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마 16:17)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믿음의 사람에게 가장 큰 복은 그 생명이 구원에 이른 것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승천으로 완성되었음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고백 없이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일종의 종교 생활로 삶의 변화가 없으며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책망하고 심판하시기보다 이 고난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구원을 완성하셨다. 영혼의 문제만이 아니라 육체의 문제까지도 해결하여 주셨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구원은 진정한 복중의 복이다.
바요나 시몬아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자기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이 땅에 오신 목적인지 분명하게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Bariwna'" (920 바리오나스 NVMS Bariwna') 요나(요한)의 아들
‘바요나’는 아람어 바르(아들)와 요나(비둘기)에서 유래된 뜻이다. 요 1:42에서는 요한의 아들로 불린다. 시몬은 히브리어 샤마(듣다)에서 유래되었다. 이름의 뜻을 통해 베드로가 유대인의 혈통임을 자랑하고 높이기보다 하나님 말씀 듣기를 좋아하였음을 말한다. 사도바울은 과거 유대인의 정통성을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였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신분과 가문을 자랑하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귀에 들려지는 하나님 말씀은 유대인의 가문을 높이는 지식으로 사용되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의 어부였다. 그러나 그 이름이 뜻하듯이 비둘기처럼 순결한 모습으로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이었다. 육체적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는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순간적 재치로 된 것도 아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 깊은 곳에 드러난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이다.
네가 복이 있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복은 땅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의 고난을 담당하게 하시었다. 하나님의 복은 이 사실을 알고 고백함으로 시작된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복’ makavrio" (3107 마카리오스 ANMS makavrio") 복된. 행복한
‘복이 있도다’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다. 근심과 염려에서 떠나 행복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복된 삶으로 하나님 나라의 행복한 백성이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 중 최고의 복이다. 이 복으로 베드로는 믿음을 방해하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베드로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천국의 열쇠를 주어 이 땅에서의 모든 일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능력으로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만 받지 않는다. 구원의 고백을 통해 베드로처럼 행복하고 복된 인생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복된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물이다. 하지만 불안과 염려, 두려움과 근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으로 완성된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았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구원의 복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지난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심은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이론과 지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유익을 좇아 쉽게 옮겨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관계가 형성되기에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분명히 알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마 16:17...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알게 한 이’ ajpokaluvptw (601 아포칼륍토 VIAA3S ajpekavluyevn) 덮개를 벗기다. 드러 내다. 보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게 하는 것은 혈육이 아니다. 혈육은 한 핏줄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헬라어 성경 의미는 혈은 ‘혈연’, 육은 ‘관통하다’에서 유래된 ‘전갈’을 뜻한다. 믿음 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혈육의 관계를 고집하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다정하고 협력관계를 좋게 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성도들의 믿음과 교회 질서를 독침으로 관통하여 죽이는 전갈과 같다. 자신들의 삶을 덮개를 벗기듯 허물없이 드러내어 끈끈한 정으로 하나 되는 것 같으나 그 믿음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덮개를 벗기듯 드러내 그 뜻을 전하신다. 우리는 그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 뜻을 실천하는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 17: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우리는 하나님 은혜 없이 살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인생은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사람은 삶의 목적이 분명하여 방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자신의 소유한 모든 것도 하나님이 주셨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의 사람에게 비밀을 감추실 필요가 없다. 덮개를 벗기듯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어 그 삶에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하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관통당하시므로 우리가 구원을 이루었다. 이 사실은 얄팍한 입술의 고백으로만 끝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마음 깊이 깨닫고 분명하게 실천하는 믿음이기를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