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0 06:04 | 수정 : 2015.10.20 09:18
- 새벽 남강에 솟아있는 솥바위. 잔잔한 물결 속에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고있다.
현장으로 달려간 저는 남강(南江)을 마주했습니다. 남강은 186.3㎞로 함양군 서상면(西上面)에서 발원합니다. 서상면은 해발 1503m 덕유산과 닿아있습니다. 이곳을 흐르는 남계천(濫溪川)이 진양호(晉陽湖)로 흘러들면서 남강이 됩니다. 임진왜란 때의 명장 김시민 목사와 논개의 넋이 어린, 한국의 3대 누각 촉석루(矗石樓)가 있는 진주가 포함된 곳의 옛 지명이 진양군이지요. 함양~진주를 거친 남강은 함안-의령군의 농토를 풍부히 적셔준 뒤 창녕군 남지읍에서 낙동강에 합류합니다.
과연 의령관문(宜寧關門)을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 남강에 예사롭지 않은 바위가 서 있습니다. 전설처럼 물밑에 세 다리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기돗발이 센 곳인지 주변에 누군가 촛불과 막걸리 등을 놓고 기도를 드린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 의령관문 옆 다리위에서 내려다본 솥바위는 육지와 무척 가깝지만 임진왜란 때 격전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 솥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정암루가 서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다.
정곡면은 산세(山勢)가 빼어나지도, 주변 풍광이 인상에 남을 만큼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잘 가꿔지지않은 자연스러운 시골 마을 그대로지요. 그런데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집만은 예외입니다. 호암재단에서 관리한다는데 정갈한 한옥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이 집은 풍수(風水)에 문외한인 제가 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집과 연결된 마두산 자락이 이 집 주변에선 노적가리가 쌓여 있는 노적봉(露積峰) 형상이라는 겁니다. 현장의 문화해설가에 따르면 이 집에는 다음과 같은 기운이 있답니다.
“원래 집과 이어진 산의 이름이 말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마두산(馬頭山)이었는데 호암(湖巖ㆍ이병철 창업주의 호)이 유명해지면서 호암산으로 바뀌었지요. 한문은 틀리지만요. 산의 기운이 흐르다 혈(穴)이 맺힌 곳이 이 집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생가는 호암의 할아버지가 1861년 대지 1907㎡, 즉 600평이 넘는 땅에 남서향으로 지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에 우물 2개, 광이 있는데 이병철 창업주의 성격처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모습으로 보존돼 있습니다.
-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생가 안채다. 이 전 회장이 병을 치료할만큼 약효가 있다는 앞에 보이는 우물은 지금도 수량이 풍부하며 맑지만 너무 깊어 닫아놓았다.
-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생가 사랑채다. 이 전 회장의 성격처럼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 자라의 형상이 보이는가? 이병철 전 회장 생가 뒤 바위의 모습이다.
- 바위가 마치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처럼 생겼다. 이병철 전 회장 생가 뒤 바위의 모습이다.
- 바위가 꼭 쌀가마를 차곡차곡 얹어놓은 것 같다. 이병철 전 회장 생가 뒤 바위의 모습이다.
여기서도 졸업장을 못 받고 속성졸업해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과를 다녔지만 건강이 악화해 1년 만에 중퇴하고 돌아옵니다. 그의 병을 고친 것은 고향 집 우물이라는데 지금도 이 우물은 6m깊이로 맑지만 사고를 우려해 닫아놓았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게 어떻게 어린 이 창업주가 9㎞나 지수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느냐는 겁니다. 알고 보니 이 창업주의 누님이 허씨 가문에 출가해, 지수 초등학교 바로 옆에 살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창업주가 그 집에 머문 거지요.<中편에 계속>
Photo by 이서현
첫댓글 떡! 위에 거부기가 떡!하니 올라탓꾸먼~ * ^.- *
기자님도 해설이 좀 서툼! ^^;;
...
하긴... 나밖에 정확히 해설하능건 아닌쥐....? * ^.^ * 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