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 목사 "은총·고통 함께 오는게 삶이다"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만리재 고개에 있는 산마루교회를 찾았다.
성탄절을 앞두고 이주연 목사를 만났다.
교회 건물에 걸린 기다란 현수막에는 ‘오늘을 행복하게, 일생 행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2000년 전 아기 예수가 이땅에 온 이유도 그랬다.
인간의 행복 때문이었다. 성탄 인터뷰 첫 물음으로 이 목사에게 ‘행복’을 물었다.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는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면 일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개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왜 “오늘 행복하게 살아라”고 말하나.
“우리에게 날마다 찾아오는 ‘오늘’이 뭘까.
나는 그것부터 생각해 봤다.”
‘오늘’이 대체 뭔가.
“다시 오지 않는 날이다.
그리고 내게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날이다.
이 우주에 무궁무진한 변화가 얼마나 많나.
우주 물리학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블랙홀 하나가 은하계를 삼킬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도 교통사고가 종종 일어나지 않나.
그런 무지막지한 확률 속에서 ‘오늘’이 내게 온다.
안 올 수도 있는 날인데 왔다.”
그만큼 값진 건가.
“그렇다. 게다가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 날이다.
우리는 이틀을 똑같이 살 수 없다.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살 수도 없고, 오늘과 내일을 동시에 살 수도 없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건가.
나는 우리 앞에 주어지는 오늘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 본다.”
이주연 목사는 강원도 평창에 교인들과 노숙인들도 함께 하는 수도 공동체를 조성하고 있다.
이 목사가 직접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밭을 일구고 있다.
오늘 하루를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은총이라고 표현한 오늘이 고통일 수도 있지 않나.
“은총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이다.
오늘은 은총이자, 동시에 고통이다.
고통을 통해 참된 자아가 탄생한다.
다들 각자의 삶에서 견디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축구 선수 손흥민은 월드 클래스다.
그렇지만 그는 세계적인 수준의 강력한 수비수를 상대해야 한다.
실력 유지를 위해 절제된 생활은 필수다.
훈련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건 고통이다.
은총과 고통은 늘 동시에 주어진다.”
이 목사는 “물이 소중한 줄 모르면 그냥 흘려보낸다. 공기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물이나 공기보다 더 소중한 게 있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 하루도 그렇다.
그게 소중한 줄 모르면 그냥 흘러보내게 된다.
결국 하루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삶 전체를 낭비하기 쉽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하루의 가치, 어떡하면 알 수 있나.
“그걸 알려면 죽음을 알아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 끝이 있다는 게 내 가슴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걸 묵상하고 가슴으로 느껴봐야 한다. 그럼 깨닫게 된다.
나의 하루, 나의 삶, 나의 목숨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말이다.”
이 목사는 “내게 주어진 오늘의 가치를 알면 동이 트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큰 행복의 하늘이 동트기 시작한다”며
“사람들은 대개 은총은 좋아하지만, 고통은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은총과 고통은 동행한다”고 강조했다.
이주연 목사는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올리셨던 기도를 기억해야 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 핵심적 방법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예수는 어떻게 기도했나.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이 잔이 저를 비껴가게 해달라.
그렇지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게 기도의 모범, 기도의 나침반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렇게 기도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일상의 고난이 닥친다.
그럴 때 그렇게 기도를 하라는 거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거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달라.
“나는 서울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혈압으로 쓰러져서 그날 점심때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집안 형편도 기울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간경화 진단을 받고 3개월 만이었다. 내게는 큰 고통이었다.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거기에도 은총이 있더라.”
어떤 은총인가.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품기 시작했다.
그 문제를 풀고자 몸부림쳤다.
쇼펜하우어, 칸트, 니체, 키에르케고르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래도 풀리지 않더라.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갔다.
신앙이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지금 와서 보면 그 고통이 제게는 은총이었다.”
이주연 목사는
"지난 삶을 돌아보면 신의 은총과 삶의 고통은 늘 함께 다니더라.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라고 말했다.
삶의 고통도 은총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삶의 고통을 ‘감추어진 은총’이라고 부르고 싶다.
은총은 은총인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흙 속의 밀알처럼 어둠에 덮여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흘러서 깨닫게 된다.
고통도 은총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거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이다.”
이 말끝에 이 목사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과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헛된 것을 추구하면 행복할 수가 없다.
헛되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
가령 쾌락을 추구하면 행복할 수가 없다.
쾌락은 소멸하는 거니까.
반면 사랑을 추구하면 행복할 수 있다.
헛되지 않으니까.
그러니 물질보다 가치를 추구하고, 쾌락보다 사랑을 추구하는 게 좋다.
기뻐하며 선(善)을 행하는 일. 거기에 행복이 있다.”
이제 곧 성탄절이다.
당신에게 ‘성탄’이란 무엇인가.
“EMP탄(폭발로 생기는 강한 전자기파로 상대의 레이더 등 전자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미래전의 무기)이다.
그게 터지면 어찌 되나.
모든 전자기기의 회로가 파괴돼 버린다.
성탄도 그런 거다.”
산마루교회에서 만난 이주연 목사는
"성탄은 한마디로 거대한 사랑의 폭발, 엄청난 사랑의 사건이다"고 말했다.
왜 성탄이 EMP탄인가.
“예수님 당시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사회적 법칙이자 상식이었다.
수천 년째 이 방식이 통용되고 있었다.
페르시아와 로마에서도 그랬다.
현실은 더 했다.
눈을 상하면 목을 치고, 이를 상하면 아예 심장을 뽑아버렸다.
그런 야만의 시대였다.
그런데 예수가 와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씩 용서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며 사랑의 폭탄을 터트렸다.
그 시대에 도저히 통용될 수 없는 언어였다.
결국 예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파문은 엄청났다.”
그 파문은 어땠나.
“예수의 EMP탄에 우리의 기존 의식이 노출돼 파괴돼 버렸다.
운석이 충돌해 공룡이 멸망했다고 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오면서 그런 대충돌을 일으켰다.
공룡의 시대가 끝나고 다음 시대가 열린 것처럼, 야만의 시대가 끝나고 사랑의 시대가 열린 거다.
성탄은 그런 예수가 이 땅에 온 일이다.
창조주가 사람의 몸을 입고서 말이다.
그러니 내게 성탄은 엄청난 사랑의 사건이다.”
이주연 목사는
감리교 신학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샌프란시스코 신학교 목회학 박사원에서 수학했고,
‘기독교 사상’ 편집 주간을 역임했다. 명지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2006년부터 노숙인 사역을 시작했다.
산마루영성아카데미를 운영하며, 10년 넘게 평신도를 위한 영성훈련과 노숙자를 위한 인문사회학
강좌를 열었다.
현재 산마루교회 담임을 맡고 있으며.
강원도 평창의 700m 고지에서 직접 포크레인 운전을 하면서 수도 공동체 조성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둥둥 영혼을 깨우는 소리』『산마루 묵상』『주님처럼』등이 있다.
[백성호의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