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BMW 이노베이션 데이 -1
지난 달 20일, 독일 마이자흐의 비행장 자리에 신설된 BMW 드라이빙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BMW그룹 이노베이션 데이 이피션트 다이내믹스 2012’ 행사를 통해 BMW가 현재 개발 중인 ‘1시리즈’를 시승할 기회를 얻었다. BMW 1시리즈 쿠페는 수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판매 중인데, 이번에 시승한 것은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신형 1시리즈의 해치백 모델이다. 2세대에 해당하는 이 신형 1시리즈는 지난 해 6월에 베일을 벗었고, 적어도 이번에 방문했던 - BMW 본사가 있는 - 뮌헨에서는 이미 흔히 볼 수 있는 차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BMW는 무엇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일까? 보닛 안쪽에 숨겨진 심장이 특별했다.
글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 민병권, BMW그룹
시승을 위해 준비된 차는 외견상 빨간색 BMW 118i였다. 차체 색상부터 강렬했지만, 1시리즈 중에서도 ‘스포츠라인’이라 세부 사양들에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손으로 쥐었을 때 두툼한 느낌을 주는 ‘BMW M’의 운전대 뒤로는 변속 패들이 달렸고, 스포티한 형상의 검은색 시트는 빨간색 스티치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시동키와 대시보드, 도어 안쪽이 은색과 빨간색으로 장식된 것은 BMW 3시리즈의 스포츠라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핏 봤을 때 형님들과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닮은 실내는 사양까지 고급스러워서 ‘소형차’라는 사실을 잊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이 차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요소는 따로 있었다. 운전석 앞에 달린 소화기와 컵홀더에 박힌 비상정지 스위치였다. 개발 중인 엔진을 얹은 프로토타입인 만큼,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것이었다.
신형 BMW 118i는 1.6리터 4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170마력의 힘을 낸다. 이번 1시리즈의 116i, 118i를 통해 데뷔한 신형 1.6리터 가솔린 엔진들은 트윈스크롤 터보차저, 고정밀 직분사 ‘HPI’, ‘밸브트로닉’, ‘더블 바노스’ 등 BMW의 엔진 기술을 상징하는 내용들이 집약된 ‘BMW 트윈파워 터보’를 통해 이전보다 성능은 높아지고 연료소모는 줄었다. 그런데, 시승차에 얹힌 것은 118i의 그 엔진이 아니었다. 배기량은 1.5리터로 줄었고, 실린더도 하나를 덜어낸 3기통이었다. BMW가 1~2년 내에 도입을 시작할 새 엔진 패밀리의 첫 타자가 바로 이 차에 얹혀있었다.
아무리 소형차라지만 BMW가 3기통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BMW 엔지니어들은 6기통을 절반으로 나눈 것이 3기통이기 때문에 기존 4기통보다는 오히려 6기통에 가까운 특성들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정평 난 BMW 직렬 6기통 엔진의 장점들을 살렸다는 것이다. 모노스크롤 터보이면서도 4기통 트윈스크롤 터보보다도 빠른 응답성능이 그렇고, ‘소리’가 그렇다.
시승차는 외부에서 들었을 때 움찔 놀랄 만큼 스포티한 가속 사운드를 자랑했다. 배기 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닐까 했더니 엔진 사운드의 주된 주파수 자체가 6기통의 그것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진동이었다. 6기통에는 없는 크랭크 축 방향의 앞뒤 진동이 3기통에서는 나타난다. 이 때문에 BMW는 카운터 밸런스 샤프트를 달아 진동이 상쇄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실린더 수에 관계없이 BMW타는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는 엔진이 나왔다.
활주로 한편에 마련된 테스트 코스에서 타본 새 심장의 BMW 1시리즈는 차의 등급이 헛갈릴 만큼 빠르고 박력이 넘쳤다. 공회전이나 저속에서의 소음이 디젤차를 연상시킨다는 것 외에는 단점을 찾기 어려웠다. 회전 한계는 6,500rpm.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았다가 뗄 때마다 엔진룸에서 들려오는 ‘썩~ 썩~’하는 소리가 찌릿했다. 이번 행사에는 3기통의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운드가 강조된 버전을 가져왔지만 소리를 줄인 버전 또한 개발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시승차에 탑재된 1.5리터 3기통 엔진은 PSA 푸조 시트로엥과 나눠 쓰고 있는 지금의 1.6리터 4기통보다 10마력 이상 높은 출력과 10% 내외의 향상된 연비를 약속하고 있다. 이 엔진의 실린더 1개당 배기량은 0.5리터(500cc)이다. 열역학적인 면에서는 큰 실린더가, 진동 면에서는 작은 실린더가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0.5리터는 이상적인 실린더당 배기량 수치로 알려져 있다. 이미 첨단을 달리는 기존 엔진들을 넘어 새 엔진 패밀리를 도입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3기통 엔진과 동일한 실린더를 모듈처럼 쓰는 2.0리터 4기통 엔진과 3.0리터 6기통 엔진이 새로 나올 예정이다. 가솔린 뿐 아니라 디젤 엔진들도 같은 공식으로 만들어져 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된다. 가솔린과 디젤 사이는 30~40%, 같은 연료를 쓰는 엔진끼리는 60%까지 나눠쓰게 되고, 엔진이 결합되는 지점이나 흡배기 장치의 위치도 통일되어 하나의 라인에서 생산될 수 있는 제품군을 이루게 된다. 현재는 4기통 디젤과 6기통 디젤만이 작은 제품군으로 묶여있을 뿐이다. 공유하는 부분이 늘어날수록 생산되는 엔진의 종류를 수요에 따라 발 빠르게 조절할 수 있게 되며, 각 시장의 요구에 맞는 신제품을 내놓기도 쉬워진다.
이번에 시승한 BMW 1시리즈 해치백은 후륜구동이었고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하지만 새 엔진 패밀리의 3, 4기통은 앞바퀴 굴림이나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카(PHEV)에 가로로 얹힐 수도 있도록 설계되었다. BMW i8 컨셉트, 그리고 2012 파리모터쇼에서 데뷔한 BMW 액티브 투어러 컨셉트 카에 얹힌 1.5리터 3기통 가솔린 엔진이 예고편이었다.
액티브 투어러는 차기 미니(MINI)에도 사용될 BMW 그룹의 새로운 앞바퀴 굴림 플랫폼을 바탕으로 했으며, 향후 ‘BMW 1시리즈 GT’로 양산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인 i8의 경우에는 1.5리터 3기통 엔진만으로 220마력의 최고출력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포드는 1.0리터 3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을 중형차인 몬데오에 얹겠다고 발표했다. BMW의 1.5리터 3기통 엔진이 3시리즈에 얹혀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