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열혈청년 같은 그에게도 노안(老眼)이 찾아들었다. 도도한 세월의 거센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듯 이제 그는 막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올해 44세의 기아 김성한 감독이다.
이제는 경기 전 오더를 훑어볼 때도 안경을 써야 한다. 그것이 왠지 어색했던지 렌즈에 색깔을 넣어 선글라스인 양 흉내를 냈고, 아직까지 경기 중에는 쓰지 않는다.
주위에도 “안경을 쓰는 일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자칫 하다가는 퇴물로 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란다.
그에게는 아직도 팔팔했던 청년의 모습만이 뚜렷이 각인돼 좀체 안경이란 게 어울리지 않을 성싶다. 현역무대에서 물러난 지 불과 7~8년도 채 되지 않아 영원히 열혈남아로 남아 있을 줄 알았던 그에게 안경은 핫바지에 구두차림처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타석에서 안 맞기라도 할라 치면 괜히 심판에게 강짜도 부려보고 덕아웃을 향해 방망이를 거세게 내동댕이치던 게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라 더욱 그렇다.
광주구장의 그의 방에는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팔팔했던 그의 모습이 담긴 대형 흑백사진 두장이 유일하게 벽을 장식하고 있다. 한장은 젊은 시절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오기 가득한 시선을 한 채 타자를 향해 힘차게 볼을 뿌리는 장면이고, 또 한장은 오리궁둥이 자세로 시원스럽게 방망이를 돌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제든 뛰쳐나올 것만 같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현역무대에서 뛰었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머리 양쪽에도 하얀 귀밑머리가 다소곳이 앉을 것 같다. 감독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그런 자리를 하려고 발버둥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