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링턴이라는 영국의 해군제독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해군제독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병사하나가 상습적으로 탈영을 하는 것입니다. 군대에 있어서 탈영은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 병사는 붙잡아서 감옥에 넣어두면 또 탈영하고, 붙잡아두면 또 탈영하고.... 사고뭉치입니다. 더이상 이렇게 놓아두다가는 영구 해군의 기강이 무너지겠기에 마침내 군법대로 사형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내리면서 윌링턴 제독은 병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고 싶었다. 제대로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채찍을 들기도 하고, 처벌을 하기도 하고, 강제로 노동을 시키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가르치기도 하고,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되는구나, 그런고로 너는 사형이다.”
그 때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독님, 제독님께서는 저 병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았다고 하셨는데, 단 한 가지 안해보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제독은 곰곰히 생각하고는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병사를 무죄 석방, 용서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병사가 그때부터 좋은 청년이 되었더랍니다.
우리가 사람을 온전히 세워가는데는 사랑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고후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1. 아직까지 기온이 무덥지만 조금씩 선선해 지는 기온입니다. 무더위로 손 놓았던 것들을 기도하며 다시 시작할 준비가 필요합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잘 감당하며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후원의 손길이 함께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하나님의 용서 본문 : 시32:1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C.H.Sp, 1834-1892년)은 "천국은 마른 눈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은 자신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겸손한 인생에게만 허락된 은혜로운 처소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참회하는 인생의 상한 심령을 받으시고, 그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실로 범죄한 인간이 당신 앞에 나아와 숨김없이 그 죄와 허물을 고할 때,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시거나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대신 참회하는 심령을 용서하시며, 위로와 평안을 주십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용서(요일1:9)
1)무조건 정죄하지 않으심 하나님은 마치 세상의 폭군들처럼 당신의 눈에 벗어난 인생을 발견하면 여차없이 징벌하시고 심판하여 내어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의 연약함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시는 분으로서, 우리가 범죄할 때에 그 죄악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범죄한 인생들은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사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요3:16,17). 그리고 구약의 제사 제도 역시 인간을 무조건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범죄한 인간을 절망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2) 용서의 길로 인도하심 하나님은 당신에게 찾아와서 참회하는 인간에게만 용서를 베푸시는 수동적인 분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서는 하나님께 나아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익히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죄악의 자리를 들고 당신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설득하시고 강권하여 주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극적인 몸짓으로 용서를 베풀고 계십니다.
2. 모든 죄를 사하는 용서(시103:12)
1) 어떤 허물도 용서하심 사람들은 자기 주관과 취향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고, 때로 내어치거나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기에게 힘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를 쉽게 용서하려 들지 않습니다. 선별적으로 용서하기도 하고 혹은 비판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에게 나아와 참회하는 심령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리고 그 죄의 정도가 어떠하든지 모두 받아들이시고 그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는 용서 못할 죄가 없으며, 치유 못할 병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하고 찢기고 죄로 오염된 것을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2) 더 이상 기억지도 아니하심 우리들이 자녀를 양육하면서 쉽게 범하는 잘못 가운데 하나는 지난 번 혼을 낸 내용을 가지고 또 언급하며 꾸중한다거나 혹은 지난 번 용서해 준 것을 가지고 또 시비를 걸고 추궁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처럼 지난 허물을 또 다시 기억해낸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난 번에 용서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번 용서하시면 더 이상 그 죄를 꺼집어내어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 바른 인생을 살게 하는 용서(요5:14)
1) 죄의 심각성과 혐오성을 자각하게 하심 인간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건하고 지혜로운 인생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는 죄악됨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연약한 인생에게 말씀을 주시어 그것으로 신령한 거울을 삼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통하여 비로소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악의 혐오성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의 죄악을 뒤늦게 깨달았던 다윗은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51:3,4)라고 참회의 고백을 하였던 것이다.
2)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좇게 하심 하나님은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참회하게 하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깊이 자각하고 참회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따라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이끄십니다. 이같은 사실은 예수께서 38년 된 앉은뱅이를 고쳐주신 후에 그를 향하여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5:14)고 명하신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회한 죄인은 단지 입술만의 회개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새로운 인생을 삶으로써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야만 합니다.
결론 인간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생으로 하여금 그 죄악에서 돌이켜 당신에게로 돌아오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오는 인생에게 용서의 은총을 내리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 주저하며 망설이겠습니까?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넓은 품으로 매일 나아가 참회하며 용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감사 영광올려드립니다~할렐루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