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때로는 완전한 포기가 적극적인 믿음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더니 저가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창세기 22장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태도를 설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처음 주어진 때로부터 25년이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얻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독자 이삭을 데리고 갔습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는 결코 눈속임이 아니었습니다. 19절에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는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진짜로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곧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그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때로 믿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믿음과 관련하여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믿음이라 하면, 세상의 성공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믿음=축복"이라는 공식에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믿음 있는 자는 세상에서도 안정되고 안락한 삶을 살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는 공식만이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간혹 교회에서 열리는 부홍회나 간증 집회의 강사가 ‘내가 이러한 믿음의 행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주시더라. 그러니 믿음을 갖길 바란다’ 라는 식의 주장을 할 때 큰 소리로 ‘아멘’ 하는 것도 우리가 ‘믿음은 곧 성공’이란 공식에 익숙해져 있음을 증거하는 예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반드시 '성공 지향적'이지 않습니다. 때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 실패하는 것 같고, 더 열악한 상황으로 가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 진정한 믿음일 때가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간혹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즉 때로 우리는 ㅂ조다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더 열악한 근무 환경의 직장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으며, 내가 즐기던 운동, 습관, 취미 등을 기꺼이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성공을 향한 수단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에도 순종할 수 있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라고 한 에스더의 각오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아멘'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고후1:20). 이를 마음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인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안락함을 주고 위안을 주던 것을 포기할 것을 말씀하실 때에 기꺼이 그것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드릴 수 있는 참 믿음의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인정하고 섬기는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