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내량(見乃梁)/한산 대첩의 승전지
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과 거제시 사등면 사이를
흐르는 좁고 길목이 좁은 해협으로
조선시대 군사 및 해상 교통의 핵심적 요충지였다
길이는 약 800m~ 1km, 폭은 가장 좁은곳은
약 250m부터 가장 넓은 곳은 약 600m에 이르며
남쪽(해간도쪽 방향)이나 북쪽(고개도 방향)으로 갈수록
해안선이 퍼지며 폭이 넓어진다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가 가로지르며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었고
돌미역 수확지로 유명한
청정 바다로 보존되고 있다
고려·조선시대: 해상 교통과 군사 관문
지형이 좁고 암초가 많으며 물살이 매우 거세어
남해안 동서 바닷길을 연결하는
유일한 관문이자 천혜의 요새 역할을 했다
세종 1년, 상왕 태종의 비상 소집령에 따라
조선 수군의 주력 함대가 대마도로 출정하기 직전
집결했던 장소가 바로 견내량이다
임진왜란: 한산도 대첩의 승전지
견내량이 역사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순간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다
유인책의 무대:왜군 함대가 견내량에 진을 치자
이순신 장군은 폭이 좁고 암초가 많아
대형 선박인 판옥선의 기동이 어려운
견내량의 지형적 특성을 파악했다.
학익진으로 왜군 격멸:조선 수군은 왜군을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을 펼쳐 일본 수군을 대패시켰다
전략적 경계선:한산대첩 이후 이순신 장군이
견내량 바로 아래인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면서
견내량은 약 5년간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단단한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칠천량 해전
칠천량 해전:1597년 원균의 패전으로
견내량이 허물어지면서 남해안 제해권을
일시적으로 잃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당시 왜군은 방어를 위해 인근에
견내량왜성을 쌓기도 했다
<AI에서 옮겨 재 편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