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위리안치圍籬安置를 아는가?
“어서 가라!” 말했다.
산 설고 물설은 땅
삼수갑산만큼 먼 땅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라 했다.
나이 새 파란 손자뻘의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젊은 사람이
내린 지엄한 명령.
한강을 건너 양재역을 지나
달이내 고개. 널다리(판교)를 거쳤다.
김량장, 태평원과 대소원을 지나서
달래강을 건넜다.
수안보의 따끈따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가당찮은 일,
어서 가라, 어서 가, 라는 호송꾼들의
말 채찍 소리 들으며 가는 유배길.
소조령 가파른 고개를 넘자
새조차 넘기 힘들다는 조령 날 망에 이르고
구부야 구부야 이어지는 문경새재.
토끼 벼리를 지나 영강을 건너고, 상주 낙동에 이른다.
그림처럼 물끄러미 서 있는 관수루를
힐끗 치어다 보고.
선산 칠곡을 지나 대구에 이른다.
어허,무심타!
대구의 하늘은 검은 구름이 가득.
금호강 건너 영천을 지나자
해를 맞는 영일에 이른다
영일에서 장기는 지척,
여기가 그 젊은 사람이 노구老軀를 이끌고
등 떠밀면서 가라는 곳이었구나..
찢기고 찢긴 마음과 몸을 내려놓는다.
잠시 쉬는 것도 아니고
탱자나무 울타리로 겹겹이 막아
날아가는 새도 푸른 하늘도 보지 못하게 만든
위리안치圍籬安置. 그래. 여기가 그가 머물 국립호텔.
어느 날인가,
그를 따라와 머무는 골수 팬(신도)에게 물었다.
”내가 한 번이라도 위리를 벗어난 적이 있었는가?“
”아닙니다.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어떻게 그 지엄한 명을 어기겠는가.“
그의 이름은 송자宋子, 공자孔子나 맹자孟子처럼 불리고
성인이라고 추앙받았던 송시열宋時烈,
그곳으로 그를 보낸 사람은
숙종 임금이었고,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위리안치!
오래된 옛날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내렸던 참혹한 형벌이 도처에서
아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나도 그대도 유배객이 된 이 현실이.
그때는 그랬다.”네 죄를 네가 알렸다?“ ”예.“
죄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죄라고 시인하고
모든 형벌을 달게 받았다.
왜냐? 봉건 왕조 시대라서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가 아닌데도
무엇이 근원인지 무엇이 죄인 지
영문도 모른 채 혼자가 아닌 집단이 나라가
봉쇄되고 유배되어 갇히는 세상,
이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고
나와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송시열은 결국 83세가 되던 해
정읍에서 숙종이 보낸 사약을 먹고 세상을 하직했다.
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