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시죠?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계속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안녕’이라는 말 속에는 상대의 평안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대요.
흔히 가볍게 쓰는 인사인데, 그 안에 서린 뜻이 참 깊죠?
도서명: 지킬의 거울
저자: 윌리엄 허시
* 이 소설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4번 일반 코너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소설은 매우 유명하다. 고전 중에 고전, 호러와 추리, 심리와 사회 고발적인 면모를 두루두루 갇춘 걸작이니까. 본래 제목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묘한 사례’로 약간 다르지만 좋은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뮤지컬, 영화, 연극 등으로 변주되거나 다른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일도 곧잘 있다.
그리고 이번 소설 ‘지킬의 거울’ 역시 그 걸작에서 소재를 빌렸다고 한다. 지금 현대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로 초대한다.
인터넷 거울로 드러나는 내 안의 하이드!
작품의 주인공은 십대 청소년이다. 먼저 소년 새뮤얼 스틸하우스. 그는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는 끔찍한 일을 직접 목격한 피해자이다. 그 사건 이후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샘은 코라 이모의 집에 머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상담 선생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치료의 효과도 별로 보지 못한다. 샘은 분노를 느낄 때 자기도 모르게 불쑥 치밀어 오르는 자신 속의 ‘그분’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그분’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모부인 라이어널은 그의 내면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예쁘다. 근데 되게 특이하네.’
그런 샘에게 어느 날 불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소녀가 나타난다. 그리고 ‘판타즈마고리움’이란 골동품 상점으로 안내해 놓고는 말없이 사라진다. 그는 그곳에서 음습한 어둠의 기운을 느낀다. 바로 그날, 학교에서 만난 영어 담당 크레일 선생님에게 어떤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바로 ‘하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지 않겠냐는 것. 그 일로 불꽃의 이미지를 갖인 소녀와의 만남은 잠시 잊혀진다.
‘하이드 프로젝트’는 지정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온라인 자아를 마음껏 발산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가명을 만든 뒤, 가상의 사회자가 뽑아주는 가상 인물의 글에 비판의 댓글을 다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잘못된 이야기를 바로잡아주는 수준으로 시작한 댓글은 점점 수위가 높아져 이유 없는 비난으로까지 이어지고,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은 그 실험 속에 빠져들어 점점 얼굴마저 변해가기 시작한다.
한편 자신의 얼굴이 변했음을 알게 된 샘은 이 실험을 의심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다시금 불꽃의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얘기를 듣고 싶어? 그럼 머리도 마음도 활짝 여는 게 좋아.”
커샌드라 케인,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바로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다. 외모만큼 수수께끼를 가진 신비의 소녀. 커샌드라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따로 살았다. 그리고 엄마가 죽은 후에는 상실감에 방황을 하며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가족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골동품 가게에서 도난당한 물건은 스티븐슨의 거울.
커샌드라는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알게 된 것은 배후에 흑마법사가 있다는 것인데. 그녀는 샘에게 하이드 프로젝트의 이면을 알려준다. 가상의 사이트인 줄로만 알았던 게 실은 현실이라는 것. 프로젝트 참여자의 댓글로 자살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판타즈마고리움에서 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는 드리치라는 인물. 심지어 ‘하이드 프로젝트’는 비단 샘의 학교에서만 진행되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괴물 하이드로 변해 사이버상의 폭력이 현실에까지 파급력을 띤다. 드리치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샘은 커샌드라와 함께 그의 계획을 막으려고 하는데. 단서는 하나. 커샌드라의 가족을 살해하면서까지 훔쳐간 스티븐슨의 거울, 통칭 ‘지킬의 거울’이다. 커샌드라와 샘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온 하이드 프로젝트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 과연 악의 실체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
닉네임의 묘약, 현대에 재림한 고전! 그리고 내 안의 하이드의 가능성!
“너에겐 지킬과 하이드의 성격이 모두 있어.”
이 작품은 성장 소설이다. 그러나 무작정 한 범주로 국한을 짓는 데는 무리가 있다. 고전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변주해서 작품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가 소설 요소요소에 은연중 녹아 있다. 음침한 뒷골목은 지하 터널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골동품 상점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꿔주는 하이드의 묘약은 인터넷으로. 현대에 맞게 변형된 고전은 읽는 내내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더불어 판타지적 요소로 ‘흑마뻡사’와 신비의 ‘거울’을 등장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마냥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익명으로 자행되는 악플 전쟁, 대대로 이어지는 가정 폭력, ‘하이드 프로젝트’로 괴물이 된 아이들. 그저 판타지로 치부하기에는 다루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의문이 절로 든다. 거울 속 나는 지킬일까, 하이드일까?
본인도 인터넷 활동을 하고 있는 네티진이다. 악풀이나 욕설 비방을 한 적은 없지만 ‘익명성’이라는 커튼에 기대어 어느 정도의 자유를 느낀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사실 평소에는 잘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 작품을 독서하며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굴 맞대고 말하는 것보다 모니터 뒤에서 키보드로 말할 때가 더 솔직하게 되는 듯도 하고.
그러나 하이드로 변해 키보드 워리어처럼 굴지는 않았다. 새삼 사람들이 싹 변하는 모습이 공포로 다가온다. 누구는 운전대만 잡으면 눈이 돌아가 과속 폭주를 한다. 누구는 성질을 건드리면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목청을 높인다. 그리고 누군가는 인터넷 악풀로 스트레스를 푼다. 보통 악풀러를 검거하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다. 성실한 직장인, 공부 잘하는 모범생, 현모양처 가정주부, 성공한 커리어 우먼 등.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악풀러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증언한다. 그럴 사람이, 그럴 친구가 아니라면서. 바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 하이드’의 부모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 샘, 도린, 마틴, 찰리 등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분노와 좌절, 열등감,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비밀 등을 갖고 있다는 것.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 어두운 일면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 인정하지 못한 내면이 있다는 것. 그런 억눌린 자아가 ‘익명성’이라는 묘약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거울로 비춰지고, 마침내 그 모습이 현실에까지 투영된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괴물 하이드’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흉폭성이 드러난 아이들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그들이 ‘하이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정된 일면이, 부인된 자아가, 억누른 성격이, 내면의 분노를 부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지닌 어두운 면, 그것을 분명하게 알지 않으면 얼마나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시사하는 것 같다.
드리치의 목적은 정말 순전히 별 게 아니다. 단순 실험이랄까? 나이만 먹고 세월만 먹어서 뇌가 돌아버린 마법사의 전형이다. 솔직히 그런 악당에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 순전히 재미로 하이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시켰다니. 하지만 그런 이해할 수 없다는 면이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악당이지만 그렇기에 소름이 쫙 끼치는 느낌이랄까.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여러 모로 주의 깊게 볼 만하다. 특히 이름이 꽤나 독특하다. 샘은 저 유명한 미국의 살인마 ‘샘’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샘이 자기 내면의 ‘그분’을 마주할 때마다 긴장을 했다. 얘가 정말 살인범 샘이 되면 어쩌나 싶어서.
한편 커샌드라는 트로이의 예언가가 떠오른다.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그 누구도 자신의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를 받은 공주. 그녀가 갖고 있는 ‘비밀’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커샌드라’라는 인물은 그림자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렇다, 커샌드라의 정체는 알고 보니 동생 캐시디였던 것.
사실 글 곳곳에 복선이 깔려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소 뻔한 설정이라 눈치채기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사하는 점은 꽤나 크다. 글쎄, 나중에 온전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였던 것 같다. 샘이 자신을 인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복선 같은 것. 찰리의 동성애 커밍아웃도 그렇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캐시디도 거울의 이면을 끌어낸 게 아닐까 싶다. 언니 커샌드라는 캐시디가 바랐던 이면, 거울 저 편에 있는 모습이니까.
그러나 샘은 그녀에게 말한다. 겉모습은 커샌드라지만 용기를 낸 것은 캐시디라고, 그러니 이 모험은 너의 것이라고.
인간은 선과 악, 용기와 두려움, 분노와 자애를 지니고 있다. 그 감정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그 감정을 분노와 자애로 바꾸는 스위치는 무엇일까?
소설 마지막에 샘의 분신 ‘그분’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미스터 툼스(mister tooms)’이다. 이 이름 속에 샘의 내면적 상처가 숨어 있다. 이 수수께끼의 정답을 밝히지는 않겠다. 그저 ‘스테미스트 무어(Stemist Moor)’라는 힌트만 적어둔다. 이 단어는 글자 순서를 바꾼 말이자 샘이 부정하고 있던 현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네가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진실을 품고 있지. 그 진실이 육신으로 나타난 게 바로 나야.”
하이드는 거울에 비친 왜곡된 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 강하지만 실제로는 일그러진 무엇일 뿐이다. 그것은 마음속 어둠으로 부풀려진다.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눈을 돌린 자기 자신에게서, 즉 좌절된 분노에서 하이드는 태어난다.
판타지, 혹은 고딕 소설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익숙한 사이버 폭력에 대한 섬뜩한 경고를 보내는 이 작품은, 치밀한 심리 묘사와 더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련의 사건들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자기 안의 숨겨진 분노와 공포, 그 괴물의 실체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진정한 성장을 이루는 주인공들은 이 책을 단순히 성장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원인과 결과, 유혹과 트라우마, 상처와 위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줄거리 전체를 관통해 흐르고 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진지한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함께 논의해볼 만한 시사점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끝에 결말이 다소 미진한 감이 없지 않다. 드리치의 음모는 밝혔지만 그놈은 아직 말짱하다. 하이드로 변했던 아이들은 돌아왔지만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돌이킬 수 없다. 미스터 툼스는 사라졌지만 죽은 이모부와 상처받은 이모의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마법적인 무언가가 세상에 드러났지만 그 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샘과 캐시디의 미래는?
이처럼 사건 뒷처리가 좀 어설픈 느낌이지만 그래도 독서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