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1차대전 때 병사들이 많이 부른 캐럴…
‘고요한 밤’ 탄생의 비밀
1차 대전 ‘크리스마스 휴전’
----지난 2014년 영국의 조각가 앤디 에드워즈가 만든
‘크리스마스 휴전 동상’이 리버풀 세인트 루크 교회
앞에 서 있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총을 내려놓고
함께 친선 축구 시합을 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동상 주변에 심은 것은 1차 대전 추모의 상징인 붉은
양귀비꽃 조형물이다.
양귀비꽃은 1차 대전 격전지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남부
들판에 흔하게 피어 있던 꽃으로 이 광경을 묘사한
존 매크래(캐나다군 참전 군의관)의 시
‘플랑드르 들판에서’를 통해 1차 대전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 위키피디아 >
1914년 12월 24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6개월이 지나 전선이 교착 상태에 들어간
플랑드르 지역. 이곳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미 전사자가 수십 만 명 발생했다.
매일 양이 엄청난 폭탄이 폭발하고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녔다.
병사들이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호각 소리와 함께
적 병사들이 돌격해 오고 아군은 기관총 대응
사격을 했다.
그런데 이날 밤은 웬일인지 달빛만 훤한 가운데
기이할 정도의 정적만이 흘렀다.
깊은 밤중에 돌연 상대편 독일군 부대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잘 아는 캐럴 ‘슈틸레 나흐트
(Stille Nacht)’였다.
8월에 징병당해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전선에
와 있던 프랑스 병사 프랑수아 길렘은 놀라서
주변 동료들을 보았다.
동료들 모두 그와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길렘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오귀스틴, 이번 크리스마스이브를
오랫동안 기억할 거요.
밤 10시경, 독일군이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프랑스인들이 국가를 부르자
다음에 독일인들이 그들의 국가를 부르고 만세를
외쳤소.
프랑스 병사들은 출정가를 불러 응답했소.
전선에서 남자 수천 명이 노래를 부르니 마치 동화
같은 분위기였소.”
“도대체 왜 우린 싸우고 있는거요?”
전선 곳곳에서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이프르(Ypres)시 근처에서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고작 수십 미터의 무인 지대(no man’s land)를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이었다.
밤이 되자 먼저 독일군이 노래를 불렀다.
영국군도 자기들 노래를 했고, 곧 독일군 측에서
잠시 사격을 멈추고 중간 휴식 시간을 두자고
소리 질렀다.
영국군 내 전직 테너와 바리톤 가수가 흉벽 위에
올라가서 열창했고 양측 모두 따라 불렀다.
곧이어 독일군 두 명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에든버러에서 온 분 있소?”
“나요!”
“프린스 스트리트에 있는 이발소 아시오?”
놀랍게도 스코틀랜드 병사는 바로 그 이발소
근처에서 살았었고, 독일 병사들은 전쟁 전에
그곳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이 무슨 기이한 인연인가.
이 근방 남쪽 전선에 자리 잡은 독일군 바이에른
17연대는 전나무를 구해 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촛불로 장식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관습이 없었던 터라, 프랑스 병사들은 처음 이
이상한 물체에 총을 쐈지만 곧 그 의미를 이해했다.
곧이어 카를 뮐레그(Carl Mühlegg)라는 이름의
독일 병사가 과감하게 철조망을 넘어 무인 지대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의 오른손에는 총 대신 전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정답게 인사하고 큰 소리로
‘즈와이외 노엘(Joyeux Noël·
프랑스어로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외쳤다.
프랑스 병사 한 명이 마법에 홀린 듯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곧 양측 수백 병사가 무인 지대로 나와 서로 인사를
나눴다.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의 크리스마스 무렵 독일군
병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당시 전선 곳곳에서 독일군 병사들이 적군인
영국·프랑스 병사들과 담배·초콜릿 등을 교환하며
어울렸다----
< 위키피디아 >
도처에서 이런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
서로 담배를 권했고, 초콜릿과 술을
교환했다.
영국군의 쇠고기 보급품과 독일의 맥주에
대해 서로 칭찬했다.
일부 병사는 기념품을 교환하기도 했다.
주로 단추나 모자였지만, 심지어 서로 훈장을
바꿔 가진 사람들도 있다.
영국군의 기관총 사수 한 명은 전직 이발사였는데,
독일 병사 하나의 머리가 너무 긴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만난 양측 병사들은
“도대체 왜 우리가 여기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거요?”
하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모두 올드랭사인을 부르고 헤어졌다.
한 영국군 병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 “몇 시간 전까지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을 만나
악수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프랑스 병사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헤어지기 전에 마치 오랜 친구가 그런 것처럼
기념품을 교환했다.
한 명은 자기 주소를 적어주며 전쟁 끝나면
만나자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끼리라면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병사의 기록대로
“만일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면 거짓말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 시기까지는 군인들의 사진기 휴대를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군과 영국군이 찍은 사진
수천 장이 남아 있어서 이때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을 증언한다.
심지어 적군끼리 무인 지대에서 축구 경기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1915년 1월 1일 치 ‘타임스’지는 영국 병사들과
독일 병사들 간 축구 경기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후일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라는
문인이 더 멋지게 각색해서,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룬 끝에 영국 팀이 독일 팀에 3대2로 승리했다는
소설을 썼다.
전선에서 축구를 했다는 것은 사실일까,
아니면 허구에 불과할까?
일부 연구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수많은 포탄이 터져 울퉁불퉁해진 땅에서
축구 경기를 할 여건이 못 되었으며, 제대로
된 공도 없었으니, 기껏해야 ‘깡통 차기’ 수준의
놀이를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지만 당시 많은 사람이 고향에 보낸 편지에서
축구 경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비공식 휴전’ 상태를 경험한 사람은
대략 10만명에 이른다.
어떤 곳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해 첫날
아침까지 휴전 상태가 이어졌다.
이런 특이한 사건에 대해 영국 신문들은 크게
보도했지만,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보도를 금지했고,
병사들에게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프랑스 병사들은 개인 서한에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면서 자기들이 겪은 일을
상세하게 전하곤 했다.
참혹한 전쟁 속 ‘인간’을 되찾은 순간
사실 군 지휘부로 보면 이 사태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전쟁 상황에서 적을 죽이는 것이 의무이거늘,
멋대로 무기를 내려놓고 적군과 내통하면
어찌 한단 말인가.
실제로 서로 다정한 대화를 나누었던 군인들은
상대방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싶은 마음이
스러진 것 같았다.
심지어 독일군 측에서
“내일 우리 장군이 시찰 나오는데 영국 병사들
잘 숨어 있기 바란다”
하고 소리쳐 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루이 베르타라는 프랑스 병사는
“오랫동안 비슷한 고통과 위험을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서 돌연 어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해
인간 본성을 일깨운 것 아닐까”
하고 자기 수첩에 적었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사랑해서는 안 되고 증오를 키워서 서로 싸우고
죽여야 마땅하다.
당시 참전한 젊은 시절의 아돌프 히틀러도
병사들이 제멋대로 휴전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군 지휘부는 즉각 사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프랑스군은 비공식 휴전 행사가 일어난 지역에
강력한 포격을 퍼부으라고 지시하고, 그런 일을
벌인 부대는 훨씬 험한 곳으로 보내버렸다.
아직 정신 못 차리고 무기 내리고 다가오는 적병이
있으면 장교가 냉혹하게 사살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주 오베른도르프 마을에 있는
‘고요한 밤 소성당’ 건물----
< 고요한 밤 소성당 홈페이지 >
짧았던 기적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원래의 참혹한 현실로 되돌아갔다.
전쟁이라는 악마의 맷돌이 다시 인간들을
잔혹하게 갈아버렸다.
온 세상에 죽음이 차고 넘쳤다.
그렇더라도 1914년 겨울, 의미 없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하던 병사들이 잠시나마 인간
본래 모습을 되찾는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요한 밤’ 성가의 탄생]
크리스마스 축제 직전 교회 오르간 고장나자
쉽게 연주할 곡 만들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의 오베른도르프
(Oberndorf) 마을에 ‘고요한 밤
소성당(Stille-Nacht-Kapelle)’이 있다.
이름 그대로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이 곡은 원래 같은 자리에 있던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1818년 12월 24일 처음 연주했다.
크리스마스 축제 준비를 하던 차에 오르간이 고장
나자 간단하게 기타 반주로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노래가 필요했다.
부목사 요제프 모르(Joseph Mohr)가 가사를 쓰고
오르간 반주자 프란츠 그루버(Franz Xaver Gruber)가
작곡한 노래가 바로 ‘슈틸레 나흐트’다.
이 성가는 어느덧 전 세계에 알려졌고, 세계대전
중에도 평화를 갈구하는 병사들이 크리스마스에
많이 부른 노래 중 하나였다.
이 노래가 주는 성스러운 평화 메시지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교회를 지었다.
이 성당에서는 매년 12월 24일 오후 5시에 미사를
드린 후 각국어로 ‘고요한 밤’ 캐럴을 노래한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Albatross
저런 전쟁터에서도 수수함을 잃지 않았건만
양심을 저버리고 가짜뉴스,모함,조작,거짓말을
대놓고 해대며 사실인냥 현수막까지 걸고
국민을 우롱 선동하는 악질 범죄자들의 피난
보호처 미친 따불당은 해체만이 정답!
글쎄요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임에도 이러한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세계 대전 보다 더한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을 지들끼리 하고 있다.
기쁨 기도 감사
더불어 버러지당의 흡혈버러지 박멸만이 국가의
안위에 대처하고 국민의 번영을 이루는 길이다
햇살님
러시아 푸틴 잘 보고 배워라 전쟁 이제 끝내라!
전세계인이 다 싫어 하는 전쟁을 왜 계속 하고
있는 지 정말 안타깝다.
푸틴! 정신 차리기 바란다.
주마등
동양이나 서양이나 정치하는 넘들이 전쟁을
일으켜 애?J은 국민들을 죽게한다.
꿈속의나무
마음속에 난로가 켜지네요 이죄놈 문간첩같은
주작파의 끝은 주작으로 국민갈라치기라는걸
지금 극렬하게 겪고있지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민노총 주작당이라는 뻘갱옷을 벗겨서
국가정상화해야 해야합니다
부운거사
기사를 읽다보니 울컥해지네. 이런 기사 보면
성선설이 옳은 것 같은데, 더플백당놈들 보면
성악설이 절대 진리!
베토벤과 모차르트
참으로 따듯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실제 신인가의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어쨌거나 그분으로 인해 전인류가 사랑과 평화를
생각하는 하루를 갖게 됐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은 실존 인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신과 동일시하는 것도 설득력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예수님을 신격화하면서 사랑과
평화를 갈구해 왔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예수님의 역사적 가치와 역할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상마련
서구사회의 무지와광기를 보여 주는 전쟁이다'
무슨 이유로 수천만명의 젊은 이들이 기관총
독가스에 죽어야 하죠?
누굴위해 싸우는 거죠?
참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왜 모든 큰 전쟁은 서구사회에서 일어 날까?
3차대전도 서구사회에서 일어 날 것이다.
그게 그들의 운명 아니 숙명같다.
CHANG007
정치인놈들~~~
지옥에거서 불맛좁봐야한다~~
아포칼립스
영국은 크게 보도하고 프랑스, 독일은 강력하게
단속한 공통점이 있군.
대륙과 섬나라의 차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