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화당 :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관찰사 집무실로 조선시대 관아 건축, 정면 6칸, 측면 4칸 팔작 지붕기와집으로 1601년 최초 건립, 3차례 소실, 현 건물은 1897년 순조 7년 대구 부사인 윤광안 이 건립. 타 선화당에 없는 우물이 있엇고 천정에 용모양의 그림이 특이하다.
▼하마비 : 당초엔 관풍루 남쪽 30보쯤에 절도사이하 개 하마, 절도사
(보통 관찰사가 겸무하는 종2품 벼슬) 이하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비석,
▼ 징청각 앞에서 기념 촬영 :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 2호, 건물은 유일하게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경상 감영 관찰사 처소임. 화재로 선조 34년
1601년에 건림, 정면 8칸, 측면 4칸 팔작지붕이며 3번의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지금의 건물은 1807년 순조 7년 경상도 관찰사 윤광안이 중건하였음.
▼징청각에 대하여 이철호 위원장이 해설하시고...
▼비림에 대하여 해설 : 시대순으로 29개의 비가 있음. 관찰사, 도호부사,
판괸들의 선정비, 영세불망비, 거사비, 창덕비, 숭도비, 애인비로서 백성들과
승려들이 세운 비임. 민응수 관찰사 2기, 사람은 28인.
▼근대역사관으로 ...
▼ 근대역사관:옛 산업은행 대구지점이었으며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 49호,
1931년 일제의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 1954년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 은행은 이전, 대구시는 대구근대역사박물관으로 개관,
르네상스시대 건축양식임
▼ 종로길을 걸어서 화교소학교로 간다.
▼신작로와 대구읍성 : 왜구의 침범을 막기위해 1590년 현 고성동 부근에 부사 윤현이
토성으로 읍성을 구축하여 1592년 임진왜란때 붕괴 된 것을 1736년 관찰사 민응수가
석성으로 축성하였는데, 4대문 - 남문(영남제일관 -지금은 망우공원), 북문(공복문),
서문(달서문), 동문(진동문), 2소문(동서문.서소문)을 설치하였는데 대구군수 박종양이
일본의 건의로 조정의 승인을 받지 아니하고 1906년 파괴,
주춧돌이 동산의 선교사 박물관에 사용되었다.
십자도로, 신작로 및 4성로(동성, 서성, 남성, 북성로) 을 건설하여
대구시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만 읍성의 흔적이 없어 참으로 아쉽기만하다.
▼화교소학교 : 1943년 개교, 타이완 국정교과서로 수업, 1970년대까지
200명학생이 있었으나 지금은 70명 정도로 한국학생도 재학하고 있음.
▼한국대구 화교학교벽에
"禮義廉恥" 선현들이 개인과 국가의 네 가지 근본느오 여긴 덕목
▼대구약령시 골목길을 걸어서
▼약령시에 대하여 해설하시고
▼대구시약령시 : 남성로 일대 -1658년 효종 9년 임의백 관찰사가 경상감영객사내에
약령시를 개설, 1908년 현 위치로 이전 1978년 한방문화축제를 개최 일제에 의해
강제 춘시, 추시 폐장되었으나 1945년 해벙되면서 재개되어 매년 5월에 축제를 열고 있다.
첫댓글 대구문지회의 새싻이요 보배들이 경상감영과 중구 골목을 누비며 많은 공부를 하였군요,
믿음직하고 든든합니다.
이철호 부회장님과 리승주 팀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재에 대하여 열심히 강의해 주신 이철호부회장님과 리승주팀장님께 고맙고 감사합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이어 받아 잘 보존하고 가꾸어 나갈 일꾼들에게 열심히 해설하시며 확실하게 머리속에 넣을 수 있도록 공부에 큰 도움을 주신 이철호 부회장님 이승주 팀장님 애 많이 쓰셨습니다.
언제나 건강 하십시요.
이철호 부회장님과 리승주 이사님 수고하셨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떡잎 부터 안다"라는 名句 따라 항차 차세대의 일꾼으로 키워내야 할 의무가 '이 철호 선생님 어깨에렸습니다. 정말 수고 하셨급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