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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베트남 문화유적지 탐방
일시:2007년 1월 1일 월요일~1월 6일 토요일 5박 6일
주요 유적지:캄보디아 앙코르 왓트. 베트남 하롱베이
2007년 1월 1일 월요일 인천, 호치민, 씨엠립
* 인천공항 출발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25분에 베트남 호치민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호치민은 옛 지명 사이공으로 베트남 남부도시다. 소요시간은 5시간 30분, 꽤 긴 비행거리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남편과 큰 아들과 셋이 떠난다. 작은 아들은 약사이며 대학원생인데 실험 연구 관계로 못 간다.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큰 아들이 마침 겨울방학이고, 1월 7일까지 시간이 허락되어 앙코르 왓트를 중심으로 문화유적지 탐방에 나선 것이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이웃나라로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늦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50분에 창공에서 새해 태양을 만났다. 구름층을 뚫고 올라오니 파란 창공에 눈부신 해가 솟았다. 정해년 축복의 황금돼지띠 해의 희망찬 출발이다.
한국일보에서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교수형으로 처형될 때의 글과 사진을 보았다.(2006년 12월 30일 사형 집행) 66세로 굵고 짧게 살다가는 불쌍한 정치인이다.
기내 중식 미니 케잌에 ‘Happy New Year' 가 씌여 있어 새해 인사를 받으니 기쁘다. 소고기 스파게티, 빵, 연어회 등 깔끔하고, 맛있고, 양도 충분하다. 적도 쪽으로 자꾸 내려가니까 자외선이 많은 햇살 탓으로 창문을 내렸다. 캄캄한 기내 공간에서 남편은 본인의 등을 켜고 신문을 보고, 아들은 어젯밤 제야의 종소리를 듣느라 늦게 잔 탓으로 계속 수면 중이다. 나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 적도를 향해 가다
창 밖은 태평양 바다, 계속 바다 위로만 간다. 바다 위에 뜬 구름층과 파란 창공, 눈부신 햇살만 가득하다. 잠깐 섬이 보이고는 다시 구름층만 보인다. 한국시간 14:39분, 이제 1시간여만 가면 호치민 공항이다.
적도를 향해 비행기는 날아가고 있다. 유럽대륙을 횡단한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유럽에 갈 때는 시베리아 상공을 지나므로 툰드라 지대만 보는데 지금은 바다 위로만 지나므로 파란 물만 보인다.
의자 앞 등받이에 TV가 부착되어 있다. 동물 다큐 채널에서 오리와 새들의 생활 해설이 영어로 나온다. 이어폰을 끼면 생생한 영상, 음향까지 들을 수 있다. 베트남 항공도 충실한 비행기다. 또한 항공노선위치와 잔여거리, 시간 등도 바로 눈 앞 모니터에서 보니 좋다. 서울에서 호치민까지 완전히 바다 위로만 비행기 이동 자취가 그려져 있다.
베트남 시각으로 13:38분 도착예정이다. 지금시각, 한국 시계로 오후 3시 20분이다. 베트남이 보인다. 산악지대가 많다. 이제 바다에서 베트남 땅으로 들어온 것이다.
* 상공에서 본 베트남 호치민 시가지
바다에서 땅으로 비행기가 진입했을 때 열대우림지역을 실감나게 한다. 산이 많고, 긴 도로가 있고, 그 길 따라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호치민 공항에 가까이 이르러 사이공 시가지가 훤히 보일 때는 빌라들이 장난감처럼 지어 있어 색상은 아이보리, 회색 종류의 밝은 집들이 많다. 성냥갑을 포개거나, 이어놓은 것처럼 사각모양 주택들이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에 본 모습은 나무보다는 건물이 많이 밀집되어 있다. 허술한 도심이다. 큰 강도 보인다. 물색이 진흙에 녹색을 섞은 불투명한 색상이다. 높은 건물이 없다. 한국과 무관하지 않은 나라, 베트남, 그래서 더욱 큰 관심으로 다가온다.
* 베트남 호치민 공항
정시에 무사히 착륙했다. 활주로를 달릴 때 주변의 풀 색깔이 빨갛다. 더운 날씨로 탄 것 같다. 현재 온도가 30도라고 안내방송이 나온다. 옷을 많이 벗었다. 한국은 겨울, 이곳은 여름이다.
공항에 ‘Happy New Year' 프랑카드가 걸려 있다. 기독교 색채가 짙다.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늘 17:05분 비행기로 다시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 간다. 환승하기 위해 잠시 내려 기다리며 면세점 구경을 했다.
이 나라의 민속품과 생활용품이 많다. 물가는 티셔츠 1개에 6$~9$, 한국보다는 싼 편이다. 수공예품이 많다. 열대과일도 있다. 베트남 여인은 이 더위에도 머리를 감싸 얼굴만 보인다.
호치민은 구 사이공이다. 우리의 파월 장병들이 족적을 남긴 곳이다. 사이공은 베트남 수도였는데 지금은 수도는 하노이지만 호치민은 베트남의 제1도시다. 공산당 승리로 통일 후 남부 자유 민주주의 도시였던 사이공을 공산당 우두머리 이름인 호치민으로 바꾼 것이다. 하노이는 정치 도시, 호치민은 경제 도시다.
사이공 땅을 밟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공항 주변의 깨끗한 도심 풍경이 아름답다. 결코 가난한 티가 나지 않는다. 베트남 최남단 해변 도시 호치민, 아니 사이공, 아직도 도시명을 SNG로 쓰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다. 정확히는 호치민 탄손누드 공항이다. 3시간 정도 머물며 많은 것을 느끼게 한 도시다.
*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
호치민 탄손누드 공항은 상당히 컸다.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가기 위해 기다릴 때 게이트가 6에서 8로 바뀌면서 버스가 우리를 싣고 한참을 달려 비행기 앞에 내려 주었다.
비행기는 17:05분 정시에 출발했다. 호치민에서 씨엠립까지는 1시간 소요 예정이다. 한 줄에 셋씩 6명이 앉는다. 우리 가족은 8A,B,C다.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가는 길에 본 땅은 쓸모없는 땅이 많다. 늪지, 갈색 버린 땅이다. 그러다가 큰 호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나중에 안 것인데 그 호수가 캄보디아의 톤레삽 호수다. 계속 물과, 진흙 땅이다.
현지시각 18:05분, 정확히 1시간만에 도착했다. 기내식으로 나온 햄버거와 물을 먹고 나니 캄보디아다. 공항에는 푸른 나무가 많다. 베트남 공항과는 다르다.
캄보디아가 못 사는 이유가 바로 땅이 나빠서 그런 것 같다. 물 속에 나무들이, 곡식들이, 식물들이 잠겨있다. 겨우 호수 끝에 농토다운 경작지가 보일 뿐이다.
캄캄하다. 공항은 불교국가의 향기가 짙은 건물이다. 단층으로 마당에서 내려 걸어들어간다. 사원의 형상인 공항은 조명이 아름답다.
* 캄보디아 비자 발급
공항에서 비자를 발급받았다. 20불의 비용을 내고 13명 직원을 거쳐서 받는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14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 마지막 남자는 2~3불씩 받고 줄을 서는 불편함없이 그냥 비자를 발급해 준다. 정확히 말하면 비리다.
그뿐만 아니라 5불을 주면 호텔로 곧바로 여권을 갖다 준다. 이곳에 취직하면 2~3개월만에 집을 산다. 여기 취직하려고 온갖 백을 쓴다. 내전으로 안정되지 않아 돈만 있으면 다 통한다.
비리가 많은 나라, 돈이 안 되는 곳은 지키는 사람이 없다. 마지막 입국신고서를 받는 곳에는 공항직원이 퇴근해 버려서 책상 위에 종이를 던져놓고 나왔다. 우리는 그 현장을 보며 많이 웃었지만 속히 개선해야 할 이 나라의 당면 과제다. 국가 위상을 낮추는 행위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비자 발급 비리도 문제지만 여권 검색원이 1불을 달라고, 팁을 요구하는 것도 세계 여행 중 보기116 드문 나쁜 행각이다. 우리는 한국 가이드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지만 개인이 모르고 입국할 때는 황당하지 않겠는가. 사회가 발전할수록 모든 질서가 잡힌다는 교훈을 절실히 깨달으며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상당히 앞서 나가는 우수 선진국임을 알았다.
* 캄보디아에 대하여
캄보디아는 지금 겨울이다. 이곳 사람들은 추워서 고생이다. 낮에는 30~35도, 조석으로는 28도인데 겨울이라니 우리나라와는 비교되지 않는 지역이다.
마중나온 현지가이드 조성태 과장은 불교식으로 두 손을 모아서 인사한다. 식사 후 호텔로 이동할 것이며 그 동안 캄보디아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1년에 6개월은 우기, 6개월은 건기다. 즉 5~10월은 우기로 비가 내리고, 11~4월은 건기로 마른 날씨다. 지금은 건기다.
호수의 물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낮에 먼지 나지만 양호하다. 조석으로는 서늘하지만 낮에는 바람부는 보송보송한 35도의 더운 날씨다. 습도가 낮아 한국의 35도와는 다르다. 어디든 그늘 속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바깥 도로가 캄캄하다. 이것이 캄보디아의 모습이다. 한국의 1960~1970년대의 생활상 그대로다. 전기가 생산되지 않는 나라이기에 가로등이 없다. 수도는 프놈펜이고, 이곳 씨엠립은 한국의 경주, 공주와 같은 유적지 도시다. 그러나 프놈펜, 바탱밤에 이어 세 번째 큰 도시다.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도시, 밤에는 한적하지만 낮에는 북적거린다.
지금 경부고속도로 같은 6번 도로를 달리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까지 연결되는 가장 큰 고속도로다. 현재 경주, 씨엠립 엑스포가 열리고 있어 가로등불이 켜져 있다. 아니면 암흑 도시란다.
앙코르왓트 주변에 호텔이 140개가 있고, 국제 병원 등 제법 발달된 도심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이곳이다. 호텔가에 들어서자 꼬마 전구와 화사한 전등불빛이 아름답다. 꼬마전구는 크리스마스에만 켜는 것이 아니고 전력소모방지로 1년 내내 사용한다. 하루에 2회 정전되는데 호텔은 그래도 자가전기로 불편없다.
자국민 전가족이 전국에서 모여든 엑스포 관람차로 씨엠립 시내가 축제 분위기다. 작은 도로변에 사람이 한 가득이다. 현지인 생활 모습과 우리의 생활 모습을 비춰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앙코르 왓트 전공자가 2명인데 건축가인 한 분은 한국에 갔고, 우리 가이드만 유일하게 남았다고 하며 자신의 설명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한다. 그는 고고학 박사였다. 그래서 설명이 상당히 진지하고 수준이 높다.
캄보디아 택시는 ‘톡톡이’다. 사람이 발로 돌려 끌고 가는 큰 인력거다. 또한 개인 자가용은 오토바이다. 오늘부터는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베트남, 미얀마를 지배했던 앙코르 왕조, 900년 전 캄보디아로 거슬러 간다.
캄보디아 말을 배웠다. 가장 좋은 인사는 미소인데 만났을 때 ‘반갑습니다’ 는 ‘섭섭하이’, 헤어질 때도 좀 우울하게 ‘섭섭하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는 ‘없군’ 하면 된다. 섭섭해서 섭섭하이, 없어서 없군, 이렇게 외우라 한다.
현지 가이드는 ‘맙’ 이다. 30세 남자인데 캄보디아에서 이 정도면 상당한 엘리트다. 현지인 마을을 지나며 술집 슈퍼 등을 보았다. 가게 앞의 병에 담긴 노란색 액체가 뭔지 맞춰보라고 했는데 그것은 나중에 맙을 통해 알았다. 오토바이에 사용하는 가솔린이다. 오토바이가 많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중심도시와 유사한 이 나라의 가장 중심지가 씨엠립이고 그 도심 가운데를 지금 지나고 있다. 양 도로변에 사람이 많고 화사하다. 이곳만 그렇다. 외곽은 어둡고 한적하다.
* 샤브샤브 석식
해물, 고기, 야채를 익혀 먹고 그 남비에 볶음밥까지 만들어 먹는 현지의 전통 음식이다. 식당 상호가 ‘master suki soup' 이며 우리가 유숙한 호텔과는 5분 거리에 있다.
이 나라 야채는 모두 자기 나라 것이다. 한국 야채와 비슷하다. 라오스 국경 지대는 해발 1000~15000m 인데 온도 7도인 곳에서 고랭지 채소 재배가 가능하다. 100% 유기농이다. 비료, 농약 만드는 공장이 없다. 그만큼 땅이 좋다. 무공해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강조한다.
닭, 소, 돼지를 모두 그냥 방목한다. 땅이 넓어서 그렇게 기른다. 계란도 모두 유정란이다. 모두 가정에서 각자 길러 내다 파는 정도다. 걷고, 뜨겁고 하여 많이 먹어야 한다고, 눈을 채우면 배가 비워지고, 배가 채워지면 눈이 비워진다고. 철학적인 말을 한다. 그만큼 캄보디아는 볼거리가 많다는 뜻이고, 그래서 곳곳마다 나오는 음식을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새우, 게, 각종 야채를 찬합에 담아 쌓아 놓고는 종업원이 와서 끓는 육수에 모두 섞어 익혀준다. 한국의 섞어찌게처럼 각자 외그릇에 퍼다 먹는데 맵거나 짜지 않고 맛이 좋다. 볶음밥까지 맛있게 잘 먹었다.
* 호텔 도착
이곳의 물, 과일, 야채 등은 모두 무공해지만 낯선 나라의 물은 설사를 일으킬 수 있어 조심하란다. 시중에서 파는 물은 더위 속에서 상한 것일수 있으니 호텔에서 주는 물만 먹으란다.
모기가 있지만 괜찮다. 땅이 한국과 비슷한 황토로 싱싱하고, 살아 있는 흙이다. 무엇이든 심기만 하면 잘 자란다. 그리고 호텔에는 모기를 잡아먹는 투명한 벌레가 있다. 모든 것에 대하여 걱정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일부터는 완전히 벗거나,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양산, 반바지, 모자, 운동화를 꼭 준비하란다. 내일 14km를 걷는다. 강행군이다. 오전 7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한다. 이곳 호텔에서 2일간 유숙한다. 모닝콜은 6시, 식당은 1층에 있다.
온도 센서를 에어콘으로 조절한다. 비밀금고가 있는데 번호 네 자리로 입력하는데 숫자를 잊으면 이 나라는 호텔 지배인이 와야 열 수 있으니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낮에 비행하여 와서 저녁 휴식을 빨리하게 되니 좋다. 잘 모르고 에어컨을 강풍에, 25도 맞춰 놓았더니 새벽에 추워서 혼났다. 이것도 더운 나라 여행시 겪는 큰 교훈이다. 약풍으로, 28도 정도 조절해야 잘 때 알맞은 온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2007년 1월 2일 화요일 캄보디아 앙코르 왓트, 앙코르톰
* 앙코르 왓트 가는 길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신이 마주 본다 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나라다. 무조건 웃어라, 그 미소는 꼭 담아가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현지 가이드 맙의 미소는 참 아름답다. 순수한 웃음이다.
앙코르왓트는 하루에 평균 1200명이 입장한다. 오늘같은 방학에는 2000명 정도 온다. 성지 순례 장소다. 지붕까지 올라간다. 전세계인들이 오는데 단일 민족으로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 사람 구경을 많이 하는 곳이기도 하다.
3대 공덕을 지어야 앙코르 왓트를 제대로 본다는 속설이 있다. 비가 안 와야 되고 날씨가 좋아야 되고 등등 관람조건이 맞아야 된다는 것이다. 전생에 왕족이어야 앙코르 왓트를 제대로 본다고, 가이드는 두고 본다고 한다.
책,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다 지우라 한다. 수없이 식민사관으로 역사가 존재하며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나라 과거사를 정확히 알고 가란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고 있는 앙코르 왓트는 사실은 남아있는 것 중 최고일 뿐 근래에 와서야 알려졌다. 힌두문화를 이해하는 곳이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옛날 왕족, 승려가 다니던 길이다. 앙코르 왓트가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1866년 프랑스 학자 앙리모어가 처음 발견하여 가던 길이다. 양쪽에 숲이 울창하다. 허술한 민가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나와 구경한다. 검고 불쌍해 보이는데 그들은 역시 해맑은 웃음으로 외객을 반기고 있다.
* 슈가 팜트리
앙코르 왓트 사원에 들어서니 큰 연못이 있고 들어가는 긴 길이 있다. 그 길가에 야자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있는데 무서운 역사가 서린 나무다. 일명 ‘피의 나무’로 불리는 슈가 팜트리는 ‘톱날나무’라고도 하는데 줄기가 톱날처럼 날카롭게 되어 있다. 그 톱날로 돼지 잡고, 학살용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한번 베이면 특이한 진이 나와 봉합이 안 된다.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한다. 바닥에서 1m 20cm까지 학살 당시에는 피가 묻어 있어 피의 나무, 학살의 나무, 지옥의 나무로 불리는데 캄보디아 곳곳에 높이 솟아 있다.
* 복을 주는 뱀
앙코르 왓트 정문 앞에 뱀 7마리 석상이 있다. 캄보디아는 뱀이 복을 주는 동물이라 여겨 신성시한다. 코브라 뱀 형상의 조각이 건물 입구 난간을 길게 뻗어 감싸고 있다. 긴 몸통을 따라, 가도가도 꼬리는 만나기 힘들다. 어느 끝점에 위로 뻗쳐든 뺌 꼬리가 있다.
신기한 나라다. 징그러운 뱀이 이 나라에서는 사랑받고 있으니 말이다. 사원은 물론 수없이 만나는 뱀 조각상이다.
* 앙코르 왓트 그 웅장한 건물
상상을 초월하는 웅장한 건물이다. 국왕이 37년 동안, 왕조를 유지코자 태국인을 시켜 지었다는 사원이다. 현대 공법으로는 4년을 걸려야 짓는다. 무너져가고 있다고, 붕괴주의하라는 것은 일시 입장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국가적 관리가 안 되었을 뿐 결코 국민이 버리고 간 사원이 아니다. 화장실이 없다는 것도 신비롭다. 수많은 외객이 참아야 한다. 화장실을 짓지 않음은 앙코르 왓트에 대한 순수한 보존이라 생각했다.
높고, 길고, 어마어마한 건물을 보며 모두들 놀랐다. 그 옛날 천년전에 이런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앙코르왓트의 유명함을 깨닫게 한다.
* 앙코르 왓트에 대한 역사적 고찰
왕이 죽으면 2번 화장했다. 3일 반나절씩 앉혀 놓고 태웠다. 두 번째 화장할 때도 앉혀 놓고 한다. 1주일에 걸쳐 치르는 이 의식은 산 자가 가고 다시 신으로 내려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국왕이 신이 되어 내려오는 곳이 신전이다. 사찰, 힌두사원, 사원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힌두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원의 용도가 다르다. 캄보디아는 역사가 없다. 오히려 태국에는 캄보디아 역사가 많이 남아 있다. 형님 나라에 와서 역사, 유물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크메르는 원대한 국가였다. 주변국도 지배했다. 캄보디아 말은 어렵다. 사원은 네모 형태로 지었다. 그 이유는 네모가 땅에 내려온다 하여 그렇게 지었다.
3층은 신의 세계, 2층은 승려의 공간, 1층은 현상계 현상의 공간이다. 그 당시 승려는 신적 존재였다. 그래서 승려는 2층에 살았다. 1층은 시간이 있는 공간이다. 시간의 역사를 쌓는 곳이다. 힌두교의 순환고리는 결코 끊기지 않는다.
1층에 들어서니 벽면에 부조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적 사실이 대단하다. 벽면 전체가 부조다. 창조 단계의 첫 면에서는 전투 장면이다. 선과 악의 싸움, 우주 탄생의 장이다. 18명 장군의 역사 기록이다. 가장 존경받는 신은 비슈뉴 신이다.
남쪽 벽면은 발전단계다. 우주의 발전 단계다. 악을 누르고 선이 승리하여 발전하는 것이다. 벽면이 무너져 보수한 곳이 있는데 캄보디아는 남쪽으로 모든 물이 나가기 때문에 1km 갈수록 1m씩 낮아진다. 남쪽 끝까지 117km인데 정확히 117m 낮다. 호치민까지는 350km인데 250m 이상 지대가 낮다.
천국, 연옥, 지옥의 생생한 부조 조각물이 눈부시다.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대립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우주가 성숙, 발전하면서 또 다른 싸움의 대전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에게도 분명 천국과 지옥이 있다. 지옥에서 벌받는 장면이 흉측하다.
다음 벽면에는 천지창조의 부조다. 코브라 뱀이 바다에서 자는데 악마와 사람이 당기고 있다. 신의 신인 비슈뉴와 악마의 신 시바시의 대결이다. 해와 달이 낮과 밤을 지키는 것은 악마가 불로초를 못 훔쳐가도록 지키는 것이다. 우유 거품 위에 압살과 요정이 우글우글 떠 있다.
설명을 들으며 참으로 황당하기도 했지만 역사를 벽면애 부조로 말해 놓앗다는 것에 대하여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건물도 웅장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내용물이 큰 뜻을 시사하고 있다.
대립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우주가 성숙, 발전하면서 또다른 싸움의 대전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에게도 분명 천국과 지옥이 있다. 지옥에서 벌받는 장면이 흉측하다.
다음 벽면에는 천지창조의 부조다. 코브라 뱀이 바다에서 자는데 악마와 사람이 당기고 있다. 신의 신인 비슈뉴와 악마의 신 시바신의 대결이다. 해와 달이 낮과 밤을 지키는 것은 악마가 불로초를 못 훔쳐가도록 지키는 것이다. 우유 거품 위에 압살과 요정이 우글우글 떠 있다.
설명을 들으며 참으로 황당하기도 했지만 역사를 벽면에 부조로 말해 놓았다는 것에 대하여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도 웅장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내용물이 큰 뜻을 시사하고 있다. 고대 불가사의다. 돌이 1개에 6t, 1600여개 돌이 진흙을 닫고 있는데, 땅이 무너져야 되는데, 그런데 무너짐 없이 버티고 서 있다. 여러 면에서 세계 불가사의 건축물이다.
* 앙코르 왓트 3층 정상에 오르다
2층에 올라가니 수영장이었던 광장이 있고 오롯한 3층 봉우리가 보인다. 3층에 오르는 계단이 70도 각도로 가파르다. 즉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므로 가파르다.
우리는 그 계단으로 앙코르 왓트 3층 정상에 올랐다. 발을 디디는 면적이 좁아 옆으로, 기어서, 벽면을 잡고 간신히 올랐다. 자칫 손에서 힘이 빠지면 아래로 구르고, 돌계단에 부딪혀 큰 사고를 당할 것 같다.
정상에 오르니 신이 거하는 공간이 곳곳에 열려 있다. 창살이 7개씩 있다. 모두 돌로 조각했고, 옛 그대로여서 만지면 무너지기 때문에 손을 대면 안 된다, 하나 하나가 우주다. 계획적인 건축물이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인도를 향해서, 히말라야 산이 서쪽에 있어서, 서역의 정기를 받기 위해서다. 모든 것들은 동쪽을 향해 있는데 앙코르 왓트는 서쪽을 향해 지어졌다. 우리는 지금 65m의 최고층에 올라와있다.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운 정상의 문에 서서 바라본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위를 에워싼 돌 석축물이 장관이다. 탄성을 자아낸다. 속은 흙이고, 그 흙은 연못을 파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사원 부근에는 연못이 반드시 있다. 5cm의 두께인 돌에 조각하여 붙였다.
대단한 걸작품이다. 무수한 목숨이 희생당했을 것이다. 저 높고 광활한 사원, 오금이 저리도록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며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캄보디아의 값진 유산이다.
* 앙코르 톰
국왕이 거하던 집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들어갔는데 코끼리가 사람을 싣고 다닌다. 국왕이 다니던 길을 따라 광장을 걸어서 갔다. 코끼리 상과 여러 조각상이 벽면 가득한 마당이다.
‘왕의 연단’에 올라보니 양쪽으로 복도였던 긴 흔적과 앞면에 신의 널개탑, 잔디광장 등 광활한 정경이다. 14개의 우산을 받쳐들고 국왕이 1200m를 걸어서 들어온 곳을 그대로 재현하여 걷고 있다.
문으로 들어오니 붉은 건물이 하나 있다, 왕만이 오르던 곳이다. 국왕이 맨 꼭대기 방에서 이 나라를 다스리는 뱀의 신 나기니아의 딸과 4시간 자고 내려와서 인간이 아내와 잠자리를 한다. 신화지만 신의 정기를 받아 인간에게 전수한다는 것이다. 즉 왕의 후손은 신의 정기를 받은 것이라는 의미다. 피미아나카스, 즉 하늘의 궁전이라는 특이한 건물이다.
역시 계단이 가파르다. 앞의 계단은 부서진 부분이 있어 못 오르고 뒷계단으로만 오른다. 아들만이 올라갔다.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일행이 더운 날씨로 지쳐있고 가파른 궁전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 손을 번쩍 든 나의 큰 아들, 전생에 왕이었나보다. 건물 형태도 신비롭고, 그에 담긴 뜻도, 신화처럼 전해오는 역사도 모두 신비롭다.
* 바푸욘 사원
왕실과 담 하나 사이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원이다. 힌두교 사원인데 다 무녀져서 공사 중이다. 방이 90개, 승려 1명씩 방에 들어가 수도하던 곳이다. 원래 물에 떠 있던 사원이다. 그래서 땅 쪽에는 물에 잠김 흔적이 선명하다. 실제로 지금도 물에 떠 있는 느낌이다.
이 나라의 기술로는 보수가 어려워 프랑스인이 들어와 사원을 고치고 있다. 4년전부터 공사하는데 아직도 나무 기둥이 얼기설기하고, 지붕 위, 곳곳 방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바닥에는 무너져내린 돌덩이가 수북하다. 그대로 돌을 전시해두고 있다. 큰 나무 그늘에서 쉴 때 꼭대기 나뭇가지에 상황버섯과 비슷한 버섯이 나란히 자라고 있다. 저것이 상황버섯으로 둔갑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이 나무는 떡갈나무다. 상황버섯은 뽕나무에 자생하고 씨엠립에는 더워서 없다. 더워서 들어간 나무 그늘에서 새로운 버섯 지식을 얻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푸욘 사원은 옛 향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다.
* 바이욘 사원
대단히 아름다운 사원이다. 균형미가 잘 잡혀 있다. 모든 돌에 부처님이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 국왕 모델이다. 16개 소수민족이 탑 1개로 뭉치어 통일을 이룬다는 뜻도 담겨 있다. 54개탑에 얼굴이 4개씩 조각되었으니 216개 부처가 있는 셈이다. 현재는 34탑만 남아 있다.
외경도 우람하고 아름답지만 3층까지 걸어 올라보니 지붕 봉오리마다 미소를 머금은 부처들이 장관이다. 부처 조각상은 한 모습이 아니다. 옆면, 앞면 모두 합성되어 있다. 모든 것이 완성되어가는 삶을 내포하고 있다.
어찌보면 쓸모없는 건물이지만 세계 유일한 건물로 남아 존재한다. 힌두교 선물에 증개축한 것이다. 바스케이 뱀이 난간에 역시 둘러 진을 치고 있다. 절대로 그 신성한 몸통에 앉으면 안 된다. 기대앉고 싶으나 안 된다.
중앙 가운데 텅빈 공간이 있다. 텅빈 우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자애바르만 7세만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직사각형 문이 있다. 13세기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조각공법이 동일하다. 즉 돌을 쌓아놓고 조각하는 석조공법이다. 이 사원 역시 저 높은 꼭대기까지 돌조각을 쌓아올린 후 옆에 흙을 쌓으면서 그 흙 언덕에 서서 조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단한 정성과 혼혈의 힘이 들어간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모든 난간에 뱀의 몸통만 보인다. 따라가면 입구에 뱀 머리 두 개만 있고 꼬리는 없다. 끝없는 우주의 상징이다. 바이욘 사원의 사각문을 통해보면 부처의 전경, 옆모습이 액자에 담겨보인다. 모두 완전 우주 상징이다. 겹쳐 보이는 돌부처상은 불가사의한 공법으로 조각했다. 여러 개가 겹쳐 조화로운 하나를 이루고 있다.
연간 70만명의 여행객이 다녀가는 곳이다. 방문객은 1천만명 이상이다. 프놈펜은 800만명, 한국은 650만명의 방문객에 비하면 씨엠립은 많은 사람이 다녀간다. 순수 여행객이 700만명이라는 것은 상당한 인원이다.
캄보디아는 앙코르 왓트뿐만 아니라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어 큰 자원이다. 이 나라에 오면 당일에는 못 나간다. 1일 이상 자야 된다. 모두 관광수입 때문이다. 아무튼 대단한 유적지들이다.
* 반데스레이 사원 가는 길
이 사원은 씨엠립에서 외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버스로 이동하며 캄보디아의 이런 저런 모습을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다. 도심을 지나며 본 것은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어린이 병원이 인상적이다. 700개의 방을 보유하고 있는 붉은 벽돌 병원 건물은 도로변에 길게 늘어서 있다. 전세계 어린이 누구나 올수 있다. 자애바르만 7세 병원이라고 부른다. 안타까운 것은 250개 병상의 어린이가 에이즈 환자다.
그 이유는 이 나라는 헌혈이 없다. 그래서 아프리카 혈액이 수입되는데 그 때 옮긴 것이다. 불쌍한 나라의 불쌍한 현실이다.
‘명가’ 식당에서 한식으로 중식을 하고 떠났다. 길가에는 신발이 널려 있다. 전투화를 제일 좋아하는 나라, 이 나라의 신발은 좋다. 그 외 여러 노점상들이 길가에 많이 나와있다.
* 캄보디아의 버스
모두 일본과 한국에서 폐차가 들어온 것이다. 5만 주고 사다가 쓴다. 일본에서 온 버스는 운전석이 그대로 우측에 있다. 교통체계는 한국과 동일한데 우스운 현실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온 버스는 양호한 편이다. 깨끗하고 덩치도 크다. 이토록 가난한 나라일까. 목숨을 담보로 하는 차량을 폐차로 버리는 차를 가져다 쓴다는 대목에서 소슬하다.
* 캄보디아의 농촌
도심을 벗어나자 확 트인 들녘에 깃발이 많이 꽂혀 있다. 4월 20일부터 50일간 경주와 합작으로 엑스포가 열리는 곳이다. 그래서 도로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자 차츰 농촌 들녘이 보인다.
대부분 95%가 벼농사다. 메콩강이 흘러 전 국토의 80%가 이모작이다. 전세계의 식량 20%를 조달하는 양이 생산된다. 12월이며 호수의 물이 다시 메콩강으로 나가고, 4월이면 다시 호수로 모여든다.
갑자기 버스가 멈추고 한 소녀가 올라와 앙코르 왓트 입장시 산 표를 체크한다. 세부 인원, 아동, 남, 여 별로 분류하여 상세히 적어간다. 5진법을 쓰는 나라라서 계산이 늦어 시간이 걸린다. 공산당 잔재의 행위다. 일일이 관광 인원을 조사하여 상부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남한의 1.8배다. 95%가 평야지대다. 2005년 기준으로 1400만명인구다. 실제는 2천만명이다. 출생, 사망 신고가 제대로 안 되는 실정이다. 1명의 어머니가 5~8명의 자녀를 출산한다. 30대 이하여성은 몸매 관계로 많이 낳지 않는 풍조다. 산아 제한은 없다.
생산 안 되는 것은 단 1가지 시멘트다. 건축 자재가 부족하여 전량수입이다. 그 외 모든 광물이 나온다. 30대 이상은 50%가 문맹이다. 중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고 고교부터는 선택이다.
농촌 들녘에는 벼를 벤 논이 있고 소들이 그 볏포기를 뜯어먹고 있다. 모두 방목이다. 야자나무도 많이 보인다.
* 캄보디아의 집
모두 2층 집이다. 습기가 많아 1층은 살지 않고 2층에서 산다. 1층 기둥은 4각이다. 뱀이 많아 감고 올라오지 못하게 함이다. 집 주위에 바나나 나무를 심는 것은 꽃향기가 뱀을 퇴출시키기 때문이고 코코넛 열매는 식수로 쓰기 위해 많이 심는다. 이런 나무들은 다신을 상징한다. 시골의 집들은 모두 식물의 줄기로 엮어 지은 2층집이다. 그리고 집 주위에는 역시 바나나, 야자 나무가 무성하다.
더운 날씨 탓에 1층 기둥에는 질긴 천으로 요람을 매어 놓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매달려 흔들며 놀고 있다. 더러는 일하는 모습도 보이고 발가벗은 아이, 맨발의 엄마가 불을 때며 밥짓는 모습도 보인다. 가난이 줄줄 흐르는 나라, 기후 탓이라면 할 수 없지만 게으른 탓이라면 툭툭 털고 일어서야 할 일이다.
* 캄보디아의 결혼 풍습
딸에게 장가를 간다. 여자 집에서 2년간 일한다. 끝까지 남는 자가 여자를 선택한다. 그 남자는 집에 가서 1500불~3000불 정도의 지참금을 가지고 가서 결혼한다. 은쟁반에 수건 2개씩 들고 서서 식을 올린다.
여자는 뱀의 신 자녀라 항 대우하는 것이다. 여자를 신성시한다. 희한한 나라다. 같은 동양계인데 한국과 많이 다르다. 돈이 없으면 장가를 못가는 나라가 아닌가. 실제로 캄보디아 가이드 맙은 30세인데 돈 3000불~4000불을 모아야 결혼한다고 했다. 그는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고도 했다. 부모와 같이 벼농사를 짓는데 동생 셋을 대학까지 가르치느라 자신의 결혼 지참금은 없다고 했다.
단순히 뱀의 신 자녀가 여자라는 미신만으로 그런 것이라면 고쳐야 하지 않을까. 과학적인 사고로 인간과 인간이 맺어짐이 옳을 것이다.
* 모계 사회
완전한 모계 사회다. 그러나 성은 남자 것을 따른다. 이혼시에는 남자는 옷만 가지고 나가야 한다. 아이는 엄마에게 양육권을 부여한다. 다시 서로 재혼하고도 농번기 때 전 남편을 부르면 전처에게로 가서 그 집 일을 해준다. 서로가 그렇게 하므로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이상한 풍습이다. 미개한 나라인데 풍습은 반대다. 한국의 잣대로 그렇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권한이 많이 부여되는 만큼 책임도 크다. 대단한 여성사회 국가다.
* 한국의 새마을 운동 존중
국왕이 연설장에서 한국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새마을 운동에 대하여 30분씩이나 말할 정도다. 새마을 운동으로 성공한 한국을 본받기 위해 따르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인보다도 한국인을 좋아한다.
이 나라는 쌀 생산까지 8번만 손이 가면 된다. 한국은 88번 손이 간다. 벼를 벨 때도 벼모가지만 자른다. 물이 차서 물 위에 뜬 이삭만 수확하기 때문이다. 모내기도 안 한다. 대충 털고 나면 다시 볍씨가 떨어져나거나, 술술 씨앗을 뿌리면 그만이다.
그 후 볏대는 소들이 와서 먹는다. 비료나 거름이 필요없다. 우기에 들어온 물이 영양분을 남기고 건기에 떠나간다. 이런 사유로 농사를 대충 짓기도 하지만 공산당 시절 다 뺏겨서 열심히 하지 않는다.
분지의 나라다. 농사 안 짓고 도시로 나가려 한다. 씨엠립에는 일터가 많다. 쌀 100kg에 한화로 4만원 정도 헐값이다. 들녘에 소가 많다. 누렁소는 육우, 회색 물소는 뿔 1개가 소 한 마리 값이다. 그 외 흰소, 얼룩소 등 많다. 오리는 알을 받기 위해 기를 뿐, 시끄럽다고 고기는 안 먹는다.
도로 상태가 나쁘다. 포장을 했다는 곳조차 엉망이다. 새마을 운동은 모든 곳에 적용되어야 할 필수 운동이다. 겉과 속 모두 개선할 것들이 많은 나라다.
물방개, 귀뚜라미, 매미, 거미를 먹는다. 주식은 밤이고 과일은 간식이다. 샤브샤브 석식때 먹은 야채 모닝글로리를 많이 먹는다. 한국의 미나리와 비슷하다.
전기, 수도가 없다. 항아리에 빗물을 받아두고 식수로 쓴다. 그래서 집 앞에는 큰 항아리가 있다. 빗물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모터 자가 발전으로 TV를 사용한다. 자동차 밧데리를 충전해서 전기로 쓴다. 화장실은 공동 구덩이를 파고 사용한다.
훌륭한 점은 2층벽에 걸어둔 양은 냄비가 반들반들 빛이 난다는 사실이다. 벽돌을 받치고 나무를 베어다가 불을 때서 밥을 짓는데 그 그을음을 매일 닦는다. 그 그릇으로 그 집안의 게으름, 부지런함이 척도기준이기 때문이다. 또한 밥하기 위한 나무는 베는 것을 허용해도 수출하는 것은 금지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 캄보디아다. 보면서, 들으면서 느낀 이 나라는 한국의 전형적인 50~60여년전 모습이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한참 더 오래전 한국의 모습이라고 나는 느꼈다. 더위에서, 게으름에서, 하루 속히 탈출하여 한국의 새마을 운동만큼은 아니어도 구조적인 탈바꿈이 요구되는 나라다.
* 반데스레이 사원
일명 ‘여인들의 성’ 이다.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다. 돌과 모래가 붉어 적색 사원이다. 모두 승려가 기도하던 방이다. 절대 만지면 안 된다. 손만 대도 떨어진다.
문설주가 있고 그 문 위에 새긴 조각상들이 매우 정교하다. 시바신이 소, 난디를 탄 모습, 비슈뉴 신이 악마의 가슴을 찢는 모습 등 모두 신과 인간의 역사다. 해와 달을 관장하는 인디라신과, 애정을 상징하는 시바신, 화신인 비슈뉴신이 등장에 등장하는 곳도 있다.
해가 지는 빛이 사원에 서려 더욱 아름답다. 모든 면에 부조 조각상들이 붙어 있다. 높지는 않지만, 꼭 여인을 닮은 향기가 흐른다. 모든 사원이 그렇듯이 그 외모의 모양새도 중요하지만 조각으로 말하는 신의 역사, 인간의 역사, 우주의 역사가 찬란하다.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는 것도, 그것을 조각한 손길도 대단한 가치가 있다.
무언가는 부족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는 풍족한 나라, 캄보디아다. 반데스레이 사원 앞에는 열대과일 등을 파는 가게가 많다. 하나 하나의 모습들이 이방인에게는 신비롭다.
* 타프롬 사원 가는 길
가는 길이 울창했다. 짙은 숲 사이 뽀얗게 모래흙이 깔린 길을 많이 걸어서 갔다. 숲에는 닭이 살고, 강아지도 길에 돌아다닌다. 맨발로 까만 소녀들이 따라다니며 물건을 사라고 한다. 집요하게 쫓아오는 모습에 귀찮다기보다는 애처롭다.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앵벌이처럼 돈벌이에 내보낸 부모도 그렇고, 그렇게 사는 어린아이에도 문제가 많다. 그것이 한국적인 시각일지라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 나라는 방수 나무가 있어 그 진을 발라 집을 짓기 때문에 나뭇잎을 엮어 지은 집도 아무렇지 않게 산다고 들었는데, 타프롬 사원 가는 길에 그 나무를 만났다. 찌우대(CCHAEUTEAL) 나무다. 큰 기둥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방수액을 받고 있다. 신기한 모습이다.
해는 점점 서녘 하늘에 걸리고 울창한 숲 향기가 한결 짙게 드리운다. 사원이 많은 나라, 형상은 거기서 거기지만 찾아가는 길 또한 큰 관광이다. 모두 다 이 나라의 큰 유산이다.
* 타프롬 사원
나무가 많은 사원, 어머니를 위해 지은 사원이라는 말을 듣고 갔지만 사원을 돌아보며 많이 놀랐다. 사원의 아름다움은 둘째이고, 사원을 붙들고 사는 나무들이 위대하다. 크고 굵은 뿌리로 사원 지붕을, 담장을 휘휘 감아 지키고 있다. 밖으로 튀어나온 뿌리 모양이 장관이다.
어릴 적 베지 않고 그냥 둔 이 나라의 손길이 아름답다. 사원의 지붕에, 담장에 나무가 나올 때 상식적으로는 베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것도 한 두 그루가 아니다. 곳곳에 많다. 문 주위까지 내려온 것도 있다. 찌라이 나무라는데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통곡의 방’ 또는 ‘메아리의 방’ 이라 불리는 공간도 있다. 위는 구멍이 뚫려 식물이 보이고, 사방이 아담한 곳, 출입문 양쪽 두 개, 그런데 벽쪽에 서서 손으로 가슴을 치면 쿵쿵 울린다. 메아리로 들리기도 하고 어머니의 통곡으로 들리기도 한다. 신비로운 사원이다.
* 프놈바켕 일몰
초기 유적지다. 캄보디아 말로 ‘프놈’ 은 ‘산’ 이란 뜻이다. 즉 바켕 유적지가 있는 산에 가서 일몰을 보는 것이다. ‘프놈펜’ 도 ‘펜’ 여사의 이름을 붙여 지은 것인데 ‘산언덕’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길을 걸어 오른다. 한참을 가니 산 정상에 큰 사원이 있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일몰의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캄보디아 시각으로 오후 5시 30분이다.
저 멀리 들녘에는 자작자작 빠져나가는 습지의 물과 식물들, 위에는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땅, 모두가 대단한 비경이다. 일몰 시간을 잘 맞춰서 제대로 보았다. 출발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까맣게 내려 있었다. 씨엠립으로 가는 길에도 일몰 후의 붉은 노을이 장관이다.
* 압살라 민속쇼 관람
압살라는 앙코르 왓트 사원 회랑 부조에서 본 요정이다. 우유 거품 속에 떠오른 작고 귀여운 모습인데, 압살라 민속쇼는 이 나라의 전통 예술 공연이다. 절대로 불쌍한 시선으로 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것은 자기를 위한 적선이기 때문이란다. 이 나라 사람들의 맑은 영혼 그대로를 보고 가란다.
캄보디아의 과거를 보는 마지막 시간이다. 2층 내부 구조의 근사한 식당에서 뷔페 석식을 하며 1층 무대에서 공연하는 쇼를 본다. 손동작이 특이하다. 뒤로 많이 젖히는 것이 명작이다. 기운이 우주로 빠져나가는 춤이다. 춤과 노래는 인간이 보이는 가장 고귀한 영혼의 표현인데 지금 그 절창을 보고 있다.
전통 음식도 맛있고, 여러 기구를 들고 나와 젊은 남녀들이 무대를 누비며 우주와 신과 인간의 합일을 외치는 장면들이 재미있는 차원을 넘어 심오하다.
* 캄보디아의 현대 역사
1451년 부족장이 지배하던 시절, 이 길을 따라 프놈펜으로 유민 갔고 그 때 도읍을 정했다. 돌 하나에도 피와 땀이 서린 곳이다. 씨엠립은 ‘태국을 지배’ 란 뜻인데 태국에서 씨엠립을 앙코르 왓트로 고치라고 요구한단다.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역사는 이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 때는 크메르 왕조가 주변국을 지배했는데 프랑스와 베트남에게 지배당해왔다. 1954년 프랑스가 철수하고 베트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태국이 지배하던 땅을 프랑스가 지배하니 태국이 반환하라고 했으나 독립시켰다. 그것은 캄보디아의 광물자원 때문이다. 그것이 태국에게 넘어감을 막기 위해서다.
시아누크 국왕이 최초의 왕이다. 북한의 김일성과 같은 존재다. 국왕이 진두 지위하는 공산국가를 건립했다. 그러다가 1960년 후반에 월남전이 시작되었다. 영화 ‘킬링필드’ 는 공산 5년 동안 800만명 인구 중 200만명을 학살한 집단 농장 이름이다. 농민들을 쑥밭으로 만들고 인민재판으로 승려, 학자들을 대량 학살했다.
1979년 반 크메르가 내전을 종식시켰다. 베트남군이 진압하다가 1981년 떠났다. UN이 다시 들어와 짓밟았다. 특히 그때 성문란을 심어놓았다. 한국과의 수교는 1994년에 이루어졌다. 캄보디아 이민은 최고 오래된 자가 14년이다.
현재는 미혼인 아모니 국왕이 59세로 2002년부터 다스리고 있다. 시아누크는 93세로 아직 살아있고 아모니 국왕은 시아누크 3세다. 누가 다음 왕이 될지 모른다. 현 국왕이 후손이 없기 때문에 앙드왕 후손이 될 거라고 추측한다.
이 나라는 근친혼이다. 왕은 그들 혈족끼리 결혼한다. 왕실은 북한 사람이 와서 일하고 경제는 남한 사람이 와서 일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을 존중하며 국왕이 30분씩 공개석상에 강연할 정도다. 그대로 본받아 실행하려고 한다. 아마 5년 후면 베트남보다 더 나은 나라로 발달하는 국가가 될 거라고 한다.
무연탄, 석회석만 없고 광물질이 풍부하다. 태양열이 1년 내내 경제발전의 무기로 사용된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나라다.
말레이시아만 무비자로 입국 가능하고 다른 국가는 모두 비자가 있어야 들어온다. 말레이시아는 같은 왕족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싫어한다. 김우중을 존중한다. 한국인이 동남아 개발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 나라를 부흥시킨 사람은 김우중 대우 그룹 회장이다. 그런 경제인을 홀대하는 한국 정치인들을 싫어한다.
지난 4월 21일 노무현 한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물론 앙코르와 경주 합작 세계 문화 엑스포 행사 관계로 방문왔지만 씨엠립에서는 계란 판매가 전면 금지되었다. 폭동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연간 10억원을 원조하던 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18억으로 원조를 높여준 것에 대하여는 대환영이다.
92년에 사시 합격한 조성태 가이드, 성균관대학교 90학번, 현재는 고고인류학 박사, 3개월 후면 유네스코로 들어간다는데, 캄보디아는 자비로운 나라라고 예찬했다.
2007년 1월 3일 수요일 톤레삽 호수, 수상촌,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 킹돔 앙코르 호텔 출발
오늘은 베트남으로 가는 날이어서 이 호텔은 완전히 떠난다. 가방만 두고 갔다가 저녁 때 들러 싣고 간다. 캄보디아 버스는 짐을 싣는 칸이 없어 차 앞좌석 두자리에 대형 가방을 쌓고 다닌다.
킹돔 앙코르 호텔은 좋다. 실내 수영장이 있어 밤 10시까지는 수영을 즐길 수 있어 큰 아들은 수시로 내려가 수영했다.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좋고, 외경도 아름답다. 꼬마전구 불빛이 아련한 미소로 흐른다. 야자 나무도 있고, 앙코르왓트에서 본 피의 나무도 있고, 열대 우림 지역의 풍경이 서리어 있다.
아쉬움을 접고 버스에 올랐다. 톤레삽 호수로 가기 위해서다. 도심의 아침은 더위에서 해방되어 상큼하고 출근행렬로 활발하다.
* 씨엠립의 출근 풍경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오토바이에는 백미러가 없다. 새로 살 때 달린 거울도 떼어버린다. 이곳 사람들은 뒤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는 습성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보다 미래만 생각하겠다는 다짐인 것 같다. 모자도 쓰지 않고 다닌다. 오토바이 영업도 하는데 부르는 게 값이다. 조성태 가이드가 씨엠립 공항에서 시내에 들어올 때 부르는데 1달러면 온단다. 그러나 말을 안 하고 타면 제 마음대로 2달러를 요구하기도 하고 흥정을 잘 하면 500원에도 온단다.
착한 것은 가이드가 나와 있지 않으면 집까지 와서 문을 두드린단다. 이들의 영역이 있다. 누구를 찾으려면 3시간이면 충분하다. 택시인력거도 있다. 뒤에 사람을 싣고 앞에서 운전하여 끌고 간다. 한국의 옛날 우마차와 비슷하다. 우리가 보기에는 낭만인데 저들에게는 눈물겨운 생업이다.
탁발 공양하는 스님도 있다. 맨발로 해탈코자 도심을 걷는다. 그래도 술, 담배, 고기 다 먹는다. 2년 승려 생활하고 세속으로 나오기도 한다.
자가용은 비싸서 갑부나 소유하고 있다. 가끔씩 자가용이 보인다. 공무원은 세금을 내지 않고 싸게 산다. 그래서 공무원을 통해 자가용을 사곤 한다. 전세계 200대 부자 중 2명이 캄보디아에 있다. 엄청난 빈부 차이다. 거리가 조금 지저분하지만 그건 기후 탓이라 이해했다. 작달막한 영세민의 가게에는 열대과일과 음료가 많이 눈에 띈다.
* 톤레삽 호수 가는 길
씨엠립 도심을 벗어나자 좁은 도로변에 수상 가옥이 보인다. 집이랄 것도 없는 누추한 움막이다. 물이 차 오르니 막대기로 높이 받치고 원두막처럼 나뭇잎으로 집을 지었다. 그 속에서 사람과 개가 같이 산다.
들녘은 물이 찬 늪지다. 벼를 심은 논도 있고 농사를 준비하는 밭도 있다. 이곳 아이들은 들이 운동장이다. 어른들도 들의 초원에 가서 골프를 친다. 아이들은 골프공이 신기해서 따라다니며 주워다 준다.
집은 외곽 뿐만 아니라 도심도 2층집이다. 1층은 맨 땅이고 2층에 가구를 놓고 산다. 부자는 대문과 울타리가 있다. 나무는 1년 중 반은 물 속에 잠겨서 산다.
톤레삽 호수에 가까워지자 공사현장 가건물도 물 위에 떠 있다. 모든 건물이 수상에 있다. 고기 잡는 발가벗은 사람도 보인다. 황토색 뽀얀 길이다.
* 톤레삽 호수
버스에서 내렸을 때 원주민들이 달려왔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과일 등 물건을 사라고 쫓아온다. 수상가옥, 수상가게가 즐비하다. 톤레삽 호수의 물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니 교회, 학교, 운동장, 이동가옥 등이 호수변에 늘어서 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호수의 물빛은 황토빛이다. 황토흙의 나라여서 그렇다. 서울의 5배 크기 호수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호수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씨엠립에 올 때 비행기가 바다 위를 날 듯 떠 온 물이 바로 톤레삽 호수다.
호숫가 숲에 묘지가 있다. 공동묘지도 있고 단독묘지도 있다. 우기 때는 물에 잠기는데 지금은 건기라서 환히 보인다. 반은 물 속에 잠겨사는 나무 군락이 울창하다.
점점 달려나가자 드넓은 호수의 수평선이 보인다. 광활한 호수다. 그때 지뢰로 팔 하나가 잘린 남자아이가 양은 다라에 몸을 싣고 떠다닌다. 슬픈 생을 전시하고 있다.
수상 가게에 들러 찐 새우와 음료를 먹었다. 2층에 올라가 호수를 바라보니 더욱 아름답다. 물고기와 악어를 기른다. 악어는 기름과 가죽용으로 기른다. 주변에는 작은 쪽배를 몰고 다니며 장사한 아낙네들이 즐비하다. 미니슈퍼다.
톤레삽 호수는 캄보디아의 물을 다스리며, 백성의 일부를 품고 사는 드넓은 가슴팍이다. 모든 생명체가 물 속에서 물 위에서 공존하고 있다.
* 수상촌
물 위에 지은 집은 우기 때 물이 불어나면 저절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또는 물을 타고 이사하기도 한다. 실제로 배가 끌고 가는 이삿집을 보았다. 육지로 나갈 때는 트럭이 싣고 가는데 그 풍경도 실제로 보았다. 모두 눈물겨운 삶이다. 우리는 신기하여 웃었지만 저들은 고달픈 삶의 현장이다.
한국 사람이 자선사업으로 지었다는 학교와 십자가가 서 있는 교회도 보았다. 수상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는 그래도 큰 축복이다. 일본인이 지어준 수상 운동장도 있다. 농구하는 학생을 보았다.
수상촌은 말 그대로 물 위에 형성된 마을이다. 돼지와 닭을 기르고 채소를 기른다. 돼지도 매일 목욕하고 사람도 발가벗고 목욕한다. 분뇨를 그대로 물 속에 배출해도 호수가 넓어 지장이 없단다.
슈퍼, 충전소, 기념품 가게, 과일 가게, 또 육지의 트럭처럼 장삿배가 수상가옥 집 앞에 와서 물건을 팔기도 한다. 모두들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이다. 찌든 때를 이 나라에 묻고 가란다. 맑은 영혼과 미소만 담아가란다. 작은 남자아이가 우리 배를 인도한다. 배 옆 난간을 다람쥐처럼 다닌다. 제 키보다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 배의 방향을 바꿀 때 도와준다.
버스로 다시 돌아오니 아까 저희들 마음대로 찍은 사진을 3달러에 판다. 앙코르 와트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접시에 한 사람씩 사진을 붙여판다. 나와 남편도 있어 샀다. 사진 질이 나빠 곧 망가질지 모르나 접시도 괜찮고, 그것도 하나의 그들을 돕는 방법이리라.
지구상의 때묻지 않은 나라, 그 나라에서도 더욱 오롯한 순수, 그 비경을 보고 체험하며 잠시나마 원시의 세계에서 덩달아 행복했다.
* 이사 풍경
수상 가옥을 잘 살펴보면 바닥 부분은 모두 뗏목을 깔고 지었다. 타이어 바퀴가 달린 집도 있다. 쇠로 튼튼하게 지은 학교 건물도 수시로 이동한다. 톤레삽 호수의 물은 이들에게 있어 흙의 개념이다.
유람선을 타고 나오며 이사가는 풍경을 목격했다. 배가 앞뒤에서 보호하며 끌고 밀고 하여 집이 떠간다. 보기드문 풍경인데 행운이다.
또 육로를 달릴 때 트럭 위에 싣고 가는 이사 풍경을 보았다. 집을 통째로 트럭에 싣고 간다. 그것도 보기 드문 일인데 목격했다. 큰 행운이 따른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서 적응되는 고차원의 동물임이 입증되는 순간들이다. 수상가옥의 이사는 이방인에게는 큰 구경거리이며, 큰 선물이다.
* 왓트마이 작은 킬링필드
현지인이 운영하는 절, 사원이다. 학살 유적지와 법당, 사무실이 있다. 마당에 들어서자 해골탑이 가장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학살당한 사람들의 해골로 팔다리뼈가 투명유리방에 가득 쌓여 있다.
킬링필드 유적이다. 섬뜩한 풍경인데 그대로 전시해 두고 있다. 법당은 난간에 코브라뱀이 길러 들러 있고 내부에는 불교신자의 기도하는 자리도 있다. 불교 그림도 크고 아름답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 오후, 오늘 온도는 36도다.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그래도 보송보송한 더위라서 그늘 속이나 양산 속에 들어가면 견딜만하다. 해골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 싶다.
* 보석 공장
캄보디아를 비롯한 주변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 버마에서는 보석이 많이 나온다. 일렬로 보석 지역이 띠를 이루고 있다. 특히 루비와 싸파이어가 많이 생산된다.
설명을 들었다. 1월생은 자아도취형, 6월생은 자존심이 강한 형, 여성들의 출생 달을 물으며 알려준다. 나는 음력 6월생 용띠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걸까. 모두들 자신에 대하여 잘 맞춘다고 한다.
그저 견학하는 정도다. 외국여행에 대하여 높은 식견을 지닌 한국인들은 쉽게 상술에 넘어가지 않는다. 꼭 필요하면 값을 고하하고 사야겠지만 불필요한 구매는 피해야 할 것이다. 잘 휴식하고 떠나왔다.
* 프랑스 공예학교 견학
참으로 넓고 다양한 기술을 전수하는 학교다. 목각, 음각, 석각 등의 작업으로 기술을 습득한다. 정원도 아름다운 조각품, 꽃, 잔디로 곱고 빙둘러 작품실이 있는데 중학생 정도의 남녀 학생들이 실제로 예술품을 만들고 있다.
부처로 조각하는 자, 금박이를 입히는 자, 그림을 그리는 자, 등등 무수히 많다. 프랑스인이 동양과 유럽의 공예기술을 접목하여 훌륭한 교육을 시키는 현장이다.
* 재래시장
시간적 여유가 있어 2시간 정도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한국의 남대문 상가처럼 옹기종기 밀집되어 있다. 탁발 수행 스님도 지나간다. 무더운 날씨지만 가게 안은 모두 이어져 있어 시원한 편이다.
싸다. 모든 물건들이 그렇다. T셔츠 반팔 1장에 2달러다. 질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인건비가 싸서 그렇다. 앙코르 왓트 유적지를 그린 것으로 몇 장 샀다. 코끼리 조각상도 기념으로 샀다. 4달러, 싼 편이다. 또 1~2달러 정도 확인도 해 준다.
실크 섬유와 모조품 보석장식물이 주를 이룬다. 어떤 팀은 한 차에 1.5달러를 주고 인력거 택시로 시티투어를 하기도 했다. 캄보디아의 시간이 점점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 씨엠립에서의 마지막 식사
돼지갈비 바비큐로 훌륭한 식단의 마지막 석식이다. 계란말이, 야채, 과일, 레볶음, 김치 등으로 풍성한 식탁이다. 이 나라 육류는 모두 방목하기에 단단하고 고소하다. 돼지고기 구이가 참 맛있다. 많이 먹었다. 현지식이다.
식사 후 나와서 거리 풍경을 보았다. 퇴근길 역시 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이다. 해가 진 거리는 어두워지고 둘씩, 셋씩 탄 오토바이가 질주하여 흐른다. 가게에는 오토바이용 기름 가솔린이 담긴 노란 패트병이 이 만큼 나와 진열되어 있다.
캄보디아 가이드 맙은 새벽 5~6시, 1시간 동안 현지 승려로부터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어를 제법 한다. 한국을 좋아하며 일본인과 중국인은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30세인데 순수하고 영롱한 청년이다.
기념품 가게 여종업원은 월급이 5만원이고 공무원, 교사는 3만원 정도의 월급이라 한다. 국민소득이 상당히 낮은 나라다. 그래도 많은 한국인을 가이드하니 행복한 사나이다.
모든 것들이 아쉽다. 풍경도, 맙과의 헤어짐도, 두고 가는 모든 것들이 애련한 정경이다.
* 씨엠립 공항 출발
킹돔앙코르 호텔에 들러 대형 가방을 싣고 씨엠립 공항으로 갔다. 밤 11시 45분 베트남 항공으로 베트남 하노이로 간다. 캄보디아는 외국인 가이드로 불가능해서 반드시 현지인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캄보디아인 맙은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미소짓고 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공항 안으로 우리를 들여보내고는 맙은 계속 아쉬운 듯 손을 흔들어 뜨거운 이별을 고한다. 특히 아들과는 정이 들어서 굳은 악수로 정을 나눈다.
캄보디아 공항은 깨끗하고 천정이 높다. 지붕을 사원 모양으로 지어서 그렇다. 단층건물이다. 면세점도 넓고 깨끗하다. 3번 게이트에서 공항버스가 들어와 승객을 비행기에 실어 나른다. 2층이 없으니 비행기에 연결하는 복도를 설치할 수 없어서다. 점점 어두워지는 활주로다. 비행기는 나비처럼 그래도 사뿐히 오른다.
* 베트남 하노이 노바이 공항 도착
오후 10시에 도착했다. 모두 산악지대인 것 같다. 오면서 캄캄한 지상만 보였다. 하노이에 있는 노바이 공항은 제주도 공항과 유사하다. 한국 기술자가 만들어 준 것이다.
이곳은 그 옛날 월맹 공산국가다. 그래서 공항 풍경이 삼엄하다. 입국시에도 얼굴을 빤히 몇 번이나 올려본다. 그래서 종종 싸움이 일기도 한단다. 나는 여자라서 쉽게 통과했는데 남자들은 기분나쁠 정도로 시간을 끌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무슨 디카 같은 기계로 얼굴 사진도 찍는다. 모두 공산주의 잔재라고 이해했다.
이곳에서 호텔까지는 30분 거리다. 우리를 마중 나온 이기현 과장을 만나 버스를 타고 가며 베트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긴 나라 베트남, 그래서 사이공이었던 호치민과도 온도 차이가 많이 난다. 풍경도 호치민 공항의 자유로움보다 단단한 기류가 흐른다.
*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
첫 느낌이 포근한 나라는 아니다. 조명도 없고 캄캄한 거리다. 그러나 캄보디아와는 분명 다른 발달국가다. 학창 시절 공산주의 빨갱이 나라로 배웠고 반공교육을 받았던 그 북부 공산당 베트남에 온 것이다. 현재는 조금 발전하여 사회주의 국가다.
밤 1시면 상가가 문을 닫는다. 그래서 도심이 어둡다. 그것도 공산주의 잔재다. 한국보다 30년 뒤진 1980년대 생활수준이다. 시골은 1960년 한국 모습 그대로다. 구 한국, 구 우리나라를 회상하는 재미있는 나라다.
불교+유교+도교, 3종교를 접목시킨 나라다. 종교도 한국과 유사하다. 한국의 1.5배 땅이다. 전에는 하노이에 외국인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다. 사회주의라서 거주 증명이 명확해야 되고, 국내 및 국외 여행시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모두 사회주의라서 그렇다.
호치민은 국가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몸바친 공산당 최고 권력자다. 통일 후 남부 수도 사이공을 그의 이름 호치민으로 바꿀 만큼 그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노이는 정치 중심, 경제 중심 특수 지역이다.
호텔에 들어갈 때도 진짜 부부인지 체크한다. 여권도 떠날 때까지 호텔에 맡겨야 한다. 전원 모두 파악 작성하여 군부에 보낸다. 3개월 후 소각하지만 그런 절차 없이는 머물 수 없다. 하롱베이 호텔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APEC, WTO 등에 가입해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나라다. 야간 작업자도 있다. 늦은 퇴근 시민들이 보인다. 가장 닮고 싶은 나라, 역시 베트남도 한국을 꼽는다. 베트남과 가장 비슷한 처지여서 그렇다.
베트남 처녀를 한국 남자와 결혼을 주선하는 것도 생활상이 비슷해서다. 후일엔 아마 베트남에 여자가 모자라서 수입이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의 곳곳에 베트남 여인을 소개하는 프랑카드를 이곳에 와서야 이해했다.
한국에서는 나쁜 시각으로 바라보았지만 이곳 사람들의 근면함과 성실함에 안심이 된다. 좋은 세상이다. 못 올 땅을 온 것에 대하여 기쁘며, 한국도 하루 속히 통일하여 공산당이지만 북한 땅을 자유로이 밟길 소망한다.
*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를 지니고 있다. 홍강 위에 놓은 3.4km 다리다. 프랑스 지배시 프랑스 기술로 건설한 다리 ‘탁롱’ 이다. 떠오르는 태양, 비상하는 용을 상징한다.
여름철에는 황토색 물이 많이 들어온다. 프랑스 선교사가 그 붉은 물을 보고 ‘붉은 강’ 즉 ‘홍강’ 이라 이름지었다. 베트남에는 큰 강이 2개 있는데 홍강과 남쪽의 메콩강이다. 메콩강은 구룡강이라고도 한다.
고가 다리를 내려와 즉시 U턴이 가능하다. 역주행도 가능하다. 그만큼 교통체계가 엉망이란 뜻이다. LG 선전 전광판이 보인다. 이곳 언어는 영어식에 기본은 한자 글자를 사용한다. 그래서 영문 비슷한 표기다. 위에 점을 찍는 정도다. LG 가전 제품은 지명도가 높다. 세탁기, TV 등 8천불 주고 3년간 계약을 맺은 상태다.
어슴프레한 불빛을 통해 교각이 보이고 한 동안 다리 위를 달려 시내로 진입했다. 우리나라와 연관이 깊은 나라이기에 애착이 더 가는 나라다.
* 신도시 건설 현장
하노이는 국제 도시다. 지금도 외곽으로 신도시를 건설 중이다. 그런데 특이한 현장을 보았다. 신도시 건설 현장은 대문이 먼저 들어서 있다. 입구의 문을 높이 세워놓고 아파트를 짓는다. 실제로 텅빈 땅에 문만 소슬하게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과시욕의 표현이다. 땅 부지도 안 닦았는데 대문만 근사하게 세운다. 아파트 촌에 문을 세운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공산주의는 분명 다름을 본다. 그래도 깨어 일어나 자본주의 성향으로 발돋음하는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의 건설 현장은 아름답다.
* 호텔 도착
캄보디아보다 춥다. 한국보다는 따뜻하다. 이런 온도 차이에서 건강주의는 필수사항이다. 눈이 없는 나라다. 지금이 가장 추운데 한국의 늦가을 수준이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 이 나라의 생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히터와 에어콘 겸용이라서 구분하여 히타를 켜고 자야 한다.
수돗물은 석회석이 많고, 철분이 많아 피부에는 좋으나 그대로 먹으면 즉시 설사가 나온다. 호텔이나 식당에서 꼭 물을 사 먹어야 한다. 물가는 싸다. 1달러에 물 2병이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우리 가족이 자는 방은 바로 호수 곁이다. 국영 호텔이었던 호텔이라서 굉장히 웅장하고 좋다. 호수는 ‘서호’다. 중국 항주의 서호와 동일한 이름이라서 더욱 친근감이 든다.
나와 남편과 큰 아들은 큰 방에 침대를 하나 더 들여서 셋이 잔다. 호숫가 침대에는 큰 아들이, 가운데는 남편이, 나는 가장 따뜻한 벽의 안쪽에서 잔다. 내일은 6시에 모닝콜, 8시에 하롱베이로 출발한다. 아름다운 이국의 밤이다. 한국 YTN 방송 뉴스도 나오고 좋다. 호텔의 여정도 해외 여행에서는 신비로운 시간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다른 풍습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모두가 여행 중 얻는 큰 교육이다.
2007년 1월 4일 목요일 베트남 하롱베이, 수상 인형극
* 탕라이 호텔
베트남 하노이에서 유숙한 호텔이다. 수상 호텔이다. 이렇게 호수변에 지은 호텔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요금도 상당히 비싸다. 지난 밤에는 늦게 들어와 몰랐는데 룸의 문을 나서자 사방이 비경이다. 객실, 우리가 잔 방은 물 위에 떠 있고 호수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바닥을 마련해 놓았다.
수영장과 야자수, 드넓은 호수 서호, 웅장한 호텔 건물, 또 다른 건물들, 호수에 짓고 있는 호텔 건축 현장 등등 빼어난 경관이다. 실내에 만들어 놓은 유리벽 안의 폭포와 대나무 숲, 연못, 수석 등은 그리움 가득 서린 정경이다. 종업원들은 상당히 친절하다. 베트남의 첫 아침은 이렇게 아름답게 시작되었다.
* 하노이 시가지 풍경
보슬비가 내리며 서늘한 도시는 뿌옇다. 1년 내내 상쾌하지 않은 날씨란다. 안개 낀 느낌이다. 여름에는 습도가 90%다. 늦은 오후 같은 느낌이 든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4시간이 소요되는 곳이다. 버스는 하노이 도심을 달리며 하롱베이로 가고 있다.
80년만에 찾아온 겨울이란다.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를 입고 다닌다. 나도 처음에는 반팔을 입고 나왔다가 다시 잠바를 걸쳤다. 모든 것이 궁금하여 창 밖의 풍경을 두 눈에 열심히 담았다.
차도 주변에 전깃줄이 한 묶음씩 늘어져 있고 주택이 보인다. 왼쪽은 부자가 사는 구옥이고, 오른쪽은 신흥 수상 가옥이다. 베트남도 호수변에 집을 짓고 산다. 캄보디아보다는 훨씬 좋은 시멘트 가옥이다.
전반적인 풍경이 발달된 모습이다. 깨끗한 편이고 한국의 옛 모습을 보는 듯 유사한 것이 많다. 하노이는 서울 크기의 도시다. 그러나 도심은 좁다. 외곽에는 시골 농토가 있다. 아무튼 생각보다는 훨씬 앞서 있는 베트남이다. 활기찬 출근 풍경, 잘 지은 건물들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 등에서 이질감이 없다. 한국의 어느 중소 도시에 온 느낌이다.
* 베트남의 역사
동남아시아는 최서에는 태국, 최동에는 베트남, 중앙에는 캄보디아, 북쪽에는 미얀마, 남쪽에는 말레지아, 그리고 중국의 남쪽 하이난도가 있다. 어느 국가나 슬픈 역사가 존재하듯이, 베트남 또한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다.
지금 지니고 있는 긴 다리도 프랑스 지배의 잔재이고, 이 다리가 지금까지 보존된 것도 미국 지배의 잔재다. 외곽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서울의 한강다리와 같은데 전쟁시 한강다리는 붕괴되었는데 이 다리는 미군들이 포로 수용소 공간으로 사용함에 부수지 않았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고, 1973년에서야 종전된 국가다. 1975년부터 겨우 통일국가가 시작되었다. 936년부터 1,000년간 중국과 싸움이 끊이지 않은 나라, 결국은 중국이 포기한 나라다. 그때 중국이 준 국호가 ‘안남’이다. 편안한 남쪽이란 뜻이다. 한국에서 무심코 불렀던 쌀이름 ‘안남미’ 에는 바로 베트남의 슬픈 역사가 담겨 있었다.
프랑스인이 세우고 갔다는 유일의 철교가 덩그러니 서 있다. 일본의 잔재가 한국에 남아 있듯이 베트남은 프랑스 잔재가 많다.
* 베트남의 장례 문화
논, 밭 가운데 가족 묘지가 있다. 흉측한 장례문화다. 산이 없어서 집 주위에 묻는다. 중국 영향이다. 가족끼리는 관을 포개서 얹어 놓는다.
사람이 죽으면 작은 나무관에 묻어 흙을 얇게 덮는다. 3년 후에 무덤을 열어 사체에 물이 찾는지, 관은 무사한지 확인한다. 후손에게 무사함을 기원하는 심령제도다.
개장한 후 사체를 낱낱이 분리하여 작은 아이 크기의 석관에 쌓아서 묻는다. 머리, 상체, 하체 마디마디 분리하는 현장을 본 가이드는 상세히 설명해준다. 3년 후 무덤 속의 시체는 내장만 썩을 뿐 형태 그대로 있더란다. 머리는 길게 자라있고, 손톱은 길게 자라 꼬여 있더란다. 섬뜩하더란다. 이상한 장례 문화다.
작은 납골당이 곳곳에 있다. 큰 무덤도 있고 작은 무덤도 있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석관이 쌓여 있거나 흙 위에 노출된 것은 두 번째 묻은 것이다. 도교사상에서 유래된 장례문화다. 땅, 하늘 기운을 받아 목관에 넣어 1차로 묻고, 2차로 여러 겹 석관에 넣어 나쁜 기운이 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단한 석관이 많이 보인다.
참고로 이 나라는 8가지 중범죄가 있는데 무조건 사형이다. 미성년자 성폭행, 식품불량, 탈세 등의 죄를 지으면 심장에 백, 흑의 선으로 과녁을 그려놓고 4명의 사수가 5발 연발로 공개 처형한다. 5발 중 그 안에서 1발에 사형되는 것이다.
무섭지만, 공산당식 문화지만 철저한 사회질서를 위해서는 좋은 제도라 생각된다. 장례문화도 처음 들을 때는 소름이 돋았는데 베트남 들녘에서, 민가 주변에서 무수히 만나고 나니 예사롭다. 조상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음에 좋을 듯도 싶다.
* 오토바이 천국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에 오토바이 3천대가 따라온다고 놀라지 말라던 가이드의 말이 실감난다. 붕붕 큰 소리를 내며 도심을 질주한다. 버스나 자가용은 어쩌다 눈에 띄고 모두 오토바이로 이동한다.
학생들도 오토바이를 둘씩, 셋씩 타고 등교한다. 도심 한 복판에서는 차도가 아니고 오토바이도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무더기 오토바이가 신호등 앞에 줄 서 있다. 집단에서 움직일 때는 대단한 소음과 가스가 진동한다.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의 교통 수단은 거의 오토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집에 한 대꼴로 가지고 있다. 자가용보다는 절약이겠지만 중국처럼 차라리 자전거 이용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이방인의 눈에는 두려운 질주, 두려운 대상이다.
* 하롱베이 가는 길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하롱베이로 달리고 있다. 이 고속도로를 타고 베트남 남부까지는 2박 3일이 걸린단다. 남북 해안선이 2250km, 동서 52km인 나라다. 주먹을 쥐고 엄지와 검지만 펴서 거꾸로 들면 베트남 지도가 그려진다.
베트남의 명소로 알려진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4시간이 소요되는 곳이다. 긴 여정에서 베트남을 보는 것도 큰 공부다. 나는 버스 안에서 베트남의 전신을 보고 있다. 강가에 옥수수가 많이 심겨져 있다.
도로 사정도 캄보디아보다는 좋다. 넓지는 않지만 승차감도 좋고, 차량도 크고 편안하다. 동쪽의 바다 쪽으로 하롱베이, 즉 용이 내려왔다는 하롱만으로 가고 있다.
공산당 테두리 안에서 자본주의 유토피아적 이상을 추구하는 나라다. 그러나 30년을 근속한 고위직 공무원이 탈세가 발각될까 미리 퇴직하는 나라다. 그런 시각으로 주위를 보면 아직도 단단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 99 휴게소
한국인이 운영하는 휴게소다. LG 증권 퇴직자가 운영한다. 그래서 직원 모두 한국말을 잘 한다. 기념물품도 팔고 아늑한 휴식 공간이다. 세계 여행 중 느끼는 공통점이지만, 한국인들이 타국에서 이렇게 뿌리내리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
베트남의 대졸자 월급이 10~15만원이고 보통은 7만원이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으로 성장률이 6~9%일 때 베트남은 7.5% 성장이다. 이곳은 지금 땅 투기하면 좋은 데 외국인 거주를 거부한다. 개방 시작, 민영화 시작 단계다. 그러나 인건비는 비싸다.
커피생산 2위국이라는 말에 놀랐다. 다람쥐 커피가 유명한데 다람쥐가 커피 열매를 먹고 똥을 누면 주워다가 갈아서 만든 것이란다. 시식 코너에서 먹어 보았는데 구수하다.
주변 풍경이 한국과 아주 유사하다. 드넓은 농촌 들녘도, 멀리 산 풍경도, 도로도, 집들도 한국의 어느 한 지역에 온 느낌이다. ‘99 휴게소’ 라는 한글 간판이 더욱 정감이 간다.
* 베트남의 들녘
한국의 봄과 같다. 한국은 지금 1월, 깊은 겨울인데, 베트남은 풀리는 해방기의 3,4월 날씨, 들녘도 그렇다. 빈 밭이거나, 빈 논이거나, 아님 모판에 모를 심어 놓았다. 옛날 우리식 농사다. 더러는 손으로 모를 심는 모습도 보인다. 기계 농사가 아니다. 물도 손으로 퍼서 쓴다. 소를 방목하고 소로 농사짓는다.
인분이나 퇴비로 농사짓는다. 반나절에 벼가 3.2cm 자란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기후가 더웁다는 것이다. 아무튼 농사 형태는 우리나라와 동일하다. 그런데 들녘에 큰 나무가 없다. 전쟁탓일까.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나라, 더 발전하길 빈다.
* 베트남의 주택
맨 처음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그 밤에도 집들이 길쭉하다고 느꼈고, 오늘 아침 하노이 시내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집 모양이 위로 길다. 보이는 앞 면적은 좁은데 뒤쪽으로만 길게, 그리고 위로 솟아 있다. 땅의 좁고 넓음에 전혀 상관없이 그렇다. 한 마디로 날씬한 구조다.
1986년도에 주택 구조 변경이 이루어진 나라다. 습도가 높은 나라여서 습기를 방출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페인트 칠도 앞면만 하거나 옆면 한쪽만 했다. 시멘트 그대로 두어야 물기가 잘 마르기 때문이다. 황토벽돌, 대리석 바닥이다.
또 한국의 빌라와 같은 3층집이 단독세대다. 한 층에 방 1개씩 길게 짓는다. 그 중 1층 혹은 3층은 부엌이다. 밖에다 빨래를 널지 않는다. 훔쳐가기 때문이다. 정말 옥상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며 이상하다고 느꼈다. 호텔에도 CCTV가 없어 도난이 잦다.
주택은 모두 시멘트로 단단한 구조다. 시골에도 허술한 집은 별로 없다. 외형은 유럽풍의 아름다운 미가 약간 흐른다. 빨리 일어선 나라다.
* 베트남의 여자들 생활상
모두 여자가 농사짓는다. 들녘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진짜 여자다. 전형적인 베트남 모자를 쓰고 모를 심거나 밭일을 한다. 50세가 넘어도 여자는 일한다. 그러나 남자는 50세가 넘으면 휴식한다. 여자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한다. 그래서 한국 남자가 베트남 여자와 결혼 후 1년간 살다가 헤어져도 운다.
부모님 봉양, 남편, 아이들 잘 보살피기 때문이다. 옛날의 한국 여성과 같은 생활상이다. 농사일도 잘 하고, 집안일도 잘 하고, 아이도 잘 기르고 대단하다. 출가 외인이 되어도 친정 부모에게 잘 한다. 용돈, 방문, 자식도리 잘 한다. 한국에 시집와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남자와 이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남편이 처가 식구들 돌봐주기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말뿐이라고 가이드는 말한다. 이런 문제는 한국인들이 개선해야 될 문제들이다.
길거리에서 어깨에 베트남 특유의 짐을 막대기 양쪽에 매달아 메고 다니는 자도 여자다. 가냘픈 여자가 아니다. 훌륭한 여성들이다.
* 베트남과 한국의 혼혈아들
공식적으로는 2천~3천명이지만 사실은 1만여명으로 추상한다. 어찌보면 군인 자녀가 많을 것 같지만 아니다. 대우, 현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뿌린 씨앗이 더 많다. 한국 혼혈아가 상당히 많다.
한국 아이 고아원이 있다. 방문하면 맨발의 아이들이 눈물, 콧물 흘리며 운다고 하니 전쟁이 나은 비극이다. 한국에 미국 혼혈아의 고통과 같으리라. 그래서 베트남에게 정감이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문득 문득 스쳐지나간다.
이제는 한국도, 베트남도 외세의 바람이 잠들었으니 모두 다 털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사회와 국가가 따뜻하게 품어주길 빈다.
* 어울릴 수 없는 벽
가이드는 말한다. 지금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의 유리창이 두터운 벽이란다. 여행객과 이곳 주민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저들에게 우리는 상당히 높은 존재다. 그래서 어울릴 수 없는 벽이란다.
유리창 하나로 우리는 안전한 온실에 있고 창 밖은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거친 들녘에 선 자들이란다. 이곳은 핸드폰이 비싸다며 도난에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고역이란다. 1부 다처제란다. 한국의 그 옛날 풍습과 흡사하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선상에서, 얇고 투명한 벽이다. 활기차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로 보아 발전의 가능성이 큰 나라다.
* 베트남 교육 제도
교육 수준이 높다. 초등 5년, 중등 4년, 고등 3년, 대학 4년제다. 대학은 7월에 시작한다. 유럽풍이다. 종합 4년제 대학에 가면 군면제다. 레닌 사상이다. 호치민이 그렇게 지시했다. 호치민은 평생 사치하지 않고 검소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농사일을 좋아했다. 54개 소수민족을 통합한 영웅이다.
호치민은 지식인이 없음을 한탄하고 외국에 보내서 외국 우수 문명 도입을 유도한 사람이다. 군면제는 국가경제봉사를 위해서인데 3년을 재수해도 대학에 못 들어가면 군대에 가야 된다. 사후에도 그는 ‘호 아저씨’ 로 불리며 추앙받고 있다.
한 가정이든, 한 나라든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철학에 따라 그 가정이, 그 나라가 결정된다. 그런 밑거름 하에서 다져온 베트남이기에 교육적인 면에서도 탄탄하게 보인다.
* 베트남의 산업
주업 70%가 농경사회다. 아직 1차 산업이 주로 지배하고 있다. 2차 산업에 겨우 이르는 수준이다. 결코 3차, 4차 단계는 가지 못하고 있다.
봄, 가을은 짧은 아열대성 기후이고, 여름은 열대성 기후로 길다. 겨울도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서늘하고 긴 편이다. 그래서 주로 벼농사를 짓는데 남쪽은 3모작, 북부는 2모작이다. 최대 5모작까지 가능하다.
실제로 음식점에서 쌀로 만든 식품이 많이 나왔다. 가는 곳마다 쌀국수는 필수 식품으로 등장한다. 닭이나 소고기를 푹 고아서 구수한 국물에 쌀국수를 손수 말아 주곤 한다. 당면 종류도 알고 보면 쌀로 만든 면이다. 쌀밥도 많이 나오는데 노란 옥수수를 잘게 부수어 넣고 지은 밥이 차지고 맛있다. 기후나 환경 조건의 벽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면 눈부신 발전이 있으리라.
* 출산 문화
산아제한으로 2명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도 ‘도’는 이곳은 ‘성’이다. 충청도를 충청성으로 칭한다는 것이다. 각 성마다 자체복지를 담당하고 있다. 인구 증가율 1.4%이다. 총 인구가 8300만명인데 실제는 1억이 넘는다.
인구는 많지만 30대 초반 이하가 50%다. 장년층이 적다. 40,50,60,70대가 합하여 50%다. 그래서 베트남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 모성본능이 강하다. 남편과 이혼해도, 남편이 죽어도 아이를 갖으려고 한다. 생산 인구가 남는다.
국가적으로 산아제한을 한다. 관공서 근무자는 꼭 지킨다. 안 지키면 퇴출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농촌은 따르지 않는다. 일 때문에 국가정책을 따르지 않고 막 낳는다. 도시 여자들은 뚱뚱한 것을 싫어해서 2~3명만 생산한다.
내가 질문하여 알아낸 해답인데 듣고 보니 씁쓸하다. 자꾸만 출산을 기피하여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리나라가 더욱 염려된다. 출산 적령기의 여성들이 넓은 안목으로 내다보고 국가 인구 유지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중앙선이 흰색
차도의 중앙선이 흰색이다. 마음대로 월선이 가능하다. 대부분 오토바이가 운송수단으로 이 나라의 자가용 개념이다. 사고 나도 무조건 오토바이가 우선이다. 오토바이가 마음대로 질주한다.
하롱베이로 가고 있는 이 고속도로를 따라 5시간만 위로 가면 중국 국경이 나온다. 곰 생산지도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설명을 듣는 순간에도 버스가 계속 크락숀을 울리며 추월한다.
이 나라의 버스는 실어 나르는 사람 숫자에 따라 월급이 정해진다. 그래서 과속, 질주하는 것이다. 무서웁게 달리고 무서웁게 앞지르기를 일삼는다. 도로가 넓지도 않다. 고속도로라고 해야 한국의 지방국도 수준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한국의 면소재지 도로 수준이다.
그런데도 그 좁은 도로에서 버스와 오토바이가 우리의 대형버스를 수없이 추월한다. 고쳐야 할 사항이다. 교통은 가장 기본적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 중학생의 교복
점심 무렵 도로에 오토바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무리 중에 동일한 복장이 있어 물어보니 중학생이란다. 그런데 교복이 우리나라의 추리닝이다. 모두 청바지에 흰색과 청색, 흰색과 초록이 배합된 지퍼달린 운동복을 입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하노이 도심에서도, 농촌 도로에서도 수시로 보는 풍경이다.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빳빳한 칼러, 목을 조이는 넥타이, 값비싼 제품이 절대 아니다. 노동자 복장이다.
우리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 학생들 제복도 저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해당 중학 여학생도 그렇게 말했다. 학생에게 멋이나 치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검소한 자세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저 교복은 위대한 발상이다.
* 허술한 철도
하롱베이에 거의 이르렀을 때 철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곳은 그래도 괜찮은데 마을 앞을 지나는 철도는 상당히 허술하다. 녹슬고, 풀이 나고 정지선 철선을 연상케 한다.
중국과 교역을 위해 놓은 철도라는데, 지금도 운행하고 있다는데 기차는 한번도 보지 못했고, 그 긴 시간 동안 허술한 철도만의 시야에 담긴다. 잠든 철도다.
힘차게, 자주 한국 농촌을 가로지르는 기차의 움직임은 이곳에는 없다. 분명, 여행객도 교역도 그리 많지 않음이다. 여행을 가려면, 국내 국외 모두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 함에 대부분 사람들이 여행을 하지 않는다. 이것도 공산당의 잔재다. 깨어 일어서는 철도이길 빈다.
* 하롱베이 유람선 승선장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오른편 차창으로 간간히 하롱베이의 산이 보인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라서 금새 알 수 있다. 저 멀리 운무에 싸여 아련히 보인다.
하롱베이는 모두 석회석 산이다. 모양도 개, 해구 모양이다. 혹자는 용 모양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지금 하롱베이 시가지에 들어와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 뜬 산의 무리를 보러가기 위해 승선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항만 직원이 나와서 승인절차를 밟는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명단을 모두 적어 상부에 보고하기 때문이다. 공산당 제복을 입은 관공 직원이 곳곳에서 움직인다. 철저한 행정이다.
그런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뱃전에서 수많은 배를 보는 것도 큰 관광이다. 모든 배들이 나무판으로 지어졌고, 중후한 색채로 꾸며 유럽의 어느 유명한 해안에 온 느낌이다. 그것은 이곳에 바다가 없는 내륙의 유럽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란다.
유럽인들은 2박3일 정도의 크루즈 여행을 즐긴다. 그래서 그들이 타는 배는 1층은 침실이고, 2층이 객실이다. 1층이 아파트같은 개념으로 상당히 크고 우람한 배다.
15세쯤 되는 소년이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 배의 들고 낢을 조정한다. 우리를 태울 중간 정도의 유람선을 선착장으로 이동시키느라 뱃머리에 서서 손을 들고 야단이다. 저 아이는 학벌에 연연해 하지 않고 일찍이 전문적인 뱃사람의 기술을 공부하고 있다. 학교도 가지 않고 말이다. 이 나라는 유럽풍의 직업의식이다. 참으로 대견한 모습이다.
배와 줄과 깃발과 국기가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오봇만 해안에 정착 중인 유람선들이 그 쓰임새에 맞게 장식과 고운 치장으로 외객의 시선을 끈다. 물이 보이지 않는 배들의 촌락이다.
* 하롱베이 유람선 승선
우리 일행 15명, 현지 가이드 2명까지 17명만이 배 한 척에 탔다. 단독으로 배 한 척을 빌린 셈이다. 1층 선실은 의자와 테이블, TV, 주방, 가게 화장실이 있고 2층은 갑판과 기관실이 있다.
나무판을 배와 연결해 놓고 돌언덕을 내려가 그 나무판 위로 걸어서 배에 승선한다. 무섭지만 요원들이 손을 잡아준다. 허술한 배가 절대 아니다. 흔들림도 없이 아주 천천히, 유유히 바다로 미끄러져 나간다.
3천개의 섬이 있다는 곳이다.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용이 내려온 곳이라 하여 하룡(下龍)이라고 원래는 한문을 쓰다가 프랑스인들이 용을 찾으러 들어왔다가 신이 만든 것을 찾을 수 없다고 ‘하롱베이’ 라고 지은 이름이다.
수천만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지대, 카르스트 지역으로 수천년의 절리가 형성되어 온 곳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늘은 5시간 정도 이 유람선에서 하롱베이를 돌며 진수를 본다. 배는 점점 깊은 곳으로 가고 있다.
* 선상 중식
다금바리 회를 공동으로 사서 먹었다. 자연산으로 기른 다금바리 8kg 한 마리를 샀다. 바다에 수상가옥을 짓고 사는 어부가 있다. 1kg에 전에는 5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잘 조절되어 3만원이다.
배에서 내려 선상 해물가게에 갔다. 바다 가운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배가 멈추자 과일과 음료를 파는 아낙네 쪽배가 몰려온다. 맨발의 작은 여아도 선상에 매달려 물건을 판다.
다금바리와 게, 새우를 사서 선장이 직접 요리하여 식탁에 갖다준다. 우리 가족은 2kg값 6만원을 냈다. 회보다도 게와 새우를 많이 먹었다. 섬 사이를 꽃잎처럼 떠가는 유람선에서 맛좋은 해물파티를 하며 바다와 섬과, 인간과 기계의 축제다.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 유람선이 떠오른다. 그보다는 훨씬 긴 코스다. 오늘 풍성한 이 식탁을 오래도록 잊지 않으리라.
* 하롱베이 섬 비경
바다에 뜬 장가계다. 다르다면 중국 장가계 산은 기둥 모양이고 하롱베이 바위의 산은 뭉툭하다. 식물도 살지 못하는 석회석 바위가 비경을 이룬다. 정확히 낮 12시에 승선하여 저녁 6시까지 6시간을 보아도 끝이 없는 바위림, 어찌보면 그 산이 그 산이고, 그 바위가 그 바위 같지만 배를 중심으로 원을 그린 바다 위 산의 병풍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비경이다. 가도가도 섬, 와도 와도 섬이다.
물이 들어오면 1989개, 물이 빠져나가면 3000개의 섬이다. 최고 수심 200m, 최저수심 50m다.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들어오는 배를 모두 삼켰다가 다시 줄줄이 뱉어놓았다는 전설도 있다. 모래사장이 3곳이 있는데 그 한곳은 사다가 깔아 놓았다. 바다와 하늘, 산을 이룬 섬들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 승솟 동굴
승솟 동굴에 들어갔다. 배에서 내려 산 하나가 섬인 석회암 마지막 동굴을 관람했다. 상당히 넓다. 부처상, 거북상, 남근상 등 석회종유석이 만든 작품들이다. 석회 물방울이 떨어진 흔적을 천정 가득 그려 놓고 큰 석회석 덩이가 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자가 전기로 환하게 밝힌 조명과 함께 황홀하다.
* 티톱섬 전망대
다시 배를 타고 간 곳은 티톱(TITOP) 섬 전망대다. 러시아인의 공군 장교 이름이다. 1962년 1월 22일에 이름을 지은 것인데 미국과 대적 관계일 때 승리하기 위해서 러시아인들을 끌어왔다. 그때의 우주 비행사 이름 TITOP을 따서 이 섬을 티톱섬이라 이름지었다. 가장 많이 도움을 준 나라가 러시아다. 그러나 한 명도 싸우지 않고 하롱베이에서, 이 좋은 휴양지에서 쉬기만 했다.
모래방지턱이 높다. 인공으로 모래를 깔았기 때문이다. 티톱섬을 한참 올라 전망대에 서서보니 절경이다. 결코 낮지 않은 하롱베이 섬의 산 하나, 정상까지 올라온 것이다. 가파른 계단이 힘들어도 행복한 순간이다.
* 수상 인형극
평균 신장이 158cm인 나라다. 54개 소수족 중 겐족, 비인족이 특히 작다. 수상 인형극은 1121년도에 만든 것이다. 북쪽의 한 농부가 농번기에 쉬다가 만든 것이다. 오리와 나뭇가지 등을 보며 쌍용사에서 만들었다. 사냥, 농사, 사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구성한 옛 베트남을 보는 극이다.
베트남 TV 연속극은 대사를 한 사람이 더빙하여 제작한다. 그래서 실감이 안 나 재미가 없으니 수상 인형극이 존재한다. 유럽 25개국을 돌며 공연한다. 손놀림, 인형들 놀림은 신의 움직임이라고 유럽인들은 극찬한다. 한국인 시각으로는 유치하고 수준이 낮고 재미없을지 모르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수상 인형극이 이 나라의 표본극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캄캄하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했다. 야외 공원 한켠에 돌계단 관람석이 있고 무대에는 물이 한 가득, 그 물 속에 무대인 집이 세워져 있다. 나는 신기하여 맨 앞에 앉아서 보았다.
잠시 후 물 위를 미끄러지듯이 인형이 나와 몸을 흔들며 인사말을 한다. 진짜 말은 한켠 마루에 앉은 음악대원 중 한 사람이 한다. 효과음은 그 사람들이 다 낸다. 그 인형극을 본 순서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1. 혼자 한 남자가 나와서 인사하고는 스스로 상반신이 들어간다.
2. 용이 두 마리 나와 연기와 물을 분무한다.
3. 소 두 마리가 논갈이하고 두 명의 사람이 모내기한다.
4. 닭 2마리가 놀다가, 싸우다가, 알 낳고 병아리를 깐다.
5. 낚시꾼이 낚시를 한다. 코브라 뱀도 등장한다.
6. 부처님 7명이 나와 돌고 손짓한다.
7. 오리들 6마리씩 두 무리가 떼지어 다니고 부부가 나와 부인은 모이 주고 남편은 온다. 그런데 고양이가 와서 한 마리 잡아간다. 대사가 좋다.
8. 물고기들이 많이 나와 헤엄친다. 정교한 움직임이 실제 고기같다. 배타고 부부가 등장하여 투망을 던지며 고기 잡는다.
9. 용 2마리가 나와 물을 분무하고, 강아지, 닭, 오리 등이 나온다.
10. 뒤에서 물 속에 장대를 넣어 인형을 조종했던 사람들 9명이 등장하여 인사한다. 그리고는 다시 인형이 들어가던 휘장 속으로 들어간다. 대부분 젊은 남자고, 여자도 있다.
이 수상 인형극은 10달러 정도 요금이라는데 상당한 가치가 있다. 새로운 발상이고 수중에서 예리한 동작을 연출시킨다는 것이 독특하다. 단순히 유희가 아니고 베트남의 생활 역사를 재현시킴에 더욱 가치가 부여된다. 재미있고 유익한 인형극이다.
* 민속춤 공연
수상 인형극을 본 그 공원 안, 맞은 편에 공연장이 있다. 꼬마 전구로 나무를 장식한 아름다운 밤길을 따라 그곳으로 갔다. 역시 무대 앞 계단에 앉아서 연꽃이 핀 물 위의 둥근 무대에서 사람들이 나와 민속춤을 춘다. 남녀, 다양한 의상도 곱고 중국 묘족처럼 대나무 춤, 외줄 악기 람바우 연주 등 훌륭한 춤 솜씨다.
끝난 후에는 관람객과 무대에서 하나되어 사진도 찍었다. 흥겨운 시간, 아름다운 밤이다.
* 호텔 도착
늦게 호텔에 들어왔다. 하롱베이 새로 지은 호텔이라서 깨끗하다. 내일은 다시 하노이로 간다. 해안가 마을에서 잔다. 언제나 여행은 신비롭다.
2007년 1월 5일 금요일 하롱베이 출발, 하노이 도착
* 미드린 호텔
하롱베이가 세계 문화 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면서 관광객이 많이 몰려든다. 그로 인해 곳곳에 고층 호화 호텔이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유숙한 미드린 호텔은 하롱베이 바다가 보이는 대로변에 잘 지은 건물이다.
객실도 많고, 뷔페조식 식단도 좋고, 종업원들이 상당히 친절하다. 와서는 말을 걸기도 하고 표정이 상당히 밝다. 밖으로 나갈 때면 출입문을 꼭 열어준다. 서양식 매너다. 떠나올 때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인 현관에서 굿바이, 예쁜 소녀가 베트남 전통복차림으로 뜨거운 손짓으로 배웅한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 일하는 사람들
호텔 앞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많다.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나무에게 거름을 주려는 듯 뗏장을 벗기고 있다. 부흥을 상징하는 손놀림이다. 호텔 주변에서 진주 목걸이와 사진을 파는 여인도 있다.
일하는 국가는 흥하리라. 전쟁을 치른 국가에서 발돋움하는 소리다. 고깔 모양의 월남 모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가슴 훈훈한 광경이다.
* 하롱베이 시가지 풍경
하롱베이에 공항이 들어올 예정이다. 그래서 땅값이 비싸진다. 한국인이 투기 대상인 곳이란다. 그래서일까 해안의 도시인데 개인 주택과 건물들이 깨끗한 외형이다.
야자나무가 가로수로 길게 심어져 있다. 마을 깊숙이까지 야자수가 일렬로 서 있다. 크고 작은 야자수가 참 많다. 역시 이곳에서도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출근한다. 근면성실한 모습이 보인다. 하롱베이를 안고 사는 도시, 신이 내린 선물로 부강해지는 도시다.
* 하롱베이 출발
외국인들이, 특히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나가지 않고 사는 곳이 바로 하롱베이다. 경치가 좋아서 여기서 결혼도 하고 눌러 산다. 실제로 하롱베이 유람 중 전망대에서, 동굴에서 서양인들을 많이 만났다.
아직 전기료가 비싸 저녁엔 가정집이 캄캄한 곳이다. 그래도 하롱베이 비경은 대단하여 늘 사람으로 북적이는 도시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다.
버스 안에서도 왼편으로 석회석 암벽의 섬들이 보인다. 모두 나무로 푸르다면 저리 곱지 않으리라. 암벽 위에 절벽에 사는 푸른 나무와 바위림이 연출하는 하롱베이는 육지에서 보아도 장관이다.
아마 석회석 채취로 산을 파내는 곳도 있다. 큰 산을 허문 절벽조차 비경이다. 버스는 다시 하노이를 향해 달리고 있다.
* 베트남 요리
미원을 많이 사용한다. 어쩐지 음식이 느끼하다 했더니 그래서였다. 가이드 맛에 의하면 고기를 구울 때도 듬뿍 넣고, 다시 국으로 내갈때도 미원을 많이 넣는단다. 그걸 보면 모두 놀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국을 먹고 나면 반드시 물을 4컵 먹는단다.
국물이 진하다. 닭고기국, 소고기국 모두 그렇다. 그런데 그냥 먹어도 될 것을 왜 미원을 넣을까. 한국의 60년대 생활상 그대로다. 이제야 음식 문화에 눈 뜨는 나라다. 이런 단계를 거치고 나면 한국처럼 웰빙 문화가 싹트리라. 그래도 음식은 충실하다.
독특한 식물의 잎이 있다. 그것을 국에 넣기도 하고 만두처럼 쌀국수를 쌀 때 넣기도 하는데 역겹다. 어떤 이는 그 냄새 때문에 식사를 못한다. 나는 씹어먹을 수 있어 그냥 먹었다. 모든 것들이 자국과는 다른 문화를 지니고 산다. 베트남에 왔으니 베트남의 음식 문화를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 음식 비슷하다. 정통식은 야채와 고기 등을 기름에 볶아서 나온다. 중국과 접경 지역이고 지배영향으로 그리 형성된 것 같다. 그래도 쌀밥, 김치 문화는 한국과 동일하다.
* 월남전과 한국의 발전
월남전 당시 파병했던 한국은 베트남과는 뗄 수 없는 사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 사관학교 졸업 후 장교로 복무하다가 다시 한국의 육사를 졸업한 사람이다. 호치민 초대 대통령 시절이다.
베트남 남부는 그 당시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고위층 간부가 금괴를 비행기에 싣고 해외로 도망가려 했는데 그 금괴가 무거워 비행기가 이륙을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 그래도 지원해준 나라는 미국이다. 태평양 주변국을 잡기 위해서는 베트남도, 한국도 미국에게 있어서 소중한 지역이다. 한국도 박대통령이 이곳에 파월 장병을 보냈다.
결국 게릴라 전에서 월남이 패배함으로 공산당이 승리하여 지금의 베트남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한국 군인의 희생만 머리 속에 담고 있었는데 베트남전을 치르면서 한국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때 발전한 한국기업이 대우, 한진, 현대라고 한다. 이곳에 와서 건설을 맡기도 하고 고철을 주워다가 사업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준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비극을 두고 쉽게 해서는 안 될 이야기지만, 그것은 역사적인 호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또한 소중한 우리 용사들의 목숨과 바꾼 것인만큼, 그 댓가는 타당한 보상이라 여겨진다.
* 하노이 도착
베트남 들녘을 풍경을 보며 달려온 버스가 하노이에 낮 12시쯤 도착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머리는 자유럽게 묶거나 풀고 하교하는 모습도 보인다. 가장 본받고 싶은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우리가 본받아 가야 할 것도 있다. 바로 학생 교복이다. 잠바 차림이 참 편안하고 검소해 보인다.
여전히 오토바이가 많다. 길가의 노점 행상도 많다. 베트남의 수도인 만큼 모든 것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많이 번창해진 도시다.
* 한류 열풍
1986년 개방이 시작된 나라다. 한국인은 1991년도부터 들어왔다. 우리 교민들은 이곳에서 여러 산업에 손을 대고 있다. 100가지 산업이면 70가지 정도 진입하고 있다.
한류열풍 주역은 연예인이 아니고 이곳에서는 한국 기업인들이다. 베트남은 자원이 풍부해도 IT 정보 산업이 안 되니 절대로 한국을 앞지르지 못한다. 대단한 한국이다.
세계 여행 중 곳곳에서 오는 삼성, LG 전광판이 그 증명이다. 베트남의 그 최장 긴 다리에도 LG 입간판이 죽 늘어서 있다. 자랑스런 내 조국, 내 동포들의 활동상이 우리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 호안키엠 호수
하노이 시내의 주요 호수다. 아주 크다. 가장자리에는 나무를 심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중앙에는 거북이 상이 서 있다. 탑 모양이다. 소원을 비는 곳이다. 거북이가 칼을 들고 나왔다 하여 환검 호수라고도 부른다.
베트남은 거북이가 사랑받는 동물이다. 곳곳에 많은 상이 있다. 경복궁 외 한국의 여러 궁 주변에 호수를 만드는 것은 땅이 꺼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호수도 베트남의 안위를 지켜주는 유익한 호수다. 아름다운 호수다.
* 문묘 공자 문학 사원
쉽게 말하면 공자묘가 있고, 공자 사상을 교육하던 문묘대학이다. 중국 영향으로 공자를 높이 받들고 있다. 하노이 복잡한 도심에 있다. 사원 입구에 下馬탑이 있다. 옛날 왕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던 곳이다.
문묘의 문이 5개인 것은 삼강오륜을 건축에 접목시킨 것이다. 문을 넘고 넘어 들어간다. 붉은색을 칠한 것은 학문을 잘 닦으라는 뜻이고 잉어 문양 지붕은 잡귀를 몰아낸다는 뜻이다.
큰 문을 들어서니 천검 연못이 있다. 하늘 빛을 받는다는 의미의 못이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이 연못에 과거 급제한 사람들이 내려와 손을 씻었다고 한다. 양쪽에 계단이 호수로 내려오도록 되어 있다.
양 곁에는 공자 벼슬 자리에 오른 과거 급제 합격자들의 진사명비 비석이 즐비하다. 거북상 위에 크고 작은 돌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험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돌비크기가 크고 작다. 거북이 코를 만지면 복이 온다 하여 거북이 코가 사람들 손길로 맨질맨질하다.
깊숙한 안쪽에 ‘만세사표(萬世師表)’ 즉 온 세상의 스승이란 공자에 대한 극존칭이 붙은 사당이 있다.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바로 앞에는 주작과 거북이상이 있다. 거북이상 위에 새가 서 있는데 그 봉황새는 중국을 상징하고 거북이는 베트남을 상징한다. 중국을 쳐받드는 나라가 베트남이란 뜻이다. 중국 사당을 모방했다.
공자의 좌상 곁에는 그의 제자 4명이 있다. 커다란 동상으로 꾸며 놓았다. 맹자, 증자, 자사, 안자의 마네킹이다.
이곳 대학은 한국의 성균관대학교와 같다. 성균관 유생들은 학교 내에서 숙식하며 공부했지만 이곳 문묘대학은 외부에서 숙식하고 공부만 이 건물에서 했다. 지금은 명륜당처럼 건물만 오롯이 보존하고 있다. 문묘는 국자감이다. 사대부, 왕족만 공부하던 전당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다 허물어져 입구의 기둥 네 개만 진짜고 나머지는 다시 복원한 것이다. 상당히 넓고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문학사원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돌아보았다.
* 싱크루 시티투어
베트남의 교통 수단인 싱크루, 또는 씨클로는 앞은 인력거이고 뒤에는 자전거와 같은 기능으로 만들어져 있다. 영업용 택시와 같이 번호표가 붙어 있고 전에는 부자가 타고 다니던 것이다.
요즈음은 일반인도 타지만 대개 외국인 관람용이나 결혼식 때 사용한다. 하노이를 일주하며 흥겨운 시간이었다. 1대에 1인씩 태우고 뒤에서 발로 몰아간다. 오토바이 때문에 운송이 중단된 교통수단인데 1시간여 동안 하노이의 수많은 오토바이를 만났다.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굉음으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혐오스러웠다.
하노이 인구가 도심만은 350만명이고 외곽까지는 600만명이다. 낮에는 오토바이 사고가 나지 않는데 밤에는 종종 난다. 검문에 불응하고 달아나면 경찰이 쫓아가 머리를 때린다. 죽어도 무관하다. 공산주의식 단속이다. 그런데 싱크루 투어를 하며 내가 느낀 소감은 ‘오토바이 구조조정을 해야겠다’ 는 결론이다. 오토바이가 지나치게 너무 많다.
나를 운전한 기사는 할아버지였는데 평생을 업으로 해 온 운전이라서 아주 노련하게 잘 몰았다. 딸랑딸랑 종소리로 위험 접근을 막으며 사거리, 또는 대로에서도 잘 피해갔다.
하노이의 재래시장과 상점들, 민가 단지 등 모두 다녔다. 중국 북경의 인력거 투어보다 훨씬 값진 투어다. 출발지점에 돌아오니 사진을 찍던 아저씨가 인화하여 한 장에 1달러씩 판매하여 모두 샀다. 그들은 돈을 벌어 좋고, 우리는 기념사진을 가져가니 좋다. 큰 사이즈에 한화 천원이면 싼 편이다.
어떤 이는 지옥 체험이라 말한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기적이란다. 곡예 운전을 이르는 표현이다. 일생을 만나도 다 만나지지 않을 수천, 수만대의 오토바이를 하노이에서 다 보았다. 20달러를 내었지만 하노이를 이해하고 공부한 것에 비하면 아깝지 않은 금액이다. 눈물겨운 돈 벌이다.
* 한기둥 사원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물 위에 지어졌다. 왕이 무자식이라 왕조가 끊기지 않게 아들을 주신 것에 감사하여 지은 사원이다. 꿈을 연꽃을 보아서 사원도 연꽃 모양으로 지었다. 소원을 기원하는 곳이다.
조그만 연꽃 위에 기도하는 손이 받쳐든 모양으로 한기둥 사원을 받들고 있다. 기둥이 크긴 하지만 독특한 공법이다.
그 뒤뜰에는 보리수 나무가 있다. 석가모니가 불도를 닦았다는 그 보리수 나무를 떼어다 심은 것이란다. 매우 크고, 부처님 조각상과 사람들이 기원하며 바친 꽃들이 아름답다.
한기둥 사원에는 향불을 피우고 기원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계단을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와 바닥에서 왼쪽으로 세 바퀴 돌면 딸을 낳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면 아들을 낳는단다. 속설이겠지만 나이 든 어느 여인이 그렇게 하여 딸 아이를 얻었다고 한다.
보리수 나무와 연못, 분홍 외기둥, 물 위에 핀 연꽃 지붕 등은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 바딘 광장
하노이 도심에 있는 아주 큰 광장이다. 차량 통행 금지 구역으로 한국 서울의 여의도 광장 옛 모습과 비슷하다. 넓고, 길고 깨끗하다. 각종 집회와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호치민 묘소와 생가가 그 주변에 있고 베트남 국기가 펄럭인다. 향불을 피우는 곳이 잔디 광장을 건너 멀리 있다. 호치민 묘와 국기와 향로가 일직선으로 있다.
이 주변은 대사관 지역으로 나무가 우람하다. 베트남의 나무들은 대개 작은데, 이 주변의 나무들은 아주 크다. 자연이 잘 보존되고 확 트인 공간이다. 호치민 묘소만이 높이 솟아 있을 뿐 그 어떤 건물도 없는, 그야말로 드넓은 광장이다.
* 호치민 묘소
바딘광장 노변에 크게 서 있다. 1969년에 80세로 사망한 그는 베트남의 추앙받는 영웅이다. 무덤 건물 상단에는 ‘CHU TICH HO-CHI-MINH’, 즉 ‘주석 호치민’ 이라는 글씨가 씌여 있다. 왼쪽으로 ‘베트남 사회주의 만세’, 오른쪽에는 ‘호치민 주석이여 영원하라’ 라는 구호가 공원 담장에 걸려 있다. 중국 천안문 광장의 모택동 구호와 유사한데 단지 글자 색깔이 적색이 아니고 녹색이다.
교육자 집안 출생이다. 민족주의에 가담한 베트남 학자 집안이다. 국립대를 졸업하고 2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 진취적 사고를 지닌 그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뇌하다가 많은 지식인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함께 외국으로 떠났다.
그 당시 동양인들은 서양인들로부터 원숭이 취급 받으며, 인간 이하로 막노동을 해야 했다. 유럽,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여 베트남 청년 동맹을 결성하고 공산당을 창당하여 프랑스에 입당했다. 그 후 러시아로 가서 사회주의를 공부했다.
그리고는 베트남에 돌아와 우리의 ‘임시정부’ 와 같은 조직을 수립했다. 베트남의 억압된 식민지 해방을 위해 운동하다가 30년간 징역받고 떠돌아다니다가 홍콩에서 다시 수감되었다.
그는 20대에 자서전을 썼다. 한국에도 그 때 쓴 책 내용이 발간되었다. 손에 낡은 타자기와 동지 3명으로 의용군을 조직하여 베트남 독립 운동을 하는 내용이다. 프랑스가 호치민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 모국에 10만 군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호치민은 게릴라 전으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북쪽으로 후퇴하는 외적을 라오스 국경지역까지 몰아냈다. 1859년 처음 독립했다. 그 선포지역이 바로 지금 서 있는 저 무덤이다. 이 자리에 국민들 모아 놓고 독립선언을 선포했다.
1969년 사망시 러시아로 보내 시신에서 장기를 모두 빼고 방부 냉동 처리해서 이곳에 묻었다. 1년마다 10월 중순부터 11월말까지 방부처리를 하여 생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무덤의 외벽 모양은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을 상징한다.
바딘 광장 중앙 호치민 묘소 앞에는 황성 적기가 드높이 올라 펄럭인다. 별이 5개인데 ‘사, 농, 공, 상, 병사’를 뜻하며 바탕의 적색은 ‘사회주의 이념’ 이다. 또한 호치민 묘소의 맞은 편 담장 앞에는 향로탑이 있다. 호치민 묘소-국기-향로탑이 일직선으로 있다. 곁에는 국회의원 건물인 중앙위원회 건물이 있다. 1년에 2회 모여서 국정운영회의를 여는 곳이다.
9시에 국기 게양식이 있고 자전거 도로 광장으로 개방하며 사람들은 자유로이 왕래한다. 유리관에 있는 호치민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일체의 전기물 반입은 금지다. 우리가 간 그날은 금요일이어서 입장을 못했다. 금요일은 휴관일이어서다.
나는 호치민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나니 비록 타국의 영웅이지만, 그의 생애에 대하여 존경스러웠다. 한 국가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대한 지도자가 있음을 다시 확인시키는 현장이다. 박정희를 존경하는 나라, 검소하고, 농촌을 사랑하고 호치민과 닮은 점이 많아서일 것이다.
새마을 운동을 따라서 실행하고 있는 나라다. 곳곳에서 보인다. 건축물에서, 사람들 손에서, 도시에서, 농촌에서, 어른에게서, 아이에게서, 곳곳에서 성실함과 근면함이 보인다.
지금은 미국과 공조하며 자본주의적 사회주의로 힘찬 발돋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영문 상호가 많으며,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직도 남아 미국 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부디 일어서길 빈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함께 성장 발전하여 평화롭게 살길 빈다. 호치민, 그의 업적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빛이 보인다.
* 라텍스 매장 견학
베트남은 고무나무 진으로 만든 방수가방이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아기 기를 때 노란색 구멍 뚫린 기저귀용 고무줄이 바로 라텍스다 고무 수액은 밤에만 받는다. 낮에는 고온과 햇볕으로 응고되기 때문이다. 뽑자마자 바로 밀봉하여 병원으로 소량 들어가고, 다량은 해외 수출용으로 쓴다. 변동 금액으로 금액은 매일 다르다.
우리가 견학 온 이 라텍스 매장은 그 고무진을 이용하여 만든 침구류 전시장이다. 고무수액 냄새로 비염 치료가 되기도 하고, 병원 수술용 장갑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라텍스다. 침구류에는 함유량 90% 이상으로 만들어 인체에 좋다고 잘 생긴 한국인 사장은 설명한다.
라텍스는 천연고무란 뜻이다. 베트남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이, 나는 물건을 보는 것보다 더 기쁘다. 베개와 침대 매트를 주로 팔고 있다. 전 직원이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
‘NONG NieCH VietNAM’, ‘농협 베트남’, 즉 베트남 농협이라는 영문 상호가 건물 위에 크게 걸려 있다. 마당에는 도자기 전시장이 있고 아주 크고 다양한 상품 매장이다.
* 중국 닮은 야광 나무 가로수
하노이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자 야광나무 가로수가 보였다. 중국에서나 보았던 연민의 나무다. 거리 조명이 어둡자 나무 밑동의 회색 석회가 하얗게 빛을 발한다.
혹자는 나무 벌레 기생 방지용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전기불 효과를 내는 용도라 하기도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후자다. 인간을 위해서라지만 갑갑하고 화학 냄새가 나는 물질로 나무 기둥을 두르는 것은 보기에 나쁘다. 커다란 나무마다 무릎 부분까지 하얗게 이질감이 나는 옷을 두르고 있다.
* 베트남의 신도시
한국의 분당과 같은 신도시다. 높은 아파트 숲이 베트남 도심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아파트 1층은 오토바이 주차장이고, 2층부터 거주한다. 이 나라는 오토바이를 훔치면 모두 분리시켜서 판매하므로 분실하면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전용 주차장에 잘 보관한다.
비싼 신흥 아파트 단지다. 한국의 강남이다. 한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이 거주한다. 한 단지에 8동, 6동 정도 서 있다. 평당 한화로 400만원, 42평 아파트면 1억 6천만원이면 산다. 한국 계산으로는 싸지만 이곳 계산으로는 상당히 고가의 아파트다.
* 도로 중앙의 잔디 광장
도로 중앙의 분리대 부분이 넓은 잔디 광장으로 된 곳이 있다. 도로보다 더 넓다. 알고보니 50년~60년 후, 교통량이 많아지면 서서히 줄여서 도로로 확장하기 위해서다.
유럽 문화의 모방이다. 한국은 도로변의 건물을 부수어 길을 넓히는데, 그에 비하면 현명한 도시 계획이다. 땅이 넓은 나라라고 이해하려 해도, 도로 중앙의 잔디 광장은 눈부시다. 기발한 발상이다.
* APEC 회담 건물
베트남 순수 기술로 지었다는데 상당히 수려한 건물이다. 지붕이 물결 형상으로 저녁 조명을 받아 더욱 아름답다. 내부는 LG, 삼성이 모니터의 여러 가지 가전 제품을 지원해 주었다.
땅이 넓어 외곽에는 녹지 공간이 많다. 그래서 건물이 앉은 주변은 황량하다. 건물도 크고 우람하지만 앉은 부지가 넓고 한적한 곳에 시원한 모습이다. 조금 더 변두리로 가면 계단식 논이 많은 나라다. 훌륭한 건물 앞을 지나왔다.
* 정일품 석식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正一品’ 상호에서 한국 냄새가 물씬 난다. 하노이에서 먹는 마지막 저녁식사다. 돼지고기 볶음, 조개 두부 된장, 쌈장, 야채, 김치, 시금치, 땅콩 볶음, 파인애플 후시까지 완벽한 식단이다. 참 맛있게 잘 먹었다. 우리 입맛에 딱 맞는다.
식당에서 한국의 9시 MBC 뉴스를 보았다. 2007년 1월 5일 당일 TV 뉴스다. 이곳 시계로는 오후 7시인데 한국 시계로는 오후 9시 뉴스다. 위성 안테나를 달아 생생하게 동일한 시간 대의 프로를 볼 수 있다.
주요 뉴스는 일본 혈족 살인이다. 치과 4대 가정에서 20세 여동생이 4수생 오빠에게 공부를 못해서 치대에 못 들어간다고 했다고 죽여서 4도막 내어 그 봉지에 담아 장롱에 넣고는 부모에게는 모른다고 했단다. 끔찍한 뉴스다. 일본은 혈족 살인이 1년에 50회 정도 일어나는데 이번은 너무 잔인하다고 말한다.
마광수 교수가 제자의 시를 자신의 시집에 삽입하여 모두 회수해서 파본시킨다고 한다. 한편도 아니고 여러 편을 그대로 혹은 조금 바꿔서 실었다. 마광수, 그도 시인인가. 남의 시를 도용하다니, 시인의 기본 수칙도 못 지키는 시인 이하의 시인이다. 어이가 없다.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의 행위야말로 시인에 대한 큰 모독이며 부끄러운 수치라고 생각했다.
오늘밤 12시 45분 비행기라서 여유있게 뉴스를 다 보았다. 식당 홀도 넓고, 깨끗하고 TV 화질도 좋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이 뿌리내리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데 오늘 밤 베트남에서 그 한 삶을 본다.
* 아울렛 쇼핑
시간이 좀 여유있어 아울렛 매장에 들렀다. 이곳은 수출 물건을 120%정도 생산하여 조금 흠집이 있는 20%의 물건을 싸게 파는 곳이다. 그래서 바코드가 없다.
물건이 다양하지는 않다. 영국 버버리 상표만 파는 가게도 있다. 의류와 기념품, 식품 등 몇 개의 코너가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정이 있어 아이의 옷도 사고, 나는 큰 아들의 오리털 잠바를 샀다. 메이커가 있는 좋은 물건인데 이제 이 나라의 겨울이 서서히 가고 봄이 오므로 아주 싼 값에 판매한다. 달러 50불, 한화 5만원이다. 20만원 정도의 옷인데 그리싸다.
이곳 직원들은 베트남인인데 한국말을 잘 알아듣고 잘 한다. 영어도 잘 한다. 상업에 대한 매너도 신사적이고 좋다.
* 비행기 연착
갑자기 가이드가 오늘 밤 비행기가 캔슬되고 내일 오전 9시에 간다고 공항에서 연락이 왔단다. 기술적인 결함이라 하니 베트남 항공이 정비가 덜 된 듯 싶다. 내일이 토요일이니 근무 관계는 모두 괜찮은데 한국에 두고 온 둘째 아들이 걱정된다.
베트남은 국외 전화 체계가 이상하여 전화하기도 불편하다. 호텔에 다시 돌아왔다. 공항에서 제공하는 호텔이다.
* 호텔 도착
차라리 밤을 베트남에서 보내고 밝은 낮에 창공을 날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작은 아들에게 컴퓨터에서 이메일로 쓰려 하니 자꾸 에러가 난다. 내일 아침에 다시 쓰기로 하고 룸에 투숙했다. 우리 가족은 셋이라서 VIP 객실을 주었다. 넓고 고풍스런 호텔이다. 참 좋다.
2007년 1월 6일 토요일, 베트남 하노이 출발, 인천공항 도착
* 금련 호텔
계획이 없이 투숙한 호텔이다. 비행기가 결항하여 하루를 유숙한 것은 처음이다. 방이 두 개, 거실 응접실, 히타, TV 2개 모두 최고급이다. 이색체험이다. 하늘길에서 멈추지 못하는 비행기니만큼 늦게 떠나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공항의 수칙을 보고 있는 것이다.
호텔은 만원이다. 함께 가야 하는 승객이 모두 같은 호텔로 운집된 것이다. 새벽 5시에 모닝콜이 울리고 6시에 조식, 6시 30분에 출발이다. 큰 아들은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어제 보내지 못한 이메일 편지를 썼다. 컴퓨터가 한글과 연결되지 않아 영문으로 보냈다고 한다. 서둘러 조식을 마치고 공항 버스를 기다렸다.
* 공항 버스로 이동
공항에서 몽고 버스가 연달아 들어와 승객을 실어나른다. 우리 일행 13명만 타고 3명은 다른 버스로 갔다. 대난리다. 짐은 또 다른 전용 짐차에 따로 실었다. 모든 버스에 베트남 하노이 노바이 공항 마크가 있어 안심이다. 이것 또한 이색 체험이다.
* 공항 가는 길
공항은 약 40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그래서 하노이의 새벽 재래 시장을 지나, 통근 대로를 지나, 프랑스인이 놓았다는 다리를 지나 베트남 들녘을 한참 달려간다.
여전히 안개에 싸인 도심, 들녘이다.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사람이 겹치는 곳에서는 아슬한 곡예 운전이다. 베트남의 생생한 아침을 고스란히 보고 있다.
* 하노이 노바이 공항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을 태운 공항버스는 다 들어왔는데 짐을 싣고 떠난 버스가 오지 않는다. 무슨 연유인지 다른 차량이 가서 옮겨 싣고 와야 한단다. 교통 위반에 걸린 것 같다고 한다. 참으로 여러 가지 체험을 하고 있다.
아무튼 짐이 와야 비행기가 출항하니 모두들 기다린다. 그로 인해 나는 노바이 공항의 내경과 외경을 많이 보았다. 깨끗하고 아름답다. 공산당 복장의 근무원이 활발히 움직이고, 공항 밖은 멀리 뽀얀 들판이 보인다.
기다리던 짐차가 도착하고 탑승 수속은 속히 이루어졌다. 1시간 늦은 오전 10시경에 무사히 이륙했다. 베트남 하노이 노바이 공항이여 안녕히. 그렇게 손짓하며 떠나왔다.
* 창공의 눈부심
아침 일출을 하늘에서 맞았다. 베트남의 그 우울한 운무층을 뚫고 오르자 하늘은 해맑다. 벌써 태양은 높이 솟았고 창공의 눈부심은 대단하다. 베트남 하늘이 뿌연 것은 바닷가 나라여서 그렇다 하지만 하노이에 오토바이가 많아 매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창 밖을 볼 수가 없다. 신문을 보고는 창문 덮개를 내렸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태평양 바다 위로만 가므로 볼거리라고는 구름 덩이와 푸른 창공 뿐이다. 그래도 창공의 신비는 여전하다.
* 인천공항 도착
한국 시각으로 오후 4시경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4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다. 기내 중식을 하고, 서울은 깊은 겨울이라서 두터운 옷을 입고 내렸다. 베트남 UN 936 공항은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 앉았다. 베트남 항공은 기내도 깨끗하고, 소음도 없고 좋다. 사람보다 늦게 내려온 짐을 찾고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리무진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 집으로 가는 길
베트남에서 한국의 날씨에 대한 예보로는 오늘 낮까지는 포근하다가 오후부터 쌀쌀한 바람이 불어 추워진다고 했다. 정확하다. 바람이 쌀쌀하여 춥다.
리무진 버스로 공항을 나오면서 본 한국의 들녘에는 눈이 쌓여 있다. 신기한 풍경이다. 캄보디아, 베트남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눈을 보러 여행 온다더니, 정말 진풍경이다. 춥다는 것보다 한국의 겨울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금년 겨울, 우리 가족은 사계절을 거친 셈이다. 한국의 겨울과 베트남의 봄, 가을, 캄보디아의 여름, 그래서 사계절의 옷을 입어본 1월이다. 뜻깊은 해외 나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큰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앙코르왓트 유적지에 대한 책을 여러 권 펴놓고 다시 읽고 있다. 나도 읽어보니 가보기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두뇌에, 가슴에 콕콕 박힌다. 모두 훤히 보인다. 고개를 끄덕이며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문화 유적지 탐방을 아름답게 정리했다.
혼자서도 1주일 동안 생활을 잘 해온 스물 다섯 살 약사인 둘째 아들, 대학원 실험을 중지할 수 없어 함께 못간 나의 작은 아들, 듬직하고 참으로 대견스럽다. 나는 자손들에게 힘주어 강조한다. 시간이 허락하거든 해외에 나가라고. 돈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얻어 오리라고.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살 때도 가족과 함께 세계를 돌아보라고. 그것은 가장 값진 교육적 투자다.
다음에는 그리스, 터키, 이집트 문화 유적지 탐방을 구상하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아름다운 겨울 밤이다.