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아인슈타인에게 가한 박해
예미도중 曳尾塗中 이런 고사성어가 있다. 들어보지 못한 어려운 말인데 뜻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꼬리를 진흙속에 끌고 다닌다는 뜻으로, 부귀를 누리면서 구속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말의 비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런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유의지와 자유정신을 타고 낳는지 모른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삶이 주어진데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 갈 수 없다면, 과감하게 현실이라는 세상을 향해 걸어 가겠다는 의미이다.
Sarah Brightman - Time To Say Goodbye (Solo Version)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Adolf Hitler/ Original Caption: Portrait of Adolf Hitler (1889-1945),
head of of the Nazi party in Germany.
Head and shoulders, full face. Undated.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되고 요제프 괴벨스가 장관이 ?다. 히틀러가 유독 밉게 본 대상은 예술가 였고, 그는 예술과 문학에서 국민 생활에 해악을 끼치는 경향들에 대하여 강력한 박해迫害 inquisition 를 가하기 시작한다.
Hitler's Car./Jezz님의 포토스트림One of many Hitler cars around the world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를 위협하는 문화적 위협에서 모더니스트로 구체적으로 입체파, 미래파, 다다이스트들을 꼽았고 추방과 전시금지등의 압박과 박해를 가했다. 히틀러 생각에는 자신과 독일 국민이 원하는 것은 뒤틀림과 모호함이 없는 순정한 독일 예술이라고 생각 했다.
Adolf Hitler painting drawing sketch (work of art by Nazi fuhrer) 49 (search the zip file- Adolf Hitler Artwork)/moscasulcappello님의 포토스트림
그는 예술은 정치의 액세서리 정도가 아니라 나치 정책의 기능적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매서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림은 많이 그린 흔적이 여기저기 있는 것으로 보아 순전히 자기편의 주의적인 사람으로 거위의 꿈은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일이 오늘날 좀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나라가 되지 못하고 동.서 베를린에서 독립한 후에도 질곡의 시간을 가졌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문화혁명기에 침체를 가져 왔듯이 독일은 나치 정권하에서 한세기의 지성을 말살하는 박해를 당해야 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원초적 박해와 함께 몰아닥친 과학 분야에 대한 박해의 사슬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Adolf Hitler Nazi propaganda photos 1 Image 032 moscasulcappello님의 포토스트림
우리가 존재하는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그이론의 본질은 깨닫지 못한다 할 지라도,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뇌를 슬라이스 해서 보관 연구하는 것으로 보아도 그가 남긴 인류사에 대한 기여는 말로 다하기 어렵다. 하지만 히틀러와 괴벨스에게 아인슈타인은 눈에 가시이고 너무 머리좋고 서방세계로 부터 존경 받는 골치 덩어리 였던 모양이다. 거위의 꿈이 생각해도 미웠을 것 같다. 히틀러도 머리는 굴릴줄 알았지만 아인슈타인 만큼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거기다 머리를 엉뚱한 곳에다 굴리고 투자했으니 .... 못난 동물일 수록 오르지 못할 나무위에 올라간 표범을 시기하고 질투하는게 동물의 세계이다.
Adolf Hitler Nazi propaganda photos 1 Image 048/moscasulcappello님의 포토스트림
Albert Einstein/ExaggerArt.com님의 포토스트림 VISIT www.ExaggerArt.com for more CELEBRITY CARICATURES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대한 박해는 그가 히틀러의 살생부에 올랐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오기 이전 부터 시작이 되었다.
Du bist Albert Einstein?/TrashAvenue님의 포토스트림1933년1월 아인슈타인은 미국을 방문중이었고 그의 나이는 54세 였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우주론에 몰두하던 그는 베를린으로 돌아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나치는 그의 은행구좌를 동결하고 그가 쓴 상대성 이론에 관한 대중서를 공개리에 불태웠다. 아인슈타인은 나치에게 있어서 '국가의 적'이었고 아인슈타인의 사진 밑에 '현재 교수형 미집행 상태'라고 적어서 명단을 공표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독일을 떠나는 가장 유명한 세기의 물리학자가 ?다.
Nagasaki Bomb/nreddin님의 포토스트림 Photo by: U.S. Air Force
New weaponry the world had never seen before were used on Hiroshima and Nagasaki to bring and end to World War II. This photograph is of the second atomic bomb ever used on August 8, 1945 over Nagasaki. The blast created a column of smoke over 60,000 feet high that both fascinated and horrified the entire world. Albert Einstein wrote Franklin Delano Roosevelt about “The possibility of a new source of energy that might be harnessed into a weapon of war” (Kingsbury). Of the letter, the Manhattan project was born in 1942. The theory was based on the new discovery of nuclear fission. Splitting nuclear atoms by means of a chain reaction was believed to release incredible amounts of energy.
Journal - Stop/winemakerssister님의 포토스트림 Journal page for the Yahoo! group ATCA_Art_Journals. The theme was "stop." I chose a quote from Albert Einstein. The new technology complicated the Cold War. The way WWII ended culminated in the nuclear arms race between two superpowers. The U.S. and Soviet Union rushed to stockpile weapons that could possibly destroy the entire world. Kingsbury, Alex. "history's Troubling Lessons," Us News and World Report. 142(7):2
freud/moscasulcappello님의 포토스트림
프로이트는 정신분석분야의 대가이며, 그의 인류에 대한 기여와 공헌 또한 아인슈타인에 못지 않다. 그는 82살에 나이에 건강이 썩 안 좋았다. 1938년 3월 프로이트의 조국 오스트리아 그리고 그의 고향인 빈은 독일 제 3제국에 합병됐다. 그의 국제적 친구들은 걱정을 많이 했고 런던의 정신분석가 어니스트 존스가 그랬다. 프랭클린 루스멜트 대통령조차 주변에 프로이트의 신상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sigmund/Village9991님의 포토스트림 analize this!!!!
프로이트가 그의 딸 안나가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등 빈에서의 압박과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출국하려고 하자, 나치는 그가 출국하기 전에 빚을 모두 청산하도록 조치하고, 한 번에 한 명씩만 출국 허가를 내줬다. 프로이트의 출국증은 맨마지막에 나왔다. 그 순간까지 프로이트는 이산가족이 될까봐 노심초사 했다고 한다.
Optical Illusion (see large image version to compare)/jeremiah_owyang님의 포토스트림When I took this picture, up close, I only could see Albert Einstein. Read the Full story at:www.web-strategist.com/blog/web-strategy-vault/illusion/ it will appear as what I saw up close, all appeared to be portraits of Einstein.
SIGMUND FREUD/saireo님의 포토스트림 650 ? 2008 60 cm x 60 cm Acrylique avec inclusion de poussi?re d'aluminium et papier-peint aluminium sur toile
게슈타포는 서류와 함께 문건 하나를 가져와 프로이트에게 사인을 강요 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대우가 좋았다고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프로이트는 사인을 한 다음 한 문장을 덧붙였다. "게슈타포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였다. -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 20세기 지성사 중에서 일부 베끼고 거위의 꿈 생각을 조금씩 조미하였습니다 피터 왓슨 자신도 생각의 역사를 집필 하면서 많이 베꼈다고 말했으니 그닥지 도의적인 고뇌는 안해도 될 것입니다. 더구나 거위의 꿈이 플리커를 4시간이나 뒤져서 사진을 발굴해서 결합 했으니 왓슨이 보더라도 큰 허물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블로그니스트 거위의 꿈
다시 부귀를 누리면서 구속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말의 비유인 예미도중 曳尾塗中 에 대하여 그 일화를 살펴본다.
초(楚)나라 왕이 어느 날 사람을 보내어 낚시를 즐기고 있는 장자를 청하였다. 그러나 장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초나라에는 3천년 묵은 죽은 거북을 계단으로 싼 상자 안에 넣어 묘당(廟堂) 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듣고 있소.
거북이의 생전에 자신이 그렇게 죽어서 소중히 간직되길 바라겠소? 아니면 살아 꼬리를 진흙 속에 넣고 끌고 다니기를 바라겠소(曳尾塗中)?"
"물론 진흙 속에 꼬리를 넣고 끌고 다니길 바랐겠지요." 이렇게 대신이 대답하자 장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얘기가 된 것 같소. 나 역시 진흙 속에 꼬리를 넣고 다니는 길을 택하겠소." 였다.
[출전]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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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거위의 꿈 - dream of goooooose 원문보기 글쓴이: i have a dream
첫댓글 아주 소중한 자료들을 이렇게 편하게 보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도 진흙에다 꼬리 넣고 다니는게 좋은데요 

그러시면 안되시옵니다.
음악 특히 재즈를 하는 아티스트는 자유정신으로 뭉쳐 있어야 합니다
현실음악시장과 이상의 음악 세계가 있다면
그 경계를 스스로 깨고 즐기는 정신이 재즈입니다
애드립이 난무하고 어쿠스틱이나 전자일렉트릭이 들이대고
살아남는 그릇 정신
그게 재즈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현악과 관악기가 치고들어 와도 드러머가 감싸안고
1,st기타리스트가 최종 눈물 흐르는 듯한 마무리로 끝내는 ...
전혀 접수가 않되시면 공공기관에 호소해서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웃자고 한말 입니다 * . *
아~~ 예미도중 그렇군요... 진흙에다 꼬리를 넣고 다니는게 좋다.. 그럼 저승보다 힘들어도 이승이 낫다.. 이 말하고 일맥상통하나요? ㅎㅎ
수님은 역시 빼어나십니다
살아서 글쓰는 수님이 죽어서 교감할 수 없는 수님 보다 낫다
이런 말이되네요
하지만 일체의 것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나
일맥쌍통
입니다.
제성명도 秀를 쓰다가
초등학교 1학년에 修로 호적을 바꿨다고 합니다
이유는 재능은 타고 나지만 갈고 닦지 않으면 무용하다고 해서 랍니다.
형이 그랬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제이름엔 사실 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만... 아주 사소한 이유로.. 거의 10년을 같은 닉을 쓰고 있어요~~ 修도 좋으네요~~ 갈고 닦지 않은 秀는 어쩜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노력한다면 修보다 조금 힘써도 쉬운秀이겠지요^^
석학들의 삶의 일부를 다시 들여다 보며 문화예술과 과학에 대한 저의 시각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