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무한 크기와 그 질서 관리자 또는 그 신비의 세계에 대하여 가끔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절대속도임으로 광속보다 빠른 속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제시하였으나,
요즘의 (천체) 물리학자들은 빅뱅으로 어느 순간에 시작된 우주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을 계속하고 있으며,
지구와 태양계를 벗어나는 은하계(Galaxy)는 수兆인지 알마인지 거의 무한의 별을 안고 있으며 우주는 또한 그만한 숫자의 은하계를 포용하고 있다니 우리 인간은 그 크기와 그 無知의 세계를 얼마 큼이나 알고 있으며 세상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존재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혼자서 흥미를 돋우는 때가 있습니다.
말머리를 내 한 생애의 귀중한(?) 80년으로 바꾸어 볼 때,
실은 그 반딧불에도 못 미치는 개미 인간의 한 생애일지라도 돌아보고 그리워하자면 어마어마하게 깊고 넓으며 끝을 알 수 없는 초원을 헤매듯 한 폭의 大歷史이며 서사시를 이룰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137억 년의 우주 나이 속의 인간의 한 생애가 과연 어떤 실존적 의미가 있을지는 도저히 견주어 보기가 허황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내게는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귀중한 한 생애의 기록이지만 그 거대하고 長久한 宇宙史에서 차지하는 한 인간사는 참으로 고려의 가치조차 없는 상대적 무의미가 아닌가.
그런 논리라면 아인슈타인의 성대성 원리는 물리학의 범주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나 실은 모든 세상의 질서를 설명하거나 궁극적 무의미, 무가치의 허무주의에 도달하는 철학적 사고이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의 크기인, 우주의 질서는 한 개의 개체(universe)가 아니라 복수 또는 다수의 우주(multi verse)로 존재하며 ,
우주와 세상의 정체는 실재가 아니라 절대자 또는 절대질서에 의하여 조작되고 있는 simulation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신비주의적 학자들도 있습니다.
결론은 감히 제가 내어보겠습니다.
저는 인간이 탐색하고 규명해 보려고 애쓰는 모든 분야와 그 정체는 실상 우리의 인식이 미치는 극히 미세한 우주의 한 부분에도 도달할 수가 없으며 인간이 탐구하고자 하는 수만 년의 노고는 실상 우주의 크기와 신비의 내용을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저 차원이며 다다를 수 없는 별개의 미지적 무한세계가 어디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반딧불이 귀뚜라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귀뚜라미가 사람의 세계를 알 수 없는 것보다 더 무한한 차원의 別世界!.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으며 소통할 수 없는 별도의 질서 또는 지배자.
우리는 알 수 없음으로, ' 없는 것과 마찬가지 '.
모르는 것과 없는 것은 결국 동일한 현상이 아닌가.
그러니 결국 우리는 어느 궁극적 미지의 세계, 별개 차원의 세상을 알고자 애쓰는 일은 애당초 무의미한 탐색이 아닌가.
32년 전 천주교 영세를 받은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것이 교리에 합당한 신앙이 아닐 수도 있으며,
또는 창조주의 역량을 지구에서 우주로 확대하는 교리 확장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지는 장래의 일일 뿐일 것이다!.
더욱이,
우주가 평행으로 또는 多層차원으로, 無限數로, 존재하며 그 관리자 또한 계급적으로 위로 갈수록 高威力, 高權力의 지배자가 군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를 허황한 미친 소리라고 단정할 수 있는 물리학자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근거로?
이승과 저승의 위치도 확연히 알지 못하는 벼룩 인간이 우주가 평행 또는 다층으로 존재하며 그 권위자가 高低의 계급적 지위까지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들,
피차 저 무궁하며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互相間에 다투어 본들 誤謬와 진실의 판정을 누가 감히 용훼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소멸을 앞둔 마지막 두뇌 震動일뿐입니다.
아휴~.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