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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일간지 「ABC」와 대담을 나누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교황 “건강상 문제로 교황직 수행 불가할 경우 사임할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페인 일간지 「ABC」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 건강상 심각하고 영구적인 문제가 발생해 교황직 수행이 불가할 경우 사임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사임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사임서는 교황 재임 초기 교황청 국무원장이었던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제출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도 일찍이 동일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한 교황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세계대전이 됐기 때문에 단기간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2년 내로 여성이 교황청 부서 장관직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박수현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Tarcisio Bertone) 추기경이 교황청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교황 재위 초기에 “건강상 이유로 장애가 발생한 경우”를 대비해 사임서를 제출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일찍이 결정한 바 있는 이 같은 행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페인 일간지 「ABC」와의 폭넓은 대담을 통해 직접 털어놓은 내용이다. 인터뷰는 12월 17일 공개됐다. 교황은 인터뷰 진행자인 훌리안 키로스 국장과 하비에르 마르티네스-브로칼 바티칸 특파원과 대담을 나누며 교회와 세계가 처한 현 상황과 관련한 많은 시사 문제에 견해를 밝혔다. 대담은 교황이 “세계대전이 됐기 때문에 단기간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성 학대 사례 △교황청 내 여성의 역할 및 향후 2년 내로 교황청 부서에 여성 장관을 임명하는 사안 △브라질의 새 대통령의 사례와 카탈루냐 문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2013년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예측할 수 없는 사임 가능성 등을 다뤘다.
사임서
교황은 사임서의 존재와 관련해 “나는 이미 사임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당시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님이 국무원장으로 재직할 때였습니다. 저는 사임서에 서명하고 그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강상 문제가 있거나 (교황직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할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를 대비한 사임서입니다. 추기경님이 보관하고 계세요.’ 저는 베르토네 추기경님이 그것을 누구에게 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이 국무원장이었을 때 사임서를 건넸습니다.” 두 명의 인터뷰 진행자가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냐”고 질문하자 교황은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일찍이 성 바오로 6세 교황도 장애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서면으로 사임서를 남겼다며, 아마 비오 12세 교황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런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제 누군가 베르토네 추기경님에게 ‘그 서한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네요. (...) (웃음) 틀림없이 베르토네 추기경님이 사임서를 신임 국무원장에게 전달했을 것입니다. 저는 베르토네 추기경님이 당시에 국무원장이었기 때문에 그분에게 사임서를 건넨 것이니까요.”
우크라이나 전쟁 “엄청난 잔인함”
이번 대담에는 물론 교황이 그동안 수차례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낸 우크라이나 분쟁에도 초점을 맞췄다. 교황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직설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끔찍합니다. 엄청난 잔인함이 있습니다.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 교황은 이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대전입니다. 잊지 맙시다. 이미 여러 나라가 이 전쟁에 연루돼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대전입니다. 저는 강대국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 그리고 사용하고 팔고 시험할 무기가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해관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황은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백 번도 넘게 냈다고 강조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끔찍합니다. 엄청난 잔인함이 있습니다.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을 끊임없이 규탄하는 것입니다.” 교황은 자신이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세 번째로 그의 종교 자문위원 중 한 명을 저에게 보냈습니다. 저는 연락을 주고받고,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바티칸 외교 “무기는 대화”
교황의 일은 교황청의 외교적 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인터뷰 진행자들은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과 같은 전체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 바티칸이 왜 그렇게 조심스러운지 질문했다. 교황은 “교황청은 항상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한다”고 대답했다. “교황청의 무기는 대화입니다. (...) 교황청은 언제나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인내와 대화로 평화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대 “단 한 건의 사건이라도 참혹”
교황은 성직자에 의한 학대 사례를 한 번도 옹호하지 않고 오히려 격렬히 비난했다. 교황은 재위 기간 동안 성 학대 피해자들과의 만남을 언급하며 “매우, 매우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할 성직자들에 의해 삶이 무너진 이들입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단 한 건의 사건이라고 해도 참혹한 일입니다. 하느님께 인도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삶을 무너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의 역할
「ABC」와의 인터뷰는 교황청 부서의 여성 장관 임명 가능성과 더욱 ‘교회적’ 성격의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교황은 여성 장관이 임명될 가능성을 두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럴 겁니다. 저는 2년 후에 공석이 될 부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평신도가 장관이 될 수 있는 부서를 여성이 이끄는 데 있어 장애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교황은 “성사적 성격의 부서라면 반드시 사제나 주교가 해당 부서의 장관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기 콘클라베
교황은 자신이 임명한 추기경들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서로 다른 지역 출신인 점을 감안할 때 차기 콘클라베(교황 선거 봉쇄 회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논쟁을 불식시켰다. 교황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콘클라베에서 일하시는 분은 성령”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8월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Predicate evangelium) 회의에서 독일 출신의 한 추기경이 “로마에 거주하는 추기경들만 새 교황 선출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한 일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교황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이것이 과연 교회의 보편성인가요?”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성인”이자 “대단한 인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계와 관련해 현 교황은 그를 “성인”이자 “훌륭한 영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묘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교황을 자주 방문할 때마다 그의 투명한 시선에 언제나 “감화”됨을 느낀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님은 유머감각이 뛰어나시고, 명석하시고, 매우 활기차시고, 부드럽고 천천히 말씀하시지만 대화를 이끌어 가십니다. 저는 전임교황님의 명석함에 탄복합니다.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교황의 법적 지위를 규정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제가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성령께서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독일 교회
독일 교회와 관련해 교황은 다양한 반응, 심지어 부정적인 반응까지 불러일으키는 독일 교회의 시노드 과정과 씨름하면서 지난 2019년 6월에 쓴 “매우 명확한” 서한을 떠올렸다. “제가 직접 썼습니다. 한 달이 걸렸어요. ‘형제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하는 서한이었습니다.”
카탈루냐 문제
교황은 인터뷰에서 ‘지중해 만남’을 위한 마르세유 방문이 계획돼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프랑스를 방문하기 위해 마르세유를 찾는 게 아니라며, 교황의 사도 순방의 우선순위는 유럽의 가장 작은 나라들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카탈루냐 문제에 대한 질문에 “각국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역사적 길을 찾아야 한다”며 “천편일률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황은 자체 법령이 있으며 독립을 원하는 북마케도니아 사례와 이탈리아 북부 알토아디제 사례를 언급하면서, 이 사안에서 교회가 견지해야 할 역할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는 어느 한쪽을 위한 선전 목소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결정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동행할 수는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제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사제는 목자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정치적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동행하는 것이지 정치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정치를 하고 싶으면 성직을 떠나 정치인이 되십시오.”
시간의 해석학으로 역사를 다시 읽기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을 두고 부정적인 재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교황은 역사적 사건을 현재의 해석학이 아닌 당대의 해석학으로 해석하라고 초대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피살된 것은 분명합니다. 착취가 있었던 것도 분명하지만 인디언들도 서로 (다른 부족의 인디언들을) 죽였습니다. 전쟁 분위기는 스페인 사람들이 만든 게 아닙니다. ‘정복’은 모든 이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식민지화’와 ‘정복’을 구별합니다. 저는 스페인이 단순히 ‘정복’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를테면 ‘식민지화’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페인 일간지 「ABC」 소속 훌리안 키로스 국장과 하비에르 마르티네스-브로칼 바티칸 특파원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룰라 “사례”
교황의 관심을 끈 또 다른 “전형적인” 사례는 브라질의 새 대통령 이나시우 룰라의 사례다. 연관이 없는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580일 동안 옥살이를 한 이 정치지도자의 재판 과정은 2018년 대선 출마를 가로 막고 대법원이 모든 선고를 파기한 2021년까지 ‘가짜 뉴스’로 점철된 전형적인 사례다. 교황은 가짜 뉴스가 “그의 재판 과정을 호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정치 및 사회 지도자에 대한 가짜 뉴스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가짜 뉴스는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교황에 따르면 룰라 사례의 경우 “재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과정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언론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생산합니다. 재판은 투명한 정의를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관심이 없는 일류 법원과 함께 가능한 한 청렴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오푸스 데이’에 관한 자의 교서
인터뷰 말미에 교황은 지난 7월 오푸스 데이에 관한 교황의 자의 교서 「카리스마 수호를 위하여」(Ad Charisma tuendum)를 언급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디어 교황이 오푸스 데이에게 힘을 실어줬구나! (...)’ 저는 그들에게 아무런 힘도 실어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아, 교황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그 조치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장해서 피해자로 삼는 것도, 형벌을 받았다고 죄인으로 만드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부탁입니다. 저는 오푸스 데이의 좋은 친구입니다. 저는 오푸스 데이의 사람들을 매우 사랑하며 그들은 교회에서 일을 잘합니다. 그들이 하는 선행은 매우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