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기나긴 사순 시기를 지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성주간의 끝에 우리는 드디어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그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으로 다시 부활한 놀라운 사건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그 부활로 새롭게 변화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골방에서 문을 걸어둔 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이 마리아 막달레나가 전하는 믿기 힘든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는 장면을 전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홀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너무도 급히 무덤에 모신 예수님의 시신, 곧 다가올 안식일 때문에 시신을 제대로 염하지도 못하고 급하게 무덤에 모신 예수님이 마음에 걸려 마리아는 이른 아침,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이 준비한 향유로 닦아드리고자, 그렇게라도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더 뵙고자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으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덤을 막은 커다란 돌은 치워져 있던 것입니다. 이에 그녀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합니다. 제자들은 마리아가 전하는 놀라운 소식, 곧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텅 비어있는 무덤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마리아의 말대로 진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미에 요한 복음사가는 이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제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7-9)
요한 복음사가가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바 그대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수난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부활에 관한 말씀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기 전, 아니 공생활 기간 중 계속 반복해서 수난 후에 있게 될 부활의 삶을 그토록 이야기했건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을 믿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구원자이자 메시아가 힘없고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모두 두려워 떨며 골방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전하자, 예수님의 부활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그 시신을 누가 가져간 것은 아닌가하며 이 황당한 상황에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난 그 이전에 수없이 많은 표징들과 직접 하시는 말씀을 통해 수난과 죽음 그 이후의 부활에 관해 제자들에게 일러주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하신 그 많은 말들과 그 분이 보여주신 표징들은 모두 잊은 채, 자신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두려워 떨며 비겁하게 골방에 몸을 숨긴 채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가 전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 복음이 전하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들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 그 이전의 모습과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전혀 다른 그들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잡혀가시던 예수님의 곁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못난 제자 베드로가 아닌 한 치의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사도행전의 말씀은 코르넬리오를 찾아간 베드로가 그의 집에서 자신이 깨닫게 된 진리를 확신에 차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을 전합니다. 그는 알지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종에 불과한 한 여인의 물음에 비겁하게 비굴하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나약한 모습이 아닌,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겁에 질려 골방에 쳐 박혀 있는 모습이 아닌, 당당하고도 확신에 가득 차 큰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과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사도 10,37-38)
불과 얼마 전까지 비겁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곁을 지키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골방에 숨어있던 그에게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어났기에 이와 같이 용감하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증언하게 된 것일까요? 아니 그 짧은 시간동안 베드로는 도대체 무엇을 체험하고 깨달았기에 이토록 놀라운 변화가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제 1 독서의 베드로 사도의 다음의 말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이들 앞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습니다.”(사도 10,34ㄴ)
베드로의 이 고백이 어떻게 그가 그토록 놀라운 변화를 이룰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못난 제자 베드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용서해주십니다. 그 용서는 바로 십자가 상 죽음으로 이루어진 용서, 곧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사랑의 용서였습니다. 이 용서를 베드로는 예수님의 자신을 향한 사랑의 눈빛을 보고 체험하였으며, 자신에게 다가와 아무런 죄도 묻지 않은 채, 식사를 함께 나누시는 예수님의 너그러움으로 체험하였고, 자신에게 사랑하는 양 떼를 맡기시는 그 분의 마음을 느끼고 변화됩니다. 두려움 없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며 그 분의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 그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용서로 변화된 모습이었으며, 그 용서가 베드로를 모든 이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부끄럼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할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보여준 바로 이 모습이 부활을 맞고 있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며, 우리가 닮아가야 할 모습입니다.
한편, 오늘 제 2 독서의 말씀 안에서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서 벗어나 부활의 삶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과거의 죄로 찌든 삶, 절망과 불행으로 점철된 어둠의 삶이 아닌 기쁨과 희망으로 새로워진, 새하얀 순결의 삶으로 새로워진 삶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입니다. 이 삶으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고개를 숙인 채, 저 아래를 바라보는 삶이 아닌 머리를 높이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해야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누릴 새로운 삶에 걸맞은 기쁨과 희망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삶으로 언제나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그래서 오늘 독서의 베드로처럼 여러분 모두가 새로운 삶으로 부활하는 참 기쁨의 부활시기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콜로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