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 첫째 아이는 '벨리스 우무토니와세'다.
아이가 태어난 곳은 아프리카 '르완다'이고 2018년 4월생이다.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중간의 아이는 이름이 길다.
'엔조 곤잘로 올메도 아레발로스'다.
2016년 1월에 태어났고 현재 '파라과이'에서 잘 자라고 있다.
장차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아이의 꿈이다.
우측 아이는 '비쉬누마야 바타'다.
국적은 '네팔'이고 2010년 12월에 태어났다.
이 아이의 소망도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 아이를 처음으로 만났을 땐 매우 작고 귀여운 꼬마였는데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젠 하이틴 소녀가 되었다.
최근에 이 세 아이들이 사진을 보내왔다.
잘 자라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다른 아이들도 머지 않아 근황을 보내올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20년 이상, 해외 아동 6-7명을 꾸준하게 후원했고 기도로 응원하고 있다.
만 18세가 지나면 더 이상 후원을 할 수 없기에 안타깝지만 규정은 규정이니까 나도 준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몇 명의 아동들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회로 진출했다.
각자의 조국에서 견실한 기둥이 되어 당당하게 잘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매일 새벽에 큐티를 진행할 때마다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아이들을 위해 기도로 힘을 보태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은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한국에서 매달 몇 만원은 그리 큰돈이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해당 국가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마중물'임을 잘 알고 있다.
시작보다 흔들림 없는 '관계의 유지'와 '기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엮어왔다.
나라도 다양했다.
우리가 소싯적에 미군이 던져주었던 초코릿의 달콤한 맛과 미국의 원조로 받았던 딱딱한 분유 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녹여 마시곤 했던 우유의 기억들이 아직도 내 기억속에 아스라이 남아 있다.
전 세계 200여 개 국가들 중 어느새 한국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 1950-60년대,
우리가 절대빈곤의 질곡에서 허덕일 때 우리를 도와주었던 국제사회의 도움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되었지만 '이', '서케', '회충약', '검정 고무신', '호롱불', '소달구지', '지게', '어루러기', '부뚜막', '기계충(총)', '보릿고개'가 시골의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를 가끔씩이라도 반추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모두 '목나'사 '승려' 또는 '신부'가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직업이나 종교를 떠나, 한국의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며 살아간다면 조금은 더 하심의 자세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일에 작게라도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강요할 문제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타국의 참전으로 힙겹게 죽음 같은 전쟁을 치렀고,
타국의 원조에 의지한 채 생명을 연명했었다.
그런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의 생활 전반에 녹아흘렀던 혹독한 현실이었다.
뜨겁게 현재를 살되, 조금은 낮은 마음으로 과거도 헤아릴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귀여운 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몇 자 적었다.
오대양 육대주, 모든 어린이들의 건강과 해맑은 미소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소망한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