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대로 홀 안은 한껏 어두웠다. 살그머니 들어온 탓인지 취흥이 도도한 홀 안의 사람들 가운데 나를 주목한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구석에 몸을 숨기고 서서 나는 무대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이제 막 여가수 한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는 중이었다. 은자의 순서는 끝난 것인지, 지금 등장한 여가수가 바로 은자인지 나로서는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대까지는 꽤 먼 거리였고 색색의 조명은 여가수의 윤곽을 어지럽게 만들어놓기만 하였다. 짙은 화장과 늘어뜨린 머리는 여가수의 나이조차 어림할 수 없게 하였다. 이십오 년 전의 은자 얼굴이 어땠는가를 생각해보려 애썼지만 내 머릿속은 캄캄하기만 하였다. 노래를 들으면 혹시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는 긴장 속에서 여가수의 입을 지켜보았다. 서서히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악단의 반주는 암울하였으며 느리고 장중하였다. 이제까지의 들떠 있던 무대 분위기는 일시에 사라지고 오직 무거운 빛깔의 음악만이 좌중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탁 트인 음성의 노래가 여가수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가수의 깊고 그윽한 노랫소리가 홀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면서 대신 악단의 반주는 점차 희미해져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가서 노래를 맞아들이고 있었다. 무언지 모를 아득한 느낌이 내 등허리를 훑어내리고, 팔뚝으로 번개처럼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오싹 몸을 떨면서 또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가수는 호흡을 한껏 조절하면서, 눈을 감은 채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가수의 목소리는 그윽하고도 깊었다. 거기까지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저 노래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분명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랬음에도 전혀 처음 듣는 것처럼 나는 노래에 빠져 있었다. 아니, 노래가 나를 몰아대었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노래는 급류처럼 거세게 흘러 들이닥쳤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여가수의 목에 힘줄이 도드라지고 반주 또한 한껏 거세어졌다. 나는 훅, 숨을 들이마셨다. 어느 한순간 노래 속에서 큰오빠의 쓸쓸한 등이, 그의 지친 뒷모습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까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한 방울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노래의 제목은 ‘한계령’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었던 한계령과 지금 듣고 있는 한계령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노래를 듣기 위해 이곳에 왔다면 나는 정말 놀라운 노래를 듣고 있는 셈이었다.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저 여가수가 은자 아닌 다른 사람일지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온몸으로 노래를 들었고 여가수는 한순간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발 밑으로, 땅 밑으로, 저 깊은 지하의 어딘가로 불꽃을 튕기는 전류가 자꾸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질퍽하게 취하여 흔들거리고 있는 테이블의 취객들을 나는 눈물어린 시선으로 어루만졌다. 그들에게도 잊어버려야 할 시간들이, 한줄기 바람처럼 살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었다. 어디 큰오빠뿐이겠는가. 나는 다시 한 번 목이 메었다. 그때, 나비넥타이의 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로 안내해드릴까요?”
웨이터의 말대로 나는 내가 앉아야 할 테이블이 어딘가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막막한 심정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뒤는, 내가 돌아본 그 뒤는 조명이 닿지 않는 컴컴한 공간일 뿐이었다. 아마도 거기에는 습기차고 얼룩진 벽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웨이터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더듬거리고 있는 내 앞으로 한계령의 마지막 가사가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짐에 돌아와서야 나는 내가 만난 그 여가수가 은자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많이도 넘어져가며 그 애는 미나 박이 되었지 않은가. 울며울며 산등성이를 타오르는 그 애, 잊어버리라고 달래는 봉우리, 지친 어깨를 떨구고 발 아래 첩첩산중을 내려다보는 그 막막함을 노래 부른 자가 은자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한계령>은 양귀자의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1987)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1982년 부천 원미동으로 이사하여 겪게 된 일들과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묶어 <원미동 사람들>을 냈는데, 이 창작집은 1980년대의 한국 단편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변두리 소시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그에 바탕을 둔 꼼꼼한 묘사로 1988년에는 제5회 류주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작품의 전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날, 나는 쉰 목소리의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전화의 주인공은 25년 전 전주의 철길 옆동네에 살던 찐빵집 딸 박은자였다. 은자는 신문사에서 나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며, 소설가의 옛 친구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은자는 내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머뭇거리는 기색이었으나 나는 25년 전 그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던 은자는 지금 밤무대 가수 미나 박이 되어 있었다. 부천의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은자는 다음 주에 신사동에 카페를 개업하게 되어 이번 주까지만 부천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꼭 자신을 찾아오라는 다짐을 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 옛 추억에 잠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나서는 생계를 큰오빠가 도맡아 꾸려가고 있었다. 큰오빠 밑으로 네 명의 오빠와 나, 여동생이 딸린 대식구였지만, 큰오빠는 그 식구들을 늠름하게 잘 키워 성공시켜 놓았다. 언제나 돈이 궁했던 시절, 용돈을 털어 사먹었던 은자네 찐빵은 별미 중에 별미였다. 나는 그런 은자의 전화가 반가웠지만, 은자를 찾아가는 일을 왠지 망설이게 된다.
다음날, 은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 재회를 재촉한다. 은자는 한때 고생했지만, 지금은 아들을 둘 두었으며 성공해서 꽤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은자의 전화를 끊은 나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전주의 옛 고향집에서 큰오빠와 살고 있는 어머니는 큰오빠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매일을 술로 지낸다는 이야기를 한다. 큰오빠는 고생 끝에 얻은 성공 뒤의 허망함을 느끼는 듯 했다. 나는 은자를 찾아가기로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은자가 마지막으로 나이트클럽에 출연한다는 일요일, 나는 큰오빠가 고향집을 팔기로 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는다. 결정을 내리고 나서도 끝까지 고향집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큰오빠가 몹시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은자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짙은 화장을 하여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가수가 부르는 한계령을 듣는다. 노래를 들으며 나는 큰오빠가 살아온 세월과 고단한 삶의 무게가 떠올라 눈물을 흘리며 노래에 빠져든다. 나는 그 여가수가 은자라고 생각하며 그냥 돌아온다. 사흘 뒤 은자는 전화를 걸어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나의 무심함을 질타한다. 그리고 신사동에 ‘좋은 나라’라는 카페를 개업했다며 그곳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찾아오라고 말한다. 나는 은자가 지은 ‘좋은 나라’라는 카페 이름에 감탄한다.
<한계령>에 나오는 옛 고향 친구 은자는 양귀자가 1884년에 발표한 <유황불>이라는 작품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작가 자신의 삶과 작품은 전혀 별개라는 점을 알면서도 <한계령>에서 우리는 작가 양귀자의 유년 시절을 읽는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젊은 나이에 대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큰오빠, 그리고 네 오빠와 동생이 있던 그 시절의 가난이나 궁핍함은 결코 어둠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빗속에서 들었던 친구의 노랫소리나, 형제끼리 용돈을 모아 사먹었던 찐빵처럼 소박하고 따뜻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첫 장면에서 ‘찐빵집 하던 철길 옆의 그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한다. 작중 상황은 옛 친구가 다시 만나자며 전화를 걸어오는 것과 ‘나’의 오빠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옛 친구 은자는 자꾸만 어서 만날 것을 조급히 재촉하지만, ‘나’는 옛 추억 속에서 고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은자를 현실 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일을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은자의 전화를 받고 큰오빠를 떠올리는 ‘나’ - 은자는 ‘나’에게 고향을 상징하고 그런 ‘나’의 고향은 언제나 큰오빠에 의해 이루어지고 지켜져온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은자가 털어놓는 힘든 삶의 여정과 이제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고백은 여태까지 힘겹게 달려왔으면서, 그 도착 지점에 다다라 돌아온 생을 돌아보며 아쉬움과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는 큰오빠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은자를 찾아간 나이트클럽에서 허망하고 적적한 ‘한계령’을 들으며, 어두운 조명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 여가수가 바로 은자일 것임을 확신한다. 고생스럽게 생계를 꾸려온 나의 큰오빠나 밤무대 가수 생활을 하며 고생하던 은자나 모두 안간힘을 쓰며 인생의 산봉우리를 넘어온 사람들이었다고, 노래를 듣는 내내 ‘나’는 생각한다.
황량한 인생의 길을 걸어 그 정상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내려가라는 산울림뿐이었던 것이다. 힘겹게 삶을 꾸려낸 뒤 얻게 되는 인생의 허망함을 ‘나’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가 나이트클럽을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은자를 만나지 않은 채 돌아오게 되는 것은 결국 그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통해, 이미 은자의 삶의 여정을 다 이해했기 때문이다.
은자는 나에게 있어 고향의 표지판이다. 즉, 고향은 모두 변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있는데, ‘나’에게 그런 기억 속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은자이다. 즉, ‘나’는 은자에 대한 옛 기억들로써 고향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변해 버린 은자를 보고서 마음속에 남아있는 고향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은자를 만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 바라보는 인생은 결코 허무한 무엇이 아니다. 결말 부분에서 ‘나’는 은자가 개업했다는 ‘좋은 나라’라는 카페 이름을 듣게 된다. 힘겹게 삶의 음지를 디뎌온 은자가 이제 비로소 다다른 곳은 결국 ‘좋은 나라’였던 것이다. ‘좋은 나라’는 인생의 고단함을 딛고 정상에 다다른 사람들이 허무함을 느끼게 되더라도 결국엔 ‘좋은 나라’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왜 제목이 ‘한계령’일까. ‘한계령’은 소설 속 여가수 미나 박이 된 은자가 부른 노래이다. 1985년 정덕수의 시를 빌어 하덕규가 곡을 붙이고 양희은이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의 가사는 산을 오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지친 어깨를 떠미는 바람뿐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평생을 가족들을 부양해왔지만, 이제는 흘러간 세월 속에서 허무함만을 느끼고 있는 큰오빠를 떠올리게 된다. 허탈감에 빠져있는 큰오빠를 내내 안쓰러워하던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가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를 새삼 느끼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