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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스님 이야기
스님께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원적사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마침 옆자리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젊은이가 앉아 있었는데, 중간쯤 되어서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불교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오."
"아니, 팔만대장경도 다 읽어보지 못하고서 어떻게 스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자네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그 맛이 짠 줄 아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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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사에 석재 광산을 하는 한 신도분이 찾아왔다.
스님의 법력(法力)을 존경하여 막대한 거금을 시주하려고 온 것이다.
"이런 큰 돈을 시주하려고 마음내신 것은 이 세상에서 희유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큰 복 짓는 길을 하나 제시할 테니 잘 생각해보시구려.
이 원적사는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다른 절과는 달리 신도도 많지 않습니다.
이 큰 돈은 지금에라도 잘 쓸 수야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살든지 살지 않든지 공부하는 스님들을 위해 다달이 얼마라도 꾸준하게 시주하신다면,
스님들이 생활걱정 하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을 테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이겠소?"
그 신도는 스님의 무욕(無慾)과 깊은 배려에 탄복하고 스님의 말씀대로 따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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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이다.
청화산 원적사는 백두대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패잔병들이 이북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가끔 공비들이 출몰하였다.
탁발을 나갔다가 돌아오실 때면 산 입구에서 군인들이 산 출입을 통제하였으나,
스님은 "달라고 하면 뭐든지 다 줄 것이니 겁날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집을 피워 매번 올라가 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군인들이 통제하는 곳을 통과하여 원적사로 올라가시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솔길 가운데에 웬 큼직한 구렁이 한 마리가 가로누워 꼬리를 '탁탁' 바닥에 치며 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스님께선 그 광경을 보시고는 조용히 발길을 돌리시었다.
산 아래 마을에서 숙박하시고는 다음날 아침에 절에 올라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절간의 곡식이란 곡식은 다 비워져 있고,
부뚜막의 아궁이에는 아직도 타다 남은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공비들이 다녀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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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큰스님이 젊어서 행각하실 때의 일이다.
원적사에 살려고 가시는 도중, 상주 갑장사에 계시는 금봉 큰스님을 참배했다.
원적사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금봉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홍근 수좌가 뭐가 있긴 있는데, 도통 알 수가 없어.
원적사에 가거든 '열반경 40권이 다 마구니의 설법이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라고 한번 물어보게."
지유 큰스님이 다음날 원적사로 갔으나 이 질문을 잊고 정진하시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서 금봉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스님께 여쭈었다.
"그럼, 정식으로 묻게나."
"열반경 40권이 다 마구니의 설법이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다 마구니의 설법(都是魔說)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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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회의장을 맡고 계실 때였다.
스님께서 성철스님을 종정으로 재추대하는 과정이었다.
봉암사 염화실로 이상한 전화가 왔다.
다른 스님을 종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사람이 스님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갖고 봉암사로 전화를 한 것이다.
내용인즉,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전화였다.
"내가 죽어서 우리 불교가 올바로 서고 이 사회에 이바지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와서 나를 죽여라.
그러나 그대가 어떤 이양을 구하고자 이런 행동을 한다면, 인과(因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일로 나 스스로 부끄러운 부분이 없다. 그것은 불보살이 증명하실 것이다."
#서암선사 #정토회
첫댓글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