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산시비(蛟山詩碑)는 허균의 '누실명(陋室銘)'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누실명'은 이이화의 <허균>에 번역으로 실려 있는데 몇 군데 표현을 고쳤다)
//남쪽으로 두 개의 창문이 있는 손바닥만한 방 안 한낮의 햇볕 내려 쪼이니 밝고도 따뜻하다 집에 벽은 있으나 책만 그득하고 낡은 베잠방이 하나 걸친 이 몸 예전 술 심부름하던 선비와 짝이 되었네 차 반 사발 마시고 향 한 가치 피워 두고 벼슬 버리고 묻혀 살며 천지 고금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에서 어떻게 사나 하지만 내 둘러보니 신선 사는 곳이 바로 여기로다 마음과 몸 편안한데 누가 더럽다 하는가. 참으로 더러운 것은 몸과 명예가 썩어 버린 것 옛 현인도 지게문을 쑥대로 엮어 살았고 옛 시인도 떼담집에서 살았다네 군자가 사는 곳을 어찌 누추하다 하는가. //
이 글에서 우리는 허균의 넘치는 패기와 당당한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참으로 더럽고 누추한 것은 거처에 있지 않고 몸과 이름을 함부로 파는 그 처신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집의 가치는 그 크기나 실내장식 또는 가구 등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주인의 인품에 달린 것이다.
그 시대의 귀재요, 저항아인 허균은 주변의 시기를 받아 몇 차례 탄핵을 받고 그때마다 관직에서 물러나지만 그의 신념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내가 세상과 어긋나 죽거나 살거나 얻거나 간에 내 마음에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내가 오늘날 미움을 받아 여러 번 명예를 더럽혔다고 탄핵을 받았지만 내게는 한 점의 동요도 없습니다. 어찌 이런 일로 내 정신을 상하게 하겠습니까.'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이다. (법정의 '오두막 편지' 중에서)
이처럼 현실 정치에서 참으로 더러운 것은 몸과 명예가 썩어 버린 것
정의롭지도 않고 패기와 당당한 기개도 없이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자리에 연연하다니 부끄러운 것은 국민 몫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