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은 사라져야!
얼마 전 등산길에 앞서가는 고령자끼리 나누는 대화가 무척 살갑고 정겹게 들렸습니다. 이른바 일촌(一村) 간의 정겨운 반말로 주고받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막말 풍토를 생각하면 이런 정겨운 반말조차 때론 아주 다르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막말이 마치 일상의 언어인 양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말은 언어의 생리상 반말로 시작해 거친 폭언으로 이어지고, 드물지 않게 삿대질과 폭언 또는 폭행으로까지 이어지기 쉽습니다.
꽤 오래된 일인데, 어느 날 청계산 쉼터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는 소녀 셋이 깍듯한 존댓말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아주 자연스레 재잘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참신하고 흐뭇해 절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높임말 쓰기’를 장려해 급우끼리도 이름 뒤에 반드시 ‘님’ 자를 붙여 부르고, 선생님도 학생에게 높임말을 쓰도록 했더니 학생들끼리의 말다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즈음 한 일간지에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에서의 존댓말 쓰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어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래 우리 사회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횡행하는 막말·반말에 병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험한 정서에 물들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막말과 관련 언급을 할 때 필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과 프랑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군사 언어에서 반말 사용을 금지했다는 일화를 종종 예로 들곤 합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에는 영어와 달리 반말과 존댓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어에는 ‘Tu(너)’와 ‘Vous(당신)’가 있고, 독일어에는 ‘Du(너)’와 ‘Sie(당신)’가 있습니다.
어쨌든 반말 사용을 금지한 후, 두 나라에서는 장교와 병사 간에도 존댓말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장교가 같은 마을 출신인 하사관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도 서로 존댓말로 대화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단둘이 있을 때는 반말을 할 수 있지만, 제삼자가 있는 곳에서 이를 어기면 군법회의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필자가 이런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 고급 장교들은 한결같이 “그러면 명령 계통이 제대로 잡히겠느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프랑스군이나 독일군 장교가 명령을 존댓말로 했다고 지휘 체계가 문란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다행히 국내 병영 문화에도 변화의 물결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장군의 꿈. 상호 존중과 배려》 (시대고시기획. 2009)의 저자 정두근(1952~) 예비역 중장은 그의 저서에서 현역에 있을 때 “잘못된 병영 문화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장병들을 지켜보면서 국방 문화를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면서 “사단 지휘관을 거치면서 군생활에서 반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대신 존경어를 사용하도록 적극 권장한 한 바 ……
폭언이나 구타 등 가혹 행위가 사라지면서 군 기강은 바로 서고, 사고도 현저히 감소했으며 교육 훈련과 업무 수행이 크게 향상됐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군부대에서의 ‘존댓말 쓰기’가 있었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가 직면한 ‘막말 수렁’에서 탈출하는 해법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최봉영(崔鳳永)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지식산업사, 2005)에서, 반말 행위에는 반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높낮이 관계’가 형성되면서 평등성이 훼손되는 태생적 결함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반말 사용을 멀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반말과 막말은 아주 가까운 일촌 관계에 있으므로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국어사전에도 존대어는 “듣는 사람이나 제삼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쓰는 말”, 반말은 “함부로 낮추어서 하는 말”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존대어에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뜻이 담겨 있지만, 반말은 상대의 인격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반말과 막말은 사회 조직의 소통 언어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든, 군대라는 특수 조직에서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지시 사항을 반말로 해야 ‘먹힌다’라는 인식을 버려야 야합니다.
필자는 독일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서로 고함을 지르며 언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싸움하는 걸 좀처럼 볼 수 없어 재미있는 구경이다 싶었습니다. 서로 으르렁거리던 두 학생은 서로 반말하던 학우였습니다. 그런데 언성이 높아지자, 둘이 갑자기 존대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휘두르면서 상대방에게 “당신이 먼저 쳐!”, “아니, 당신이 먼저 쳐!”만 반복했습니다. 싸움(?)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렸습니다.
독일에서는 상대방에게 먼저 물리적으로 힘을 가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법률적 ‘가해자’가 된다고 합니다. 언쟁하던 두 학생은 법대생이었는데, 혹시라도 가해자로 기록되면 국가 사법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박탈된다는 얘기를 필자 곁에 있던 다른 학우가 귀띔해주었습니다. 싱겁게 끝난 그 싸움은 필자에게 많은 여운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근래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곳곳에서 횡행하는 막말과 폭언 행태는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 우리 사회를 깊은 우울증의 늪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종지부를 찍는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사회 조직 언어로서 존대어를 토착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또한 우리가 모두 지향하는 복지 사회 개념의 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우리 국군의 병영 생활에서 존경어를 일상언어로 채택했으면 합니다. 존경어에 익숙해진, 즉 반말하지 않는 젊은 병사들이 군에서 제대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는 날, 우리나라도 훨씬 품위 있고 품격 있는 공동체로 빠르게 진화할 것이라 믿어서입니다. 그러면 점차 말(言)의 ‘갑질 정서’가 사라지고 따듯한 마음이 오가는 사회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막강 국군이 갖는 선도적 사회 순화 기능에 이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언어는 생각의 몸체이다(Die Sprache ist der Leib des Denkens)”이라 하였듯이, 우리 생활에서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가가 얼마나 주요한지를 헤겔은 간단명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 사회에서 막말은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하는가 싶습니다.
“말(言)의 ‘갑질’ 사라져야”(바른사회운동연합, 2018.4.27.), “존대어 사회에는 막말이 없다”(중앙일보 ‘삶의 향기’, 2016.2.29.)에 실린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밝혀둔다.
More Than I Can Say - Leo S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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