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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복마검법의 계승자(1)
청운이 두 사제 앞에 나서서 추료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 한 후 말했다.
'그동안 자질이 둔한 저희들이 사백의 심기를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
제 저희들이 약간의 성취를 이루었으니 다시 사백의 가르침을 바랍니다.'
추료가 세 사람의 사질을 둘러보니 얼굴에 알 듯 말듯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오냐 너희가 그처럼 원하니 오늘 공동파의 정통이 누구에게 이어질 것인지 직
접 깨닫게 해주마.'
추료가 마음을 모질게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사경을 뚫고 찾아온 사제와
사질들이었지만, 무림은 정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계였다. 게다가 지금은 사문
의 재건이라는 사명까지 안고있는 마당에 조금 냉정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한가지 조건이 있다. 나는 아직도 제자들에게 공동파의 비전절기를
전수해 주지 않고 있었다. 이 자리에 사제가 없으니 어찌 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
마는, 너희 세 사람이 나의 제자 세 명과 비무하여 승리하면 너희에게 절기를 전
수해 주마. 그러나 너희가 내 제자들을 이기지 못할 때에는 나에게 가르침 받기
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한번 해 보겠느냐?'
청운은 사백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실망하고 있었는지 오늘에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추사백은 자기와 두 명의 사제를 지도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회
의적이었던 것이다. 오늘 비무에 이기지 못하면 추사백은 자기와 사제들을 더 이
상 지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공동파에서 그들의 존재의미는 없는 것
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따라 절기를 전수 받느냐 아니면 공동
파에서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되느냐 결정날 것이다.
'저희는 비무(比武)를 하겠습니다.'
청운이 딱 부러지게 대답하자 추료가 오히려 조금 당황했다. 차라리 그냥 물러
가 주었다면 사질들을 위해서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벽
운산장의 제자들 앞에서 이처럼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으니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벽운산장의 제자들은 모두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추료와 세 명의 사형제(師兄
弟)를 바라보고 있었다. 벽운산장의 제자들도 그동안 공동파 비전의 절기를 가르
침 받기 원했다. 만약 저 세 사람에게 전수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바로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들이었다.
추료는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한숨을 내쉰 후 크게 소리쳤다.
'너희는 모두 들었느냐? 오늘 너희의 비무에 따라 진정한 공동파의 제자가 만
들어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삼십 여명의 벽운산장 제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연무장은 떠나갈 듯
진동했다.
'황이구(黃二具)와 초은산(草恩山) 그리고 마연랑(馬燕郞)은 앞으로
나서거라.'
추료의 말이 떨어지자 세 명의 벽운산장 제자들이 날렵하게 뛰어 나왔다. 본래
벽운산장의 삼대고수는 황장군이라는 황이구와 금마장 그리고 소복래였다. 그런
데 금마장과 소복래가 부상을 입고 누워 있으니 그 두 사람 대신에 초은산과 마
연랑이 지명당한 것이었다. 사실 초은산, 마연랑과 금마장, 소복래의 실력은 종
이 한 장 차이였으니 오늘 이 세 사람이 벽운산장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
었다.
추료는 자기 앞에 서게된 여섯 사람을 둘러보며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다.
'너희는 오직 복마검법 만을 이용해서 비무를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바는 싸
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얼마만큼 공동파 무공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가
리는 것이다. 특히 너희 세 사람은 일절 다른 무공으로 사형제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알겠느냐?'
추료의 마지막 당부는 벽운산장의 제자들을 향해 한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반드시 복마검법 만을 사용하여 비무를 하도록 하겠습니
다.'
추료는 그동안 벽운산장의 제자들에게 공동파의 복마검법과 자신이 무림을 떠
돌며 익힌 많은 무공초식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혹시 광료가 승복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이처럼 주의를 준 것이었다.
추료의 말을 듣는 청운과 풍운 그리고 일운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추사백은
제자들에게 사형제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
히 서있는 사람의 몸에 저절로 상처가 날리 없으니, 추사백의 이 말은 오늘의 승
부가 어찌될 것인지 짐작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공동파의 세 제자들은 벽운산장의 세 사형제들을 보며 '우리도 상처를 입히지
않겠다'고 중얼거렸다.
'너희는 스스로 비무의 상대를 정하도록 해라.'
추료가 공정을 기하기 위해 각자 상대를 정하라는 말을 하자 여섯 사람은 잠시
서로 얽혔다가 둘씩 짝을 지어 갈라섰다.
황이구와 청운, 마연랑과 풍운, 초은산과 일운이 서로를 비무의 상대로 결정했
다.
추료는 처음부터 몇승을 거둬야 이기는 것이라고도 정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비무를 하게 되면 자연히 실력의 차이가 드러나서 그런 말 자체가 필요 없을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이구와 청운이 제일먼저 나서서 추료를 향해 읍(揖)을 해 보이고 서로 마주
보았다.
황이구와 청운은 검을 들어 복마검법의 기수식을 취하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벽운산장의 제자들은 추료가 십 년 전 수계현에 정착한 뒤부터 지도했던 사람들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복마검법을 수련한 기간은 육 년 혹은 칠 년이나
되었지만, 공동파의 세 제자들은 이제 입문한지 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추료는 광료를 통해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알고 있었기에 제자들의 우승을 믿
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잠시 두 사람의 모양새를 바라보던 추료의 눈이 경악
으로 물들었다.
'저럴 리가, 검 끝이 살았다!'
공동파 제일고수 추료의 눈에 청운의 검 끝이 스스로 살아서 숨을 내뱉듯 미미
하게 꿈틀 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십 년
이상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는데, 이제 입문 삼 년의 사질이 벌써 검
과 몸을 하나로 엮는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추료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고 말았
다.
한편 황이구는 청운의 전신에서 풍겨나는 절정의 검기에 등으로 식은땀을 흘리
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찌 상처하나 입히지 말고 비무를 하라는 것인지, 사부님의
말씀을 알수가 없구나.'
황이구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순간 청운의 검이 거칠게 종횡으로 밀려들었
다. 복마검법의 일초인 검진벽해(劍進碧海)였다.
황이구는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지만, 청운은 검을 마치 팔다리
처럼 자유롭게 흔들어 대며 따라붙었다.
우당탕탕!
황이구가 뒤로 밀리다가 세워두었던 병기진열대에 부딪치며 높이 이장이나 되
는 나무진열대와 함께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황이구의 전신으로 봉과 목검, 삼
지창 등이 쏟아져 내렸다.
'이익!'
황이구가 벌떡 일어나 청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만 멈추거라.'
추료가 짧게 소리치자 달려가던 황이구는 그대로 멈춘 뒤 분을 삭이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만 내쉬었다.
'다음 비무를 시작해라.'
마연랑과 풍운의 비무는 더욱 어이없게 끝이 나고 말았다. 마연랑과 풍운의 검
진벽해가 서로 만나는 순간 마연랑의 검이 튕겨져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추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남은 사람들도 비무를 시작해라.'
'나라도 이겨서 사부님과 벽운산장의 위신을 세워야겠다.'
초은산이 중얼거리며 일운의 앞에 섰다. 초은산의 나이 이미 스물 다섯 이었
다. 그에 비하면 초은산의 앞에선 일운의 나이가 이제 십 오 세이니 두 사람은
십 년 차이가 나는 셈이었다. 덩치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초은산은 이번에야말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초은산의 검진벽해가 노도처럼 일운의 신형을 향해 밀려들었다.
일운으로서는 입문하고 나서 처음으로 대하는 흉흉한 검공이었다. 일운의 신형
이 정신없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초은산은 승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재빨리 이초식인 마검충천(魔劍衝天)을
펼쳤다. 추은산의 검끝이 예리하게 일운의 어깨로 날아갔다.
일운은 무지막지하게 날아드는 검끝을 보고 그만 놀라서 뒤로 넘어지고 말았
다. 일운의 작은 몸 위로 싸늘한 검풍(劍風)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하하하!'
초은산이 웃음을 터뜨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쯤이면 사부가 싸움을 중지시
키고 비무를 끝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앞선 두 사람도 그렇게 비무를
끝냈던 것이다.
그러나 초은산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뒤로 물러나 주었음에도 추료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넘어져 있던 일운이 엉거추춤 일어나서 검을 세웠다.
'이씨, 나를 마검충천으로 공격했다 이거지, 나는 그럼 복마진천(伏魔震天)을
써보겠다.'
복마진천은 복마검법의 마지막 삼초식으로 공동파의 제자들은 이 복마진천 이
후로 더 이상 복마(伏魔)라는 글자가 들어간 검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저 다양한 장법과 신법, 금나수, 창법, 봉법 등을 익혔다. 검법에 있어서는 복
마진천의 다음부터가 바로 공동파의 비전절기였던 것이다.
일운이 검 끝으로 하늘을 찌를 듯 세우고 섰다. 일운은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심물일체 만물일여'라고 중얼거렸다. 일운은 '몸과 마음이 같고 만물이
하나다'라고 생각할수록 조금전의 수치심이 사라지고, 뛰는 심장도 고요하게 가
라앉는 것을 느꼈다.
일운의 머릿속으로 문득 한달 전 강변에서 장염이 중얼거리던 말이 떠올랐다.
'검은 손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情)과 기(氣)와 신(神)이 일치하게 된
다면 검은 즉, 손이다.'
장염이 깊은 명상 중에 저도 모르게 기천검의 검결을 중얼거렸는데, 일운은 그
때 다른 말은 자세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검(劍)은 즉, 손(手)이다' 라고 중얼
거린 것은 분명히 들었다. '검(劍)은 손이다'라는 말은 그때 일운에게 충격적이
었고, 장염의 손 끝에 피어 오른 기검(氣劍)을 보았을 때는 심장이 멈출 듯 했
다. 그런데 지금 '검이 곧 손이다' 라는 장염의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고요한 가운데 일운은 저도 모르게 눈을 반쯤 내리깔고(半開) 숨조차 쉬는 듯
마는 듯 했다.
몇 걸음 뒤로 물러 나있던 초은산이 다가서며 중얼거렸다.
'허 참, 저 어린 녀석이 이야기 속의 검사들 흉내를 내고 있구나.'
그러나 흉내만으로 검기가 일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떠돌
이 약장수를 사부로 모시려고 할 것이다.
초은산은 이 어린 사형제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잠시 고민 하다가 사부에게
로 눈을 힐끔 돌렸다. 왠일인지 추사부의 얼굴은 이때 거의 굳어져서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에라 모르겠다. 어린 사형제여, 나의 손이 매섭다고 원망이나 하지 말거라.'
마침내 초은산이 복마검법의 일초식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펼쳤다. 검진벽해가
펼쳐지자 일운의 몸을 향해 종횡으로 검풍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일운의 눈이 번쩍하고 뜨여지더니 진짜 미친놈 발광하듯 손발을 허우
적거리기 시작했다. 일운의 머리는 쉴 틈 없이 좌우로 까딱거렸고, 양쪽 어깨가
들썩거렸으며, 발걸음 마저 술 취한 놈 마냥 갈지(之)자로 휘청거렸다. 그런데
그렇게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의 몸으로 날아들던 초은산의 검은 일운의 검에 교
묘하게 얽혀들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일운은 숨 한번 쉴 동안 초은산의 검기를 모두 걷어내 버렸다. 상대의 변화에
놀란 초은산이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려는데, 어느새 일운의 검 끝은 초은산의
어깨 위에 얹혀있었다.
'으음...'
구경하던 사람들의 놀람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추료는 꾹 다문 입으로 가느다
란 신음마저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 저 녀석이 복마삼십육검을 알고 있더란 말인가!'
추료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일운을 바라보았다. 저 미친놈 널 뛰듯한 동작은 추
료가 그토록 사질들에게 원하던 복마검법의 움직임이었다. 추료가 기억하는 한
지금까지 저렇게 완벽한 미친 동작은 공동파의 누구에게서도 본적이 없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지금 일운이 펼친 검식에 분명히 복마삼십육검의 변화가 담
겨 있었다는 것이다.
'사질들은 나를 따라 오도록 해라.'
마침내 추료가 세 사람의 공동파 제자들을 이끌고 연무장에서 떠나갔다. 벽운
산장의 제자들은 지금 일어난 일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추료사부는 세 명의 사형제들만 데리고 어디론가 떠
나가 버렸다. 아마도 공동파의 비전절기를 전수하러 간 것이리라.
첫댓글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ㅈㄷㄳ..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즐겁게 잘 보고 있습니다
즐감
즐독요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