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M 콘퍼런스는 무엇인가(무엇의 약자인가)?
'유병 및 사망사례 회의Mobidity and Mortality Conference'의 약자
2. 행크 굿맨(정형외과 의사)의 사례를 요약하시오.
행크 굿맨은 의사가 되겟다는 다짐하고는 외과 의사가 된다. 그는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그 성공에 도취하여, 환자수에 집착한다. 그후 그는 환자를 대충대충 대하게 되고 의료소송에 휘말리는등 서서히 몰락해가다가 결국은 해고 당하고, 자살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3. "의료결정, 누가 할 것인가?" 장, 마지막을 "고마워요." 하고 끝맺는다. 누가 누구에게 왜 고맙다고 하는가?
환자가 자신을 살린 의사에게 한말이다.
사실 의대에 진학하고 난 후 나는 그동안 깊고 깊은 늪에 빠져 있었다. 선배들이 지겹게 설파해대던 멋지게 예과생활을 즐겨라 라는 말의 강박감과, 갑자기 주어진 자유방임의 상태에서 가야할 길을 잃은 나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다. 그저 잘 알지도 못하는 책과 영화에 빠져 사회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우울함에 대해 떠들어대며 그게 겉멋이라고 생각했다. 고삐가 풀려버린 우리 망아지 친구들은 그렇게 1학기를 보내버렸다. 1학기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버린 결과 나는 학점의 냉정함과 사회의 비정함을 온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상대적으로 취업에 대한 걱정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나를 제외한 그들에게는 재수강이라는 험난한 길이 열려 있었고 채워야 할 학점들이 얼굴을 내밀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씹어대던 취업이라는 전쟁터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던 내게 그들은 이 말을 잊지 않았다.
“넌 졸업하면 의사선생님 되잖아”
아... 그랬다.
나는 그들과는 달랐다.
난 그저 앞으로 남은 10년여의 생활을 잘 견뎌내기만 하면 내 손끝으로 아프던 환자들을 벌떡 벌떡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 전지전능하고도도 특별한 존재인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방송매체에서 봐왔던 그 멋진 의사 선생님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나는 그저 어떻게든 유급 안당하고 졸업을 하면 되는 거였다. 열심히 학교만 다녀준다면 학교는 나를 그렇게 멋진 흰 가운 입고 병원을 누비고 다니는 선생님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나의 몽상을 여지없이 깨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도 잘 모른다고.... 그들도 단지 끝없는 불확실성과 싸우고 있다고..
이 책은 피상적으로 매체에서 송신하던 의사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던 내가 그 상태에서 벗어나 그들을 조금 더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하얀 장막에 꽁꽁 가려져 베일 속에 숨어있으면서 그들의 전지전능함만을 과시하던 그 의사들이라는 존재가, 우리 범인들과 다를 바 없는 엄청난 오류의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도 풀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질환들에 대해 무능력함을 자각하며 끊임없이 해법을 찾고, 그 과정에서 많은 치명적 오류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과, 그 어떤 의료적 행위도 불확실하다는 것, 이 것들을 알고 나서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큰 오만과 자만 속에 빠져 지냈었나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음과 동시에 나는 과학(의학도 과학의 한 부분이긴 하겠지만)의 허무주의와 불확실성에 대한 강좌를 수강하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법칙들이 사실 아무것도 정확하게 결정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간의 탐구과정은 얼마나 작고 무의미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는 모든 학문들이 지니고 있는 허무성에 대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각하고 지내왔다.
그러나 내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누구 하나도 의학의 불확실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의학에 대해서 하는 생각이란 ‘의학은 환자들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고 무결하고 숭고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의학에 대한 신비주의는 어쩌면 환자의 신체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되는 의사에게 타당성을 보장해 주기위해 필요한 절대적이고 강력한 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행위는 여태껏 신성하고 절대적인 오묘한 존재였다고 본다. 적어도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는 말이다. 그러나 한 외과의사가 적은 이 노트는 나로 하여금 많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학문적으로 의학이 갖는 불완전함과 더불어 인간이기 때문에 내포하는 의사로서의 불완전함에 대해. 작가는 오만함에 빠져있던 나를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오류의 가능성 과 불가사의 그리고 불확실성 이렇게. 첫 번째 오류의 가능성 부분에서는 의사들 사례 하나하나를 되짚어 봄으로써 ‘의학이 왜 덜 완벽한지’ 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선 풋내기 의사가 한명의 숙련된 의사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도 환자들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에 대한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환자들이 가장 믿고 신뢰하는 병원들은 대다수가 대학병원이다. 대학병원은 말 그대로 의료기관인 동시에 교육기관인데 우리 환자들은 그 대학병원의 교육적 측면을 너무 간과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실력 좋고 명망 있는 의대 교수들에게 진료를 받을 생각뿐이지 이제 막 의사 가운을 입기 시작한 레지던트들과 수많은 인턴들에게는 제공되어지는 실습대상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끊임없이 그들을 연습시키는 대상이고 그리고 그들을 완벽한(덜 완벽하다 해도 훌륭한)의사로 키워내기까지의 위험부담을 고스란히 껴안아야 하는 대상인 셈이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다. 무지몽매하고 단순히 아픈 환자였고 환자 가족이었던 우리 가족은 그들에게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했지만 그렇게 어머니를 수술실로 떠나보냈다. 수술이 끝나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수술실 안에서 마취가 시작되고 그 후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수많은 학생들 덕분에 기함을 하고 쓰러지셨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수업의 ‘재료’로 사용되어 졌다는 사실에 조금 불쾌한 기분을 갖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나 그 병원이 담당해야 하는 교육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그랬다. 그들은 그렇게 도둑 교육을 그리고 도둑 학습을 시키는 것 이었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풋내기 의사의 수련은 이런 식으로 도둑 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는 현대 의료 체계가 피할 수 없는 약점의 하나이다. 또한 병원에서 환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완전무결해 보이는 의사들이 내리는 하나하나의 의료행위가, 실제로는 얼마나 가까스로 운 좋게 위험을 피해가면서 이루어지는 것들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 나온 여러 사실적인 의료 상황들은 내가 지금껏 가져온 의사에 대한 동경을 얼마나 깨주었는지.. 그러나 이러한 위험천만한 상황들은 의사들만이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며 환자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속편한 상황으로 그려지고 있다. 수년간의 임상경험을 통해 의사들은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겠지만 이 책에 나온 예처럼 인간의 복잡한 인체는 교과서 적인 해답이 적용되지 못한다. (사실 나는 인체에 교과서 적인 해답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의사들은 불완전하다고 믿어왔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의사들을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후에 오는 결과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확률적이다.
마지막으로 9000명의 외과의사가 미국 내에 존재하는 것처럼 이미 의사들은 너무나 큰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로 의사집단 내에서도 우울증, 알코올 중독, 이상성애, 또는 질병에 기인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생겨 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생명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의사들에 대한 은퇴 권고나, 퇴출 여부에 대해서는 명예 퇴직 등으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굉장히 미온적이다. 이때 발생하게 되는 위험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가 지게되는게 보통의 상황이다. 그 게 곧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의료가 만들어 내는 불확실함의 또 하나의 원인이다.
두 번째 파트를 읽으면서 나는 의사들이 직면한 불완전함의 위기를 어쩌면 이런 방법으로 보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수많은 불가사의 같은 병들 그리고 의사들이 쉽게 풀지 못한 난제들.. 이를테면 통증, 구역증, 안면홍조 등 말이다. 그런 병들은 어쩌면 현대 의사들이 잃어버린 고대의술에서 존재하던 환자와의 전인적인 관계의 회복을 통해 치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병을 이해하고 단순하게 병을 정복의 대상으로 사고하고 치유하지 못하는 좌절감을 맛보기 보다는 환자와의 전인적인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병에 대한 이해와 환자와의 관계 회복이 어쩌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파트에서 작가가 꺼내놓은 의료 결정권은 최고 결정권을 갖게 되는 의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 인 듯싶다. 책에서 말하듯 우리 시대 의학의 신조는 환자들의 자주권 요구에 대한 철저한 동조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의사들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의료에 대한 정보를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환자가 자주 결정을 행사하기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과연 의사는 충분하게 전달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과연 그 오랜 기간 동안 의학에 대해 배워왔고 다양한 의료적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는 의사들이 하는 의료행위도 이처럼 너무나 불확실한데, 과연 의료 결정권을 얕은 지식을 갖는 환자에게 이양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의료결정권의 이양은 의사들의 책임회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처럼 이 책은 의학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떠들며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악 조건을 이겨내고 내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회의감마저 일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의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의사의 모습에 대해 나는 어쩌면 실망했고, 의사라는 직업의 무능력함을 일깨워준 작가의 담담한 고백을 조금은 원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서문에서 시작했던 말처럼 ‘의학은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하다.’ 이제 나는 현대 의학이 절대 완벽하지도, 무결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의학 자체가 갖는 한계성 보다는 의사가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의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환자와 전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항상 고민하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의학은 현재 우리 생명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으로 존재하며 우리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이다. 현대 의학이 이렇게 불완전하고 어딘가 모자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당당히 서 있더라도 그 결점을 인정하고 고민하며 개선하는 의사의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나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환자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에게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자세는 덜 완벽한 의학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존재인 의사가 환자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