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원하던 날, 모든 환자들을 다 돌아다니며 석별을 정을 나누었습니다.
들어 온지 몇일 되지 않은 50대로 보이는 어떤 환자는 너무 난푹해 의사와 간호사가 대단히 애를 먹습니다.
첫날 그의 부인이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나타났었고 간병인을 붙여주고는 다시는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그에게 가서 안녕히 계시고 어서 완쾌되어 집으로 가시라고 하자 아주 순한 양처럼 공손해 져서
"예. 예"하며 고개를 끄덕이었는데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보호자들이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8층에서 밑으로 내려왔고 내 아내가 차를 대고 이불을 깔아주고 내가 누울때 까지 그동안에 정이든 보호자들과 참으로 헤여지기 싫은 작별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원주를 떠나 영월로 왔을때 태백으로 가는 길이 2 갈래 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상동`쪽으로 해서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상동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아탑` 이란 닠네임으로 나주 (마리아의 구원방주)홈피에서 상아탑으로 글을 쓰는데 나의 다친 소식을 듣고 나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 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우리차가 상동의 탄광촌을 지날때 나는 그에게 감사하며 그가 이곳에서 살았을 어렸을 적을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가 태백을 지나 풍곡이 이르러 덕풍계곡으로 들어가는데 나는 벌써부터 눈물이 납니다. 이곳이 좋아 서울에서 살다가 이사와서 이곳을 얼마나 사랑했고 지나다녔던가!
모두가 정든 모습 그대로 입니다.
집에 이르러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 보니 감개무량 합니다.
다시는 오지못하고 볼 수도 없는 , 나의 발자욱과 나의 손길이 닫지 않은 구석이 없는 이곳에 내가 살아서 다시 돌아왔으니 나는 울음이 북받쳐 울음을 터 뜨리고 눈물을 폭포수 같이 쏟았습니다.
그동안 돌풍이 불어왔었는지 닭장의 양철 지붕이 다 날라갔고 양철지붕이 전깃줄을 끊어 놨습니다.
닭들은 한마리도 없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자 너무 추워 몸이 덜덜 떨립니다.
아내가 요를 2장이나 깔아주고 내가 눕자 이불을 2장을 덮어 주는데도 이까 딱딱 마주치는 소리가 납니다.
아내가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핍니다.
벽에 십자가가 보입니다.
성모님상도 보입니다.
"저 돌아오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계속)
첫댓글 형광등등님~ 힘내세요~~~^*^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