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찾아보아야지
이동민
나는 서부영화를 좋아했다. 이야기는 선한 자와 악당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싸움으로 펼쳐지지만 선한 자가 이기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여기에 푹 빠진 나는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평원을 달리는 것만 보아도 마음이 짜릿해왔다.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무협영화도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 ‘사조영웅전’이라는 길고 긴 무협 연속극이 나왔을 때도 내 딸과 밤 세워가면서 시청한 일도 있었다. 선한 자가 이겼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든 영화나 연속극이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결론도 뻔했다. 지금도 영화를 볼 때는 이야기로 이해하려 한다. 영화가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지금은, 내가 영화를 즐겨보던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긴 세월이 흘렀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들을 간추려 보면, 지금은 넷플리스 라는 회사를 통해서 영화를 무진장으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재미가 없어졌다. 굳이 말할 것까지야 없지만 세월에 밀려 내가 노인이 된 것이 재미가 없어진 이유 중의 하나이다.
지금도 넷플리스가 제공하는 영화들을 뒤적거리다가 서부극이라면 우선으로 선택한다. 젊은 날에 나를 푹 빠지도록 한 즐거움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밤잠을 설치면서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넷프리스의 영화 목록에는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 커크 다글라스가 나오는 전통 서부극 이외에도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온 마카로니 서부극 등등 서부극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가 밤세워가면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서부극이나 마찬가지이다. 영화 이야기를 좀 더 보탠다면 로맨스 극도 재미가 없어 잘 보지 않는다.
노년이 된 지금은 시간이 남아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영화감상을 할 수 있지만, 하루가 지루하여 하품을 하면서도 영화 볼 생각을 않는다.
년륜이란 막연히 시간만 쌓아가는 것이 아니다. 축적된 숱한 경험은 이야기의 흐름을 꿰뚫도록 하였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형성되는 노하우이다. 우리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다음에는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호기심이다. 축적된 경험은 뒷 이야기를 훤히 알게하니 호기심이 생길 리 없다.
그렇더라도 서부영화를 좋아하는 내면의 심리는 그대로이다. 그래도 넷플리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선택하는 것은 서부극이다. 영화는 젊은 날 때처럼 나의 흥미를 일으키지 못함으로 껑충껑충 건너 뛰면서 본다. 뻔한 결론이다 보니 끝까지 보는 일도 거의 없다.
얼마 전에 영화의 안내판을 훑어보다가 미국의 서부극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파워 오브 도그’라는 영화를 만났다. 선전 영상에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내 관심을 붙잡았다. 뉴질랜드의 유명한 여감독이 만들었다는 것도 내 선택을 도왔다.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형제가 나오고, 동생이 사랑하는 여인을 형은 극도로 미워하고, 남성미가 넘치는 형으로 나오는 인물은 전형적인 카우보이이고, 여인의 아들은 여자애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고------, 인물의 성격만으로는 갈등 구조를 충분히 만들어 낼 만 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는 전통 서부극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였다. 그래도 유명한 감독이라 하여 끝까지 보았다. 끝까지 보아도 재미가 없다 라는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영화는 남자 주인공이 급성 질환으로 갑자기 죽으면서 끝이 났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반전을 가져오는 장치로서,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일텐데도 나는 반전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재미 없다’ 였다.
재미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렸던 영화를, 한 번 더 감상했다. ‘파워 오브 도그’라는 영화가 아카데미의 작품상 후보라는 사실을 알고, 또 영화 평론가가 해설하는 것을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어쨌거나 영화를 조금 더 알아야 모임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끼어들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감상할 때 두 번 째로 보면 흥미가 떨어진다. 재미도 없어진다.
해설은 이랬다. 형은 강인하고, 남자다운 외적 성격과는 다르게 동성애자로서의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서부 사회에서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으므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감추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더 거칠게 행동하였는지 모른다. 내면은 여성적이었으리라는 암시를 준다. 때문에 동생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강한 적개심을 내보인다. 반면에 여자애 같은 여인의 아들에게는 호의를 베푼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아이에게서 자신은 모습을 발견하여끼 때문이다. 동생이 좋아한 여자는 심한 혼란으로 술에 파묻혀서 산다. 아들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자기를 끔찍하게 아껴주는 남자가 동성애자임도 알게 되고, 이 남자 때문에 엄마가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도 알게된다 남자 몰래 탄저병에 감염되게 하여 갑자기 죽도록 한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나는 영화 평론가의 해설을 듣고,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첫 번 째 볼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재미를 느낀 이유는 줄거리를 읽는 것이 아니고, 줄거리 뒤에 있는 주인공의 내면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월에 밀려 노년이 되었다. 내가 살아온 나의 세월에만 붙잡혀서 내 방식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노하우라면서 젊은 사람을 가르치려 하였다. 노하우를 벗어나서 재미를 느끼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본 일이 있었던가. 재미있는 삶도 많을 것이다.
이제 찾아나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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