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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작대(銅雀臺) 낙성식(落成式) -
유비(劉備)는 방통(龐統)을 부군사(副軍師) 중랑장(中郞將)으로 삼아 공명(孔明)과 함께 대사(大事)를 이끌게 하였다. 방통은 그날부터 공명(孔明)과 머리를 맞대고 지략(智略)을 다해 군사(軍士)를 훈련(訓練)시키기 시작(始作)하였다.
형주(荊州)에 숨어 있던 세작(細作 : 간첩)이 허창(許昌)으로 급히 달려가 이런 사실(事實)을 조조(曹操)에게 고(告)하였다.
"유비(劉備)의 세력(勢力)이 날로 왕성(旺盛)해 가고 있습니다. 공명(孔明)의 휘하에는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 등 삼걸(三傑)이 있는 데다가, 이번에는 방통(龐統)까지 얻어, 그의 인적(人的) 진용(陣容)은 거의 완벽(完璧)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군사(軍士)는 날마다 맹렬(猛烈)히 훈련(訓練)을 시키고 있고, 생산(生産)은 해마다 증진(增進)되어 유비의 세력은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氣勢)입니다."
조조(曹操)는 그 말을 듣고, 모사(謀士) 순욱(筍彧)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對備)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
"물론 유비(劉備)의 세력(勢力)이 커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허나,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손실(損失)이 너무 커서 지금 당장(當場) 대군(大軍)을 일으키는 것은 어려운 형편(形便)이니, 먼저 군량(軍糧)을 비축(備蓄)하고 군사(軍士)를 널리 모아 훈련(訓練)시키면서 때를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옳은 생각이오. 하나, 시간을 너무 끄는 것은 좋지 않을 듯 하오."
조조(曹操)는 유비(劉備)의 세력(勢力)이 날로 강(强)해지고 있다는 보고(報告)를 받고 조만간(早晩間) 이를 제압(制壓)할 방법(方法)을 모색(摸索)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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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조조(曹操)의 명으로 업군성(鄴郡城)에 동작대(銅爵臺)를 짓기 시작한 지 어느덧 팔 년째, 공사 (工事)가 완공(完工)되었다.
(동작대(銅雀臺) 명칭은 구리(銅)로 만든 봉황(鳳凰)으로 지붕 위를 장식(裝飾)한 데에서 유래)
그리하여 조조(曹操)는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성대(盛大)한 낙성식(落成式)을 준비(準備)시켰다.
↕넷상에 있는 실제 최근의 동작대(銅雀臺). 자세히 보면 관광객들의 모습도...
장하(長河)의 강변(江邊)에 축조(築造)한 거대한 규모의 동작대(銅雀臺)는 지금부터 9년 전 조조(曹操)가 북진을 위해 이곳을 점령(占領)했을 때, 땅을 파내어 조조(曹操)의 군막(軍幕)을 짓는데 땅속에서 청동(靑銅) 참새가 나온 것을 성(聖)스러운 길조(吉鳥)로 보아, 화려(華麗)하기 그지없는 누대(樓臺)를 축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강변에 축조(築造)된 동작대(銅雀臺)를 중심(中心)으로 왼쪽에는 옥룡대(玉龍臺) 오른쪽에는 금봉대(金鳳臺)를 지어 그 사이에는 무지개 다리를 놓아 서로 통(通)하게 하였는데, 그 높이는 모두가 십 장(丈)이 넘었다. 이렇듯 웅장(雄壯)하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동작대(銅雀臺)는 조조(曹操)의 위용(威容)을 뽐내 보이는 데도 전혀 손색(遜色)이 없었다. 그러려니 조조(曹操)는 문무(文武) 대소 신료(大小臣僚)에게 명(命)하여 낙성식(落成式)에 모두 참석(參席)하도록 명하였다.
때는 건안(建安) 십오 년(十五年) 봄이었다.
이날 조조(曹操)는 머리에는 칠보관(七寶冠)을 얹고, 몸에는 홍금나포(紅錦羅袍)를 걸치고, 허리에는 옥대(玉帶)를 띠어 황제(皇帝)를 능가(凌駕)하는 차림새로 모사(謀士) 정욱(程昱)과 심복(心腹) 심복(將帥) 허저(許褚)를 대동(帶同)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발걸음으로 계단(階段) 양(兩) 옆으로 시립(侍立)한 병사들의 중앙 계단(階段)을 따라 동작대(銅爵臺)를 올랐다.
그리하여 조조(曹操)가 동작대(銅爵臺) 정상(頂上)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며 감격(感激)어린 소리를 하였다.
"좋군! 정말 좋군!... 이렇게 멋진 곳에 이런 훌륭한 누대(樓臺)를 지었으니 이는 후세(後世)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유산(遺産)으로 남을 것이야!..."
그러자 정욱(程昱)이 그 말은 받아,
"이게 모두 승상(丞相)의 홍복(洪福)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曹操)는 만면(滿面)에 만족(滿足)한 미소(微笑)를 지으며,
"앉지." 하고 누대(樓臺) 최정상(最頂上)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모두 앉으시오!" 정욱(程昱)이 단하(段下)를 향해 소리치자 낙성식(落成式)에 참가參加)한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일제(一齊)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좋은 술과 음식에 현인(賢人)들 까지 모두 모였으니, 이렇게 뜻깊은 자리는 극(極)히 드문 일이오. 하여, 오늘 동작대(銅爵臺) 낙성식(落成式)을 축하(祝賀)하는 의미(意味)에서 무장(武將)들의 활쏘기 경연(競演)과 문관(文官)들의 백일장(白日場)을 열도록 하겠으니, 문무 대신(文武大臣)모두는 경연(競演)에 참석하여 실력(實力)을 뽐내도록 하시오! 자! 그럼, 한잔씩 듭시다!" 조조(曹操)는 의기양양(意氣揚揚)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 뒤에 술잔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막하 (幕下)의 신료(臣僚)들은 일제히,
"축하(祝賀)드리옵니다. 승상(丞相)!"
"고맙습니다. 승상(丞相)!" 하고 외치며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허저(許褚)!"
"네, 승상(丞相)!" 무슨 분부(分付)이십니까?"
"저기 있는 붉은 전포(戰袍)를 호수(湖水)의 작은 섬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걸어 놓으라, 그리고 그 옆에 백보(百步) 밖에 과녁을 만들어 누구든 과녁 중심(中心)을 맞추면 저 전포(戰袍)를 상(賞)으로 하사(下賜)하겠다. 그러나 못 맞추면 벌주(罰酒)를 내리도록 하겠다."
"예! 즉시(卽時) 시행(施行)하겠습니다."
"승상(丞相)의 명(命)이니 장수(將帥)들은 사격(射擊)을 실시(實施)하시오!" 허저(許褚)가 조조(曹操)의 명을 받들어 경연(競演) 시작(始作)을 알리는 명(命)을 하달(下達)한다.
병사(兵士)들의 함성(喊聲)과 응원(應援)의 진고(晉鼓)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하는 가운데 장수(將帥)들이 좌 우(左右)에서 번갈아 말을 타고 달리면서 과녁에 화살을 날리는데 그야말로 그들의 실력(實力)은 백발백중(百發百中)이었다. 이들이 날리는 화살은 과녁의 홍심(紅心)에 <쏘는 족족> 그대로 꼿혔다.
그때, 마지막으로 낮에 익은 장수(將帥) 하나가 말을 달려 나오는데 그의 활시위에는 화살 두 대가 동시(同時)에 멕여져 있었다.
그는 벼락같이 과녁 앞을 지나며 활시위를 당겼는데, 두발 모두는 각각의 과녁 홍심(紅心)에 그대로 꽂히는 것이었다.
"으응? 저게 누구냐?" 조조(曹操)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묻자,
"넷째 공자(公子)인데, 두 발 모두 명중(命中)시켰습니다." 정욱(程昱)이 기쁜소리로 외쳤다.
그러면서,
"하하하하 ! 아무래도 전포(戰袍)는 넷째 공자(公子) 차지군요!" 하고, 조조(曹操)를 올려다 보았다.
"이 얏!...."
두 발을 동시에 쏘아 각각(各各)의 과녁의 홍심(紅心)을 꿰뚫은 조조(曹操)의 넷째 아들 조창(曺彰)
이 우렁찬 표호(豹虎)를 해보였다.
"와아! 와아! 와아!..."
"둥! 둥! 둥! 둥!..." 병사(兵士)들의 함성(喊聲) 소리와 진고(晉鼓)가 더 한층 하늘을 찔렀다.
"저 녀석이 내 무재(武才)를 물려받았나? 솜씨가 있군! 그러잖아?"
"네~!..." 조조(曹操)가 만족(滿足)한 미소(微笑)를 지으며 크게 기뻐하며 말하자 곁에 입시(入侍)한 대신(大臣)들이 조조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한다.
"하하하핫!..." 조조(曹操)가 크게 기뻐하는 가운데 조창(曺彰)이 단상(壇上) 위로 오른다.
"상(賞) 받아라!"
"고맙습니다!" 조창(曺彰)은 무릅을 꿇고 붉은 전포(戰袍)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정욱(程昱)이(弓術),
"하하하하! 넷째 공자의 마상(馬上) 궁술(弓術)은 과연 천하무적(天下無敵)입니다." 하고 조조(曹操)에게 아뢰자,
"학식(學識) 없는 무예(武藝) 실력(實力)은 필부(匹夫)의 용기(勇氣)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하고 평가 절하(平價切下)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창(曺彰)은,
"소자(小子)가 볼 때에는 사내 대장부(大丈夫)가 지금과 같은 효웅(梟雄)이 다투는 난세(亂世)에 태어난다면 위청(衛靑 : 전한 무제 때의 장군으로 흉노족(匈奴族)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움)과 곽거병(藿去病 : 전한 무제 때의 명장)을 본받아 군마(軍馬)를 끌고 나가 전장(戰場)에서 공(功)을 세우고, 천하(天下)를 평정하여 백성들을 구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자신감(自信感)에 넘치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네 말을 들으니 네 목표(目標)가 대장군(大將軍)인 모양이구나."
"네!"
"말해 보아라, 그럼 좋은 대장군(大將軍)은 어떠해야 하겠냐?"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뚜렸이 하고, 철저(徹底)한 무장(武將)을 하고, 적(敵) 앞에선 두려움이 없어야죠."
"올커니!... 그 말만 들으면 정말 너는 대장군(大將軍) 감이군! 그러잖아?..."
조조(曹操)가 기쁜 얼굴로 정욱(程昱)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정욱(程昱)도 만면(滿面)에 미소(微笑)를 머금고 조조(曹操)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가 봐라!"
"옛!"
"무장(武將)들이 마상(馬上) 궁술(弓術)로 위용(威容)을 뽐냈으니, 이젠... 학(學識)식 풍부한 문관(文官)들의 재주를 봅시다."
조창(曺彰)이 물러나자 조조(曹操)가 즉시(卽時) 백일장(白日場) 경연(競演)을 명하였다.
"시제(詩題)를 내려 주십시오!" 문관(文官)들이 일제(一齊)히 복창(復唱)하였다.
조조(曹操)가 잠시 머뭇 거리다가 시제(詩題)를 말한다.
"주제(主題)는 동작대(銅爵臺)로 하겠소!"
그리하여 자리에 참석(參席)한 문관(文官)들은 동작대(銅爵臺)를 시제(詩題)로 하여 일제히 글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런 문관(曺植)이 참석(參席)한 자리에는 조조(曹操)의 둘째 아들 조비(曹丕)와 셋째인 조식(曺植)도 있어 그들도 문관들과 함께 붓을 들어 글을 지었다.
어느덧 시간(時間)이 흘러 백일장(白日場)이 종료 (終了)되고, 심사관(審査官)의 손을 거쳐 조비(曹丕)와 조식(曺植)의 글이 조조(曹操)에게 올려졌다.
"승상(丞相), 조비(曺丕) 공자(公子)와 조식(曺植) 공자(公子)의 글이 앞,뒤를 다투는 것으로 심사(審査)되었습니다. 승상께서 직접(直接) 장원(壯元)을 골라주십시오."
정욱(程昱)이 셋째 조식(曺植)의 글을 조조(曹操)에게 올렸다.
조조(曹操)가 조식(曺植)의 글을 보더니,
"사마의(司馬懿)?" 하고, 불렀다.
"예!" 백일장(白日場) 자리에 함께 있던 사마의(司馬懿)가 대답하고 조조(曹操)에게 다가간다.
"이 두 편의 글을 모두에게 읽어주게, 먼저 조식(曺植) 껏 부터..." 조조(曹操)가 이렇게 말하면서 사마의(司馬懿)에게 셋째 조식(曺植)이 올린 글을 건네주었다.
사마의(司馬懿)는 조조(曹操)로부터 글을 건네 받아 백일장(白日場)에 참석(參席)한 단하(壇下)의 문관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글을 읽어 내렸다.
"동작대(銅爵臺)에 올라 아름다운 황성(皇城)을 내려다 보니, 꽃 구름이 조차 떠 다니네,
창공(蒼空)에 새들이 제제대며 기쁜 소리를 지르니 이 아니 기쁠 손가.
일월(日月) 또한 밝게 비추니, 영원(永遠)한 존귀(尊貴)함은 끝이 없어 신선(神仙)의 수명(壽命)과 같을레라."
"이제, 조비(曹丕) 껏..." 조조(曹操는 아무런 시평(時評)을 하지않은 채로 이번에는 조비(曹丕)의 글을 건네 준다.
사마의(司馬懿)가 조비(曹丕)의 글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다.
"누대(樓臺)에 오르니 위는 천하 아래는 물이로다.
맑은 물에선 고니가 노닐고 충성을 다하니 황제 폐하께 충성을 다하고......"
"그만, 그만!..." 조조(曹操)가 시문이 불쾌한 어조로 명한다.
그리고 심사관(審査官)으로 참석한 종요(鍾繇 : 字는 원상(袁商)에게 묻는다.
"이보게 원상(袁商), 이 두 글이 어떤가? 어디 말해 보게."
학식이 높은 종요(鍾繇)가 두 글의 심사평(審査評)을 아뢴다.
"조식(曺植) 공자(公子)의 글은 화려하면서도 기세가 넘치나, 조비(曹丕) 공자(公子)의 글은 극히 평범하고 원기가 없습니다."
"음! ..." 조조(曹操)는 자신의 생각과도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조식(曺植)?" 하고 셋째 아들을 불렀다.
"예! 아버님."
"시(詩)를 들어보니, 네가 그동안 글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알 수가 있다. 조금 전 창(彰)이가 마상(馬上) 궁술(弓術)로 장원(壯元)을 해 내가 전포(戰袍)를 하사(下賜)했는데, 너는 이리 좋을 글을 썼으니 너도 상(賞)을 내리마. 내가 천자께 아뢰어 너를 평원후(平原侯)에 봉(封)하겠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조식(曺植)이 아버지에게 무릅을 꿇고 감사의 절을 해보인다.
"감축드립니다. 셋째 공자!"
"감축드립니다. 평원후(平原侯)!" 자리에 함께 한 대소 신료들이 일제히 앙축(仰祝)의 소리를 드높였다.
"승상(丞相), 셋째 공자의 시문중에 일월(日月)이 밝게 비추니 영원한 존귀함은 이란 구절은 승상 (丞相)의 공적을 가장적절하게 표현해 보인 말입니다."
"응? 아, 하하하!..." 조조(曹操)는 기쁨의 넘치는 웃음을 소리내었다.
종요(鍾繇)의 말이 이어진다.
"허나, 저희들은 승상 (丞相)께서 한 발 더 나아가 천하의 대임을 맡아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늙은 신료가 일어나 아뢴다.
"종 대인(鍾大人)의 말이 옳습니다. 승상(丞相)의 공덕은 한량없어 천명을 받들 수 있다면 이는 자신의 복이옵니다."
"하하하하!... 여러분! 아, 아!.. 과 하오. 난 그저, 우매한 사람이오. 효렴(孝廉: 효자와 청렴한 사람을 뽑아 관리로 임명함) 출신이지만, 마침 난세를 만나 조정의 전군교위(戰軍敎尉)에 임명되었고, 부득이하게 조정을 위하여 검을 들어 힘을 쏟았소. 당시에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소. 내가 죽으면 묘지에 뭐라 새길 것인가 ?...해서, <정서 장군 조조>, 이 정도면 족하다 생각했소. 허나, 예상외로, 한번 오르니 못 내리겠더군, 내가 수 십년 간 천하를 위해서 일해 왔던 모든 것이 국적(國敵) 토벌과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소. 허나, 뜻밖에 천자의 은혜로 천자를 보좌하는 승상 (丞相)에 올랐으니,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하오. 이런데 내가 뭘 더 바라겠소 ? 응 ?... 솔직히 예전부터 모든 병권을 다 내주면서 내 뜻을 밝히고 싶었소. 허나, 한실(漢室)을 위해서, 천하 백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소. 생각해 보시오! 현 천하에 나 조조(曹操)가 없었다면 황제(皇帝)를 자칭하는 자가 얼마나 많았겠소?" 조조(曹操)는 손가락까지 꼽아 보이며 열변을 토하였다.
종요(鍾繇)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아뢴다.
"승상(丞相)의 굳은 일편단심은 과거 이윤(伊尹)이나 주공(周公)도 : 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두 사람) 승상 (丞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조조(曹操)가 그 말을 듣고 비로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허나, 모든 사람들이 자네 원상(袁商)처럼 생각하지 않아!... 혹자(或者) 들은 내 권력(權力)이 과해 망상을 꿈꾸며 흑심이 있다고 여기지!... 심지어(甚至於) 사사로이 결탁(結託)해 나를 해치려 하오. 내 오늘 똑똑히 밝히지만, 그 자들의 생각이 틀렸어!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오늘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나 조조(曹操)는 절대 그런 인물이 아니라고 말이오!"
조조(曹操)는 목소리와 핏대를 높여 웅변을 하듯이 이렇게 외치었다.
*인물평.
사마의(司馬懿 : 179 ~251년)
조조가 위(魏)나라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공헌한 권신이며, 후일 서진(西晉) 왕조의 시조이다.
자는 중달(仲達)이고 하남성(河南省) 온현(溫縣) 출신으로 조조의 청으로 그의 수하가 되고,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曺丕)가 위나라를 세운 뒤로 그 뒤를 이은 명제(明帝), 제왕(帝王) 등 3대 황제를 섬겼다.
그러는 가운데 대도독(大都督)을 지내며 위나라 왕조의 군사를 통솔하여 절대적 권력을 가졌다. 이런 권력(權力)은 후일, 그의 손자 사마염 대에 이르러 위나라 제위를 빼앗아 진나라를 일으키는데 터전이 되었다. 그는 조비의 유언을 받아 명제와 제왕을 훌륭히 보좌하였으며, 위,촉,오 등 삼국의 정립을 유지하는데 공헌하였을 분만 아니라, 특히 촉한(蜀漢)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오장원(五丈原)에서 막아, 그의 의도를 꺾은 것은 유명한 일이다. 또 요동(遙東)을 정벌하여 요동태수 공손연(公孫淵)을 멸망시키고 위나라 영토로 삼았다. 그뒤로 남방의 오(吳)나라와 대치하며 회하(淮河)유역에 광대한 군둔전(軍屯田)을 만들어 국방을 튼튼히 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조조의 아들...
조조는 아들 다섯을 두었습니다. 첫째는 조앙(曺昻)으로 조조를 따라 남양의 장수(張繡) 정벌에 참여 했다가 죽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삼국지 93회 화를 부른 조조의 외도 때문에 벌어진 일로, 94회 그의 맏아들 조앙이 죽었습니다.
둘째는 조비(曺丕)이고, 셋째는 조식(曺植), 넷째는 조창(曺彰)입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는 앞으로 쓸 일이 많이 있어, 인물평에 대해선, 자세히 밝히지 않겠습니다. 너무 세세히 인물평을 하게 되면 삼국지 읽는 재미가 반감하기 때문입니다. 이해되시죠?
다음에 조식(曺植)의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 : 일곱 걸음만에 지은 시)도 소개됩니다..
삼국지 - 239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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