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처 일체시 자재무애 나투시는 관세음보살님
따스한 햇볕 속에 고운 이슬 머금고
처처에 피어나는 봄꽃들처럼,
환한 미소 머금으시며
환희와 축복 가득 안고
처처에 나투시는 부처님 화신들!
온 누리에 봄 노래 가득 넘치고,
녹은 눈 흘러 내리는 저 산과 들에는
기쁨과 희망으로 나투시는
부처님 소리로 장엄합니다.
무진의 보살이 부처님께 여쭙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중생을 구제하십니까?"
부처님은 자상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진의야,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부처님 모습으로 오고,
수행자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수행자 모습으로 온단다.
높은 임금이나 권력가의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그렇게 오고,
상인이나 거사의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또 그렇게 오신단다."
부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지지만,
결국은 일체 중생의 제도 인연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이
《관음경》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중생의 눈으로(肉眼)만 볼 때는
단지 그저 흘러가는 시냇물이나
무심히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보일지 모르나,
부처님의 눈(佛眼)으로 보면
이 세상 그 어느 인연, 어떤 중생의 모습도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과
부처님 화신 아닌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꿔 말씀드리면
우리가 깨치지 못하고
어리석은 삶을 사는 한,
아무리 옆에 보살님이 현전하셔도
보살인 줄을 알지 못하고,
수기를 받은 부처님이 현전하신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발심하셔서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치기 전에는,
자신이 그저 조그만 왕국의
번뇌 많은 태자인 줄로만 아시고
35년을 그렇게 속아서 사셨습니다.
아득한 겁 이전에 이미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너는 나중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될 것이다!"
라는 장엄한 수기를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없이 받으셨는데도 말입니다.
청나라 순치 황제 역시
발심하여 출가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본래는 수없이 많은 생을 닦던
수행자였음을 모르고,
그저 한 나라의 임금인 줄로만 알고
18년 동안을 전쟁터에서
그렇게 고달프게 보내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러하셨고,
순치 황제도 그러하셨거늘
저희 같은 번뇌 중생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부처님 법문에서 보면
이 세상의 본래 모습은 확연합니다.
내 앞에서 하나라도 더 팔려고 목놓아 소리치는
저잣거리의 이름 없는 상인이 알고 보면
상인의 모습으로 나투시어 나를
구제하러 오신 관세음보살 일지도 모르며,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 부르는
저 이름 없는 무명 가수도
고단한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 공양하러 오신
무량겁 이전의 부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반야의 눈을 뜨지 못하고
나의 잣대와 나의 수준으로만 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오신 관세음보살님과
부처님 화신으로 그들을 보지 않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모두가 할 일은 자명합니다.
첫째는 나와 인연이 있든 없든,
내게 다가오는 모든 분들을 겁 이전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이 정성껏 공경하고 모시는 일이며,
둘째는 내 스스로 수행하여 겁 이전에 발심하신,
그리고 수기 받으신 부처님으로
다시금 태어나는 일(復活)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이 모양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못나고 멸시 받을 그런
'비천한 내(我)' 가 아니라,
겁 이전에 성불의 수기를 받았으며
금생에는 기어코 성불하여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그런 부처님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확연히 바로 알아,
실제로 그렇게 여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에게 오는 그 어떤 고난도
축복 아님이 없고,
우리에게 오는 그 어떠한 분도
관세음보살님 아닌 분이 없습니다.
지금껏 불어 왔던 몹쓸 비바람도
언제부터인가 푸르른 하늘로 바뀌고,
화사한 부처님들은 처처에 오시기 시작합니다.
나를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착한(?) 부처님 뿐만 아니라,
나를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자비(?)하신 부처님도 오시기 시작합니다.
처처가 봄날이요,
처처에 온 누리 가득 현전하는 부처님들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제는 부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삶에 짓눌려 남 탓이나 하고,
한 숨과 원망 속에 살아 갈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겁 이전에 수기 받은
부처님이 되실 분들임을 알아
남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환희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수기 받은 자의 의무요,
우리 불자들의 막중한 책무입니다.
곳곳에서 오시는 부처님들,
어서 오십시오!
거리에서, 고통 받는 그 곳에서,
그대로 성불하십시오!
번뇌가 변해서 보리가 아니라
번뇌 그대로가 보리인 줄을
그 자리에서 아셔서
바로 그 곳에서 부처님 되시옵소서!
출가하신 스님 부처님은
용맹 정진으로 부처님 되시고,
노래하시는 가수 부처님은
음성공양 공덕으로 부처님 되시옵소서!
혜능은 방아 찧다 깨달으시고,
바보 주리반특은 청소하다 깨달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록
번뇌 많은 사바 중생이긴 하지만,
우리 삶의 도구 하나하나가 바로 그대로
성불의 도구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오시는 분이 부처님 되시고,
저를 만나시는 분에게
저희도 부처님이 되어 드릴 때,
세상은 평화롭고 온 누리 곳곳에
부처님 나투시는 소리
아니 울려 퍼지는 곳 없을 것이니,
불자님들이시여!
우리 모두 희망과 기쁨으로 오시는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화신들을
오로지 환희와 찬탄으로 맞이하시옵길
간절히 발원하고 축원드리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관세음보살 이종린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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