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 이언적 법자(法子)의 세보(世譜)
世 | 宗孫名 | 官 職 | 初 娶 | 妻 父 | 再 娶 | 三 娶 |
1 | 世貞 | 鄕貢進士 | | | | |
2 | 宗衍 | | | | | |
3 | 梱 | | | | | |
4 | 培 | | | | | |
5 | 允芳 | | | | | |
6 | 春彦 | 散員 | 海州吳氏 | | | |
7 | 權 | 典書 | 李氏 | 進士 李良佐 | | |
8 | 崇禮 | 振衛副尉 | 淸州楊氏 | 縣監 楊培 | | |
9 | 壽會 | 武科 參軍 贈判書 | 慶州李氏 | 生員 李點 | | |
10 | 蕃 | 司馬 | 月城孫氏 | 孫 昭 | | |
11 | 彦迪 | 左贊成 文元公 | 咸陽朴氏 | 訓導 朴崇阜 | | |
12 | 應仁 系 (從姪) | 縣監 | 咸陽朴氏 | 僉正 朴珵 | 仁同張氏 張應機 | 月城孫氏 孫光晬 |
13 | 宜潤 | 蔭通善郞 | 昌寧曺氏 | 都事 曺光益 | | |
14 | 晭 | 陵參奉 | 務安朴氏 | 縣監 朴瑜 | | |
15 | 墩 | 直長 陵參奉 | 密城孫氏 | 孫起陽 | 眞城李氏 參奉 李命哲 | 淸安李氏 李珪 |
16 | 德種 | | 順天金氏 | 參奉 金斗望 | | |
17 | 誠中 | 直長 | 商山金氏 | 參奉 金鍵 | 義城金氏 金時鐸 | 安東權氏 權 迕 |
18 | 憲祖 | | 載寧李氏 | 李 槾 | | |
19 | 鼎夏 系 | 司僕寺正 | 豊山柳氏 | 柳 濎 | | |
20 | 元祥 系 | 陵參奉 | 延安李氏 | 李 靖 | 義城金氏 金復運 | |
21 | 在正 | 陵參奉 郡守 | 豊山柳氏 | 豊山君 柳相祚 | 聞韶金氏 金鎭運 | |
22 | 能玄 | 司馬 | 晋陽鄭氏 | 鄭民秀 | 聞韶金氏 金熙桀 | |
23 | 容久 系 | 陵參奉 縣監 | 眞城李氏 | 李彙薄 | 淸州鄭氏 | |
24 | 錫禧 | 陵參奉 | 豊山柳氏 | 柳道彙 | | |
25 | 大源 | | 眞城李氏 | 李中模 | | |
26 | 仁植 | | 晋陽鄭氏 | 鄭在鵬 | 金海金氏 金裕萬 | |
27 | 星煥 | | 眞城李氏 | 李範敎 | | |
28 | 址洛 | | 平山申氏 | | | |
여강이씨의 시조 세정은 고려 향공진사를 지냈다 5세까지는 별로 알려진 바 없다.11세 언적은 원래 이름이 적(迪)이 었으나 중종이 언(彦)자를 더하라고 명해서 언적으로 불리우게 되었다.옥산서원에 모셔지고 문원공(文元公)이 증시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배위는 함양박씨이고 장인은 훈도인 박숭부이다.후사 없어 종질 응인(應仁)을 입향하였다 12세 응인(應仁)의 생부는 이통(李通)이고 언적의 사촌이다.
조식의 남명집 에는 언적이 아들을 얻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언적이 경주 훈도로 있을때 한 여인을 가까이 했으나 그가 떠나고 나서 여인이 수사인 조윤손에게 의탁해 살다가 7개월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옥강(玉剛)이라고 지었다.언적이 강계로 유배가서 홀로 고생할때 옥강이 찾아가서 부자가 되어고 언적이 그의 이름을 전인(全仁)이라 바꾸었다고 한다.응인과 전인은 모두 언적의 아들로서 법자(法子)와 혈자(血子)의 관계에 있다.
법자가 종택을 지키고 혈자가 회재를 모신 서원을 지키도록 양분 되었다.법통과 혈통을 모두 인정하고 역할을 분담하도록 한 사례이다.지금 옥산서원을 지키는 종손은 전인의 후손이고,양동종가를 지키는 종손은 응인의 후손이다.법자 가계 혼인을 보면 진성이씨 3건,풍산유씨 3건,진양정씨 2건,기타성이 각 1건 씩으로 이퇴계,유서애,정우복 집안 등 주로 안동과 상주 등지의 유가와 혼맥이 이루어졌다.혈자 전인의 혼맥을 보면 몇대를 제외하고는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성씨와 형성된 것이 특색이다.
[출처] 회재 이언적 법자(法子)의 세보(世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