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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평론>, 2019년
역설의 시학
― 김율도론
맹문재
1.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난쟁이를 비롯한 다섯 식구는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고 토로한 데서 보듯이 힘들게 살았다. 난쟁이는 117센티미터의 키와 32킬로그램의 몸무게밖에 안 되는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 등의 일을 가장으로서 했다. 난쟁이의 아내 역시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 접지 일을 하며 가정 살림을 도왔다. 난쟁이의 큰아들 영수는 몸이 쇠약해진 아버지를 대신하려고 중학교 3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소 공무부 조역을 시작으로 공목, 약물, 해판 과정을 거쳐 청판에서 일했다. 작은아들 영호도 학교를 그만두고 철공소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구공장을 거쳐 인쇄소에서 일했다. 그들은 점심을 굶었고 제대로 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작업했다. 그렇지만 열악한 작업 환경과 흘린 땀에 비해 보수는 형편없었다. 막내인 영희도 학교를 그만두고 큰길가 슈퍼마켓 한쪽에 자리 잡은 빵집에서 일했다.
난쟁이와 그의 아내는 물론 세 자식까지 나서서 일했지만 그들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양식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고, 어떤 희망도 갖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주거지조차 빼앗기기고 말았다. 따라서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라는 난쟁이 가족의 주소지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는 괴리된 곳이었다.
난쟁이 가족의 무허가 집은 재개발사업 구역으로 지정되어 낙원구청장으로부터 철거 계고장을 받았다. 그렇지만 책정된 이주보조금이 15만원이었기 때문에 입주금이 58만 원인 분양 아파트에도, 입주금이 30만원인 임대 아파트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웃들보다 끝까지 버텨 입주권을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25만원에 팔았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건넌방의 전세금 15만 원을 되돌려주고 남은 돈 10만원으로는 어느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난쟁이의 가족은 행복동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집을 빼앗기고 말았다. 주거 환경이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주택을 짓고 도로나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을 마련하는 재개발 사업은 난쟁이 가족에게 불행만 가져온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보면 난쟁이 가족이 삶을 영위해온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는 행복한 주소지가 되기도 한다. 비록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전쟁과 같은 생활에서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난쟁이 가족은 도랑에서 돌을 져와 계단을 만들고 벽에 시멘트를 바르는 등 직접 집을 지었다. 따라서 비록 무허가 건물이었지만 난쟁이의 가족에게 집은 삶의 전부였다. 동네에서 풍기는 냄새가 역겨웠지만 이웃들도 서로의 고통을 알아주고 함께 나눌 줄 알았다. 이렇듯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역설을 통해 집의 소중함과 아울러 이상향의 인간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면은 김율도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렇다
고통과 아름다움은 주로 산 위에 산다
남산타워를 똑바로 응시했던
창신동 산꼭대기 시민아파트
중세의 성처럼 늠름한 아파트는
끝내 사람 손으로 부서지고
나도 머리 둘 곳이 없구나
그래도 여태껏
시계노점 성희 아버지, 중동에 간 건주 아버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산 위의 벌집에서
엄마는 손가락을 찍어가며
몇 백 원 하는 머리카락 정리하는 일을 하고
온 식구가 손가락 다치며 몇 천 원짜리
잣을 까는 부업의 시간
때때로 바람이 집을 흔들었고
별빛 몇 개 흔들려
그냥 어둠이 될 때 산 하나가 날마다 솟고
산 하나가 날마다 무너지는데
지린내 나는 층마다 흘러나오는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늘 취해 있는 401호 아저씨는 으악새만
불러들이고
서정적으로 헤엄치는 창신동 사람 나는
땀에 절어 소금밭 그려진 옷을 입고
낙산 허리 옛 성터에서
삼거리 윷놀이 판과 깡통 돌리기를 뒤로 하고
웃풍 센 겨울밤을 기도하듯 넘기는데
고통과 아름다움은 주로 산 위에서 산다
―「고통과 아름다움은 산 위에 산다」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한때 “산 위에”서 살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산타워를 똑바로 응시했던/창신동 산꼭대기 시민아파트”에 거주했던 것이다. 그곳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 가족이 살아가는 “낙원동 행복동”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처럼 “지린내”가 났다. 또한 “층마다 흘러나오는/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늘 취해 있는 401호 아저씨는 으악새만/불러들”였듯이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이 재개발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중세의 성처럼 늠름한 아파트는/끝내 사람 손으로 부서”져 “머리 둘 곳이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는 허름한 “창신동 산꼭대기 시민아파트”에 불과했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한 화자에게는 “중세의 성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집을 잃게 된 화자는 난쟁이의 가족처럼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때때로 바람이 집을 흔들었고/별빛 몇 개 흔들려/그냥 어둠이 될 때 산 하나가 날마다 솟고/산 하나가 날마다 무너지는” 처지에 놓여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화자는 “고통”을 준 그곳을 “아름다움”의 장소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래도 여태껏/시계노점 성희 아버지, 중동에 간 건주 아버지/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산 위의 벌집에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화자의 “엄마는 손가락을 찍어가며/몇 백 원 하는 머리카락 정리하는 일을 하고/온 식구가 손가락 다치며 몇 천 원짜리/잣을 까는 부업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낙산 허리 옛 성터에서/삼거리 윷놀이 판과 깡통 돌리기”가 이루어진 데서 보듯이 공동체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마치 난쟁이의 가족이 살던 “낙원구 행복동”의 이웃들이 서로의 고통을 알아주고 함께 나눈 모습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화자가 “고통과 아름다움은 주로 산 위에서 산다”고 노래한 것은 주목된다. “고통”과 “아름다움”은 결합할 수 없는 역설의 세계이다. 그렇지만 화자가 체험을 통해 제시한 것이기에 실제의 세계이다. 다시 말해 창신동 산꼭대기에 있는 시민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난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것이 사실이지만, 가족이 매달려 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화자는 역설을 통해 집의 소중함은 물론 이상향의 인간 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
삐뚤어진
입으로 그림 그리네
손 대신
입에 붓을 물고 해와 달
산과 그림자 떨리면서 나오네
입에서 나오는 파열음은
귀로는 보이지 않지만
눈으로 선명히 들리네
먹고 말하는 시간을 줄여
한 달 걸려 새 한 마리 만들지만
온몸으로 온몸을 뒤틀 때
붓을 문 입에서 침이 나오고
침이 갠지스 강물이 되어 캔버스를 적실 때
캔버스는 흐느껴 우네
경련 일어나는 입이 아름다워서.
―「입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 전문
“손 대신/입에 붓을 물고 해와 달/산과 그림자”를 그리는 구필화가(口筆畫家)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파열음”을 “귀로는 보이지 않지만/눈으로 선명히” 듣는다. 그와 같은 경지는 “먹고 말하는 시간을 줄여/한 달 걸려 새 한 마리 만들”려고 노력한 결과이다. “온몸으로 온몸을 뒤틀 때/붓을 문 입에서 침이 나오고/침이 갠지스 강물이 되어 캔버스를 적실 때/캔버스는 흐느껴 우”는 것이다. “캔버스”가 “흐느껴 우”는 이유는 “경련 일어나는 입이 아름다워서”이다. 다시 말해 열악한 조건을 딛고 온몸을 다해 그리는 화가의 정성에 감동한 것이다.
화가가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몰두하는 정도는 다른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상상을 초월하는데, 손을 사용할 수 없어 입으로 작업하는 구필화가의 경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구필화가의 그림은 신체적 장애를 뛰어넘는 인간의 열정과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작업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어 역설의 세계를 이룬 것이다.
역설에 동의한다는 것은 곧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는 자아보다 훨씬 큰 세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지점, 해결책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확하게 일어난다. 이 순간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곳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순간이다.
역설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있는 인간에게 일어난다. 한나라의 유방이 초나라의 항우를 포위하고 군사들에게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하자 항우는 초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붙잡혀 포로가 된 줄 알고 전의를 포기했듯이, 인간에게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어떤 출구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구원자도 없고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그 상황에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때 역설이 일어난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운명을 탓하지 않고 끌어안을 때 자신을 능가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입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에 등장하는 구필화가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손을 쓸 수 없기에 일상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화가는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에 함몰되지 않고 온몸을 다해 길을 찾아내었다. 역설의 순간에 입으로 붓을 문 것이다. 그리하여 캔버스조차 감동해 화가의 그림을 품었던 것이다.
내가 숲에 가는 것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야생동물을 다 감당한다는 의미
내가 그대에게 가는 것은
언제 화낼지 모르는 그대를
감당한다는 의미
내가 그대에게 가는 것은
그대의 허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
사람들이 해충이라 여기는 벌레도
내 몸에 오래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롭듯
그대의 치명적인 결점도
나에게 오면
필수 비타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바다에 가는 것은
빠질 수 있다는 위험을 알지만
물과 내가 하나 되어
내가 영원히 물이 되어도 좋다는 의미.
―「내가 그대에게 가는 의미」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끌어안는다. 가령 “숲에 가는 것은/언제 튀어나올지 모를/야생동물”이 있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다 감당한다”. 또한 “그대에게 가는 것은/언제 화낼지 모르는” 일이기에 선뜻 내키지 않지만 “그대를/감당한다”. 화자는 상대가 호감을 갖고 대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혐오하고 화를 내지만 그 모든 것을 품는 것이다. 결국 “내가 그대에게 가는 것은/그대의 허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해충이라 여기는 벌레도/내 몸에 오래 살다보면/어느 순간에는 이롭듯/그대의 치명적인 결점도/나에게 오면/필수 비타민이 될 수도 있다”고 인식한다. 나아가 “내가 바다에 가는 것은/빠질 수 있다는 위험을 알지만/물과 내가 하나 되어/내가 영원히 물이 되어도 좋다”고 말한다.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대인데도 동반자로 여기는 역설은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자신을 지켜냈기에 일어난다.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점을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시점으로 삼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3.
우리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꽃은 우리에게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길에게
끝없는 꿈을 가졌다고 하지만
길은 우리에게
너 자체가 꿈이라고 한다
나를 잘 모를 때는
꽃에게 물어보라
길에게 물어보라
꽃은 길에서 피는데
길은 끝 간 데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기대는
너와 나
꽃과 길
꽃은 우리에게
아름답다고 하고
길은 우리에게
너 자체가 꿈 덩어리라고 하지만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우리 속에 꽃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곧 길이라는 것을.
―「꽃과 길에게 물어보라」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우리”가 “꽃을 보고/아름답다고 하”면 “꽃” 역시 “우리에게/아름답다고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는 길에게/끝없는 꿈을 가졌다고 하지만/길은 우리에게/너 자체가 꿈이라고 한다”고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나를 잘 모를 때는/꽃에게 물어보라/길에게 물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곧 꽃이고 길이고 꿈이라는 진리를 알지 못한다. “꽃은 우리에게/아름답다고 하고/길은 우리에게/너 자체가 꿈 덩어리라고 하지만/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설의 순간에 그 진리를 깨닫는다. “우리 속에 꽃이 있었다는 것을/우리가 곧 길이라는 것을”을 체득하는 것이다.
역설은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게 해준다. 자기 환경에 대한 부적절한 순응으로부터 깨어나 능동적인 적응을 이끌고, 성숙한 세계인식을 마련한다. 역설은 세계를 감싸 안는 의지의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세계와의 타협이 아니라 진정한 이해이고 전망이다. 역설은 자아와 세계와의 일체를 추구하든, 자아의 재발견을 추구하든 지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김소월, 「먼 후일」 전문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고 화자는 말한다. 먼 훗날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 화자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역설이다. 화자의 역설은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고 말하거나,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고 말하는 것으로 심화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있는 화자가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만큼 화자는 이별한 님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역설은 자기모순의 언어이며 이미지며 의식이다. 그것은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라는 노자의 말처럼 초월적인 진리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지상에 발 딛고 있는 인간의 사랑을 나타내기도 한다.
오래 그리워하면
그리움을 그릴 수 있다
그리움은 그릴 수 있어 그리움이다
그리움을 만질 수 있다면 만지움이다
그리움을 들을 수 있다면 들리움이다
그리움은 듣는 것보다 만지는 것보다
그리는 것이 더 그리움답다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리움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
그리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그리움을 그릴 수 있다
그리움을 그리다보면
그리운 사람이 그림이 된다.
―「그리움 그리기 」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오래 그리워하면/그리움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림을 못 그려도/그리움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에 역설이다. 그리움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대상이므로 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자는 “그리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그리움을 그릴 수 있다”고 일관되게 말한다. 화자가 주장하는 근거는 “그리움을 그리다보면/그리운 사람이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그릴 수 없는 그리움을 그리려고 하는 화자의 마음이 비로소 이해된다. 김소월이 「먼 후일」에서 내보인 그리움과 같이 절실한 것이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창신동 산꼭대기의 시민아파트에서 살았던 이웃이기도 하고,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이기도 하고, 언제 화낼지 모르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자신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 모든 인연을 큰 사랑으로 품는다. 이것이 역설의 힘이고 시의 힘이다.
맹문재(孟文在)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시와 정치』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