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철학을 기반으로 한, 헤겔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어요. 특히 ‘신 존재’에 대한 변증법적인 이해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절대 정신’의 활동을 세계 안에서 인간과 함께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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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아닌 활동 방식에 주목한 헤겔의 관점은 종교철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매김합니다. 헤겔의 역사철학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그리스도교 신학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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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앞서 칸트는 객관적인 ‘신 인식’이 학문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였어요. ‘신 인식’의 문제가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실천을 위해 요구되는 그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헤겔은 칸트의 견해를 학문과 신앙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으로 규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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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도덕적인 질서가 바로 신이라는 피히테의 주장에서도 신 존재의 자기실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자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재확인합니다. 칸트와 피히테의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통해서 헤겔은 학문과 신앙의 분리, 신과 자연의 분리를 부적합한 것으로 보고 이를 통일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역사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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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역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곧, 역사는 그 자신의 원리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을 현실 속에서 실현해 나가는 주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헤겔은 우주와 인간의 역사 전체를 절대자의 자기 전개로 보게 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전개하는 절대자, 곧 신은 인간의 정신에 자신의 활동을 계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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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의하면 신의 계시로 인하여 인간은 자연에서보다 자기 자신을 통해서 절대자의 활동성, 곧 신 존재의 변증법적 운동을 더 잘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이성을 통하여 신성을 지향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 인식이 단지 사유의 활동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활동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 인식’의 문제는 역사의 현실을 떠나 하나의 추상이나 사변이 될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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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위 격, 곧 성부, 성자, 성령의 활동에서 ‘신 인식’의 문제와 역사가 분리될 수 없다는 증거를 제시해요. 영원한 이념인 ‘아버지의 나라’, 신 존재가 자기 자신을 부정하면서 대상화된 ‘아들의 나라’ 그리고 다시 인간의 정신을 통하여 재정립되는 ‘정신의 나라’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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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철학이 사변에 머무르지 않고 신과 역사를 함께 이해하려고 했던 헤겔의 시도는 이후 그리스도교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학의 입장에서는 헤겔의 체계를 온전히 수용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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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칼 바르트와 한스 큉은 헤겔의 역사관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음을 발견해요. 헤겔의 주장대로 역사가 합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죄’나 ‘전쟁’ 같은 불안정한 요소들 역시 합리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큰 토대가 되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라는 사실은 은총과 성경에 ‘신 인식’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입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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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분명 역사를 이루고, 또 역사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근본 물음인 절대자에 대한 앎을 역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어요. 헤겔의 철학은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신학과 역사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관념론에 충실한 철학자의 모습이었기에 적지 않은 과제들을 남겨두게 됩니다.
2024.6.1.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