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5~39 / 요한의 제자에게 와서 보라고 하신 예수님
(요 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요 1: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요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 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원종수 박사는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무엇을 원하느냐 물었을 때 지혜를 구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그는 대전고의 성적이 수직 상승하였고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했다고 합니다.
윤광열 목사는 초등학교 때 꼴찌였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어느날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주님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한 번 본 것은 머리에 필름처럼 남아서 중학교에서 일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분이 요셉 국제학교를 설립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타나 무엇을 구하느냐 묻는다면 무엇을 구한다고 대답하시겠습니까?
35~37절 다음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지나가심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두 제자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안드레이고 하나는 저자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셨을까요?
첫째,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을 분명히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거나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는지 분명히 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이 하니까 하고,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위기 따라서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분명한 목적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바른 목적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만 잘 못 된 목적을 가지고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배부르게 먹고, 계속하여 밥을 먹고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떡을 주시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바른 목적을 가지고 구해야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왕상 3장).
예수님은 소경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막 10:51)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주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구원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구합니다. 편리하게 살고자 건강을 구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주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제자는 무엇을 구하였습니까?
38절 예수님이 무엇을 구하느냐 물었을 때 두 제자는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장소를 알고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예수님 자신을 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병을 고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을 알고 싶어서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면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영생을 얻으면 다른 모든 것도 더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더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은 다른 것은 부수적으로 더하여 주십니다.
호세아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과 같이 어김이 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임하시리라”(호세아 6:3)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경외할수록 하나님은 아침에 뜨는 해와 같이 정확하게 우리에게 일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에는 우기에 비가 정확하게 내리듯이 정확하게 우리에게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물었을 때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맡기신 백성들을 잘 돌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와 승리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물었을 때 보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고 예수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예수님만 볼 뿐 아니라 부모도 꽃도 나무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데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을까요?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고 싶다고 하자 예수님은 와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그 집을 오픈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초청하십니다.
권세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를 만나는 문턱이 많고 높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문턱을 없애셨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싶으면 누구든지 와서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초청하십니다.
사람들은 알면 알수록 실망하는 사람이 있고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알면 알수록 좋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수많은 지식의 보화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사랑과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직접 체험해 보아야 합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이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였습니다. 그때가 열시 곧 오후 네 시쯤 되었습니다. 저자 요한은 그 시간이 역사적인 순간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을 가서 보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에서 들으며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때 예수님과 그 부활의 권능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매일 매일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이유도 무엇을 구하기 위해셔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십니다.
우리가 구할 것이 많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님 알고자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자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삶 속에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깊이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실제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