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북동 나들이에 좋은 코스를 소개할까 한다. 전통 찻집 '수연산방(壽硯山房)'과 보석 같은 맛집 '송스키친(Song's kitchen)'을 통하는 길이 그것. 사실 '성북동' 하면 <성북동 비둘기>란 시가 떠오르면서 어둡고 아릿한 이미지를 덧씌우게 된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높고 날 선 건물이 적어 왠지 정 가는 동네가 바로 성북동이다. 예스러운 간판들과 띄엄띄엄한 건축밀도를 볼 때 고속질주 중인 서울에서 비껴난 듯하여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알려진 대로 빈부의 격차가 느껴지기는 한다. 무슨 회장님 저택 같이 으리으리한 집이 있는가 하면, 고급스러운 빌라촌도 보이고, 그 맞은편엔 변두리 느낌이 물씬 나는 동네가 있다.
내가 보는 성북동과 회장님이 보는 성북동, 반지하의 주민이 보는 성북동은 다를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난 그 모든 느낌을 존중하고 싶다. 혹은 뒤로하고 싶다. 성북동이 중요한 건 그곳이 사람 사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집에서 밥을 먹고, 빨래를 널고,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볼 것이므로. 그 속에서 세상이 만든 수치나 잣대로 환산할 수 없는 삶들이 영위될 것이므로. 여행가 이시가와 나오키는 이런 말을 했다. "서울에 사는 사람에겐 서울이, 도쿄에 사는 사람에겐 도쿄가 세계의 중심입니다.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사는 사람에겐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구요. 세상에는 수많은 '중심'이 존재합니다. 변두리란 따로 없는 거죠."
수연산방에 가는 분들은 수연산방에서, 송스키친에 가는 분들은 송스키친에서 세상의 중심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여행을 시작한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출발!
도보로는 20분, 버스로는 5분 정도 걸린다.
날씨가 좋고 신발만 편하다면 걷기를 추천한다.
넓고 매끄러운 길은 아니지만, 야트막한 동네 분위기를 한껏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 싫은 분들은 1111번, 2112번 버스를 이용할 것.
쌍다리 앞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된다.
(마을버스 03번도 이용 가능하다.)
자, 그럼 뚜벅이를 위한 길을 안내해볼까?
15분 정도 쭉 걷자. 파출소를 지나고,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도 지나고.
걷다보면 덕수슈퍼마켓과 성당 같은 건물이 나타날 것이다.
슈퍼마켓 바로 뒤편이 송스키친.
수연산방은 조금 더 멀리 있다.
송스키친을 지나면 큰 삼거리가 나오고, 성북2동 동사무소도 보인다.
동사무소 라인을 따라 몇 걸음만 가면 된다.
수연산방
월북작가 상허(尙虛) 이태준의 자택을 개조한 수연산방.
이태준에 관해선 학교 다닐 때 분명 배웠을 텐데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오호통재라! 여하튼 그는 1933년부터 1946년까지 14년간
이 곳에서 <달밤>, <황진이>, <왕자호동> 등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1900년대 개량 한옥의 요소들을 두루 갖춘 집으로,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라고.
현재 찻집은 외증손녀가 운영한단다.
정원은 잘 손질돼 있고, 집은 낡았지만 단아하다.
안에도 자리가 있으나 왠지 답답하여 대청 자리를 택했다.
탁 트인 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동자승 같은 서버가 차를 가져다줄 땐 마님 된 기분이 들기도.
마침 바람결 따라 울리는 풍경 소리.
사소한 잘못이나 아픔은 잊고, 오직 그 청아함에 집중하게 된다.
은은한 모양의 다기들,
다소곳이 바라봐줘야 할 것 같은 거울,
호박 모양의 초롱.
모든 물건이 전통 찻집 수연산방의 분위기에 기품을 더한다.
대나무통에 담겨 나오리란 기대를 깬 '대나무통 발효차'. 7,500원.
솔직히 특별한 맛이나 향을 느끼진 못했다.
열대과일로 만든 주스 같지만 '쑥말차'라는 거. 값은 8,500원이다.
더웠던 터에 차갑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역시나 특별한 맛을 느끼지 못한 건 내가 둔하기 때문인가?
송스키친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서 송스키친으로 갔다.
낮은 위치와 슬레이트 지붕이 인상적이다.
바로 옆은 빨래도 있고 장독도 있고 카네이션 화분도 있는 가정집.
어떻게 이런 곳에 맛집 차릴 생각을 했을까?
지붕 위의 빨간 운동화와
'철수야, 영희야, 밥 먹자'란 팻말이 먼저 반겨준다.
안으로 내려가면 입이 조금 벌어진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다.
일단 무슨 컵이 저리도 많은지!
찬장, 선반, 장식장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컵들이 늘어서 있다.
특히 계산대 위에 걸린 와인잔이 인상적.
텔레비전 안테나 같은 쇠막대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나무로 된 가구들, 다채로운 국적성을 풍기는 컵과 접시들.
난쟁이의 것 같은 앉은뱅이 의자, 아담한 흔들의자, 딱딱한 학교 걸상.
알록달록한 소품들이 한데 모여 동화 한 편을 연출하고 있다.
강렬한 색과 다양한 소재로 요소요소를 빛나게 하는 집, 송스키친.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다.
녹슨 타자기부터 각양각색의 피규어들,
금방이라도 보물선에 실어야 할 것 같은 철제 궤짝까지,
썩 값나가 보이진 않지만 개성이 뚜렷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안쪽에는 방 같은 공간이 있어 여럿이 모임을 갖기에도 좋을 듯.
치즈떡볶이 16,000원. 해물볶음밥 5,000원.
여러 블로거가 추천했던 요리들.
원래 떡볶이는 술안주 소속인데 식사로도 많이 팔리는 모양이다.
윗면에 덮인 빵을 사정없이 찔러주면 먹음직한 떡볶이가 한가득.
치즈 외에 주꾸미와 닭고기도 들어 있다.
맵고 자극적인, 중독성 강한 맛이다.
해물볶음밥은 삼삼해서 떡볶이와 잘 어울린다.
계산하고 나올 때는 하트 모양의 뻥튀기를 받았다.
여자 손님들에게만 주는 간식이란다.
도톰하고 맛났는데 배가 너무 부른지라 남기고 말았다는.
돌아가는 길, 성북동 고양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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