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사(58) - 포항의 오어사에 가다
손쉽게(?) 찾아다닐 수 있는 사찰은 거의 답사를 한 것 같다. 아직껏 나의 답사 목록에 오르지 못한 절은 먼 곳의 절이거나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기 힘든 곳의 절이다. 그런 절 중의 하나가 오어사이다.
오어사는 포항에 있는 절이다. 물가의 절이어서 뻬어난 경관으로 지난날에 여러번이나 찾았던 절이다. 대구에서 포항까지의 버스 길은 대구 시내의 어느 곳을 찾아가는 만큼이나 차편이 편리한 곳이다. 그런데도 답사 목록에 빠진 이유라면 포항에서 오어사를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가 분명치 않아서 였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 5000번을 타면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에 내린다. 거기서 마을버스를 타고------, 이대로라면 얼마나 쉬운 길인가.
집사람과는 나는 마음을 냈다. 다른 절집 답사보다는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포항에 닿으니 10시 30분쯤이었다. 관광 안내서에서도 인터넷 검색과 같은 안내를 한다.
시내 버스 5000번은 금방 왔다. 오늘은 일찍 답사를 끝낼 것 같다. 5000번 버스 기사님은 마을버스를 타는 곳이라면서 내려주었다. 아뿔사. 마을버스는 2시간 간격으로 다닌다지만 언제 올지 모른다가 버스가 오는 시간이라고 했다. 사람을 붙잡고 절까지의 거리를 물으니 ‘먼데요’라고 한다. 집사람을 바라 보았다. 이심전심이랄까. ‘까짓거 걷지 뭐’로 마음을 모았다.
오어사 가는 길은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고, 비교적 평탄하여 걷기에는 좋다. 그러나 양쪽으로 다니는 차들이 쉴 새 없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해 왔듯이 앞만 보고 꾸벅꾸벅 걸었다. 아마 4km쯤 될 듯하다. 절의 아래에 둑이 아주 높은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모든 차들이 여기까지만 오고, 절까지의 1.3km 길은 걸어가야 한다고 하니, 못둑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땅만 보고 천천히 걸어오르니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가뭄 탓인지 저수지의 물은 조금만 남아있다.
저수지를 따라서 절까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이다. ‘운제산 오어사’란 현판을 단 일주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어사를 다녀갔다는 증거물이다. 아이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 아이들 세 명의 가족이 서울에서 모여서 식사를 했다면서 손주들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화목하게 살기를 누누이 강조했다. 자주 만나라고 방법까지 아르켜 주었다. 이렇게 만나서 식사하는 사진을 보내주니------, 나도 우리의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냈다.
절은 예전보다는 더 많은 당집이 들어섰다. 그러나 기와불사며 찻집도 있어 여뉘 절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절 바로 앞에서 넘실거리던 저수지의 물을 볼 수 없으니 오어사의 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절의 옆으로는 운제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다. 물이 바싹 말라버려서 드러난 바닥은 보기가 흉하다.
운제산은 신라의 2대왕 남해차차웅의 왕비인 운제부인이 이 산에 들어와서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을 가진 산이다. 나는 우리나라 산의 본래 산신령은 여신이었다는 사례로 운제산을 많이 들먹였다. 운제산 아래에 절집이 들어선 것도, 후발 종교인 불교가 성지를 정할 때 우리의 토속신앙지에 정한다는 생각이다. 이 절도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여름의 더운 날에 대웅전에 들어서면 시원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나는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는 곧잘 구석자리에 앉아서 땀을 식힌다. 오어사 대웅전에는 참배 불자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오래 앉아서 쉴려니 염치가 없어 보여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 나오니 불어오는 산바람이 시원하다.
이 절은 신라시대에 스님 혜공과 원효가 죽은 고기를 입에 물고, 절 앞의 물에 뱉아냈더니 한 마리는 살아 나고, 한 마리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스님이 살아난 고기를 두고 서로 내 고기(吾魚)라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승도 서로 자기 능력을 두고 다투었다니 속세를 사는 나야 뭐------.
개울을 건느는 다리가 놓여 있고, 만들어 놓은 산책로가 물가의 산자락을 감아돈다. 다리를 건너서 조금 걷다가 돌아 나왔다. 하기야 요즘은 절집이 기도하는 도장이 아니고, 휴식을 하는 쉼터가 되었으니, 나는 이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볕 더위이다. 어린 날의 이 때 쯤이면 보리타작과 벼심기로 바쁜 철이다. 보리타작은 정말 힘드는 일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길을 걷고 있으니, 덥다고 투덜거릴 처지가 아니다.
오어사의 버스 정류장에 오니 마을 버스가 방금 떠났으므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나, 집사람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걷자’라고 했다. 내려 오는 길은 내리막 길이니 훨씬 더 수월하다. 다만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쏟아지는 햇볕이 부담스러웠지만, 일부러 일광욕도 하지 않는가. 천천히 걸음을 떼니 포항시내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다. 어쨌거나 4km를 걸어서 내려왔다.
정원을 잘 가꿔놓은 찻집에 들려 얼음덩이가 떠 있는 과일 음료수를 마셨다. 시원하기가------. 예전에 소아과 선생님들과 산행을 다녔을 때 하산주라면서 마시던 냉맥주 같다.
포항의 시내버스는 금방 왔다. 포항시외버스 정류소에 와서 대구로 오는 버스를 타니 조름이 한껏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