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3~46 / 빌립을 부르신 예수님
(요 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 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요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즘 젊은이 가운데 스마트폰과 sns의 영향으로 합리적이고 똑똑한 빌립과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메스컴과 sns의 영향으로 예수님과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합리적인 지성인 빌립을 전도하여 제자로 삼으셨고 빌립은 편견이 있는 나다나엘을 전도하여 제자로 삼았습니다.
43~45절 안식일이 지난 이튿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지나가시다가 빌립을 만났습니다. 빌립은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사람입니다. 단번에 남자만 5천 명의 무리를 계산하였고 그들이 조금씩 먹을 때 반년 치의 품삯이 들어간다고 계산한 사람입니다.
빌립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믿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 벳세다 사람인데 안드레와 베드로의 변화를 통하여 그들이 만난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형 베드로를 전도한 안드레는 빌립에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될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알고 있었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인 세계만을 알고 합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보자 빌립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고 단 한 마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자 즉시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빌립이 지성인이지만 예수님을 따라보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아보고자 한 겸손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그 그리스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 문제와 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셔서 인생을 회복시키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빌립은 자기가 만난 그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약 성경에 기록한 그 그리스도임을 증언하였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사람도 예수님을 통하여 성경을 공부하면 변화됩니다.
우리는 지금 합리적인 지성인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믿으)라고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계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정확히 공부하고 삶 속에서 말씀대로 순종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예수님이 우리의 참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의 전도를 들은 나다나엘은 무시받고 사는 갈릴리 땅 나사렛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날 수 있는가 반문하였습니다. 당시에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로 무시받았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미가서 말씀대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말씀대로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할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지역적인 편견을 가진 나다나엘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와서 예수님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라고 한 것처럼 나다나엘도 우리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와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생활하면서 삶에서 직접 예수님을 알도록 도왔습니다.
이처럼 편견이 있는 사람도 다만 예수님께 와서 보라고 해야 합니다.
직접 성경 공부를 해보고 스스로 성경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 좋은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해야 합니다. 그들을 교회의 말씀 공부를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요즘에 메스컴과 sns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뉴스를 많이 전합니다. 목사가 지은 죄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소수의 영향력 있는 목사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광 무슨 목사가 코로나 시대에 안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을 전도하는 법은 좋은 교회를 소개해 주고 그곳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좋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좋은 간증을 듣게 해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의 모습을 나의 삶을 통하여 바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말씀을 통해서 만나게 해야 합니다. 바른 그리스도인임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을 가진 자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좋은 크리스천이 많습니다. 좋은 삶을 살았던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바로 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편견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고 서로 섬기는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좋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요즘의 지성인들과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좋은 성도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