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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여행-18. 피렌체에 가다 (3)
오늘 주제는 3 곳입니다.
메디치 가문과 인연이 깊은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샌 로렌조 성당과 메디치 예배당입니다.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이 궁전은 본래 메디치의 집이었습니다. 나중에 베키오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고 100여년 후에는 피티 궁전으로 옮겼지만 이 집은 그대로 계속 소유하고 있다가 17세기에 리카르디에게 팔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메디치 리카리디 궁전입니다.
당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집은 코시모 메데치가 미켈로쪼에게 부탁하여 지었습니다. 당시 미켈로쪼는 브루벨레스키 (두오모 돔을지은 사람) 에 눌려 빛을 못하고 있을 때이었지만 코시모 밑에서 그의 건축을 거의 도맡아 했습니다. 피렌체의 산 마르코 성당을 개축하고 그 안에 도서관을 짓기도 하고 코스모가 베니스로 망명을 할때는 그를 따라 가 산 조르죠 마죠레 성당의 도서관을 짓기까지 합니다. 코시모가 당대의 제일이라는 브루넬레스키를 꺼린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이 셀뿐 아니라 건물을 너무 화려하게 지어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까 염려하여서라고 합니다.
메디치 리카리디 궁전
-옛 로마의 건물의 양식을 따르면서 피렌체의 독특한 양식을 취한 르네상스 건물이다.
-3개의 층마다 다른 형태의 Facade를 보여 준다
제일 밑 층은 벽돌을 튀어 나오게 (Rustication) 쌓고, 2층은 평평하게 하고 3층은 아예 벽돌과 벽돌 사이의 line 을 아예 없앴다. 그리고 지붕 밑에는 천장 molding 처럼 Cornice를 두어 앞으로 나오게 하였다
정원
-정원에 얽힌 한 Episode가 있다. 도나텔로가 만든 청동 대비드가 남성과 여성의 몸을 합친 양성같이 보이고 골리앗스의 투구가 대비드의 오른 쪽 허벅 다리 까지 올라 온 것을 본 사람들은 그가 동성 연애자라고 수군거렸다. 당시 동성연애자는 사형까지 시키는 중범죄이었다. 그는 이 청동상을 이 정원에 놓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볼 수있게 함으로써 도나텔로가 동성 연애자가 아님을 책임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후 사람들의 입에서 수군거림이 없어졌다고 한다.
(참조: 데오날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도 당시에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이 있었고 지금은 거의 정설로 통한다. 다 빈치에게는 Salai, 미켈란젤로에게는 Cavalieri 가 있었다.)
청동 데비드, 도나텔로
Magi 예배당, Gozzoli의 그림이 유명하다
-선두에 있는 King Kasper (동방박사의 하나)가 로렌조이고 뒤를 따르고 있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이다.
-앞에서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사람이 로렌조, 그 뒤에 말 타고 빨간 cap을 쓰고 있는 두사람 중 왼쪽이 할아버지 코시모, 오른 쪽이 아버지 피에로이다 (피에로는 코시모가 죽고 6년 후에 죽어 그의 아들 로렌조가 오랫동안 집권한다)-자기가 피렌체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표시한 그림
Salone Carlo VIII (Grand Meeting Room)
-1494년 프랑스의 찰스 8세가 피렌체를 침공했을 때 피에로 메디치가 파견한 상원의원 Pier Capponi 와 회담을 한 방이다. 황제는 그에게 밀라노를 치는 길을 열어 주라는 요구와 더불어 더 많은 요구를 하자 카포니는 전에 만들었던 합의서를 찢어버리면서 “네가 트럼펫 (군대의 진격 명령)을 불면 우리는 종을 치겠다 (사람을 모으겠다)”고 하자 찰스 8세는 피렌체 전 시민이 들고 일어 날까봐 요구 조건을 완화했다고 한다.
-그랬음에도 피렌체 시민들은 그가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그를 페렌체에서 축출한다. 이때 사보나로로의 선동이 큰 몫을 했다
Gallery Room (Luca Giordano Hall)
-Mussolini and Hitler 가 1938년에 만난 장소
-위 사진의 천장화 (Apo
위 사진의 천장화 (Apotheosis of Medici Dynasty)의 detail , Luca Giordano
-그림 안의 남자들은 메디치 가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샌 로렌조 성당과 메디치
예배당
센 로렌조 성당은 393년에 세워진, 피렌테에서 제일 큰 성당입니다.
이 곳은 브루넬레스키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있는 곳입니다. 르내상스의 파라곤인 미켈란젤로가 건축에서 존경하고 학습했던 사람이 바로 브루넬레스키입니다. 그가 베드로 성당의 돔을 디자인할때 참고한 것이 브루넬레스키가 건축한 두오모 성당의 돔이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코시모의 후원으로 성당의 확장 공사를 하면서 메디치 가문의 전용 예배당을 만들고 가문의 묘지까지 조성합니다. 100여 년이 지난후에는 미켈란젤로가 묘지를 첨가합니다. 후세 사람들은 두 묘지를 구분짓기 위하여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것을 Old Sacrisity (옛 성소),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을 New Sacrisity (신 성소)로 부릅니다.
또 메켈란젤로가 지은 Laurentian Library(빛의 도서관)도 이 안에 있습니다. 예배당은 성당의 어느 쪽에 있는지, 두 묘지는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도서관은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 여행가기전에 많이 혼동된 곳이 이곳입니다.
Old Sacristy는 성당의 제단 가까이 왼 쪽 방에 있었습니다. 정 사각형의 방의 한 쪽에 조그만 제단이 있고, 천장에는 돔이 있고 모든 것이 대칭으로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둥은 Corinthian style (참조) 로 Grayish green 색을 띤 Pietra Serena (피렌체 근방에서 많이 나는 대리석)를 사용했고 바닥에는 지오바니와 그의 아내가 합장한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New Sacristy는 도면상으로는 Old Sacristy의 맞은 편인 제단의 오른 쪽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들어가는 입구가 없었습니다. 이 묘지는 성당 밖을 나와 북쪽에 붙어 있는 메디치 예배당을 통해서만이 들어 갈 수있게 하였습니다. 밀려드는 수 많은 관광객 때문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메디치 예배당을 들어서서 보석 진열장을 지나면 8각형 모양의 Prince’s Chapel 이 있습니다. 지금 부분적으로 한창 수리 중이었습니다. 이 예배당은 16세기, 1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원래 예배당은 흔적도 안 보였습니다. 여기에서 더 들어 가면 미켈란젤로가 조성한 “New Sacristy”가 나옵니다. 이를 후원한 사람은 메디치 가문으로 교황이 된 Leo 10세와 Clement 7세 (당시에는 추기경)입니다. 둘이는 서로 사촌 관계입니다.
조각품의 인물을 설명하기전에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간략하게 적어 보겠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지오바니 때부터 번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은행을 설립하여 거부가 되고 그의 아들 코시모 (Cosimo the Elder)때에 이르러 피렌체의 최고의 부자가 됩니다. 그의 아들 피에로는 아버지를 계승한지 6년 후에 죽고 로렌조 (Lorenzo, the Magnificent) 가 계승하여1492년 죽을 때까지 르네상스의 최대 전성기를 이릅니다 (메디치 가문은 같은 이름이 많아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코시모와 로렌조는 “the Elder”와 “the Magnificent”를 붙였습니다). 장남 피에로가 계승합니다. 불행은 그 후에 싹틉니다. 1494년 사보나롤라의 반 메디치 운동과 종교개혁 운동으로 피에로가 쫓겨 납니다. 1498년 사보나롤라가 화형되지만 1512년까지 공화정이 계속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키아벨리와 단테가 이 때 정부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1512년 스페인 군대의 도움으로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 정권을 잡습니다. 그가 피레호의 두때 아들 지오바니입니다. 하지만 그가 1년 후에 교황으로 선출 (교황 레오 10세)되자 그의 동생인 줄리아노 (1513-1516)가 이어 받고 그가 죽자 피에로의 아들 로렌조 (Lorenzo di’ Piero)가 이어 받았으나 그도 3년만인 1519년에 죽습니다. 그가 죽음으로써 메디치 가문의 적통이 끊깁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묘지는 이들 마지막 두 사람, 줄리아노와 로렌조를 위한 것입니다. New Sacristy에 대한 설명은 아래 사진과 함께 하겠습니다
코시모의 묘는 다시 로렌조 성당으로 들어가 Old Sacristy 조금 못 가서 왼 쪽 옆 문으로 빠져 나가 지하로 내려가면 있습니다. 추측컨데 자기 아버지 지오바니의 묘와 벽하나를 사이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관은 성당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밑에 안치되어 있었고 바로 앞에 도나텔로의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자기를 평생 감싸주고 돌보아 주었던 주군 앞입니다. 코시모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남겨 메디치 가문외에는 유일하게 이 곳에 묻힌 외부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나와 바로 2층으로 올라가면 Laurentian Library가 있었습니다.
이 도서관은 미켈란젤로가 교황 Clemen 7세 (교황 Leo 10세의 사촌 동생)의 부탁으로 지은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공공 도서관입니다. 한 가운데 복도가 있고 양쪽으로 긴 책 걸상이 있습니다. 수많은 창문을 양쪽에 만들어 어느 책상에도 빛이 들어 온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빛의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층계도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만들었습니다. Free standing (받침대없이)의 층계로는 최초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계단을 나무로 만들려 했으나 삐걱 소리가 나면 독서에 지장이 있다고 대리석으로 디자인을 바꾸었습니다.
층계가 모두 3개 있습니다.
주 층계와 양쪽에 하나씩 입니다.
주 층계를 올라 가면 조금의 공간 (Vestibul)을 두고 독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양쪽에 있는 층계는 위 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중간 쯤해서 주 층계와 합치도록 했습니다. 삼지창을 거꾸로 놓은 모양입니다. 문 앞에 있는 Vestibule을 혼잡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진을 참조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옆 두 층계의 각 계단은 반듯하게 만들었지만 주 층계의 계단은 타원형으로 만들어 멋 들어지게 만들었습니다.
San Lorenzo Basilica
-깊숙히 있는 제단의 왼 쪽에 Old Sacristy가 있습니다
-도면에는 제단 오른 쪽에 New Sacristy가 있는데 막혀져 있고 입구가 없고 성당 밖으로 나가 메디치 예배당을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미켈람젤로 작품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너무 많아 혼잡하여 입구를 다른 곳에 두었지 않나 추측합니다.
도니텔로의 Pulpit (설교 연단)-1개가 더 있습니다
브루넬레스키의 Old Sacristy-직사각형의 방이다
-사진 왼 쪽 바닥의 탁자 밑에 지오바니의 관이 놓여있고 천장은 돔이다.
-벽의 기둥 (pilaster)은 피렌체 근방에서 나오는 Greyish green 색갈의 Pietra Serena 라는 대리석이고 미켈란젤로도 새 묘지와 도서관에 같은 재료를 썼다. 그리고 기둥 위 끝 capital은 Corinthian style로 꾸몄다
위 Old Sacristy 의 천
-수리 중입니다.
위 Old Sacristy 의 천장은 dome으로 되어 있다
Prince Chapel-일부가 공사 중입니다
New Sacristy 전경
-미켈란젤로의 New Sacristy-이 방도 정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벽의 왼 쪽에 줄리아노 (교황 10세의 동생), 오른 쪽 벽에 로렌조 (교황의 조카, Lorenzo the Magnificent 와 다름 사람)이 있다-정면에 있는 사람들의 손자 뻘 되는 사람
정면 detail
-중앙에 Virgin (Medici Madonna 라고 불림). 왼 쪽에 Lorenzo (the Magnificent), 오른 쪽에 그의 동샐 줄리아노 (벽에 있는 줄리아노의 할어버지 뻘되는 사람)
반대 쪽의 있는 제단
교황 Leo 10세의 막내 동생-아주 활동적으로 보인다
-벽 왼 쪽에 있다
-밑의 두 조각은 day (여자) 와 night (남자)를 뜻한다
교황 Leo 10세의 조카 (형의 아들)-사고하는 형상이다
-벽 오른 쪽에 있다
-밑에 있는 조각은 dawn (여자)과 dusk (남자)를 표시한다.
두 조각의 총체적 의미
-무덤 주인공의 한 사람은 활동적이고 한 사람은 심사 숙고형이다. 둘다 힘이 없어 보인다. 살아 있을 때 그들의 힘이 막강했어도 인간은 죽게 마련이다
-주인공 밑에 조각된 4 사람은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
낮과 밤, 새벽과 석양, 이렇게 시간은 지나면서 인간은 죽는다
Laurentian Library
-각 책상 옆에 창문이 있어 안이 환하다
도서관의 Vestibule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의 주 계단이 타원형으로 되어있고 양 옆의 계단이 중간 좀 지나서 주 계단가 합쳐짐으로써 도서관 문 앞 Vestibule의 혼잡을 피한다
*참조
로마-그리스 건축물 용어입니다
-frieze위 앞으로 조금 나온 것이 cornice이다 (Frieze와 pediment 사이)
Capital의 형태에 따라 column을 3개로 분류한다
1. Doric
Column-BC 510, very simple
2. Ionic Column-BC 500
3. Corinthian column-BC 400, 제일 나중에 생긴 것으로 로마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Corinth city에서 이름을 따 왔다. Acanthus 잎이 장식되어 있다.
다음 주제는 길란다이오 작품이 있는 성당을 모아 봤습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오그스타니 교회, 산타 트리나타 성당입니다
후기: 시카고를 잠시 비웁니다.
첫댓글 르네상스의 절정기-- 계속 인기리에 집필되고있어 존경합니다 다음에 서울방문시 재경 36회 월례회에서 시간을 내주시어 강의를 하여주시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