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일부일처제여...
세간의 관심이 정말 뜨겁습니다. 최태원 노소영 부부의 이혼 소송 말입니다. 입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저까지 남의 부부 일에 말을 섞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위자료 20억 원이란 판결에 한 번 벌어진 입이, 그만 재산 분할 규모가 1조 3,800억 원을 넘는다는 사실 앞에서 다물어지질 않습니다. 1심과 2심 사이에 180도 달라진 재판결과를 두고, 이제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뼈 있는 농담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하기야 한국 사람들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법대로 해!”를 외치고, 거꾸로 자신에게 불리해진다 싶으면 “그런 법이 어딨냐?” 한다니, 이제 “재판은 판사 하기 나름”이란 말이 유행어가 될 판입니다.
노태우 전(前) 대통령이 건넸다는 비자금 300억 원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여의도에선 정경유착의 산 증거라 목소리 높이지만,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 관심은 이제라도 추징 대상이 되는 건지, 비자금도 재산 분할 대상이 되는 건지 내심 궁금합니다.
한데 부부를 둘러싼 복잡다단하고 기기묘묘한 현실을 법이란 뻣뻣한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이 부질없고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옛날 남자들은 두 집 살림하며 다 그렇게 살았구먼.”하는 동병상련부터 “그래도 조강지처 버리면 벌 받는겨.”하는 동정론의 뒤를 이어, “이건희(전 삼성그룹 회장)가 옳았어. 마누라와 자식은 바꾸는 게 아니지.”까지 참으로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저 개인적으로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의 가치를 강조한 판사의 판결문에 유독 눈길이 갔습니다.
언젠가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메릴린 옐롬(Marilyn Yalom, 1932~2019)의 책 <아내의 역사>를 읽다가 밑줄을 죽 그은 부분이 생각납니다. ‘일부일처제는 협상을 통해 여성들이 얻어낸 승리의 산물이다. 남성들은 일부일처제를 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일부일처제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제도란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자식이 적자(嫡子)인지 여부는 남자들에게도 중요했을 것이다. 이를 간파한 여성이 진짜 당신 자식을 낳아 줄 테니 나와 자식을 책임져달라고 담판을 지은 결과가 일부일처제’라는 것입니다. 참 그럴듯한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어차피 역사는 상상 한 스푼에 해석 두 스푼 아니겠습니까?
이때 러시아 작가의 단편소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작가 이름과 소설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스토리만큼은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봉건 영주는 자신의 영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합니다. 아내를 완벽하게 소유하고 싶었던 영주는 아내를 쉬지 않고 임신시킵니다. 10년 결혼생활 중 7명의 자녀가 태어났으니까요.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아름다운 아내는 영주인 남편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7명 아이 중 1명은 당신 자녀가 아니랍니다.”
이때부터 영주의 삶은 극심한 고통과 지독한 번민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듭니다. 어제는 셋째가 의심스러웠는데, 오늘은 다섯째가 달리 보이는 겁니다. 소설은 끝까지 영주 아내의 고백이 진실인지 아닌지, 도대체 7명의 자녀 중 누가 밖에서 나온 자식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작가는 영주의 마음 속 공포와 번뇌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현재 미국의 결혼제도를 일컬어 연속적 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라 부릅니다. 부부가 결혼의 순결을 지키며 서로 사랑하는 동안 엄격한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누군가는 역사 속에서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일부일처제가 구현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제 남자의 외도나 불륜을 눈감아주던 무늬만의 일부일처제는 사라졌다는 것이지요.
물론 여자들이라고 결혼의 순결을 목숨 걸고 지켰을는지는 의문입니다. 영국의 한 의사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신의 환자들을 샘플로, 마침 개발된 친자확인 검사를 해보았답니다. 그 결과, 20% 정도는 혼외자로 나왔다는 기록도 있으니까요.
진정한 일부일처제는 유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제도입니다. 게다가 낭만적 사랑과 결혼제도를 하나로 묶은 서구식 부부중심가족은 태생적으로 불안정성이란 한계를 안고 출발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만큼 혼인 서약을 하는 순간부터 남편과 아내는 최선을 다해 결혼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요. “최태원은 대단하다. 전 국민이 노소영 편을 들게 하다니.” 30대 제자의 촌평이 지금도 귓가에서 맴을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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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죽어지면 썩어질 몸뚱아리...
썩어지기 전에 마이 놀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