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8 (일요일) 2월의 마지막 휴일/ 맑은 날씨이라 배낭을 챙겨 서울대입구에 도착 후 관악산 일주문을 출발해서
삼성산 숲길을 걸으면서 석수역까지 쉬엄쉬엄 트레킹 하며 석수역을 지나서 안양천변을 걸으면서
구일역에서 마치고 서울 서부지역을 걸었습니다.
흔히 마을의 신앙 물든 그 입구에 세워진다. 그리하여 밖에서 들어오는 재앙을 막고 마을의 안팎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장승은 그런 역할 이외에 절 입구에 세우기도 하고, 길가에 세워 이정표 역할도 하였다
산 정상부에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아 관악산(冠岳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관악산의 능선마다 바위가 많고 큰 바위 봉우리가 연결되어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윤길은 1564년(명종19)~1615년(광해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그의 형등 5형제가 모두 등과 했으니 五子登科의 위업을 달성한 집안이다.
이들 부자의 묘역은 김포 오룡골에 있는데 유독 이분만 이곳에 묘역이 있다.
오룡골에는 가묘가 있다고 한다.
산내음이 물씬 풍기는 잣나무 숲에 이른다
이곳 잣나무 산림욕장은 5ha에 이르는 규모로 쭉쭉 뻗어오른 잣나무 숲이 장관이다.
숲 속에는 여기저기 벤치 및 평상 등을 배치했는데 일찍 왔는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산(三聖山) 성지는 기해박해(1839년) 때 새남터에서 서양인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교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아, 1839년 9월 21일(음 8월 14일)에 군문효수의 극형으로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고보 샤스땅 정(鄭)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삼성산은 서울특별시의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당시 삼성산의 산세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호 갑사(虎岬寺) 또는 호암사(虎巖寺)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고, 다만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義旻)이 상궁 남(南)씨와 유(兪)씨의 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한 기록이 있다. 1935년 만월(滿月)이 약사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약사전과 요사가 있고, 약사전 내에 약사불과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호압사와 연결되는 잣나무 산림욕장
정말 좋은 곳이고 주민들에겐 자랑거리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한우물 및 주변 산성지는 호암산 정상에 있는 길이 22m, 폭12m의 작은 연못 규모의 우물로 네 주변을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산 정상에 있으면서도 늘 물의 양이 변함없고, 항상 맑은 상태로 고여있어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다. 한우물은 용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가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고 전시에는 군용에 대비하였다 한다. 이 연못 모양의 우물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보수를 위한 발굴 당시 확인된 바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이 현재의 연못 밑에 묻혀 있었으며, 그 위에 어긋나게 축석 한 연못이 다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안양천은 의왕시 왕곡동의 백운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군포시 · 안양시 · 광명시와 서울특별시 금천구 · 구로구 · 양천구 · 영등포구 등을 지나 성산대교 서쪽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지명은 하천이 안양 시가지 앞을 지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오늘도 코로나 감염을 피하고 사화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서울 둘레길을 트레킹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