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사람이다. 딸은 그동안 학교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3월8일 저녁 밥상 앞에서 딸이 물었다. “아빠, 반장은 뭐든지 잘해야 해요” 궁금한 듯 묻는 딸의 눈동자를 보며, 나는 “그렇지 않다.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슨 까닭이냐고 되물었다. 딸은 “오늘 반장이 받아쓰기를 틀렸는데, 선생님이 ‘반장이 그것도 못해’라고 꾸중을 했다”고 대답했다. 아홉살 딸의 눈에 ‘반장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비쳐진 선생님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아빠가 받아주어서였는지 딸은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계속했다. “아빠, 필통에서 연필을 꺼낼 때 소리를 내면 안 돼요” 나는 “연필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데, 왜”라고 되물었다. 딸은 “선생님은 필통을 가방에서 꺼내거나, 필통에서 연필을 꺼낼 때 소리가 나면 안 된다고 했다”며 “필통 지퍼도 소리나지 않게 열어야 하는데, 그렇게 열자니 짜증난다”고 말했다. 딸의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이 놀랐고, 어떤 얘기가 더 나올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너희 담임 선생님 꽤 까다로운 사람이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딸은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것 빼놓고 교실 밖으로 나가면 안 돼. 화장실에 갈 때는 한쪽 복도로 조심조심 갔다 와야 해”라며 “어떤 애는 시끄럽게 화장실 갔다 왔다가 선생님한테 화장실까지 다섯번이나 갔다 오는 벌을 받았어”라고 했다.
2학년에 올라간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딸은 가슴에 담았던 말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모든 게 1학년 때와 너무 달랐고, 새 선생님 지도방식에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더우면 옷을 완전히 벗거나, 벗지 않으려면 윗단추 두 개만 풀어라” “오른손으로 글을 쓰면 왼손은 반드시 책상 위에 올려두라”고 말하는 선생님 모습에서 딸은 ‘저항감’까지 보였다. 딸은 손바닥을 맞고 손을 비벼대는 학생한테 “왜 그래”라며 한대 더 때리는 선생님을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딸은 어리지만 아빠의 말뜻을 잘 이해해주는 심성을 갖추고 있다. 1학년 초 학교에서 자습용 교재로 <소년조선일보>를 구독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딸에게 “그것 안 봐도 되겠지”라고 어려운 주문을 했고, 딸은 “아빠, 나 안 봐도 돼”라며 대견하게 받아들인 적이 있다. 아빠랑 친구처럼 지내고, 뛰어놀고, 웃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어린이다. 그런 딸은 이제 “학교 가기 싫다”고까지 말했다.
나는 딸에게 무언가 도움말을 해주어야 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는 행복하고,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는 괴롭다. 그러나 살아가려면 모든 사람들과 어울리고 적응해야 한다.” 그렇게 설명하면서 나는 매운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을 딸에게 만들어 주었다. “고추장 먹고 더 강해지고, 힘 내!”
그러나 허탈했다. 딸의 고민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반 아이들도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많은 어린이들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딸이 느끼는 것처럼 초등학교 교실 안에 ‘교사 권력’의 횡포가 존재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 아닌가. 더욱이 딸이 말한 대로라면 교실은 30년 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과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아니 그보다 후퇴한 모습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화가 났다. 도대체 교육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초등학교는 미래의 주인이 될 새싹들이 인성을 가다듬고 지적 발달을 돕기 위한 토대가 돼야 한다. 마땅히 교육부는 그 토양에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03년의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교실은 닫힌 공간이 돼 버렸고, 선생님은 권위주의 껍질을 한 켜도 벗겨내지 못했다. 정말 초등학교 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철학은 어떤 것인지 묻는다. ‘어린이의 눈으로’ 초등학교 교육을 바라본 적이 있는지, 아이들이 느끼는 고민을 들어보려고 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나는 교육부와 교육 당국자가 나의 문제제기를 특수한 사람의 개인적인 일이라고 치부해버리지 말고,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엄혹한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으로 초등학생과 교사의 문제를 고민해주길 바란다. 교사를 상대로 ‘어린이 교육 철학’ ‘어린이의 감수성’ ‘참 교육이란’ 등의 주제로 강연회를 마련하는 등 교사 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디즈니 만화영화 중에 <101마리 강아지>가 있다. 강아지 가죽을 벗겨 코트를 만들려는 나쁜 여자 크루엘라와 이에 대응하는 착한 개들의 이야기다. 나는 사랑스런 내 딸과 이 땅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101마리 강아지 신세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군사문화가 판치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지금 아이들만큼은 자유롭고 열린 환경에서 교육받기를 원한다. 과제물 걱정 없이 마음껏 떠들고 놀며, 선생님한테서 평생 간직할 소중한 감동과 추억거리를 내려받는 초등학교 교실이 내가 생각하는 21세기 교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