 송아지가 부뚜막 위에서 고독을 즐기고 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 또한 흠이 많은데, 우선 고독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장소 가운데 하필 부뚜막을 택할 것은 무엇이며, 또한 고독을 느끼는 자가 소음을 내며 울고 있다는 것은 정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송아지의 울음을 송아지가 잔잔히 내적으로 읊는 것으로 해석하고, 둔부의 고통은 촉감적지각(觸感的知覺)을 통한 실존에의 확인으로 해석하여 이 가설을 타당하게 보는 의견도 있다.
③피가학성향설(被加虐性向說) 송아지가 피가학적인 행위를 즐기는 성향을 지녔다는 가설이다. 일반적인 말로 해석하자면, 송아지는 마조히스트(Masochist, 여기서 -ist는 보통 사람에게 사용하므로 소라는 뜻의 vacca를 넣어 Masovacca라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이 라틴어 문법에 맞는지는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 가설이 타당하여 보이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송아지가 고통을 느끼면서도 딱히 내려올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하여 송아지의 행동을 피가학적 행위(被加虐的行爲)를 통한 쾌락에의 향진(向進)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가사에서 이를 증명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굳이 이런 가설을 주창하려는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길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마조히스트 송아지
Ⅲ.결론 내가 어릴적부터, 그 이전부터도 부뚜막에 올라앉은 송아지에 관한 이야기는 존재했다. 송아지도 이제 그만 내려오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더욱더 궁극적인 결론으로는, 참 무의미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거 할 시간 있으면 영단어나 하나 더 외워.
어린송아지가 부뚜막에 올라간 이유 검색하다 발견해하고 개웃겨서 퍼왔는데 이런거 안되면 알려줘 ㅠㅠ 문제시 바로 송아지 끌고 내려오는게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첫댓글 이제그만 내려오길 바란닼ㅋㅋㅋㅋㅋㅋ개웃기넼ㅋㅋㅋㅋㅋ
아 이런 사람 너무 좋음 개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성스럽게 웃긴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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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간단명료하노
헐ॱଳ͘ 나 이거 20년쯤 전에 봤던 것 같은뎈ㅋㅋㅋ
아 ㅅㅂ 나이거 초딩땐가 중딩때 본거닼ㅋㅋㅋㅋㅋ
송아지 먹을려던거 아니야?
아 근데 뭔가 맘아파.. 송아지 얼마나 뜨거웠을까ㅠ 엄마찾으면서 을마나 간절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