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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실크로드를 따라서
기원전 2세기경 로마제국과 중국을 잇는 교역로인 소위 '실크로드'는 이미 트여 있었다. 이 길의 최초의 개척자를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해도 그리 틀릴 것은 없다. 기원전 326년 그는 이 길을 따라 그의 군대를 이끌고 동방원정길에 올라 인도 북부의 젤룸강까지 쳐들어 왔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139년에는 이와 반대로 동방에서 서방으로의 원정이 같은 군사적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전한前漢 무제武帝의 명으로 장건張騫을 중앙아시아로 보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어 동양과 서양을 잇게 된 이 길은 안디옥과 로마같은 지중해 연안의 몇몇 도시에서 시작하여 페르시아와 서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당시 중국의 수도 시안西安까지 이르는 12,000km의 육상 교역로가 되었다.
간단히 말해, 실크로드는 로마와 중국을 상업적 목적으로 연결하는 '아시아 횡단 대 하이웨이'이었던 것이다. 동양의 화려한 비단과 모피, 귀금속, 칠기와 도자기, 계피와 대황大黃, 철기와 청동으로 된 각종 무기등이 서쪽으로 가고, 서양의 금과 각종 보석, 독특한 귀금속, 각종 직물, 상아와 산호, 서양의 잡화와 음악, 춤등이 동쪽으로 이동한다. 또한 카라반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실크로드는 그야말로 동서양의 문명과 문화가 교류되고 교환되는 현장이었다.
멀고 험하기 짝이 없는 여정이었지만, 예수는 이미 14살 때 카라반 상인들을 따라 티베트와 인도에 다녀온 일도 있고 하여 이 길은 그에게 그리 생소한 길도 아니었다. 또한 당시의 티베트와 인도에서 수학한 힌두교와 불교는 그의 삶과 사상에 너무나 큰 영향을 끼쳤고, 이런 이유에서 인도로 가는 길은 정신적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이 여정은 하나님이 내려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니 실로 뜻 깊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예수는 수 일 안에 출발하는 한 카라반을 찾아가 그 대장隊長을 만난다. 그는 짐승의 가죽에 그려져 있는 지도를 꺼내 이를 펴놓고 투르크 Turk족의 나라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카쉬가르까지 가는 길을 보여준다. 카쉬가르가 예수의 중간 목적지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 600킬로 가면 인도의 자뮤 - 카슈미르 Jammu - Kashmir 지방이 나온다. 또 대장은 카쉬가르까지 가는 길에 경유해야 할 주요 정박지나 정류장등을 손가락으로 짚어준다.
이 카라반의 목적지는 중국의 왕도 王都 시안 西安 Xian이고, 카쉬가르 Kashgar는 대략 안디옥과 시안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안디옥에서부터 카쉬가르까지 가는데 경유해야 갈 곳은 첫째 에데싸 Edessa, 다음 니시비스 Nisibis, 테시폰 Ctesiphon, 수사 Susa, 이싸티스 Issatis, 니샤프로 Nishapur, 머브 Merv, 부카라 Bukhara, 사마르칸트 Samarkand, 그 다음이 카쉬가르이다.
대장은 이들을 정류장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들은 다 인구 수 천 명이 넘는 지방의 중심지로서 많은 사람들 특히 외부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경제활동을 하는 그 당시에는 제법 큰 지방 도시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물이 솟는 오아시스 마을로 시작되어 교역소로 발전하였고 지금의 정류장이 된 것이다. 대장은 카라반이 이 정류장에 들리는 것은 사람보다도 귀하고 돈 되는 물자들을 싣고 다니는 동물들을 먹이고 쉬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장은 또한 카쉬가르까지의 여정이 행운이 따라준다면 넉 달에서 다섯 달, 카쉬가르에서 탁실라까지는 두 달 더 걸리고, 일기에 따라서는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는 여정이며 멀고 험한 여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수의 많은 나이와 육체적 조건에 맞는 보조수단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낙타 한 마리와 나귀 두 마리, 그리고 건장한 안내자가 하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실크로드를 몇 번 왕래해 보았다는 한 씩씩한 중년남자를 소개하면서 그와 얘기를 나누어 보라고 권한다. 그의 이름은 나훔 아비자 Nahoum Abijah로 유대인이다. 키는 자그마하나 몸집이 단단하게 생겼고 심성이 착해 보였다. 말을 건네 보니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아 보였다. 그는 간단하나마 힌디어, 히브리어, 아람어 같은 여러 나라말로 할 줄도 알고 낙타몰이에도 썩 능숙하다고 한다. 나훔 아비자는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한다.
"저는 나훔 아비자라고 합니다. 대상을 따라 낙타를 몰고 이곳저곳 다니고 있죠. 선생님이 가시는 곳까지 안전하게 잘 모시겠습니다." 예수는 답한다. "나는 유즈 아사프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네." 그 날 저녁 예수와 나훔은 빵과 포도주를 앞에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훔이 주로 이야기하고 예수는 듣는다. 나훔은 실크로드 장정 중에 있었던 경험들을 자랑스럽게 줄줄이 늘어 놓았고 그의 여정 중에 사마르칸트, 카쉬가르, 탁실라, 툰황등 실크로드상의 큰 도시들을 대부분 다 들른 적이 있다고 한다. 예수가 인도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자, 그는 또 말한다. "아사프 선생님, 인도 땅에 들어서면 인도사람은 우리 유대인과 많이 달라요. 외모도 다르지만, 윤리 도덕도 다르고 생활 습성도 더욱 다르지요." 그는 또 이어서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음식을 요리할 때 식물에서 짠 기름을 쓰지만, 그들은 지방이나 유지를 쓰지요. 우리는 옛날 이집트에서 탈출했을 때부터 생선을 물에 삶아 먹었지만, 인도사람들은 기름에 튀겨 먹어요. 보세요, 우리 부엌칼은 반달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칼은 그냥 길쭉해요." 나훔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예수는 그리 깊은 맛은 없지만 그러나 대체로 박식하고 경험 많은 이 안내자에게 흥미를 느낀다. 특히 그가 여기저기 꽤 많은 지역을 다녀봤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이보게, 아비자, 인도에 대해서 좀 더 들려주게나." 나훔은 이 말에 더욱 고무된 듯 어깨를 들썩이고 두 팔을 휘저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아사프 선생님, 그러나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 서북부에 들어서면 오래된 무덤들이 있어요. 그들은 머리를 동쪽으로 발을 서쪽으로 해서 시체를 묻은 것을 볼 수 있지요. 바로 유대식이지요." 예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이자 그는 신이 나서 말을 계속한다. "무덤의 비석들을 보면 히브리 글자로 쓴 비문들이 눈에 많이 띄죠. 인도인이 쓰는 글자 산스크리트 Sanskrit가 아니죠. 또 그 지방의 신전이나 사원을 둘러보면 유대식으로 지은 걸 금방 알 수 있지요. 이런 유사점들은 다른 지방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어요." 예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중단시킨다.
"나훔 아비자, 얘기를 계속 더 듣고 싶네만 오늘밤은 이만 해 두세. 같이 여행하면서 이야기 할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하여튼 오늘은 고맙네." 나훔은 한마디 더한다. "아사프 선생님, 행선지가 인도의 어느 지역인지 모르겠지만 간다라 Gandhara나 카슈미르에 한번 들려 보세요. 제가 잘 안내해 드릴께요." 예수는 자신의 행선지가 탁실라 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는다. 그는 어느 사이엔가 나훔을 그의 안내자로 결정하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나훔 아비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인도 서북부요. 이 여정에서 나를 좀 도와주기 바라오."
몇 주 후 예수와 나훔이 속한 카라반 전체가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안디옥을 떠나 동쪽으로 가는 대장정에 오르게 된다. 이 때가 서기 58년 봄이다. 40여명의 카라반 일행 속에는 여러 인종과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이 일행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하여 동행하는 호위무사들도 여럿 보인다. 대부분이 다 상인들로 보였고, 그들이 끌고 가는 낙타, 말, 나귀 같은 80여 마리 동물들의 등에는 무거운 짐들이 실려있다. 출발준비가 다 된 것을 확인하자, 대장은 모든 사람과 동물들을 정열 시켜놓고 엄숙하게 큰 소리로 기도를 올린다.
"신령들이시여! 여정 중, 카라반을 자연재해로부터 지켜 주시고 사막의 악령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을 막아 주소서!"라고.
이것이 이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이제 카라반 일행은 토러스 Taurus 산맥 끝자락인 시필러스 Sipylus 산을 북쪽으로 바라보면서 안디옥의 복판을 흐르는 오론테스 Orontes강을 건너 도시를 벗어난다. 몇 시간 후 그들은 평평하고 넓은 초원을 지나서 산악지대로 들어가고 있다. 동쪽으로 계속가면 에데싸 Edessa가 나온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동물들의 발굽소리만 요란하다. 나훔은 혼자 중얼댄다. '생각해 보니 어제 밤 그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고 나만 떠들어 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노인한테는 뭔가 특이한 데가 있어. 도대체 이 노인은 누구인가? 이름이 유즈 아사프라고 했지.' 나훔은 예수의 뒤를 쫓아가면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왼쪽 다리를 조금 절지만 오른 쪽 손으로 지팡이를 짚어 균형을 유지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꽤 힘차게 걷고 있다.
나훔은 그의 용자(容姿: 얼굴과 자세)를 자세히 관찰한다.
'그는, 지금은 때가 묻어 회색에 가깝지만 흰옷을 입고 있다. 6척에 가까운 키에 어깨는 아래로 쳐져 있지만 균형있는 몸매, 비교적 길쭉하고 거무스름하지만 고운 피부의 얼굴, 담청색의 큰 눈과 긴 속눈썹, 흰털이 반쯤 섞였지만 그래도 꽤 진한 눈썹, 흰 머리카락이 많이 섞여 있어도 검정 색이며 양쪽어깨로 갈라져 흘러내리면서 끝은 약간 말려있는 긴 머리카락. 젊어서는 미남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얼굴의 윤곽과 걷는 모습으로 보아 필시 유대인일 것이다.'
그의 날카롭고 꿰뚫는 듯한 눈매와 표정으로 그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지금 나훔에게 예수는 하나의 큰 수수께끼이다. 나훔은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는 예언자인가? 수도사인가? 그는 랍비인가?' 그는 겸손하게 보이면서도 위엄과 카리스마가 있다. 인간적인 매력도 풍긴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고대 페르시아 수도 「수사」 Susa
예수는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때로는 나귀나 낙타를 타기도 하지만 일행 모두들 계속 그냥 걷는다. 평지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사막을 가로 지른다. 때로는 무서운 모래 폭풍이 몰아친다. 눈 덮인 산을 오를 때도 있고, 꽃이 만발하는 초원을 지나가기도 한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기도 하고,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도 만난다. 돌연한 맹수의 출현으로 일행 전부가 혼비백산한 일도 있다. 대개 낮에 걷고 밤이 되면 쉬지만, 어떤 구간은 낮에 쉬고 밤에 걷기도 한다. 어떤 밤은, 별들이 불꽃놀이 처럼 현란하고 팔을 뻗으면 손이 닿을 듯 가깝다.
예수의 육체는 걷고 있지만 실상 그는 항시 깊은 상념에 잠겨있다. 그의 머리는 쉬지 않고 생각한다. 예수는 십자가형 이후 오랜 시간을 은둔생활로 보냈다. 가끔 제자들을 만나 교리와 그들의 선교활동 방향을 정립해주고, 때로는 그들의 행동거지에 대해 질책하기도 하고, 어려울 때는 그들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외부에 나서서 행동하는 것은 자제하고 또 조심해왔다. 이제 그는 걸어가면서 십자가형 이후에 자신이 한 일들을 회고해 본다.
그가 길을 걷는 시간이 예수에게 귀중한 반추의 시간이 되어 주고 있다. 예수와 나훔이 속한 카라반 일행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에데싸를 지나고 티그리스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 보름쯤 지나 니시비스에 도착한다. 안디옥에서 니시비스까지는 1,000킬로미터가 넘는데 걸린 시간이 두 달가량이니 카라반의 진행이 꽤 순조로운 셈이다. 카라반의 대장이 그렇다고 말한다. 그들은 니시비스에서 나오면서 방향을 남쪽으로 돌린다. 여기는 아시리아 왕국의 땅이다. 티그리스 강을 서쪽으로 보면서 강의 흐름을 쫓아 테시폰 Ctesiphon을 향한다. 이 구간은 평탄한 길이다. 비교적 쉬운 길이다. 일행은 이제 서로 대화의 상대를 찾아 얘기를 주고 받는다. 농담도 하고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 잘 된 결정이라고 하며 자찬하기도 한다. 카라반의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평탄한 길에서 시간을 벌어 두려는 것이다.
이런 속도로 삼십여 일을 가면 테시폰에 도착할 것이다. 또 테시폰에서 수사까지는 적어도 300킬로가 넘는다. 이십여 일 더 가야 하는 거리이다. 카라반은 계속 전진한다. 사람과 동물들은 계속 움직인다. 그들은 왜 자기들이 이렇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저 움직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움직인다. 그들은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걷고 걷고, 가끔 쉬고, 먹고 자고, 걷고 또 걷는다. 그 걸음은 보상이 있었다. 마침내 테시폰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이삼일 쉬어간다고 한다. 모두에게 반가운 이야기이다. 짧은 쉼이었다. 그들은 몸을 추스르고 짐을 챙기고 다시 움직인다. 카라반은 테시폰을 떠나 20여 일을 걸어서 페르시아의 수사에 들어오고 있다. 이 지방은 조로아스터의 땅이다. 수사의 시내에는 승려복장을 한 조로아스터 성직자들이 가끔 눈에 뜨인다.
나홈은 예수에게 묻는다. "아사프 선생님, 조로아스터교에서 최고의 존재인 하나님과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지요? 둘 다 같은 게 아닌가요?"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부터 유대교와 함께 중동과 아시아에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교리는 침례, 성찬, 부활과 영생,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인간과 신의 매개자 자라투스트라 Zarathustra, Zoroaster, 그의 처녀수태, 최후의 심판, 천당과 지옥등 신흥종교인 그리스도교와 너무나 흡사하다. 사실 모두 똑 같다. 이 종교로부터 파생한 유사종교가 시리아의 미트라교 Mithraism이고 BC 60년대에는 로마제국에도 도입되었다.
나홈을 한낱 장사꾼으로만 생각해 온 예수는 내심 놀란다. '나홈이 보기보다는 생각이 깊구나!' 예수는 더 이상 말을 회피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제 대답을 해주고 싶어졌다. 드디어 예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보게, 나훔 아비자, 내가 알고 있는 바는 이렇다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갑자기 새로 생긴 하나님이 아니지. 그 분은 여태껏 항상 존재해 오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실 그런 분이지. 우주의 모든 것, 그리고 우주자체가 없어진다 해도 그는 계속 살아 계실 분이지. 그리스도교에서는 조로아스터교와 달리 그런 유일하고 독특한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걸세. 또 하나 다른 점은 그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조건없는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그 사랑을 얻느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누리느냐? 그것 또한 사랑이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조로아스터敎의 창시자 예언자 「조로아스터」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믿는 고대 페르시아 종교다
나훔은 충격을 받은 듯 한참동안 침묵한다. 그는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이렇게 쉽게, 이렇게 선명하게 종교의 어려운 교리를 설명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이 노인의 정체를 나는 알 것 같다. 그는 랍비일 것이다. 그는 선지자일 것이다. 설마 십자가형을 받고 승천하였다는 예수 그 사람은 아니겠지. 예수는 하늘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그의 제자 중의 하나일 수도 있지.'
어쨌든 나훔의 궁금증은 가라앉았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그의 발걸음도 한결 경쾌해 졌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편안하다. 다 아름답다. 멋지다. 카라반 일행 한 명 한 명이 다 좋은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함께 걸어가는 동물들도 모두 다 사랑스럽기만 하다.
수사를 떠나면서 나훔은 서쪽을 가리킨다. 수메르의 옛 도시 우르 Ur 지방이다.
"아사프 선생님, 이 동네에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일족들이 모여 살았지요. 큰 기근이 닥쳐 사람과 동물들이 먹을 것을 찾아 가나안 Canaan지방으로 이주하기 전까지는요. 그들은 우리가 니시비스에서 티그리스 강을 끼고 한 달 이상을 걸어 온 이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지요. 서북쪽으로 에데싸 근방의 하란 Haran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가나안을 향해서 다시 떠납니다. 이번엔 남서쪽으로. 그렇게 해서 결국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북쪽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갔다가, 우르에서 가나안까지는 2,000킬로가 넘어요. 제 생각으로는 그때 히브리인들이 이렇게 이동하게 된 것은 유목민의 삶이 너무 힘이 들어 짐승도 기르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그런 땅에 정주 定住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도 잠시, 기근 때문에 그들은 다시 이집트로 이동을 하게 됐지요."
나훔의 얘기는 그럴듯한 얘기다. 사실이다. 예수는 나훔의 얘기를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훔은 한참 걸어가다가 불쑥 묻는다.
"아사프 선생님, 요즘 새로 생긴 예수교 말이죠. 근래 유대지방에서 그리스 로마에서 까지 떠들썩한 예수라는 랍비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가 부활하여 승천한 것이 사실일까요? 물위를 걷는 것을 실제로 본 사람이 있나요?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몇 천명을 먹이고도 떡 부스러기가 남았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 강 가까운 곳에 있었던 고대 수메르의 도시 우르 Ur(좌측 붉은 원안에 있는 )위치와 유적지
예수는 움찔한다. "이 사람이 나를 알아본 걸가? 본디 나를 아는 사람인가?'
사실 그는 은둔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다. 또 예수가 움직일 때는 베드로든, 안드레든, 때로는 막달라 마리아든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었다.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나 시중을 들기 위해서, 사실 이렇게 혼자 떨어져 여행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예수는 잠시 주저하다가 답한다. "글쎄, 나도 그런 얘기들을 들어보기는 했네만, 난 잘 모르겠네." 또 나훔의 질문은 어찌 보면 참 단순하기까지도 하다.
"아사프 선생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을 예수가 '나오너라'하는 한 마디로 동굴에서 걸어 나오게 한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또 바울과 베드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묻는다. 또 아리마대의 요셉은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묻기도 한다. 사실 나훔은 묻는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편에 가깝다. "아사프 선생님, 할례가 왜 그리 중요합니까?" 나훔이 다시 묻는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예수가 대답한다. 곧 "미안하네"하고 덧붙인다. 나훔은 다소 의아해 하는 눈치다.
'이상하군. 유즈 아사프 노인, 그를 만난 곳은 신흥종교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라고 알려진 안디옥인데 ... 어느 모로 보나 이런 일들에 대해 알만한 랍비가 틀림없는데 자꾸 모른다고만 하니,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그는 화제를 바꾼다. 나훔은 이 노인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 안디옥에서 이 노인은 자기 이름을 유즈 아사프라고 하였다. 예수는 걸음을 계속하면서 생각한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나훔의 질문에도 적절한 답을 해주워야 하지 않겠는가.'
수사를 떠난 지 이십여 일, 카라반 일행은 이싸티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며칠 동안 긴 휴식을 갖게 된다. 여기는 페르시아 왕국이다. 안디옥을 떠나 여기까지는 낙오자 없고 동물들도 다 무사하다. 카라반은 다시 움직인다. 카라반이 움직이는 속도는 사람이 아니라 낙타들이 결정한다. 낙타의 보조에 맞춰 나머지는 그저 쫓아간다. 예수도 쉬지 않고 걷는다. 생각하면서 계속 걷는다. 걸으면서 계속 생각한다. 일행은 이싸티스를 떠나 니샤프르 Nishapur를 향하고 있다. 니샤프르는 안디옥에서 목적지인 탁실라까지 가는 거리의 중간즘 되는 곳이다.
그러나 니샤프르를 지나 호라산 Khorasan고원을 통과하면 험준한 산악이 나오고 기상의 변화가 심해서 여행이 몇 배나 더 어려워진다. 일행은 다쉿 에 카비르 Dasht-e Kavir 사막과 다쉿 에 룻 Dasht-e Lut 사막 사이를 통과하고 동북쪽으로 1,000킬로 이상을 걷고 또 걸어서 그들은 마침내 니샤프르에 도착한다. 나샤프르 오아시스에는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가는 곳이다. 그곳에는 '카라반세라이 Caravanserai'라고 하는 중앙에 넓은 뜰이 있는 대상 隊商들을 위한 숙박소도 있고, 고기. 생선. 과일. 채소 등 먹을 것도 많다. 며칠 쉬는 동안 카라반의 대장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부상을 당했거나 병약하여 더 이상 여행을 계속 할 수 없는 사람을 골라내는 것이다.
이 낙오자들은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이곳에서 한동안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한다. 쉬고 치료를 받으면서 뒤에 오는 다른 카라반을 기다려 그들과 동행하던가, 또는 서쪽으로 가는 카라반에 합류하여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장의 지시를 거스르고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너무 위험해서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너 댓 명은 그들이 타고 온 예닐곱 마리의 말과 낙타와 함께 니샤프르에 남게 된다. 낙오자들이다. 그들은 떠나가는 카라반 일행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카라반 일행은 곧 시냐프르를 떠나 이제는 북쪽으로 어렵고도 험한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카쉬가르까지 가는 동안 전개되는 대자연은 모두가 지나치게 가복이 심하다.
산세의 아름다움, 그림 같은 폭포, 구름 없는 하늘, 선명한 색의 깃털을 자랑하는 새들, 그들의 지저귐, 뛰어 지나가는 산짐승들의 아름다운 모습, 땀을 식혀주며 지나가는 바람, ...이러한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숨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 지나가는가 하면, 자연은 순식간에 표변하여 사람에게 인내를 시험하게 하고 때로는 극심한 고통으로 고문하기도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폭염의 사막, 그리고 순식간에 사람과 동물의 생명을 앗아가고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모래폭풍, 짐승들도 오르내리기를 거부하는 가파른 바위산길, 그 위로 겹쳐 휘몰아치는 돌풍과 폭우, 눈 깜짝할 새 불어나 길을 끊어버리는 급류, 방향마저 잃게 하는 눈보라, 천 길 낭떠러지 위로 위태위태하게 난 길, 그 통로를 지나갈 때는 대상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신이시여, 보살펴 주소서!' 소리가 신음처럼 새어 나온다. 짐을 실은 짐승들마저 긴장하는 지경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르는 맹수들, 밤만 되면 무리지어 대상들의 주위를 맴돌며 울부짓는 늑대들, 무엇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사람이다. 산적들이다. 그들은 대상들의 돈과 값진 물건을 노리고 덤벼든다. 이런 위험, 위협, 그리고 고통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닷새, 엿새, 일주일, 열흘씩 계속된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일행중에는 다시는 카라반 여행길에 나서지 않으리라 마음먹는 사람들도 있을리라.
거의 의식하지 않고 본능에 따라 산을 오르고 내리고 사막을 걷고 먹고 자고 이렇게 계속 움직이는 가운데 일행은 어느덧 머브 Merv를 통과하고 부카라를 거쳐 사마르칸트 Samarkand에 와있다. 일단 시련과 고통은 대충 끝난 셈이다.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큰 부상도 없고 다들 온전하다. 말과 낙타 몇 마리는 모래 폭풍 속에서 잃어버렸고 일부 귀중한 짐들도 같이 없어졌지만, 사람들에게는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안도와 기쁨이 솟아난다. 긴 휴식과 체력보충이 필요하다. 여기서부터 카쉬가르로 가는 길은 좀 낫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의 순서가 바뀔 뿐이지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카쉬가르에서는 일행이 두 세 갈래로 갈라진다. 그러나 대부분 우루무치 Urumqi를 돌아서 툰황이나 시안으로 가는 상인들이다. 안디옥에서 여기 카쉬가르까지 온 거리는 6,000킬로 가까이 되고 여기서부너 탁실라까지는 500킬로 정도 남았다. 그러나 그저 순탄한 길 500킬로는 아니다. 먼저 동남쪽으로 걸어서 야르칸트 Yarkand로 간다.
야르칸트는 파미르 Pamir 고원과 타클라마칸 Taklamakan 사막의 접경지대이다. 야르칸트에서 야르칸트 강을 끼고 이번에는 서남쪽으로 가야한다. 그 다음 훈자 Hunza 강을 건너고 카라코람 Karakoram 산맥을 넘으면 길기트 Gilgit이고 길기트에서 인더스 강을 건너면 탁실라다. 탁실라는 카쉬가르에서 정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이처럼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우회하는 이유는 산악이 너무 험준한데다 천기도 대체로 나쁘고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이리 저리 사람이 갈 수 있는 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탁실라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20일에서 한 달은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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